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 예술의 한 부분이다. 책을 통해 우리는 예술을 이해하고 인식의 폭을 확장한다. <스페인 기행> 두 번째 포스팅이다.
먼저 스페인의 다양한 사람들을 저자는 설명한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봤던 이름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차이점을 구체적으로 고민한 적이 없었다. 저자가 정리해 놓은 사람들의 기질과 특성을 보며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바스크인들, 그들은 고집이 세고 강인하며, 자신들이 이베리아 반도에 가장 먼저 정착한 신비로운 사람들이라는 거만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카탈루냐 사람들, 그들은 실용적이고 근면하며 몹시 합리적이다. 포르투갈의 국경에 있는 갈리시아 주민들은 부드럽고 서정적인 기질과 상냥하고 공상적인 정신을 지니고 있다. 카스티야인들, 그들은 옛 스페인의 하급 귀족들과 왕자들이며 위대한 스페인 영광을 만든 용감하고 불쌍하며 자존심 강한 사람들이다. 안달루시아인들, 그들은 따뜻하고 쾌적한 기후와 비애감에 깊이 물든 영혼들이다. 아랍인들처럼 관능적이고, 배우지 못했어도 교양 있으며, 가장 뜨거운 순간에도 거세고 무질서하며, 불같으면서도 동시에 게으르다. 마지막으로 발렌시아의 연안에 살고 있는 지중해 민족들, 그들은 스페인의 레반트 사람이라고 불리듯이 쾌활하고 탐욕스러우며, 겉치레를 좋아하고, 나약하다. 그들은 아라곤의 남자다운 거침과 대비된다. (103~104)
톨레도를 가족들과 방문했던 기억이다. 엘 그레코의 그림과는 다른 이미지로 남아 있다. 엘 그레코의 그림을 카잔차키스와 같이 풍성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저자의 상상력과 표현력에 감탄할 뿐이다.
톨레도는 엘 그레코가 그렸던 폭풍우 속의 그 모습 그대로 내 마음속에 살아 있었다. 높이 치솟고, 금욕적이며, 갑작스러운 번갯불이 내리치는 도시. 또한 이곳에는 인간 영혼의 화살이 구름에 짓눌린 하느님의 천둥소리를 관통하듯이, 환상적인 고딕 대성당의 화살이 있다. 톨레도의 절반의 탑들, 절반의 성벽들, 절반의 집들이 푸르스름한 번갯불에 반짝이고, 다른 쪽은 새까만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106)
장인의 고통은 우리나 엘 그레코처럼 비옥한 전환기에 맹렬하게 분출된다. 물론 그러한 창작자들은 신중한 동시대 사람들에게는 미치광이로 여겨진다. 만약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보다 24시간 먼저 안다면, 그는 24시간 동안 미치광이로 여겨진다. 엘 그레코는 2세기 반 동안 미친 사람으로 여겨졌다. 지금에서야 비로소 우리가 의식적으로 그의 고통을 경험하고 있고, 그 결과 엘 그레코는 우리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121)
시대를 뛰어넘는 사람들은 동시대인들에게 미치광이 소리를 듣는다. 충분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 우리에게도 박수근과 같은 화가들이 사후에 대접을 받는다. 엘 그레코는 200년 이상을 기다려야 했으니 훨씬 더 시간이 필요했다.
인간적인 온기를 지닌 스페인의 명랑하고 유순한 아랍 문화가 불현듯 떠오른다. 안달루시아는 인공 수로로 가득한 정원이었는데, 거기서 쌀과 사탕수수 그리고 목화가 자랐다. 아랍인들은 땅과 나무와 꽃을 사랑했다. 그들은 동백꽃뿐만 아니라 재스민, 살구나무, 복숭아나무, 오렌지나무 그리고 대추야자도 처음으로 유럽에 가져왔다. 또한 철과 가죽 세공에서도 명성이 자자했다. 어떤 민족도 그처럼 유연하면서도 부러지지 않는 칼과 얇으면서도 뚫고 들어갈 수 없는 갑옷을 만들지 못했다. (127)
그의 말은 단 한 마디만 살아남았지만, 그 말은 그가 불후의 명성을 누리도록 해주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보상의 희망이나 처벌의 두려움에 바탕을 둔 그 어떤 도덕적 체계도 인간이나 신에게 가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부도덕한 것이다!" 그것은 아랍인들의 자긍심과 존엄성이었다. (128) * 그는 Averroes(1126~1198)
아베로스처럼 살 수 있을까. 보상의 희망이나 처벌에 대한 두려움은 사회나 조직에서 인간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기본적인 심리다. 그는 이것을 부도덕하다고 했다. 아랍인으로서의 자긍심과 존엄성이라고 한다. 한편으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보상과 처벌은 사회에서 질서를 유지하고 노력하는 이유다. 우리에게 자존감을 주는 것은 무엇일까.
