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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1018]고통 구경하는 사회_기자의 눈으로 보는 언론과 사회의 지향점

by bandiburi 2025. 3. 5.

『고통 구경하는 사회』는 다소 직설적인 제목의 책이지만, 저자가 기자의 눈으로 적나라하게 우리 사회의 현실을 진단했다. 저자 김인정은 뉴스에 크게 보도됐던 세월호 사고를 포함한 사건사고들이 재소환해서 자신의 해석에 풀어나가는데 독자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뉴스를 검색해 볼 수 있는 시대다. 네이버 뉴스나 유튜브를 통해 원하는 기사를 골라 볼 수 있다. 알고리즘이 추천해 주는 기사는 자신의 취향에 맞아 더 자주 찾는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편향된 기사만을 소비한다. 뉴스 소비자가 뉴스의 유통에 대해 이해하고 생산 과정을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는 이유다. 

이 책은 뉴스를 생산하는 기자와 언론사의 입장을 잘 보여준다. 수많은 기자들을 통해 기사가 만들어진다. 그중에서 선별된 것들이 기사로 확정되어 보도된다. 그 선별이라는 과정이 맹점이 될 수도 있다. 그 사례로 보여준 수도권과 지방에 대한 기사의 편중을 비판하는 부분이 그래서 마음에 들었다. 

기사를 생산하는 언론사는 광고를 통한 이익을 추구한다. 요즘은 온라인 기사 경쟁이다.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퍼나르는 식의 쓰레기 기사들이 범람한다. 건설업을 가진 사주는 부동산 관련 기사를 과도하게 언급하며 대중을 현혹한다. 유튜브에서 구독자를 늘여 수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사실여부에 대한 검증도 없이 자극적인 루머를 퍼트린다. 고통받는 피해자들의 입장이 아닌 수익 추구의 입장만을 바라본다. 

고통받는 타인은 바로 고통받는 나와 나의 가족일 수도 있다. 그런 작은 생각의 전환으로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사회다. 그리고 그런 사회에서 고통을 일으켰던 원인들이 개선되고 치유될 수 있다. 그런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은 구성원들이지만, 큰 정책을 만들고 추진하는 것은 국민의 대변자들이다. 위정자들이 국민을 먼저 생각할 때 우리는 확고한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고통 구경하는 사회』는 저자가 기자 생활을 하며 경험했던 모든 것을 쏟아부은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
아래는 책에서 남기고 싶은 문장을 인용했다. 


(...) 그러나 타인의 고통을 본 뒤 슬픔에만 머무르라고 강요하는 건 이상하다. 구경하는 눈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많으니까. 본 뒤에는 우리끼리 눈을 마주치고 우리가 어떻게, 어디로 가야 할지를 함께 고민하는 일이 남아있으니까. 어쩌면 이런 선언은 참사의 책임을 묻기 위해 정치가 가동되는 순간을 원천 봉쇄하는 커다란 부작용을 낳고 있지는 않을까? 하나의 고통이 사회적으로 알려져야 하는 이유는 다양하고, 슬픔은 많은 이유 중 하나이지 전부가 될 수 없다. (34)

테크 기업은 사용자들이 상당한 노동을 일종의 셀프 서비스로 대신 하게끔, 그 노동의 결과를 자신들이 콘텐츠로 빨아들일 수 있게끔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설계했다. 그러니 오늘날 온라인에 '존재'한다는 건 스스로 콘텐츠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당연한 수순으로 뉴스 역시 테크 기업이 펼쳐둔 그물망에 포획된 숱한 콘텐츠 중 하나다. (42)

우리는 안전한 자리에서 자연재해라는 스펙터클을 관람한다. 악천후는 구경거리로 전시되고, 재난 현장은 정치적 포토월로 전락한다. (81)

저 멀리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니, 그들의 날씨가 우리의 날씨가 아니고 그들의 기후가 우리의 기후가 아니라며 무심히 지나치고 있지는 않은지. 오늘의 문제를 계속해서 이야기해야 하는 뉴스는, 그리하여 태생적으로 근시안이다. 뉴스는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이라 인간을 닮았다. 보이는 걸 보이는 대로 보다가 자칫하면 주류의 시각을 답습한다. (89)

고통이 진자처럼 흔들리며 역사의 영역과 뉴스의 영역을 오갈 수 있는 건 아픔이 다시 파헤쳐져 상처가 덧나고 있을 때뿐일까? 5.18 혐오가 중앙 뉴스의 주목을 받을 때마다 궁금했다. 공간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아득하게 멀어져 버린 아픔들은 누가, 언제, 얼마만큼, 어떤 방식으로 다뤄야 할까? 해결된 게 없어도 시간이 간다는 이유로 언론은, 사회는 국가 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가책을 잊을 수 있는 걸까? (110)

