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킹(Viking)하면 수염이 덥수룩한 야만인, 독특한 바닷배의 모양, 약탈, 살해 등이 떠오릅니다. 영화를 통해 접했기 때문입니다. <문명의 붕괴>에서 '바이킹의 영토 확장'편에서 이들의 삶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아시아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 출발해 아이슬란드, 그린란드까지 이어지는 이들의 여정에 대해 따라가 봅니다.
바이킹의 습격은 793년 6월 8일에 전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날, '그들은 풍요롭지만 방어가 허술한 린디스판 섬을 공격했다. 영국의 북동 해안에서 약간 떨어진 섬이었다. 그 후 바다가 잔잔해지고 바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여름이면 바이킹의 습격은 연례행사처럼 반복되었다. -259페이지
노르망디에 정착한 바이킹들도 고유한 언어를 버리고 프랑스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런 동화 과정에서, 스칸디나비아의 유전자와 단어도 스며들었다. 예컨대 영어에서 'awkward', 'die', 'egg', 'skirt' 등, 우리가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적잖은 단어가 스칸디나비아어에 뿌리를 두고 있다 -260페이지
바이킹은 현재 덴마크와 노르웨이 영토에서부터 가까운 지역인 영국의 린다스판 섬과 오크니 제도, 셰틀랜드 제도, 페로 제도, 아이슬란드, 그린란드로 여정을 확대해갔습니다. 처음에는 가까운 영국의 린다스판 지역과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을 습격했고 사람과 언어가 섞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부 영어 단어가 바이킹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점은 흥미롭습니다.
아이슬란드 출신으로 1955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할도르 락스네스(Halldor Laxness)는 소설 <살카 발카Salka Valka>에서 여주인공의 입을 빌려 "역시 삶은 무엇보다 소금에 절인 대구이다"라고 말했다. 아이슬란드 사람이기에 가능한 표현이다.-287페이지
아이슬란드로 이주한 노르웨이인들이 초창기에 토양과 초목에 의지해 농업 중심으로 정착했으니 시간의 흐름에 따라 초목이 사라지고 토양 침식이 심화되어 환경이 열악해졌습니다. 농업으로 생존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는데 중세 말 근교에서 잡히는 대구를 말려, 유럽 본토에서 확대되는 도시들에 수출해 수산업을 통해 경제적으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아이슬란드는 현재 1인당 국민소득이 가장 부유한 국가 중의 하나입니다.
중세의 유럽 도시들 중에서 노르웨이령 그린란드는 옛 흔적이 가장 잘 보존된 사회이다. 그린란드는 버려진 후 누구도 살지 않았지만, 영국과 유럽 대륙의 도시들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살면서 그 위로 새로운 건물들이 세워졌기 때문이다. -300페이지
노르웨이인들은 아이슬란드를 넘어 그린란드까지 탐험을 계속했습니다. 그린란드에도 살만한 곳을 발견해 정착했지만 예측할 수 없는 기후와 추운 날씨로 더디게 회복되는 초목을 지나치게 사용함으로써 토양의 침식을 경험합니다. 생존을 위해서는 의식주가 해결돼야 하는데 그린란드에 살고 있는 이누이트족들의 생존 방식을 채용하지 않고 독자적인 방식을 고수하다가 결국은 그들의 흔적은 있지만 후세는 더 이상 살지 않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린란드의 호수와 습지에서 채취한 퇴적물에 감추어진 화분 분석을 통해서도 과거 기후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화분학자들은 화분 분석을 통해서 이스터 섬과 마야 지역에 있었던 초목의 역사를 밝혀내는 성과를 거둔 바 있다. 호수나 습지의 바닥에 구멍을 뚫어 퇴적물을 채취하는 일은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에게는 별 의미가 없지만 깊은 퇴적층은 더 오랜 과거에 침전된 것이기 때문에 화분 학자들에게는 중대한 의미가 있다. -306페이지
그린란드에는 나이테 대신에 얼음층(ice layer)이 있다. 그린란드의 빙상은 매년 쌓인 눈이 압착되어 얼음으로 변한 것이다. 얼음, 즉 눈을 구성하는 물에 함유된 산소는 세 가지 다른 동위원소로 이루어진다. 달리 말하면 산소 핵에 존재하는 중성자의 수가 다르기 때문에 원자 무게도 다른 세 가지 유형의 산소 원자가 있다. 자연계에 주로 존재하는 산소(99.8페센트)는 산소-16이다. 즉 원자 무게가 16인 산소이다. 나머지 0.2퍼센트는 산소-18과 산소-17로 이루어진다. 세 동위원소는 모두 안정적이고 방사능을 갖지 않지만 질량 분석기에서는 구분된다. 눈이 형성된 기온이 높을수록 눈의 산소에서 산소-18의 비율이 높아진다. 따라서 같은 해에 쌓인 눈이라도 겨울 눈보다 여름 눈에서 산소-18의 비율이 높게 마련이다.-307페이지
나이테로는 알아낼 수 없지만 얼음층으로 알아낼 수 있는 기후의 특징이 하나 있다. 바로 거센 바람이다. 거센 바람은 그린란드의 해안에서 염기를 담은 물보라를 일으켜서, 내륙 깊숙이 빙상까지 끌고 간다. 물보라는 얼어서 눈처럼 빙상 위에 떨어진다. 이때 해수의 나트륨 이온까지 떨어진다. (중략) 그런데 먼지에는 칼슘 이온이 많은 편이다. 순수한 물로 이루어진 눈에는 두 이온이 거의 없는 편이다. 따라서 어떤 얼음층에서 나트륨과 칼슘의 함량이 높게 나타난다면 그 해는 바람이 많이 불었던 해라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308페이지
방사성 동위원소 분석법으로 뼈의 성분을 분석해서, 그 뼈의 주인이 평생 동안 섭취한 해산물과 육지 식품의 비율을 계산해낼 수 있다. 이 분석법을 그린란드 묘지에서 발굴한 유골에 적용하면, 동쪽 정착지가 세워진 때 그곳에서 섭취된 해산물의 비율은 20퍼센트에 불과하지만 나중에는 80퍼센트까지 증가한다. 겨우내 가축들을 먹일 건초의 생산량이 떨어졌고, 인구 증가로 가축이 제공할 수 있는 식량으로는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321페이지
노르웨이인들이 그린란드에 정착했지만 계속 살지 못하고 결국 한 사람도 남지 않는 버려진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린란드에 정착한 노르웨이인들에게 언어가 있었음에도 그들이 남긴 기록이 없었습니다. 아이슬란드는 반대로 남겨진 기록들이 있었습니다. 아무런 기록이 없을 때는 과학의 힘을 빌려 추론해 가야합니다. 역사와 과학이 별개가 아니고 과학이 발달하면서 과거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도 늘어납니다. 침전물 분석이나 눈 속의 산소 동위원소 분석이 그 예가 되겠습니다.
