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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639]맨홀_가정폭력의 청소년 영향과 외국인노동자 이해 필요

by bandiburi 2022. 10. 9.

사랑할 줄도 모르면서 쉬지 않고 애를 낳고 개를 기르는 더러운 인간들.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학대하고 머리를 쓰다듬고 다시 걷어차는 역겨운 인간들. 밥을 먹다가도 언제 손이 날아올지 몰라 숨죽이고 있게 만드는 인간들. 겁먹은 눈동자를 보면서 자기가 대단한 존재라도 된 양 희열을 느끼는 변태 같은 인간들. 죽어야 할 사람들은 당신들이야. (79~80페이지)

 

단명한 소설가 박지리의 <맨홀>을 읽으며 가정폭력에 의해 가족 구성원들이 겪어야 하는 육체적 심리적 어려움을 엿볼 수 있었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비추는 소설은 회색빛의 느낌이다. 주인공인 '나'와 누나, 엄마, 그리고 어울리는 친구들이 주변인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통칭해서 '파키'라고 부른다. 그들이 파키스탄에서 오지 않았음에도 그렇게 부른다. 

소설을 통해 가정폭력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알 수 있으며,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맹목적인 불신에 대해 보여준다. 맨홀은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장소이다. 평범한 집이라도 그 안에 폭력이 있을 때 더 이상 아늑한 곳이 아니다. 더구나 아버지의 부재중에 생존을 위해 뿔뿔이 흩어져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집은 단순히 공간일 뿐이다. 차라리 맨홀로 가고 싶다. 
그렇지만 나에겐 맨홀이 있었다. 누나와 나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우리가 경험한 모든 폭력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 (163)

 

누나는 연극을 한다. 나는 누나를 보며 일상생활 중에도 연극을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 나아가서 나를 둘러싼 학교, 가족들, 친구들이 연극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소방관이었다. 십여 명의 인명을 구하고 화재진압중 사망한 아버지는 집 밖에서는 훈장을 받을 정도로 훌륭한 의인이었다. 하지만 집안에서는 엄마의 일거수일투족을 알려고 하는 의처증을 가지고 수시로 폭력을 행사하는 폭군이었다. 그런데도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이혼도 하지 않는 엄마까지도 증오의 대상이 된다. 
무대 세트처럼 보이는 재판장과 우스꽝스럽게 큰 제복들, 문을 지키고 선 경찰들과 법전을 낀 채 밖으로 사라지는 판사들을 보며 나는 우리 모두가 이상한 연극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255)

 

폭군인 아버지를 피해 살았던 어린 시절을 보낸 내가 누나에게 엄마에게 행하는 폭력은 또 다른 아버지의 모습이어서 놀란다. 지우고 싶은 아버지의 기억이기 때문이다. 방황을 끝내고 열심히 학교생활을 하려 하지만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했던 파키들에 대한 복수 과정에서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마음의 갈등 속에서 자수를 하지만 여자친구인 희진을 포함한 친구들에게 배신한 모양새가 되었다. 훈장을 받은 아버지의 명성과 엄마와 누나의 노력으로 자신은 징역을 피하지만 나머지 친구들을 실형을 살게 된다. 17주 만에 돌아온 집에서 엄마는 살인자가 된 아들에게 실망을 드러낸다. 폭력을 행사했던 아버지지만 살인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들은 살인을 저질렀으니 폭력의 대물림처럼 엄마에게 다가왔을 거라고 추측한다. 

가정폭력, 외국인 노동자, 주목받지 않는 고등학교의 학생과 교사들의 현황, 외국인 노동자들이 거주하는 지역의 슬럼화가 잘 드러난 소설이다. 소설 속 환경이 일상인 청소년들도 있을 것이다. 반면에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들리는 독자도 많을 것이다. 소설은 간접경험을 제공한다. 직접 경험할 수 없지만 소설 속 주인공과 함께 상상하면서 공감과 연민을 느끼고, 관심을 가지고 된다. 소설의 역할은 이 정도로 충분하다 생각한다.
단돈 몇백 원을 두고 다투는 아주 치졸한 싸움이었지만 그 모습은 매번 나의 마음을 움직였다. 앞으로 살 날이 얼마 남지도 않은 할머니들이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열심히, 치열하게 세상을 살아가 모습을 보는 게 어쩐지 미안했기 때문이다. (185)


독서습관639_맨홀_박지리_2012_사계절(221009)

 

■ 저자: 박지리

1985년 해남에서 태어났다. 장편소설 <합체>로 '제8회 사계절문학상' 대상을 받았다. 세계고전이나 추리소설, 만화책을 좋아한다. 하지만 소설가를 꿈꾼 적은 없다. 그래서 아직 소설이 뭔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잘 모른다. 모르면서도 뭔가를 쓰긴 쓴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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