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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독서습관315_이승만과 미국의 의도를 생각해 보는 책_다시쓰는 한국현대사_박세길_1992_돌베개(201227)

by bandiburi 2020. 12. 27.

남한에서 태어나서 반공 교육을 어려서부터 받아 온 세대에게 이승만, 박정희 등 역대 대통령들의 치적은 과대 포장되고 선전되었습니다. 미국은 우방으로서 대한민국을 북한, 중국, 소련과 같은 공산국가로부터 지켜주고 있다고 배웠습니다. 한반도를 35년간 강제로 점유했던 일본이 공산국가보다 가까운 나라가 되었습니다. 

국민학교(현재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이런 교육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대학교에서는 역사의식을 가지지 못하고 기존에 주입된 교육이 옳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대다수의 대학생과 배운 역사와 찾아서 배운 역사 간에 모순이 있음을 알고 새롭게 현대사를 바라보는 소수의 대학생으로 구분되었습니다. 

이승만 이후 미군정에 수혜를 받으며 기득권으로 성장하며 국가의 정책을 수립하는 위치에 있는 자들에게는 알려지면 안 되는 사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민중의 힘은 억눌리고 가려졌던 역사의 진실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책 <다시 쓰는 한국 현대사>가 다른 각도에서 우리 현대사를 바라보는 좋은 책입니다. 이승만이 일신의 안위를 위해 어떻게 나라를 이용했는지, 미국은 왜 해방 직후에 한반도에 들어와 남북한이 하나가 되는 것을 방해하고 한국전쟁을 이용했는지 생각하게 합니다.

이러한 희망에 따라 일본 총독부는 최종적으로 여운형을 행정권의 인수 책임자로 선택하였다. 여운형은 이미 1944년 일본의 궁극적인 패배를 확신하면서 건국동맹을 결정하여 이후의 사태에 대비해왔다. - 34페이지

어느 모로 보나 남한에 진주한 미군의 태도는 정복자의 그것이었지 해방자의 그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발표한 포고문 내용 속에는 한국의 해방을 경축하는 구절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오로지 복종의 강요와 저항에 대한 경고만이 번뜩이고 있었다. - 46페이지

서울의 정치상황에서 가장 고무적인 단 하나의 요소는 장년층과 유식층의 한국인 가운데 있는 수 백 명의 보수주의자들의 존재입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일본에 협조했던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그 같은 낙인은 궁극적으로는 지워질 것입니다. - 49페이지

이러한 가운데 유일하게 미 군정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던 것은 일단의 친일파뿐이었다. 이들의 반공주의적인 입장은 미 군정의 그것과 일치하고 있었고 미 군정을 불안하게 만드는 어떠한 요구도 내걸지 않았다. - 50페이지

일본의 패망이 임박했을 때 이미 일본과 평화적인 인수인계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한반도를 소련이 차지할 것을 우려하여 한반도 남쪽에 진입했습니다. 민중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것은 무시한 채 미국은 승전국으로서 식민지에 입성하듯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일제시대 친일파들을 자기들의 편의상 활용했습니다. 그로 인해 이 나라에서의 친일파들이 다시 득세하고, 지주 세력이 살아남았습니다. 역사의 진보가 반대 방향으로 흘러가는 반동적인 일들이 이어지는 시작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극단적인 날조 행위와 함께 이승만과 김성수 등 일단의 친일파들은 미 군정 당국의 보호와 지원 아래, 있지도 않은 신탁통치를 반대한다는 허울을 쓰고 실질적으로는 모스크바 협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조작해 내기 시작했다. -55페이지

미 군정은 스스로를 일본의 총독부와 동일시했고 일본이 이 땅 위에 설치해 놓은 모든 기구를 고스란히 인수하여 다시 사용하였다. 친일 경력이 분명한 자들이 미 군정의 주위에 포진하였고, 반봉건적인 지주 소작 관계는 근본적 개혁 없이 계속 온존 되었으며 억압적 식민통치 체계 역시 그 완고한 생명력을 유지해 나갔다. - 61페이지

