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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독서습관346_역사와 고전 그리고 수감생활에서 배우는 지혜_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담론(210221)

by bandiburi 2021. 2. 21.

유시민 작가의 추천을 통해 고 신영복 교수의 책 <담론>을 읽었습니다. 총 25회의 강의분을 정리해서 책으로 만들었습니다. 이전에 신 교수님의 책을 두 권 읽었습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변방을 찾아서>였습니다. 이전의 두 권을 읽었을 때보다도 저자의 삶과 사고의 깊이에 대해 더욱 감동하게 되는 책입니다. 모든 페이지에 주옥같이 담겨 있는 인간에 대한 생각이 현재의 저 자신에 비추어 많이 높아 보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진하게 생각을 뽑아낼 수 있는지 역사, 철학, 경제 등 인문학 전반에 대한 시사점을 많이 던져주는 책입니다. 옆에 두고 수시로 반추해볼 만한 책입니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는 '고전에서 읽는 세계 인식'으로 공자, 맹자, 노자 등이 등장합니다. 옛 고전에서 인용하다보니 많은 한자어들이 포함되어 있어 어렵게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저자는 교도소에서 오래 볼 수 있는 책을 고른 것이 고전이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그를 견디게 할 수 있었던 것 중의 하나였다고 생각됩니다. 한자 하나하나를 음미하면서 사색하고 사색하는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사형을 선고받았을 때의 심정이 어떠할 것이며, 무기징역으로 감형이 됐다 하더라도 감옥에서 20년을 보내는 그 기한이 없는 시간이 그에게 무엇이었을까요.

2부는 '인간 이해와 자기 성찰'입니다. 교도소에서 겪었던 사례들과 세계여행을 했던 경험에 대한 생각 등이 담겨 있습니다. 사례들이 많아서 1부에 비해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부분입니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상품과 소비, 그리고 이를 위한 돈에 대한 관심이 지나칠 정도로 커져있는 반면에 사람에 대한 생각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비판합니다. 유튜브나 뉴스를 통해 접하는 것들이 부동산, 경제, 산업, 사건사고 소식입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사람을 바라보면 스스로 자신의 삶을 챙겨야 하는 개개의 모습은 척박하기만 합니다. 일부 자본축적이 되어 있는 소수의 집단을 제외한 대다수의 국민들은 갈수록 사람보다 자본을 우선시하는 천민자본주의의 노예로 전락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생존을 위한 돈을 얻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사람들을 중시하라고 저자는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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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은 불어 '로망'roman의 번역어입니다. '이야기'란 뜻입니다. 논리 체계를 갖추지 않은 서술 일반을 '로망'이라고 합니다. 낭만주의는 대체로 부정적 의미로 읽힙니다. 낭만주의는 고전주의와의 결별이었습니다. 고전주의는 질서, 구도, 이념 등 그야말로 고전적 질서를 기본으로 합니다. 그에 비하여 낭만주의는 주관적이고 비논리적입니다. -49페이지

 우리가 갇혀 있는 협소한 인식틀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시경>의 사실성과 <초사>의 낭만성, 문사철의 추상력과 시서화악의 상상력을 유연하게 구사할 수 있는 능력과 품성을 기르는 것이 공부라고 했습니다.-57페이지

그러나 중요한 것은 환경만 바꿔 주는 것이 아니라 엄마 자신이 무언가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공부 환경도 중요하지만 엄마의 삶의 자세가 더 큰 영향을 주는 것이지요.-106페이지

배운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려주는 부분입니다. 단순히 지식을 암기하고 정해진 시간에 문제를 풀어내는 공부가 아니라 협소한 공부라 아니라 문사철과 시서화악을 통해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현재 우리의 가정에서나 학교에서 부모로서 교사로서 어른들이 먼저 이런 능력과 성품을 가지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좁은 사고의 틀, 좁은 공부로 단련된 삶을 살아온 어른들의 삶이 넓어지는 만큼 이후 세대들에게 그 DNA를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선순환입니다. 

'맹모삼천지교'것에 대해 저자는 엄마 즉 부모의 역할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공부를 하라고 강요하면서도 스스로 뭔가를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부모에게 얘기합니다. 강남 8 학군에 있는 학원을 보내는 것과 같은 환경보다도 엄마의 삶의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가는 과정이 공부이기 때문입니다. 100점을 받아오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마주치는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올바른 판단을 하는 연습을 배우는 것이 공부입니다. 

