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정문정은 유튜브 세바시 강의를 통해 알게 되었다. 강의 중 사람들의 어린 시절 자라는 가족 환경에 따라 축적되는 문화적 자본이 다르다는 얘기가 귀에 쏙 들어왔다. 그녀도 결혼하며 남편과 자신의 가정이 많이 다르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길이기에 이런 점을 잘 이해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더 좋은 곳으로 가자>는 사회생활을 준비하거나 막 시작한 초년생들에게 적절한 책이다. 40대 이상이 읽기에는 어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녀들의 입장에서 저자 정문정이 들려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읽으면 많은 부분 공감을 할 수 있다.
2016년부터 고려대는 국내 대학 중 최초로 성적장학금을 폐지하고 저소득층 학생 지원을 늘렸다. 가정에서 지원을 받는 학생이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어 높은 성적을 받는 동안, 저소득층 학생은 학비 마련을 위해 학업에 전념하지 못하다 보니 성적장학금을 받지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는 문제의식에서다. (...) 이처럼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지원하는 건 적선이 아니다. 부자들이 그동안 사재기해왔던 시간과 기회를 나눠갖는 것이다. 보다 공평해지자는 것이다. (23~24)
부모가 자녀의 학비를 지원해줄 형편이 되지 않는 대학생들이 여전히 많이 있을 것이다. 지방에서 수도권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은 했지만 생활비에 학비를 스스로 감당하려고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학생들이 있다. 성인으로서 자립하고자 하지만 사회의 지원은 거의 없어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다 보니 본업인 학업은 뒤처진다. 이런 저소득층 학생들을 우선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한 고려대의 변화는 환영할 만하다.
부의 대물림과 같이 교육의 대물림도 이어지기 쉽다. 그만큼 성적장학금을 받지 않아도 학업에 지장이 없는 학생이 많은 것이다. 여러 불평등이 있지만 교육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한걸음을 내딛었다.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 돈을 벌지 않다도 되면 그만큼의 시간이 생겨난다. 생활비가 확보되면 도전에 실패해도 훌훌털고 다시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다. 무언가를 하기 위해 돈부터 벌어두고 시작하지 않아도 될 때 추진력은 강해지며 '어떻게'가 아니라 '언제'만을 고민한 후 바로 시작해볼 수 있을 때 모험심이 왕성해진다. 돈 있는 이가 그 덕에 쉽게 자지게 된 자신의 장점과 경험을 자랑하는 걸 볼 때마다 서글프다. (25)
중국 전문가가 중국과 한국의 미래를 걱정한다. 한국의 학생들은 의사나 판검사, 혹은 안정된 대기업이나 공무원을 선호한다. 이공계는 그 다음이다. 대학을 졸업해도 창업을 하는 사람은 일 년에 4500명 정도다. 하지만 중국은 이공계를 선호한다. 졸업할 때도 한 해에 65만 명 정도가 창업을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국가의 기술 경쟁력 차이는 커질 것이다.
우리가 일본을 비교하며 일본의 변하지 않는 구태를 보며 우리의 장점을 부각한 적이 있다. 지금은 중국과 비교하며 분발해야 하지만 그런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독일과 같이 대학생에게도 학비를 지원하고 생활비까지 지원한다면 온전히 자신의 학업에 전념하고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할 것이다. 도전하다보면 세계적인 스타트업도 탄생한다. 우리 사회는 실패자에게 부활의 기회를 공평하게 주지 않는 사회다. 경직되어 있다. 한 번 실패하면 그 피해를 온전히 개인이 부담하고 극복해야 한다.