이렇게 해서 미 군정은 과거 일본 총독부를 능가하는 거대 지주, 거대 자본가로서 남한 땅 위에 군림하게 되었다. -65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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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출 과정 못지않게 배급제 또한 미 군정의 민중에 대한 태도를 잘 드러내 주고 있었다. 한마디로 미 군정은 식량 배급제를 통해 남한 민중의 생존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손에 넣게 되었다. 그리하여 미 군정은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한 탄압의 일환으로서 식량 배급을 중단하는 조치를 활용할 수 있었다. -70페이지

이 의견서에서 지적한 대로 예나 지금이나 압제자들은 민중을 아무런 이성적 판단도 하지 못하고 주체성도 없이 휩쓸려 다니는 우매한 집단으로 취급한다. 그렇기 때문에 민중의 정의로운 투쟁도 압제자의 눈에는 언제나 겁 없이 날뛰는 무분별한 폭동으로 비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79페이지

민중은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었다고 기뻐했으나 미국은 다시 한반도를 점유하고 지배하는 식민지배자로 군림했습니다. 일제시대의 폐단을 일소하고 쇄신할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갔습니다. 반면에 미 군정에 모여들어 이권을 얻고 민중을 억압하는 위치에 있는 자들은 민중을 계몽하고 올바른 교육을 통해 나라를 발전시키기 전에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했습니다. 

한국전쟁 중 포로로 잡힌 북한의 어느 면 경찰서장을 조사해 본 결과, 그는 '정직하고 견문이 넓었으며 자부심이 강했고' 일제시대의 경찰과는 아주 달랐다.- 84페이지

북한의 지주들은 조직화되어 있지 못했기 때문에 중국이나 북베트남에서처럼 커다란 저항이나 유혈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다. 이렇게 토지 몰수가 순조롭게 진행된 것은 처음에는 대지주, 다음에는 중소지주 등의 순서로 토지개혁이 단계적으로 진행된 데에도 이유가 있었다. - 86페이지

해방 후 소련이 진주했던 북쪽에서는 조선 민중들에게 자치권을 주고 스스로 토지개혁과 친일파 제거를 하는 과정이 이뤄질 수 있었습니다. 독립투사로 활동했던 사람들이 지위가 부여되고 민중을 위해 일했습니다. 올바른 일을 한 사람에게 정당한 대가가 돌아가는 시스템이 갖춰진 것입니다. 남쪽에서는 친일 지주세력이 언론이 통제하고 북한을 비방하는 내용과 남한의 나은 점만을 교육하고 홍보합니다. 그 결과 역사의식이 없는 순종적인 국민을 만들어 냈습니다. 

한국전쟁이 휴전 상태에 들어간지도 70년이 되어갑니다. 경제적인 발전의 수준은 간격이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해방 직후의 올바른 정신으로 수립된 곳과 아직도 미국을 옹호하고, 미군이 상주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미국에서 교육받는 것을 자랑하는 곳과 차이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론에서 부동산과 주식 등으로 재테크에 대한 내용을 흘려보냅니다. 물질적인 것도 생활을 위해 필요하지만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지는 것은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요.

전체적으로 볼 때 송전 중단 사태는 미 군정이 남한 민중 속에서 북한에 대한 적대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고의적으로 유발했다는 의혹을 떨쳐버릴 수 없다. 미 군정 자신은 북한이 남한의 단독선거와 단독정부 수립을 방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송전을 중단했다고 강변하였지만 실제 송전 중단은 선거가 끝난 14일에 단행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17페이지

이렇듯 친일 친미분자들로 득실거리는 제헌국회는 여전히 단독선거 무효 및 단독정부 지지를 위한 한국 민중의 피어린 투쟁이 계속되고 있던 5월 31일 기어코 그 추한 모습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124페이지

말할 필요도 없이 이 국가보안법은 당시 이승만 정권에 항거하고 있던 한국 민중들의 모든 행위를 불법적인 것으로 규정짓고 있다. -128페이지

이렇듯 일련의 봉기는 민중들이 처해 있던 현실로부터 불가피한 선택으로 이루어지게 되었지만 봉기에 참여한 무장세력이 대거 유격대로 전환함으로써 본격적인 유격전의 막을 올리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133페이지

이승만이란 인물에 대해 알아갈수록 불편한 감정이 느껴집니다. 민중의 바람을 알았을 텐데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밀어붙이고 나라의 발전을 막고 민중의 자유로운 사고를 억압하고 물리력의 행사를 합법화했던 국가보안법을 탄생시켰습니다. 민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잠잠히 정치를 내려놓아야 했는데 온갖 편법을 써가며 권력에 집착을 보였습니다. 결과는 민중의 피로 연결되었습니다. 