사계의 변화가 뚜렷한 농본 사회에서 오랫동안 축적된 경험 귀납적 사고가 <주역>이라고 합니다.(중략) 점서로서의 <주역>은 납득하기 어렵지만 오래된 경험 귀납적 지혜로서는 훌륭합니다. 노인들의 지혜와 같습니다.-61페이지

우리는 사람을 개인으로, 심지어 하나의 숫자로 상대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노인들은 고암 선생의 경우처럼 '뉘 집 큰아들'로 생각합니다. 사람을 관계 속에 놓습니다. 이러한 노인들의 정서가 <주역>의 관계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74페이지

교도소에서 모두가 수감번호로 사람을 부르는데 이름을 묻고 '뉘집 큰 아들'이라고 얘기했다는 고암 선생의 일화는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재산이나 조직에서 가진 권력으로 사람을 보고 있습니다. 신영복 교수도 고암 선생처럼 사람을 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얼굴입니다. 얼굴을 통해 그 사람을 보는 것입니다. 사람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되는 일관된 주장입니다. 

"하늘이 내린 재앙은 피할 수 있어도 자기가 불러들인 재앙은 결코 피하지 못하는 법이다." 자기가 먼저 자신을 업신여긴 다음에라야 비로소 남들이 자기를 업신여길 수 있는 법이라고 했습니다. 고결한 자존심입니다. -117페이지

우리도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할 수 있어야지 그게 제대로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농담이지만 맞는 말입니다.-143페이지

뭔가를 타인에게 설명하고자 할 때 우리는 머릿속으로 어떻게 하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할까 고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그것에 대해 제대로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 각도에서 보고 어떤 사례를 들면 좋을지 조합해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공부란 것도 아이들에게 질문하고 대답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교육은 대입으로 집중되어 있고 그 교육은 문제풀이 기계를 양산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정체성은 노동을 통해서 만들어집니다. '노동'이란 표현이 어색하다면 '삶'이라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기가 영위하는 삶에 의해서 자기가 형성되고 표현됩니다. -148페이지

화장, 성형, 의상으로 실현할 수 없는 것이 자기 정체성입니다. 그것은 노동과 삶, 고뇌와 방황에 의해서 경작되는 것이라고 해야 합니다. 장자의 반기계론은 우리의 삶에 대한 반성입니다. 속도와 효율, 더 많은 소유와 소비라는 우리 시대의 집단적 허위의식에 대한 고발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149페이지

상품사회에서는 단지 인간의 정체성이 소멸되는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삶의 토대 자체가 공동화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353페이지

물론 소비를 통하여 행복감을 느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소비를 통하여 정체성을 만들어 낼 수는 없습니다. 자신의 인간적 정체성은 소비보다도 생산을 통하여 형성됩니다. 의상으로 인간적 정체성을 만들어 내지는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포장된 것과 정체성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우리들의 정서 자체가 포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356페이지

자본축적이 강요하는 자기 착취는 인간의 위상을 결정적으로 파괴합니다. 현대인들이 느끼는 성취감과 자부심 역시 모순구조입니다. 성취감과 함께 열패감을 동시에 느끼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자부심과 함께 수치심을 동시에 느끼지 않을 수 없어 우울한 자학적 존재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자기 착취자이기 때문입니다. -368페이지

현재 우리의 삶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하는 문장들입니다. 우리에게 '노동'이란 무엇인가. 한 사람의 삶에서 소중한 시간을 노동이라는 이름으로 제공하고 급여라는 화폐를 받아 생존하고 있습니다. 자본과 노동에서 점차 자본의 지배력이 커지고 노동은 인공지능과 자동화의 이름으로 소외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자본축적을 장려하지만 그 가운데 사람이 사라지고 소외된 노동은 생존이 위협받습니다. 

소유와 소비가 장려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속도와 효율을 중시합니다. 집단 최면상태에서 계속해서 작동하고 있는 사회가 대한민국입니다. 사람을 봐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소중한 삶을 바라봐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현실을 생각해 보면 법가의 원칙이 관철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중략) 대부 이상은 예로 처벌하고 서민들은 형으로 처벌하는 것이 우리의 사법 현실입니다. 정치인이나 경제사범은 그 처벌도 경미하고 또 받은 형도 얼마 후면 사면됩니다. 내가 교도소에서 자주 보기도 했습니다만 입소해도 금방 아픕니다.-177페이지

대한민국의 법 적용을 제대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적용되는 법과, 서민들에게 적용되는 법이 다릅니다. 최근에 의료와 관련된 사고를 일으킨 의사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에 대해 의사단체가 집단행동을 한다는 뉴스를 접하고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사회에서 법을 어긴 사람은 처벌을 받는데 의사에게는 적용되지 않도록 집단행동을 하겠다는 것은 사람을 보지 않는 행동입니다.

