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에 스치듯 지나간 사람으로 잊힌 인물 고 장영희 교수의 책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보며 그녀가 걸었던 힘겨운 삶을 들여다봤다. 생후 1년 만에 소아마비로 장애를 가지게 되었지만, 아버지 장왕록 교수의 노력으로 대학교까지 진학하게 되었다는 내용을 위키피디아를 통해 추가로 알게 되었다.
장애로 어려움이 있었지만 유학 후 1985년부터 서강대에서 영문과 교수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그녀에게 시련은 또다시 찾아와 2001년 우연히 받은 건강검진에서 유방암 진단을 받아 투병생활을 하고, 2004년에는 다시 척추암으로 투병생활을 했으며 2008년에는 간암이 발병해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2009년에 사망했다. 이 책은 그녀의 사망 후에 출간되었다. 그녀의 마지막 책이라서 더 의미가 크다.
죽음이란 것을 생각하면 삶에 대한 애착이 더욱 커진다. '살아 있다'는 자체에 집중하게 된다. 다른 모든 것은 우선순위에서 사라진다. 우리는 '암' 진단을 받았을 때 죽음을 연상한다. 저자에게는 세 번의 서로 다른 암이 찾아왔다. 한 번의 항암치료 경험도 힘들다고 한다. 그녀가 이런 어려운 과정을 경험하는 시기에 남긴 글에서 아픔이 느껴진다. 문장 하나에 담긴 진솔함이 전달된다.
책의 내용에 인생, 행복, 사람, 친구 등의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이 단어들이 결국 우리의 인생에서 소중한 것들이라는 반증이 아닐까. 돈을 위해 위의 것들을 가볍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반성하게 된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다. 소중한 삶의 시간들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성찰의 시간이 되는 독서였다.
인생이 짧다지만 '다시 시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1년은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습니다. (21)
그녀가 미국에서 논문을 마무리할 단계에 경험했던 사건은 그녀를 기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충격을 수습하고 1년을 다시 노력해서 논문을 완성한다. 한 순간의 사건으로 1년이란 시간을 다시 반복해야 한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행복의 세 가지 조건은 사랑하는 사람들, 내일을 위한 희망, 그리고 나의 능력과 재능으로 할 수 있는 일이다. (42)
미국 소설가 앰브로즈 비어스는 '입은 남자에게는 영혼으로 들어가는 문이요, 여자에게는 마음이 나오는 문이다'라고 했다. (95)
어디선가 '가난이 앞문으로 들어오면 사랑은 옆문으로 빠진다'라는 말을 보았다. 가난이 싫어서 어떤 때는 그와 헤어질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98)
사랑하는 사람이 가난한 상황일 때 결혼에 대한 결정에 대한 조언을 구할 때 어떻게 답해줄까. 그녀는 가난보다 사랑을 권했지만 나중에 자신의 조언이 맞는 것일까 후회했다는 부분이다. '가난이 앞문으로 들어오면 사랑은 옆문으로 빠진다'는 말이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가난이 현실이 되어 사랑이 금이 갈 수 있다는 경고다.
그렇다고 가난한 상대라고 해서 사랑을 버리라고 할 수도 없다. 사랑으로 두 사람이 열심히 살아서 가난을 극복한 사례들도 충분히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은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되고 계층 사다리가 더욱 얇아지고 있어 사랑을 우선하기에도 조심스럽기는 하다. 결론은 사랑하는 두 사람의 몫이다.
물론 사람들이 그 여자를 쳐다보는 것은 부러워서이고 나를 쳐다보는 것은 불쌍해서라고 하겠지만, 내가 살아 보니까 사람들은 남의 삶에 그다지 관심이 많지 않다. 그래서 남을 쳐다볼 때는 부러워서든 불쌍해서든 그저 호기심이나 구경 차원을 넘지 않는다. (121)
명언이다. 우리는 타인을 의식해서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생각보다 다른 사람의 삶에 관심이 많지 않다. 내 삶을 챙기기에도 급급하기 때문이다. 지나칠 정도로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있다면 그 생각을 버리시라.
내가 살아 보니 남들의 가치 기준에 따라 내 목표를 세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나를 남과 비교하는 것이 얼마나 시간 낭비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내 가치를 깎아 내리는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 줄 알겠다는 것이다. (122)
모두가 자신의 속도에 맞춰 자신의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남의 기준, 남의 가치, 남과 비교 하며 자존감을 잃어버릴 필요가 없다. 바보 같은 짓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개성과 가치를 가지고 있기에 오늘도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가자.
소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1분이 걸리고 그와 사귀는 것은 한 시간이 걸리고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하루가 걸리지만, 그를 잊어버리는 것은 일생이 걸린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남의 마음속에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만큼 보장된 투자는 없다. (123)
가끔씩 맛있는 음식을 먹고, 여자 친구와 데이트하고, 친구들과 운동하고, 조카들과 놀고, 그런 행복들은 순전히 보너스인데, 내 삶은 그런 보너스 행복으로 가득 차 있다!! (162)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지금 이 자리에 가득하다. 즐기자.
셰익스피어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말한다. "이름이란 무엇일까? 우리가 '장미'라고 부르는 것은 그 어떤 이름으로라도 여전히 향기로울 것을." 맞다. 향기 없는 이름이 아니라 향기 없는 사람이 문제다. (191)
향기가 나는 것은 장미라는 이름이 아니라 장미라는 존재 그 자체다. 사람도 그 자체에서 향기가 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사람' 하면 나는 장기려 박사가 생각난다. 북에 부인을 두고 와서 일생 동안 홀로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며 설던 그와의 인터뷰에서 기자가 '유명한 의사'라는 호칭을 썼다. 그러자 그가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유명한 의사'가 되는 것은 그다지 어렵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정 '좋은 의사'가 되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214)
공부 좀 한다는 수험생들이 의대를 우선 지원하는 시대다. 왜 의대를 가려하는가라는 질문에 솔직하게 장기려 박사와 같은 삶을 살고자 한다고 답하는 학생이 몇 명이나 될까.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씁쓸한 대한민국 의료계의 현실이다. 무엇이 학생들의 생각을 이렇게 만들었나. 어른들이 반성할 일이다. 특히 나라의 시스템을 만들고 유지하는 사람들의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독서습관 817_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_장영희_2019_샘터사(231218)
■ 저자: 장영희
서강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뉴욕 주립대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컬럼비아대에서 1년간 번역학을 공부했으며, 서강대 영미어문 전공 교수이자 번역가, 칼럼니스트, 중고교 영어 교과서 집필자로 왕성한 활동을 했다.
문학 에세이 <문학의 숲을 거닐다>와 <생일>, <축복>의 인기로 '문학 전도사'라는 별칭을 얻었으며, 아버지 장왕록 교수의 10주기를 기리며 기념집 <그러나 사랑은 남는 것>을 엮어 내기도 했다. 번역서로는 <종이시계>, <슬픈 카페의 노래>, <이름 없는 너에게> 등 다수가 있다. 김현승의 시를 번역하여 '한국문학번역상'을 수상했으며, 수필집 <내 생애 단 한번>으로 '올해의 문장상'을 수상했다.
암 투병을 하면서도 희망과 용기를 주는 글들을 독자에게 전하던 그는 2009년 5월 9일 57세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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