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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즐거움이 있는 독서습관63_감옥으로부터의 사색_신영복_1993_햇빛출판사(180513)

by bandiburi 2018. 5. 13.

저자 고 신영복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후 경제학 강사로 있다가 1968년 반체제 지하조직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 구속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20년 20일 동안 수감 생활을 하다가 1988년에 전향서를 쓰고 특별 가석방으로 출소하였다. 수감 중 지인들에게 보낸 서신을 후에 한 권의 책으로 묶어 세상에 내놓았는데 이것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다. 출소 후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를 역임하였고 2006년에 정년 퇴임했다. 퇴임 당시 소주 포장에 들어가는 붓글씨를 써주고받은 1억 원을 모두 성공회대에 기부했다. 이후 성공회대 석좌교수로 재직하며 '신영복 함께 읽기'라는 수업을 통해 학생들과 나눔과 소통을 하였다. 2014년 희귀 피부암 진단을 받았고 악화되어 2016년 1월 15일 향년 7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보수적인 환경에서 자라고 부모님과 할머님의 강권으로 대학시절 운동권이란 말에 거부감을 가지고 살았다. 언론의 보도를 철썩같이 믿고 친북, 종북, 빨갱이라는 낙인이 붙여진 집단에 대해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 하지만 사회를 살아가며 여러 경험을 직간접적으로 하게 되고 근래에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실정을 보면서 정확한 역사의식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요즘은 삐딱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책과 강의를 많이 듣고 있다. 더 이상 주류 언론을 보지 않는다. 보더라도 '왜'라는 물음을 먼저 던져본다. 왜 이 기사를 올렸을까, 논조는 왜 이렇지 등의 질문이다. 

 신영복 선생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지만 책을 읽어가며 이 분의 성품을 알게 된다. 감옥이란 단어 자체가 우리에게 주는 공포감은 적지 않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계수, 형수, 부모님께 보내는 편지 내용은 밝고 긍정적이다. 편지마다 조카와 상대편의 안부를 묻는 글 마디마디에 사랑이 가득 담겨 있다. 

 붓글씨에 대한 언급이 많이 있고, 다양한 동양고전을 읽고 이를 인용해서 언급한 글들이 그의 생각을 대변하고 있다. 특히 감옥안에서 저자의 사색의 범위는 시공간을 초월한다. 비록 육체는 조그만 공간에 갇혀 있지만 자유로운 그의 정신은 고전을 통해 과거로 가기도 하고 주변의 조그만 동식물에 대해 깊은 사색에 빠지기도 하고, 그리고 춘하추동의 날씨의 변화에 따라 육신의 불평에 한탄하기도 한다. 때로는 주변 수인들의 모습과 말에 대해 인용하기도 한다. 종교활동에 대해 떡을 구하기 위해 참석한다는 솔직한 표현도 감동을 준다. 

 주변의 많은 동료들을 보고 그들의 가족의 상황을 통해 외부에서 보면 그들이 무섭고 사악한 죄인으로 낙인찍지만 그에게는 선량한 사람이요 가족들은 옥바라지를 하며 호구지책으로 뭐라도 해야 하는 열악한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대전에서 전주로 이어지는 수인생활 20년은 저자가 76세로 유명을 달리한 것을 고려하면 25% 이상의 인생을 그곳에서 보낸 것이다. 담담하게 읽어 내려가며 한 줄 한 줄의 글을 통해 상상을 해본다. 그의 심경이 어땠을까. 추운 겨울과 뜨거운 여름의 수감생활이 얼마나 혹독했을까. 인권이란 것이 사각지대에 놓인 시대를 인권이 없는 곳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풍족한 생활을 하며 조금이라도 더 비축하기 위해 돈이 주인된 세상을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삶에 대해 돌아보게 하는 책입니다. 비록 20년이 넘은 과거의 책이지만 추천하고픈 책입니다. 

이하 책에서 발췌했습니다. 

[39] 있으면 없는 것보다 편리한 것도 사실이지만 완물상지, 가지면 가진 것에 뜻을 앗기며 물건은 방만 차지함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마음속에도 자리를 틀고 앉아 창의를 잠식하기도 합니다. 이기를 생산하기보다 '필요' 그 자체를 무한정 생산해 내고 있는 현실 속에서는 오연히 자기를 다스려 나가기도 쉽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84] 우리가 훌륭한 사상을 갖기가 어렵다고 하는 까닭은 그 사상 자체가 무슨 난해한 내용이나 복잡한 체계를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사상이란 그것의 내용이 우리의 생활 속에서 실천됨으로써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생활 속에 실현된 것만큼의 사상만이 자기 것이며, 그 나머지는 아무리 강론하고 공감하더라도 결코 자기 것이 아닙니다. 

[133] 소혹성에서 온 어린 왕자는 '길들인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 것'이라고 합니다. 관계를 맺음이 없이 길들이는 것이나 불평등한 관계 밑에서 길들여지는 모든 것은 본질에 있어서 억압입니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을 서로 공유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148] 여러 형제들 틈에서 부대끼며 자라면 일찌기 사회관계를 깨닫게 되고, 조부모 슬하에서 옛것을 보고 들으면서 자라면 은연중에 역사의식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165] 가장 이상적인 교육은 놀이와 학습과 노동이 하나로 통일된 생활의 어떤 멋진 덩어리 - 일감을 안겨 주는 것이라 합니다. <논어> 옹야편에 '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락지자'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안다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그것을 즐기는 것만 못하다 하여, '지'란 진리의 존재를 파악한 상태이고, '호'가 진리의 존재는 파악하였으되 그 진리를 아직 자기 것으로 삼지 못한 상태로 보는 데에 비하여 '락'은 그것을 완전히 터득하고 자기 것으로 삼아서 생활화하고 있는 경지로 풀이되기도 합니다. 

[189]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소위 가운데 필연적으로 존재하기 마련인 '작은 실패'를 간과하지 않는 자기비판의 자세입니다. 실패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실패의 발견이 필요한 것이며, 실패가 값진 것이 아니라 실패의 교훈이 값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실패와 그 실패의 발견, 그것은 산에 나무가 있고 땅 속에 바위가 있듯이 우리의 삶에 튼튼한 뼈대를 주는 것이라 믿습니다. 

[266] 더위 피하기 겸해서 <십팔사략>을 읽고 있습니다. 은원과 인정, 승패와 무상, 갈등과 곡직이 파란 만장한 춘추전국의 인간사를 읽고 있으면 어지러운 세상에 생강 씹으며 제자들을 가르치던 공자의 모습도 보이고, 천도가 과연 있는 것인가 하던 사마천의 장탄식도 들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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