이 나라에서 잘 외우고 시험 잘 보는 아이들이 의사가 되고 판검사가 되고 있습니다. 부모의 재력과 권력이 있는 자녀들이 그 길을 갈 가능성이 높은 사회입니다. 계층 간 이동이 경직되고 있습니다. 우려되는 것은 부모의 행동과 모습을 보고자란 아이들이 생각도 비슷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올바른 부모를 둔 아이들이 많기를 기대할 뿐입니다.

간디가 열거하는 '나라를 망치는 7가지 사회악'이 있습니다. 
원칙 없는 정부 Politics without principle
노동 없는 부 Wealth without work
양심 없는 쾌락 Pleasure without conscience
인격 없는 교육 Knowledge without character
도덕 없는 경제 Commerce without morality
인간성 없는 과학 Science without humanity
희생 없는 신앙 Worship without sacrifice - 191페이지

간디가 언급했다는 일곱 가지 모두가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노동 없는 부'가 축적된 자본을 통한 부의 대물림으로 호위호식하는 사람들이 사람을 경시하는 모습에서 망국을 걱정하게 됩니다. 또한 마지막 '희생 없는 신앙' 또한 대형교회 목사들이 세습을 하고 교회를 재산축적의 방편으로 이용하는 것을 떠올립니다. 또한 불교계에서도 종교를 이용해 재산증식에 집중하는 모습과, 도박을 하는 모습이 언론을 통해 비치는 것을 보면 우려가 됩니다. 

아마 수형 생활 20년 동안 책 읽는 시간만큼이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살아온 이야기는 이를테면 그 사람이 실제로 겪은 과거의 실천입니다. 그것을 나의 목발로 삼아서 걸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27페이지

그러나 <연금술사>가 독자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손에 넣게 되는 금이 아닙니다. 그 긴 유랑의 매 순간이 바로 황금의 시간이라는 선언입니다. 마찬가지로 자기 변화와 개조 역시 그 과정 자체가 최고의 가치입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당시만 하더라도 나는 연금술을 믿는 산티아고와 같았습니다. -232페이지

내가 징역살이에서 터득한 인간학이 있다면 모든 사람을 주인공의 자리에 앉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인생사를 경청하는 것을 최고의 '독서'라고 생각했습니다. 몇 번에 나누어서라도 가능하면 끝까지 다 듣습니다. -251페이지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동일한 책을 읽었는데 느낌을 정리하는 방법과 깊이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아름다움을 그렇게 생각한다면 오토 딕스Otto Dix의 <전쟁>이나 케테 콜비츠의 <죽은 아들은 안은 어머니>는 아름답지 않습니다. 그 앞에 서 있는 사람에게 편치 않은 마음을 안겨 주고 고통과 긴장 상태로 이끌고 갑니다. 통상적 의미로 아름답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합니다. '아름다움'이란 뜻은 '알다' '깨닫다'입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세계와 자기를 대면하게 함으로써 자기와 세계를 함께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253페이지

먹물은 카본 입자입니다. 그 입자가 커서 모세혈관을 통해 흡수되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없애려면 절개하고 제거하는 수술을 받아야 합니다. 돈도 들고 자국도 남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레이저로 카본 입자를 잘게 부수어 혈관을 통해 흡수시킨다고 합니다. -266페이지

문신에 대한 과학적 상식입니다. 문신에 대한 관심이 없어 몰랐는데 징역생활 중에 접한 생생한 이야기와 함께 재미있게 봤습니다. 

막상 언론 자신은 스스로 권력이 되어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조금도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객관적 입장을 강조하는 것은 그들의 편당과 야합을 은폐하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객관은 뒤집으면 관객이 됩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구경꾼이 되게 합니다. 사람을 관객으로 만드는 것은 그의 정치적 입장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278페이지

권력의 신하가 된 언론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영복 교수 자신이 그 피해자이기도 합니다. 언론은 현재도 자신들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일부 기자들이 검사들과 야합하는 모습이 간혹 드러나는데 보이지 않는 케이스는 훨씬 많을 것입니다. 언론이 진실만을 얘기해야 합니다. 사주나 특정인의 이익을 위해 문자를 나열하면 스스로 정체성을 흔드는 것입니다. 