한 발짝 더 깊이 음미해보지 않으면 섬세한 차이를 영원히 알 수 없고, 차이에 무감해지기 시작하면 인생이 단조로워진다. 우선순위를 정해 최소한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 있어서만은 형편이 되는 한 적극 체험해보면 좋겠다. (37)
그 시기 우연히 다시 읽게 된 <빨간 머리 앤>은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네가 외롭다는 거, 난 알아." 남자아이를 원하던 마릴라와 매슈가 빨간 머리 앤을 돌려보낸 서두의 장면, 앤이 불행한 어린 시절을 견디는 방법으로 글쓰기와 공상을 찾아낸 장면, 가족 곁에 남느라 대학을 포기하면서도 길모퉁이에 무엇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가장 좋은 게 있으리라 믿는 앤을 보며 내게 필요했던 말을 해주는 구원자를 찾았다. (41)
넷플릭스에서 <빨간 머리 앤> 시리즈 물을 보고 있다. 재미있게 잘 만들었다. 앤이 어려운 환경을 글쓰기와 상상력으로 극복해 가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이 책의 저자가 한 때 <빨간 머리 앤>에 빠져 캐나다까지 다녀왔다니 그런 몰입도 인생의 좋은 변곡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려받은 재산 없이 일가를 이룬 자수성가형 인간을 영어로는 '셀프 메이드 맨(우먼)'이라 부른다. 나를 만드는 건 셀프, 나는 이 표현을 아주 좋아한다. 부모의 정보력과 인맥, 매너가 대물림되는 세상이지만 그걸 가지지 못했다고 해서 울고만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 (...) 주변에 책 같은 사람이 없다면 책을 통해서라도, 시간이 더 걸릴지라도 견문을 넓혀 그것들을 내 정서적 서재에 꽂아두면 된다고, 아직까지 그렇게 믿고 있다. (50)
우리는 누구나 셀프 메이드 맨(우먼)이 될 수 있다. 자신의 바꿀 수 없는 상황에 불만을 품기보다는 차라리 책을 통해서라도 견문을 넓혀가자고 한다. 시간이 좀 걸릴지라도 책을 통해 세상의 넓이를 알고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새로운 업을 찾을 수도 있고 용기를 얻을 수도 있다. 책은 가장 손쉽지만 실천하는 이가 많지 않은 것 같다.
주변에 좋은 조언을 해줄 어른이나 친구가 별로 없다면, 그래서 가질 수 있는 정보의 양과 질이 한정적이라면, 최선을 다하지만 왠지 자꾸 어긋나는 느낌을 받는다면, 낯선 세계로 나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 일단 돈을 벌면서도 더 나은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자신에게 투자해야 한다. (76)
<데미안>에 이런 문장도 있다. "깨어난 인간에게는 단 한 가지, 자기 자신을 탐색하고, 자기 안에서 더욱 확고해지고, 그것이 어디로 향하든 자신만의 길을 계속 더듬어 나가는 것 말고는 달리 그 어떤, 어떤 의무도 없다."(77)
핵심은 회사에 있을 때는 회사원으로 살지만 회사 바깥이 있다는 걸 잊지 않는 것이다. 회사를 졸업할 수 있다는 생각을 염두에 두고 여기 있는 동안 무엇을 얻어낼까 생각하는 걸 잊지 않는다면, 자아는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만날 수 있다. (101~102)
취업하기가 어렵다고 회사에서 일하는 것을 인생의 목적이라 여기지 말자는 점 좋은 지적이다. 회사원으로서의 삶은 우리의 인생의 한 과정이고 도구일 뿐이다. 자신이 살고 싶은 인생의 경제적인 욕구를 만족시켜 주는 방법인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에 따라 언제든지 회사 밖으로 나갈 때가 온다는 사실을 늘 염두하며 살아야 한다. 그래야 자기 자신을 볼 수 있다. 회사에 얽매이지 않는다.
이처럼 우울증으로 가는 전조 현상으로 마음에도 물집이 생길 때가 있었다. 그럴 때 어떤 증세가 나타나는지를 정리해보았다. 몇 개나 해당되는지 세어보고 해당 사항이 많으면 잠시 멈춤을 눌렀다. (105)
생각이 많다는 것, 회사에 다닐 때는 나의 단점이자 개선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던 이 자질이 작가로 일할 때는 장점이 되었다. 글쓰기는 익숙한 것에 질문하는 일이고 궁금해하는 일이고 일상에서 낯선 의미를 찾아내는 일이다. 질문하지 않는데 글을 쓸 수는 없다. (143)
블로그 포스팅을 하며 드는 생각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늘 호기심을 가져야 한다. 어떤 새로운 기회가 있으면 어떤 글감을 얻을까 기대가 된다. '일상에서 낯선 의미를 찾아내는 일'이란 말이 마음에 든다. 블로그가 취미가 되었지만 주기적으로 내 생각을 드러내는 과정이 늘 편하지는 않다.
