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도서관 독서 권장 도서 목록에서 과학과 연관된 책을 찾는 과정에서 새롭게 알게 된 책이다. 생각보다 두꺼운 책이었지만 '지구 속을 여행하다니, 그게 가능한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집 근처 도서관에서 빌려 읽기로 했다.
처음에는 실제 인물을 바탕으로 쓰인 책인 줄 알았다. 상당히 논리적이지만 현실적이고 걱정이 많으며, 극단적으로 보면 겁쟁이라고 느껴지는 주인공 '악셀'과 새로운 것을 밝혀내는 것을 좋아하고 도전적인 정신과 열망으로 가득한 그의 삼촌 '리덴브로크 교수', 그리고 무뚝뚝하지만 충실한 솜털오리 사냥꾼 '한스'까지, 세 인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지구의 중심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모험은 과학에 대한 흥미를 돋게 만든다.
과거 아이슬란드의 연금술사가 남긴 16세기 고문서를 해독하는 리덴브로크 교수의 모습은 과학적 발견을 찾아 헤매는 과학자의 열망과 고뇌를 잘 표현한다. 악셀의 우연한 발견으로 고문서 해독에 성공하지만 끼니를 거르며 밤낮 내내 고민하는 교수의 모습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한편 악셀과 리덴브로크 교수의 토론은 책을 이해하는 데 있어 많은 도움을 주었다. 암호를 통해 지구의 중심으로 도달하는 방법을 찾아낸 리덴브로크 교수와 악셀은 이야기의 초반부터 모험이 끝이 날 때까지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펼치면서 동시에 반박을 이어나갔기 때문이다. 어려운 과학적 용어가 가끔 섞여 있었지만, 각 페이지의 하단에 해설이 나온 덕분에 여러 지리학적, 고고학적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모험은 악셀, 리덴브로크 교수, 한스, 이렇게 세 모험가들이 아이슬란드의 스네펠스 요쿨의 분화구 안으로 들어감으로써 시작된다. 날씨의 영향으로 교수의 꿈은 내년으로 미뤄질 뻔하지만, 다행히 분화구 안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한다. 지층의 변화를 관찰하면 지구를 거꾸로 시간여행하는 듯하다. 과학적 이론에 따르면 지구 중심으로 갈수록 온도가 높아지기 마련인데, 과거 용암이 흘렀던 통로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모양이다.
잘못된 통로로 들어선 모험가들은 갈증으로 죽을 뻔하지만, '한스 천'의 발견으로 구사일생한다. 그리고 한스 천이 흐르는 방향으로 모험을 이어나간다. 그러나 고비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악셀은 삼촌과 한스를 놓치고 동굴에서 미아가 될 위기에 처하지만(두려움에 미쳐 질주하다가 부딪혀 기절하는 장면은 '고립'으로 인한 고독감을 새삼 실감하게 한다), 동굴의 음향 효과(속삭이는 회랑) 덕분에 7km나 떨어져 있어도 소리를 통해 재결합하는 데 성공한다.
정신을 차린 악셀이 마주한 곳은 바다와 바람과 빛으로 가득 찬 지하 동굴이다. 지구 공동설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남쪽으로 가는 항해에서 폭풍우로 인해 거인과 멸종된 동물들을 발견하는 장면은 '내가 과거로 시간여행을 가면 어떤 기분일까'에 대한 답을 준다.
모험은 거대한 바위로 막힌 동굴을 뚫는 과정에서 폭파 충격으로 화산이 분출할 때 그 분출물을 따라 지상으로 내뱉어짐으로써 막을 내린다. 비록 지구의 중심에 다다르지 못했지만 리덴브로크 교수의 새로운 발견으로 인해 지구 냉각설의 주장은 힘을 싣고 그의 명성은 높아진다.
책을 읽으며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인물은 리덴브로크 교수이다. 그는 절망적인 상황에도 항상 위기를 극복하고 희망을 찾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악셀의 우유부단하고 극단적인 면모는 고구마를 백 개 먹은 듯한 답답함을 주었다. 그러나 그 점이 고난을 마주한 일반인의 현실적인 모습을 잘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책은 삽화로 다 표현하지 못한 지구 속 세계를 다양한 비유를 활용해 생생하게 표현한다. 그래서 마치 내가 인물들과 탐험을 하는 듯한 기분을 준다.
쥘 베른은 공상과학(SF)의 세계를 연 사람이다. 19세기 프랑스 항구도시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의 반대로 여행을 포기해야 하자, 상상으로 여행을 하겠다고 한다. 이런 다짐과 과학이 막 시작되던 19세기 시대의 영향인지, 그는 '지구 속 여행' 외에 수많은 공상과학 작품을 남겼다. 한편 '지구 속 여행'은 비록 공상과학이지만 부수적인 부분에서 과학적 용어와 상식을 쌓는 데 도움이 됐다. 따라서 쥘 베른의 다른 작품들을 꼭 읽어보고 싶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