지식인도 마찬가지로 계급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식인은 '계급을 스스로 선택하는 계급'입니다. 그런 점에서 계급을 뛰어넘는 존재입니다. 대학 4년은 계급을 고민하는 시기입니다. 자기가 함께할 계급을 선택하기 위한 공부와 고민을 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졸업 후에는 대체로 아버지의 계급으로 편입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285페이지

경쟁은 옆 사람과의 경쟁이 아니라 '어제의 나 사진'과의 경쟁입니다. 이러한 교육 환경과 사회 환경이 반부패 지수 1위 국가로 만듭니다. -370페이지

대입이란 어려운 관문을 힘들게 통과한 이 시대의 대학생들에게 대학생활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에 대해 가이드하고 있습니다. 빈익빈 부익부로 계층 사다리의 이동이 어렵지 않습니다. 그래도 어떤 삶을 살아갈지에 대해 치열한 고민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옆 사람을 향하여 부당한 증오를 키우지 않기 위해서 그 증어를 만들어 내는 보이지 않는 구조를 드러내고 우리를 가두고 있는 보이지 않는 감옥을 드러내는 것이 우리가 하는 공부의 목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303페이지

정화 함대의 본선은 길이 150m, 폭 60m, 높이 9m였습니다. 19세기 영국 함대가 나오기 전까지 세계 최대 함선이었습니다. (중략) 명나라의 대선단이 자취를 감추고 대항해시대의 주역이 스페인 등 유럽으로 넘어간 이유에 대해서 많은 연구가 있습니다. (중략) 정화 함대를 파견한 사람들은 환관이었습니다. 해외 원정파인 환관 세력 몰락하고 유교적인 관료들이 집권하면서 자체 충족의 국가 시스템으로 되돌아간 것으로 추측합니다. 실제로도 배를 파괴해서 땔감으로 쓰고 해군을 육군으로 전환 배치했습니다. -330페이지

정화는 명나라 시대 장군(1372~1434)으로 1492년 신대륙을 발견한 콜롬버스의 산타마리아(약 30 미터 길이) 보다 훨씬 큰 배를 이끌고 100년 정도 앞서서 세계를 탐험했다는 내용이 흥미로웠습니다. 지배세력이 누구인가에 따라서 세계의 역사를 이렇게 달라지는 것입니다. 한 나라를 이끌어가는 주도세력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돈키호테'가 중세 기사의 희화화인 것과 마찬가지로 <세빌랴의 이발사>와 <피가로의 결혼>은 중세 귀족과 앙시앵 레짐 Ancien Regime의 희극화입니다. -332페이지

보르헤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입니다. 유럽의 지성을 이끌었던 사람입니다. 모더니즘은 한마디로 이성주의입니다. 이성주의는 이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입니다. 인간 이성이 모든 무지를 밝힐 수 있다. 이성의 촛불로 어둠을 밀어낼 수 있다는 신념입니다. 그러나 보르헤스는 촛불을 끄라고 합니다. "촛불을 꺼라! 촛불은 어둠을 조금 밀어낼 수 있을 뿐 그 대신 별을 보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339페이지

<엘 콘도르 파사>의 가사를 생각하면 그때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달팽이보다는 차라리 참새가 되고 싶고, 못보다는 망치가 되고 싶다는 자유에의 갈망입니다. (중략) 이 노래는 원래 페루의 작곡가 로블레스가 전래의 민요를 기초로 작곡한 오페레타 <콘도르칸키>의 테마곡이었습니다. (중략) 물론 이 노래는 잉카인들의 아픔을 담고 있었지만 감옥의 나로서는 창공을 날아가는 참새가 그리웠기 때문입니다. -341페이지

몽고와의 충돌은 조선 건국으로 지양(Aufheben)되었음에 비하여 일본과의 충돌은 그렇지 못합니다. -385페이지

지남철에 관한 글은 서여 민영규 선생의 <예루살렘 입성기>에서 인용했습니다. 지남철의 여윈 바늘 끝처럼 항상 고민하고 모색하는 존재가 지식인의 초상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402페이지

나이 마흔에 모든 의혹이 다 없어질 만큼 현명한 사람은 없습니다. 이 경우의 惑은 의혹이 아니라 미혹이고 환상입니다. 가망 없는 환상을 더 이상 갖지 않는 것이 불혹입니다. 그것이 바로 거품을 청산하는 단호함입니다. -421페이지

불혹에 대한 올바른 해석입니다. 40이 넘었지만 여전히 세상에 대한 의혹이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내려놓을 줄 아는 나이가 되야한다는 것에 공감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현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불필요한 거품을 걷어내야 하는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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