그린란드는 치밀하게 통제된 사회였다. 풍요로운 목장을 소유한 소수의 족장에게 그들의 이익에 위협되는 행동을 금지시킬 수 있는 절대적 권한이 있었다. 따라서 누구도 족장에게 유리하지 않은 혁신적인 실험을 감행할 수 없었다. -332페이지
아이슬란드나 노르웨이보다 환경이 더욱 열악했던 그린란드에서는 공동체를 벗어나 혼자 생존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북극곰이든 고래든 식량을 위한 사냥은 함께 해야 했습니다. 그렇기에 생존을 위해서는 공동체 내에서 사회적 정체성을 가져야 하고 소속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린란드는 계급사회이면서도 족장의 권위에 도전하는 혁신이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다가오는 위협에 대비하지 못해 모두가 생존의 기로에서 사라졌습니다.
중세 내내 유럽 대륙에서는 시신의 머리가 서쪽, 발이 동쪽을 향하도록 똑바로 뉘였다. 그러나 두 팔의 자세는 시간이 흐르면서 바뀌었다. 1250년까지 두 팔을 똑바로 펴서 옆구리에 나란히 내려놓았지만 1250년경에는 두 팔을 약간 굽혀서 골반 위에 올려놓았고, 그 후에는 더 굽혀서 배 위에 올려놓았으며, 끝으로 중세 말에는 완전히 접어서 가슴에 올려두었다. 그린란드의 공동묘지에서는 이런 팔의 변화까지 그대로 관찰된다. -345페이지
역사학자들은 과거의 묘지의 시체의 상태까지도 세심하게 보고 변화를 읽는다는 점이 오싹하면서도 흥미롭습니다. 그린란드가 유럽 대륙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왕래하기도 쉽지 않은 여건이었음에도 유럽 대륙의 변화와 동일하게 시체에서 팔의 위치가 변했다는 것은 지속적인 관계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한편으론 우리나라에서는 망자의 손의 위치가 어디인지 궁금해집니다.
"우리는 유럽인이다"라는 집착은 그린란드의 기후에서도 고집스레 소를 키웠고, 건초를 수확해야 할 여름에 사람들을 노르드르세타 사냥터로 보냈으며, 이누이트족의 유용한 처세법을 끝까지 거부하면서 결국 굶어 죽는 비극으로 발전하고 말았다. (중략) 그러나 그들이 생물학적 생존만큼 사회적 생존에도 관심을 기울였다면 교회에 투자하는 시간과 자원을 줄였을 것이고, 이누이트족을 모방하거나 그들과 결혼했을 것이다.-347페이지
이누이트의 테크놀로지가 노르웨이인의 정착지에서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이 놀라울 뿐이다. 그들이 배웠더라면 혹독한 기후의 그린란드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었을 터인데 그들은 이누이트의 테크놀로지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듯하다. 실제로 노르웨이인의 유적 중 어디에도 작살, 작살 발사기, 카약, 우미악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다.-369페이지
중세 노르웨이인은 이런 선택의 여지를 개발하지 못했다. 결국 이누이트에게 배우기를 거부함으로써, 게다가 그들보다 군사적 이점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그린란드에서 결국 사라진 쪽은 노르웨이인이었다.-373페이지
1492년 콜럼버스의 항해로 시작된 탐험의 시대 이후에야, 유럽인들은 원주민을 경멸하더라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원주민을 이용해야 한다는 마키아벨리식 처세법을 터득했다. 그린란드의 노르웨이인들은 이누이트에게 배우기를 거부했고, 그들의 처신에 이누이트는 적으로 변해갔다. 그 후로도 북극권을 탐험한 많은 유럽인이 이누이트를 무시하거나 적대시한 까닭에 소멸되는 비극을 맞았다. -386페이지
환경이 변하면 그 환경에 맞게 생존하는 방법을 유연하게 찾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그린란드 정착민들은 유럽에서 하던 농업방식과 종교생활을 고수했습니다. 자신들과 다른 이누이트족들의 생존 방식을 모방해서 식량을 조달하는 방법을 차용했다면 충분히 현재까지도 생존했을 것입니다. 이 점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인공지능이 도래하며 육체노동시장이 감소하고 내연기관을 전기차로 대체하며 화석연료 사용이 감소하는 큰 흐름 속에서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생각해야 합니다. 과거와 같이 안정된 직장을 찾기보다 언제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디지털 노마드족의 마인드가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독서습관328_문명의 붕괴_재레드 다이아몬드_2016_김영사(210122)
https://bandiburi-life.tistory.com/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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