쉬는 걸 보이지 않아야 쉴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고쳐져야 하는 건 보이는 인프라나 환경만이 아니라 이들을 어둑한 땅속으로 밀어넣고서 깐깐한 고용주라도 된 것처럼 노동과 쉼을 고작 자신의 눈에 띈 장면만으로 평가하는 무례함이다. (124)

있는 그대로를 객관적으로 전하고 수신자의 판단에 맡긴다는 저널리즘의 대원칙 너머, 시급하고 뜨거운 고통과 폭력을 현장에서 고스란히 목격하고 있는 기자와 시청자 사이의 물리적, 정서적 거리 또한 존재한다. 이럴 때 연민과 공감을 작동시키기 위해 언론사가 사용하는 방법은 비슷하다. 전쟁의 스펙터클을 보도의 재료로 하되,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수신자인 당신과 생각보다 얼마나 가까운지를 일깨워 주는 것이다. 닮음은 그 간극을 메우는 도구다. (145)

시인이자 활동가였던 오드리 로드 Audre Lorde"내 말 좀 들어 달라고 울부짖는 곳에서, 우리는 이들의 언어를 적극적으로 찾아내 함께 읽고 서로 나누며, 그 말이 우리 삶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살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고 말했다. (155)

중앙 뉴스에서 지역이 변두리 문제로 치부되며 그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다는 건, 지역의 여론이 하나의 행위자로서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한 채 중앙 정치에서 경시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는 형평성에도 맞지 않고, 결과적으로 지역의 낙후를 심화시킬 수 있다. (192~193)

문제는 온라인이라는 공간이 생각만큼 균질하거나 투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온라인 커뮤니티는 사회문제를 토론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밈을 공유하고 웃음 코드와 감정을 나누려고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혼탁한 장소에 가깝다. 기자가 온라인 커뮤니티 특유의 문법을 속속들이 이해하고 파악하고 있지 않는 한, 커뮤니티의 글을 기사로 번역해 오는 과정에서 과장과 오독의 위험성이 생긴다. (204)

"진정으로 어려운 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것이라 믿을 만큼 인간성에 대한 충분한 신념을 가지는 것이다." 전쟁의 참상을 전하다 한쪽 눈을 잃었고, 결국 목숨까지 잃은 종군기자 마리 콜비Marie Colvin의 말이다. (237)

샌프란시스코 텐더로인Tenderloin 지역은 색채부터 다르다. (...) 어둑한 길바닥 여기저기 노숙자들이 드러누워 있다. 마약에 절어있는 그들은 정신이 비교적 맑아질 때쯤 비척비척 일어나 물과 마약을 구하기 위해 헤매거나, 자원봉사 단체들이 나눠주는 식사를 먹기 위해 노상 테이블에 앉는다. (241)

상실과 슬픔, 우울과 기억의 혼돈 속에서 그들은 뒷이야기를 새로 쓰려고 한다. 같은 이름의 다음 고통을 막기 위해. 이들의 선한 의도는 언론이 좋아하는 영웅담의 소재가 되기도 하겠지만, 우리가 그보다 더 오랫동안 바라봐야 하는 건 그들이 나눠주고 이식해 준 기억 자체일지도 모른다. 제대로 슬퍼하려면 기억을 나누어야 하고, 필요한 만큼 충분히 오래 슬퍼하려면 기억을 되살려야 한다. (261)


독서습관1018_고통 구경하는 사회_김인정_2023_웨일북(250306)


■ 저자: 김인정

광주MBC 보도국에서 주로 사회부 기자로 일하며 10년 동안 사건 사고, 범죄, 재해 등을 취재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고통의 규모와 수치뿐만 아니라, 사건의 감춰진 맥락을 복원하는 데 집중해 왔다. 법조 비리와 기업 부패를 고발한 기사 등으로 방송기자상을 네 차례 수상했다. 인권의 의미를 확산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제앰네스티 언론상을, 왜곡된 역사의 진상을 규명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5.18 언론상을 수상했다. 

전 세계를 연결하는 저널리즘을 꿈꾸며 UC버클리 저널리즘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UC버클리 탐사보도센터에서 사회 양극화와 인종 차별 문제를 취재하고, 소셜미디어와 마약 문제, 시민 운동 등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The Nation, CNN 등 외신을 통해 한국의 참사와 학살을 보도하기도 했다. 언어와 인종, 계급을 넘어 지금도 지구촌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아픔에 어떻게 가닿을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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