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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독서습관62_솔직담백한 입시 산행 이야기_누리야 아빠랑 산에 가자_한석호_2017_레디앙(180512)

by bandiburi 2018. 5. 12.

저자 한석호는 고시를 권유한 아버지 뜻에 따라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에 입학했지만 군사독재를 참지 못해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대학 졸업 후 노동운동의 길을 걸으며 평등세상을 꿈꿨다. 고문, 감옥, 풍찬노숙으로 상징되는 거친 삶이었다. 스스로 선택한 삶이라 견딜 만했다. 의미도 있었다. 하지만 궁핍이 가족에게, 특히 하나뿐인 딸에게 전가되는 상황은 견디기 힘들었다. 이 책은 입시를 경험하는 고등학생 딸아이와 손잡고 산을 오르며 수많은 이야기를 나눈 결과물이다. 동반산행을 통해 딸의 입시에 함께 했고 친구가 되었다. 결국 딸이 이화여대 입학까지 마음 졸임과 갈등, 그리고 기쁨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책이다. 

입시 여정을 가고 있는 중2, 고1, 고2 아이들을 둔 부모에게 학원과 과외, 특목고, 외고, 과고 등의 언급이 거의 없는 가난한 아버지의 솔직 담백한 딸과의 입시 산행 경험담을 풀어낸 이 책은 푹 빠져드는 매력이 있었다. 

'놀지 말고 공부해라'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아이와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을까 고민하는 아빠의 심경이 담겨있다. 딸이 산행에 동참하며 이 책은 시작된다.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라는 고등학교 3년의 기간 중에 38번의 크고 작은 산행을 부녀가 함께 한다는 것은 평범하지 않은 결단이면서 실행이다. 그래서 독자에게 신선한 도전을 안겨준다.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조바심이 앞서는 것일 게다. 

산과 산을 오가는 사이에 가족 간에 일어나는 소소한 사건들을 조화롭게 편집해서 일반인들의 공감대를 더욱 자아낸다. 중산층보다 가난한 삶을 살면서도 자신의 급여를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지원해주는 모습은 돈에 연연하는 우리의 모습을 부끄럽게 만든다. 아이의 고등학교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걱정하는 상황은 짠한 생각이 들게 한다. 

노동운동의 현장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그에게도 힘이 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주변에 만나고 서로 위로할 수 있는 동료들이 많이 있다는 점이었다. 딸, 누리 주변에도 친구가 많이 있었고, 저자의 주변에도 함께 동고동락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 행복처럼 보인다.

SKY를 꿈꾸며 아이들을 학교-학원-집으로 돌리는 대한민국 중고등학교 가정의 모습과 대비된다. 한석호씨의 교육관은 대부분이 나와 일치한다. 하지만 실행 측면에서는 쉽지 않기에 대단해 보인다. 

어제('18년 5월 11일)는 일본직원과 커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눌 시간이 있었다. 동경에서 직장을 다니는 딸과, 대학교 3학년을 둔 아들을 둔 가장이었다. 요즘 일본은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어서 완전고용에 가깝다고 한다. 프리타라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꾸리는 것이 한때 있었는데 요즘은 많이 사라지고 직장을 골라서 다닐 수 있다고 한다. 

일본 사회는 대한민국의 10~20년 뒤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고 저출산과 고령화가 심각해지는 상황이다. 경제성장률도 낮아지고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잉여 노동력이 있는 것이 좋겠지만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요즘 일본의 상황이 반가운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아이들이 SKY와 학벌을 고집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할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스트레스로 게임 등에 지나치게 탐닉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분야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쌓아갈 수 있는 환경으로 바뀌어 가길 바란다. 아이들은 집에서 도서관에서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많은 질문을 찾고 물어보라고 권유한다. 지적 호기심이 결국 발전의 기초이기 때문에. 

이하 누리 아빠의 책에서 발췌해 올린다. 

[45] 수업 시간표는 붕어빵 찍듯 모든 학생에게 동일한 틀이었다. 저마다 특성을 다르게 지닌 아이들이 오로지 하나의 틀에 갇힌 입시 기계로 살아야 했다. 인생에서 가장 푸르른 시기인데, 더 뛰어놀면서 감성을 키우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도 키우며 꿈을 구상할 시기인데,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은 그렇게 공부 감옥에 갇혀야 했다. 딸아이는 지독한 입시감옥에 갇혔다. 

