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고모님이 쓴 책이다. 고모는 가정주부로 남편과 세 자녀의 뒷바라지로 반평생을 보내시고 고모부 퇴직후에 본격적으로 못다한 배움의 길을 걸으셨다. 나이 60이 넘어 대학원을 졸업하셨으니 대단하시다. 대학과 대학원을 당연히 거쳐야 하는 과정으로 생각하고 부모의 경제적인 지원을 받아 졸업하는 젊은이들과는 달랐다.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경제적인 면에서 부족함을 채워가며 학업을 이어가고 있을 것이다. 스스로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첫걸음이다.
<그 나무는 알고 있다>를 통해 나 자신이 몰랐던 가족사과 고모가 경험했던 삶을 알 수 있었다. 특히 고모의 고향이기도 하면서 나의 고향인 충북 옥천군 청산면의 작은 마을이 글 속에서 묘사될 때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다. 그래서 기억이 없고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것만 파편적으로 남아있다. 글에는 여덟 살 순수한 어린아이에게 비친 초상집의 느낌이 담겨있다. 나는 독자로서 또한 손자로써 할아버지의 힘들었던 임종을 상상으로 지켜봤다.
30대 후반에 일찌감치 홀로되신 할머니에 대한 애틋함이 많이 묻어나는 글들이 곳곳에 있다. 홀로 1남 4녀의 자녀를 먹고살기 어려운 시기에 시골에서 키우기는 어려웠다. 가난은 삶을 짓누르고 자녀들의 배움의 길은 산산히 흩어졌다.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나에게도 오롯이 남아 있다. 아버지가 외아들이셨고 내가 장남으로 태어났기에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그래서 버릇없는 나만 아는 아이로 자랐다. 이런 태도는 대학교에 입학해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갈등을 유발했고 그 과정에서 조금씩 깨졌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불쑥불쑥 그 성격이 찾아왔다. 지금은 세월의 방망이질로 다듬어졌다. 할머니는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태로 몇 개월 보내시다 나의 결혼식을 보시고 5개월 후에 돌아가셨다.
고모부는 공무원으로 퇴직하셨는데 퇴직한지 1년도 되지 않아 대장암 선고를 받으셨다. 간으로까지 전이되어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으셨다. 고모는 그 한가운데에서 고모부를 도우셨다. 멀리 떨어져서 두 분의 고통을 잘 몰랐다. 하지만 책에 담겨진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그 당시 겪었을 고모, 고모부와 사촌동생들의 짐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부분에는 내가 몰랐던 고모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느낌을 적어내려간 책은 고모의 삶에 대해 이해하는 시간을 주었다. 이제는 나이 80을 향해 달려가는 연세가 되셨다. 나름대로 건강에 힘쓰셨는데 세월은 아픈 곳을 자꾸 만든다고 한탄을 하신다. 그래도 고모가 남긴 이야기로 하루가 따뜻했다. 바로 전화를 드려서 소감을 말씀드렸다. 고모의 삶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고, 그리고 다음의 책도 기대가 된다고, 다음 책을 통해 고모의 삶을 더 잘 이해하고 싶다고.
시골에 계신 부모님의 삶에 대해서도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회사생활이 나의 시간을 돈으로 바꾸는 것이다보니 짬이 나지 않고 있다. 조만간 돈보다는 자유를 확보해서 하고 싶었던 버킷 리스트를 하나 하나 실현해 가며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야겠다. 부모님에 대한 책도 리스트 중의 하나가 되었다.
'독서습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서습관350_노르웨이 작가와 작곡가 그리그_페르 귄트_헨릭 입센_2013_신원문화사(210301) (0) | 2021.02.28 |
---|---|
독서습관348_오셀로를 닮은 남자 헤라를 닮은 여자_데이비드 버스_2003_청림출판(210224) (0) | 2021.02.28 |
독서습관346_역사와 고전 그리고 수감생활에서 배우는 지혜_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담론(210221) (0) | 2021.02.21 |
독서습관345_돈보다 인간관계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책_그림자를 판 사나이_샤미소_2019_열림원(210216) (0) | 2021.02.17 |
독서습관344_교수대의 비망록_체코 근대사를 보여주는 책_율리우스 푸치크_2012_여름언덕(210214) (0) | 2021.02.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