나보다 어떤 면에서든 뛰어난 부분이 있으면서도, 내가 질투를 해볼 수 있을 정도로 그 차이가 '넘사벽'은 아니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내가 신경쓰는 사람들보다 나를 신경쓰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는 순간도 온다. (149~150)
궁금한 문제들에 대해 깊이 있게 물어볼 수 있는 어른이 적은 청년에게, 내가 예전에 그랬듯 간접경험으로라도 배울 점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라고 말해주고 싶다. 특히 책 읽는 재미를 잘 못 느낀다는 사람에게 생생한 말로 쓰인 인터뷰집을 추천한다. (156~157)
유대인 속담 중에는 이런 말이 있다. "모든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라. 하지만 자신의 결정에 따라 행동하라."(163)
여유가 없어 다급해진, 절박함의 냄새를 풍기는 사람은 그 어떤 이와의 파워 게임에서도 진다. 이 사실을 깨닫자 전에 가졌던 의문이 풀렸다. 왜 그렇게 내 주변에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공장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았는지, 장학금 같은 정보를 찾을 수 있었을 텐데 더 알아보지도 않고 가깝고 학비가 저렴한 대학에 입학했는지,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취업이 되지 않으면 일단 어디든 어떤 조건으로든 입사하거나 결혼해버리는 여성이 많았는지... (190)
경제적으로 다급해지고 절박한 사람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우리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더 유리한 조건을 비교할 시간도 없이 당장의 학교나 공장으로 취업하거나 결혼을 했다. 사회의 파워게임이란 곳에서 누군가는 그들의 절박함을 이용해 이익을 추구한다. 저자는 그런 파워게임에서 지지 않기 위해 절박한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하고 여유를 가지고 선택하라고 권한다. 젊은이들을 위한 좋은 가이드다.
집을 세 채 네 채 투기하면서 집값은 계속 올라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당신들 때문에 미래 세대가 망가지는 걸 아느냐고 따지고 싶어진다. 부모 세대가 가난했지만 희망이 있었던 건 집을 조금씩 넓혀가는 과정이 평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런 행로가 운좋은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닌가 허탈해하고 있다. 기성세대는 탐욕을 조절해 양보해야 하고 청년들은 더 나은 걸 욕망해야 한다. 청년들이 오늘보다 내일이 나을 거라 낙관할 수 있고 바라는 것을 조금씩이나마 이뤄갈 수 있는 세상에만 희망이 있다. (232)
기성세대로 인해 미래 세대가 희생되고 있다. 부동산으로 부자가 되어 자식들에게도 부의 대물림을 해줄 수 있는 일부 사람들은 집값이 계속 오르기를 바랄 것이다. 그래서 청년들은 절망하고 결혼하지 않고 결혼해도 아이 갖기를 주저한다. 사회는 노인 중심의 사회가 된다. 기성세대는 점차 고령층으로 진입하고 미래 세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미래 세대는 어쩌면 기성세대를 위한 세금을 낼 여력이 없을 수도 있다. 세금부담이 과도해서 파업을 할 수도 있다.
청년이 미래에 희망과 낙관을 가지고 사는 대한민국으로 나아가야 한다.
독서습관688_더 좋은 곳으로 가자_정문정_2021_문학동네(230131)
■ 저자: 정문정
대구에서 태어났고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했다. 잡지 기자로 시작해 기업 브랜드 홍보팀장, 대학내일 디지털미디어파트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십 년간 다양한 채널의 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들었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와 함께 책 <20대를 읽어야 트렌드가 보인다> <20대가 당신의 브랜드를 외면하는 이유>를 썼다.
전작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은 누적 판매부수 50만 부를 넘어섰으며 아시아 6개국(중국, 일본, 태국, 대만, 베트남, 인도네시아)에 판권이 수출되었다.
<빅이슈> <언유주얼> <포포포 매거진> 브런치 등 다양한 매체에 칼럼을 기고했으며,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배워서 남줄랩> <잠깐만 캠페인> <열정 같은 소리> 등 다수의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이성으로 비판하되 의지로 낙관하라"는 안토니오 그람시의 말을 지침으로 삼고 있다. 막막한 순간에 누군가 내게 해주었더라면 좋았을 말들을 모으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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