[52] 딸아이와 나는 대한민국 인권 지수가 낮다는 것에 공감했다. 한국 사회는 한부모 가정뿐만 아니라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 여성 등에 대한 편견과 혐오가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몽매한 사회였다. 지역과 직업에 대한 편견도 심했다. 사농공상 차별하고 남녀노소 차별한 유교의 뿌리가 깊었던 까닭이었다. 다양한 민족의 피가 섞인 한반도의 역사를 왜곡한 단일민족 이데올로기의 허구도 한몫했다. 구성원을 획일적으로 줄 세우는 군사 문화의 잔재였다. 연대 가치를 경시하고 경쟁에만 몰두하는 작금의 체제가 심화시키고 있었다. 개인의 다양성을 소홀히 취급하고 집단의 공통점을 강조하는 교육정책에서도 연유했다. 

[99] 대한민국은 차별 왕국이다. 사람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경쟁 사회다. 경제, 정치, 문화, 의료, 교육 등 전 분야에서 지방이 차별받고, 강북이 차별받고, 비정규직이 차별받고, 여성이 차별받고, 장애인이 차별받고, 성소수자가 차별받고, 학력으로 차별받고, 외모로 차별받고, 그러고도 차별받고, 또 차별받는다. 신자유주의라 칭하는 돈놀이 자본주의, 돈 놓고 돈 따먹는 체제가 휩쓸며 뿌리 깊게 고착된 상황이다. 부모 입장에서 어찌 자식 앞날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방관할 수 있겠나. 자식을 위해서라면 불속에라도 뛰어든다는 대한민국 부모 아닌가. 대학 간판, 남들 자식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을 좀 더 그럴싸한 졸업장을 위해서라면 공부 감옥에 가두는 게 뭔 대수겠는가. 그렇지만 딸을 그렇게 세상에 내보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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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OECD 34개 회원국은 대부분 12년 의무교육이었다. 미국은 초중고 90%가 공립학교인데 수업료가 무상이었다. 영국과 독일은 입학금도 무료고 교과서도 지원했다. 프랑스는 통학비도 지원했다. 북유럽은 학용품도 무료였다. 심지어 독일, 프랑스, 덴마크, 스웨덴 등 많은 나라들은 대학교까지 무상교육을 실시했다. 모든 구성원에게 공평한 교육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였다. 교육을 통해 쌓이는 지식은 그 사회의 자산이 되므로 당연히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OECD 회원국이자 세계 GDP 순위 10위권인 대한민국은 아직도 요원했다. 교육에 들어가는 상당한 비용을 당사자나 가족이 부담해야 한다. 

[189] 이 시대 중고생 아빠들은 자식과 대화하는 방법을 잘 모른다.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대화법을 익히지 못한 때문이다. 직장 생활에서 지시받고 지시하는 습성이 체질화된 때문이다. 본인의 일방적 주문을 대화로 오판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것은 자식에게 시끄러운 잔소리고 소음이다. 자식 얘기를 그냥 들어주는 것으로 소통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소통은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일부를 수용하는 것이다. 

중고생 자녀와의 대화는 의외로 간단하다. 우선 자식에 대한 욕심을 모두 내려놓는다. 자식의 그 상태 그대로 인정하면 된다. 그리고 처음에는 말이 되건 안 되건 많이 듣고 수용한다. 답답하다고 훈계부터 늘어놓으면 안 된다. 그러면 나중에는 자식이 알아서 아빠 얘기를 듣는다. 심지어 본인 스스로 알아서 아빠의 희망을 채우려고 노력한다. 

[202] 나는 생각했다. 딸내미는 미정의 상태야. 앞으로 1년 사이에 어떻게 바뀔지 몰라, 과를 먼저 선택하고 점수에 따라 학교를 고를지, 점수에 따라 학교를 먼저 선택하고 과를 고를지, 그리고 대학에 가서는 어떻게 마음이 바뀔지 모르는 상태야. 좀 더 기다려 보자. 

[215] 한국 교육정책의 문제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하는 사회에 원인이 있었다. 비산 등록금에 허덕이게끔 대학을 돈벌이 수단으로 방치하는 제도에 있었다. 사지선다형 정답으로 비판의식을 잠재우는 교육정책, 아이들에게 공부를 강요하고 자살로까지 몰아가는 사회, 그래 놓고도 비정규직과 청년 실업의 늪에 빠뜨리는 사회, 이 모든 건 사람보다 이윤을 우선시하는 극단의 경쟁 체제 때문이었다. 소수의 무한 탐욕을 위한 법과 제도 때문이었다.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것은 정치였다. 

[343] 전태일 45주기 추도식이 열린 마석 모란공원엔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전태일의 엄마이자 고통당하는 노동자들의 어머니였던 이소선 묘소 뒤편의 백당나무에 빨간 열매가 몇 알이 처연하게 매달려 떠나는 가을을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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