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여행의 기쁨>으로 내용이 길지 않아 가볍게 읽을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실뱅 테송의 글은 쉽지 않았습니다. 지리학을 전공했고, 많은 여행 경험이 녹아 있는 책이면서 시간을 넘나들며 인용되는 사상가와 문학가들, 그리고 작가의 시적인 언어들은 독자에게 문해력의 한계를 느끼게 합니다. 눈으로는 글을 읽고 있지만 한눈팔면 글의 맥락을 놓치기 쉽습니다. 그래도 모두 읽고 났을 때 여행, 종교, 삶, 인간, 죽음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알 수 있었습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월든 호숫가에서 문명에서 벗어난 삶을 살았던 것처럼 실뱅 테송도 2010년 바이칼 호수 근처에서 6개월을 살았다고 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모두가 부를 쌓기 위해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잠시 <여행의 기쁨>을 읽으며 삶의 여정을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가져봐도 좋겠습니다.
저자는 가능하면 문명의 이기를 활용하지 않는 여행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걷거나 말을 타고 여행하는 것입니다. 도보여행은 눈으로는 주변 경관을 보면서 머리로는 기억의 실타래를 꺼내 다시 정리하기를 반복할 수 있습니다. 실뱅 테송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걷고 있으면 뇌라는 두개골 상자, 여행자에게 가장 소중한 짐인 이 기록 보관 상자 속에 차곡차곡 쌓인 추억의 단층들이 기억의 표면 위로 떠오른다.'
'헤세의 크눌프는 따뜻한 병원에서 평화롭게 생을 마감하는 대신 죽을 때까지 숲 속에서 돌아다니기를 더 좋아한다.'
코로나 시대에 대한민국 언론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집단이 종교단체들입니다. 신천지로 시작해서 사랑제일교회와 광화문 집회, BTJ와 인터콥 그리고 영생교단이 있습니다. 특히 인터콥이란 단체가 하는 선교활동이 이 책에서 얘기하는 단일성이란 측면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서양문명이 미주와 아시아 지역으로 확장하면서 선교사들이 함께 활동을 했습니다. 이들은 선교란 명목으로 기존의 전통적인 종교 형태를 가지고 있던 문명을 붕괴하게 했습니다.
모두가 동일한 종교를 가지면 이상적인 사회가 이뤄지기보다는 더욱 위험한 사회로 가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종교집단이 대형화되고, 비판적 사고력이 없이 맹목적으로 지도자를 추종한다면 일부를 위한 다수의 희생 구조로 될 것입니다. 다양성이 존중되고 유지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에 대한 저자의 생각입니다. '단일성의 문명이 인간, 인간의 사상, 인간의 열망, 인간의 신, 인간의 활동을 위협하고 있다. 어느 파푸아인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한다면, 그는 더 이상 사람들의 기도를 듣지 못하는 관습적인 신이 될 것이다.'
저자는 이슬람에 대해서도 여성 인권에 대한 존중 측면에서 비판하고 있습니다. 특히 코란에 대해 언급한 부분은 충격이었습니다. 이렇게 표현해도 이슬람 신자들에게 역공을 받지는 않았는지 염려될 정도였습니다.
그는 <코란>(얼빠진 목동이 공포에 질려 아무렇게나 더듬거린 말들)에서 여성을 멸시하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구절들을 읽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블로그에 글을 쓰다 보면 차분하게 생각을 숙성시키고 글로 만들면 더 맛있는 글이 되겠다는 바람을 가집니다. 책을 읽은 후에나 글감을 마주했을 때 툭툭 던지든 의무감으로 글을 쓰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글쓰기 내공이 쌓이지 않은 상태라고 표현이나 단어 선택까지 곱씹어 소화한 뒤에 나의 언어로 드러낼 필요성을 절감합니다. 그래서 저자가 자신의 여행을 하며 글쓰기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와 닿았습니다. 나에게도 블로그 글쓰기 습관이 즐거움과 함께 탁월함으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초기 여행 때는 저녁마다 하는 이 글쓰기가 억지로 해야 하는 고역이었다. 기록하지 않는 것은 나의 기억력을 지나치게 믿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억지로 하던 일이 차츰 규율이 되었고 이어서 즐거움으로, 최종적으로는 일종의 욕구가 되었다.
결혼을 하면 아이들과 함께 여행도 하고 밤하늘의 별을 보며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대학생, 고등학생이 된 지금까지 그럴 기회를 만들지 못하고 있네요. 직장생활과 아이들은 대학입시라는 부담 속에서 지내왔습니다. 도시생활에서 밤하늘의 별을 본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빛이 없는 곳으로 떠나야 합니다. 야영을 해야 합니다. 일상에서 떠나 캄캄한 밤하늘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비밀도 공유됩니다.
야영은 옛날에 저녁 식사 후 밤에 가졌던 모임과 같은 효력을 제공한다. 야영이 대화를 유도하기 때문이다. 불, 칠흑의 밤, 별들에게로 피어올라 뒤섞이는 연기, 이것들은 마음속 비밀이야기를 터놓기에 적절한 배경이 되어준다.
샤토브리앙이 옳았다. "국가 앞에는 숲이 있고, 국가 뒤로 사막이 온다." 국가가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자연을 훼손하고 있는 상황을 샤토브리앙처럼 잘 표현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도 주변이 밤이면 조용한 논과 밭으로 둘러쌓여 있었는데 이곳에서 살아온 4년 동안 대단지 아파트와 법조타운 등이 들어서면서 곳곳이 인위적인 조형물들로 변화됐습니다. 우리의 자연은 편의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조금씩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사회에서 떨어져 오두막 생활을 하고 있는 나타샤라는 여인이 사람이 곰보다 더 위험한 짐승이라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이는 도시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도 동일합니다. 더구나 뉴스를 보면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 묻지마 폭력, 여성에 대한 성폭력 등이 수시로 발생하는 사회에서 사람보다 반려견을 더 신뢰하는 것은 아닌지...
도시에서 떨어져 홀로 사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잘 표현한 문장이 있습니다. "춥지 않게 지내기 위한 도끼 한 자루, 배고프지 않게 해줄 총 한 자루, 그리고 두려움을 떨치게 해 줄 성서."
코로나로 인해 국내외 여행이 거의 멈췄습니다. 특히 해외여행이 심각합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힘든 현대인의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생활에 쉼을 주고 위로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여행 계획을 세우고 해외여행을 떠났습니다. 활력을 되찾기를 바라는 여행입니다. 하지만 실뱅 테송은 이런 현대인의 여행을 "유행에 따라 불안에 사로잡혀 미친 듯이 몸을 움직이는 타란텔라 춤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생각하게 하는 좋은 표현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