대량학살의 회오리 속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제주 민중은 깊은 침묵의 늪으로 빠져들어갔다. 지나온 순간들에 관해 말문을 열었다가는 자칫하면 불순분자로 오인받을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점은 한국전쟁 이후 남한 민중들 사이에서 나타났던 공통적인 현상이기도 하였다. -151페이지

여순 봉기는 봉기에 참가한 군장병들이 대거 유격대로 전환함으로써 2.7 구국투쟁 이후 야산대의 형태로 펼쳐지던 무력항쟁과 결합하여 본격적인 유격전의 불길을 당기었다. -161페이지

제주도 4.3 사건의 진상을 들었을 때 우리 국민들 사이에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1980년 광주항쟁만 하더라도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언론 통제하에 시행되었고 생존자들의 증언을 통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4.3 사건은 수많은 제주도민이 살육을 당했음에도 크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반공의 분위기 하에서 그 잔인한 죽음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지속적으로 존속되어 왔던 것입니다. 이는 남한 민중들을 지배하는 방법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상태로 계속 갔더라면 이승만 정부는 조만간 붕괴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연치 않게도 이승만 정부는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그 즉시 미국에 의한 대규모 군사적 개입이 단행됨으로써 가까스로 위기에서 구출될 수 있었다. -169페이지

간단히 말해 미국은 모종의 대규모 계획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일본인들의 효과적인 협력을 필요로 하였고, 이를 보장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일본의 군국주의적 망령을 부활시키고자 기도하였던 것이다. -182페이지

한국전쟁은 북한이 남쪽으로 침공하며 시작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남한에서는 이승만 정부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졌고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고 남북한 통일된 정부 수립을 옹호하는 분위기가 만연했습니다. 한편 미국은 아시아에서 중국의 공산화로 인해 이에 대항하기 위한 전선이 필요했습니다. 일본은 그 수혜를 입어 군국주의를 모색하고 전쟁을 통해 경제적 도약을 이뤘습니다. 큰 그림을 봤을 때 한국전쟁은 미국의 계획에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중국이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된 이유는 명백하다. 그것은 직접적으로 자국 방위에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다. - 221페이지

결과적으로 한국전쟁은 남과 북의 이질성을 더욱 심화시키고 분단의 장벽을 한층 높이는 계기로 작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 261페이지

주한 미군의 주둔 목적은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의 이익을 지켜주는 파수꾼 역할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간단히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287페이지

전쟁을 경과하면서 남한에 대한 미국의 지배권은 더욱 확고해졌고 남북 간의 대립과 불신은 한층 두터워졌다. 미국과 역대 남한 정권은 그들의 통치권 내에서의 전쟁도발 책임을 전적으로 북한에 돌리는 데 상당히 성공하게 되었다. - 295페이지

한국전쟁 당시에 중국은 공산화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지원할 형편이 아니었지만 미국이 38선 복구를 넘어 압록강 중국 국경까지 오면서 자국의 방위를 위해 참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미국은 결국 동북아시아에서의 자신들의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한국전쟁이 끝났음에도 미숙한 이승만 정부를 활용해 한반도 남쪽에 잔류했습니다. 유엔의 이름으로 미군이 한국에 아직까지도 자리하고 있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면서도 방위비 분담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대한민국 정부도 경제력이 성장한 만큼 대등한 위치에서 협상을 하고 북한과의 주체적인 협상 파트너로서 통일을 향한 걸음을 과감하게 나서야 하지 않을까요.

대한민국이 공정과 평등을 기초한 살기 좋은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국민 개개인의 역사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왜곡된 역사를 알리려는 사람들의 정체를 알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더 이상 가슴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개개인이 자기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것이 전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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