7세기 동안, 아랍인들은 관개 시설을 통해 대지에 물을 뿌렸고, 돌들을 다듬었으며, 그들의 영혼을 아름답게 가꾸었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은 봄 구름처럼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시민 폭동이 일어났던 것이다. 기독교도들이 봉기했다. 그들은 대지에 물을 대던 수로를 막았다. 그러자 정원이 시들어 갔다. 샘물도 말랐다. 예술과 노래와 여자들은 이제 지옥에 떨어질 대죄로 여겨지게 되었다. 아랍 문화는 그렇게 지고 말았다. 코르도바는 이제 어둠 속에 묻혀 있으며, 그 화려한 모습은 추억과 상상 속에서만 살아 있을 뿐이다. 시간이라는 모진 비바람 속의 해안에서 코르도바는 바다 거품처럼 꺼져 버리고 말았다. (130)
아랍인들이 살았던 시대의 화려함을 상상해본다. 코르도바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싶다.
이 알카사르의 문턱에서 잠시 진정한 지혜를 느낄 수 있었다. 머나먼 북부의 우울한 도시에서 스피노자의 그 말을 처음 읽었을 때는 오늘 회상했던 순간만큼 큰 감동을 느끼지 못했었다. 그 말들은 단지 희 종이 위의 검은 잉크처럼 보였을 뿐이다. 하지만 오늘 이 따뜻한 집시들의 마을인 세비야에서, 그 글들은 별안간 종이에서 떨어져 나와 비둘기처럼 내 머리 위로 날아오르며 생명력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142~143)
작가의 표현이 마음에 든다. 종이 위의 글자가 떨어져 나와 날아서 생명력을 갖게 된다는 표현은 다음이 활용하고 싶다.
그 순간 나는 스페인의 또 다른 국가적 영웅을 떠올렸다. 그는 바로 세이야에서 태어난 대담무쌍한 호색가 돈 후안이었다. 여기에서 그는 위대한 사랑의 업적을 이루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그는 일요일에 부둣가를 따라 걸으며 다시 기운을 찾았을 것이다. (...) 돈 후안은 영원히 지속되는 행복이나 완벽함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강도 높은 순간적인 기쁨을 찾을 뿐이다. (150)
아랍 건축물의 최후이자 최상의 노력은 모든 물질적 형태를 초월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능한 한 벽을 사라지게 만들었고, 그것을 호리호리한 기둥이나 아치로 대체했다. 혹은 아랍의 카펫처럼 벽들을 조각하고 디자인했다. 그렇게 그것들은 무게에서 해방되었다. 기둥들은 더 가늘어졌을 뿐만 아니라 더 낮아졌다. 아치는 영묘하게 물결친다. 장식물들은 사상처럼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이 된다. 단일한 주제가 주어지고, 이 주제는 수학적인 정교함과 환상의 풍요로움으로 무한히 울려 퍼진다. 아랍의 음악가이자 건축가들은 빛과 공기와 색으로 공간을 채웠다. (155)
아랍 건축의 특징을 아주 잘 보여준다. 다음에 알함브라 궁전을 다시 방문하게 되면 이런 관점에서 보고 싶다.
갑자기 트럼펫 소리가 울려 퍼졌다. 머리에 깃털을 꽂은 중세 옷차림새의 기병 두 명이 투우장을 돌며 정리했다. 그런 뒤 그들 뒤로 문이 열리고, 투우사들이 줄을 지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먼저 결정적인 순간에 앞으로 뛰어들어 투우를 죽일 주인공인 <마타도르>가 등장했다. 뒤이어 색색의 장식 리본이 달린 긴 창으로 날뛰는 황소의 목덜미와 어깨, 그리고 궁둥이를 찌를 <반데리예로>들이 등장했다. 그런 다음 <피카도르>, 즉 황소를 창으로 찔러 더욱 화나게 만들 말 탄 창기병들이 나왔다. 그들은 모두 정장 차림의 수도사들 같았다. 금과 은으로 수를 놓은 짧은 겉옷과 비단 허리띠, 여러 색깔이 어우러진 짧은 바지를 입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붉은 망토로 황소를 자극하고 혼란에 빠뜨릴 <카페아도르>들이 등장했다. 이런 모든 사제들은 젊고 우아했으며, 그들의 사원은 기쁨과 밝은 색, 그리고 매우 경쾌한 음악으로 가득 찼다. (166)
론다에 들려 투우 경기장을 방문했다. 위의 사진과 같은 장소다. 투우 경기에 단순이 빨간색 천을 들고 소를 다루는 사람 외에도 다양한 명칭의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네 종류의 사람들이 함께 소를 성나게 하고 차츰 힘 빠지게 하고 최후의 일격을 분담해서 하고 있다. 책을 읽는 즐거움은 바로 이런 때에 있다.
독서습관687_스페인 기행_니코스 카잔차키스_2008_열린책들(23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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