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현재 모습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책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우다>이다.
우리는 물질적으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 차와 대중교통은 편리하고, 다양한 가전제품들은 노동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주었다. 과거와 같이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고 정리하고, 빨래를 빨고 말리고, 청소하고, 밖에서 육체적인 노동을 하는 시간이 확연하게 줄었다. 이제는 시간적으로 여유로운 생활이 가능하다. 발전된 대한민국의 위상을 알 수 있고, 국민으로서의 자부심도 가질 만한 위치가 되었다.
하지만 공동체가 해체되면서 사람과 사람간의 거리는 더욱 멀어졌다. 비록 아파트 앞집과 마주보고 있지만 서로 간의 왕래가 없다. 심리적인 거리감은 더욱 멀다. 국민의 90퍼센트 이상이 도시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과 엇갈리며 개인의 삶을 살아간다. 응집력이 없는 모래 알갱이와 같은 도시생활이다.
대부분의 국민이 편리한 도시의 삶을 누리고 있지만 정작 그 속에서 사람이 소외되고 있다. 소외로 인한 부작용은 우리의 몸이 병으로 보여주고, 사람 간의 관계의 단절은 폭력과 범죄로 드러난다.
우리가 회복하고 되찾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단서를 제공하는 곳이 '라다크'다. 저자가 라다크에서 수 십년을 함께 생활하면서 라다크인들로부터 무엇을 얻어야 하는지 알려준다. 하지만 라다크도 인도 정부의 정책에 의해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변해간다. 자식들의 삶이 돈을 추구하는 삶으로 변한다. 가족들 간의 이해가 상충된다. 이런 모습은 우리나라에서 1980년대 산업화로 인해 도시로 나간 자녀들과 고향에 남아 있는 부모들 간에 벌어졌던 견해차와 유사하다.
우리에게는 먼 나라 인도, 그리고 인도에서도 오지라고 할 수 있는 히말라야 산맥에 위치한 라다크에 대해 알아가는 좋은 시간이었다. 척박한 땅에서 보리를 키우고, 가축을 사육하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라다크인들의 삶과 지혜를 엿볼 수 있다. 과도한 농지를 위해 욕심을 부리지도 않는 라다크인들과 부동산을 통해 한몫 챙기려는 우리의 욕이 대비된다.
또한 라다크인들은 모든 것을 자립해서 사용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구할 수 있는 것으로 완벽한 자립을 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들에 비해 우리는 물질적으로 과도하게 넘치는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늘 부족하고 더 나은 것을 바라본다.
건강한 사회란 무엇인가에 대해 라다크인들에게 배운다. 구성원 간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늘 서로 돕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고, 정서적으로 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외모를 가지고 서로를 비교하지 않고 성격을 중요하게 여긴다. 죽음에 대해서도 윤회를 믿기에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고 받아들인다. 외모 지상주의라고 할 정도로 성형과 화장품에 대한 관심이 높은 시대에 성격이 중요하다고 하는 라다크인들의 말이 어색하게 다가온다.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생각하게 된다. 다음은 책에서 남기고 싶은 문장은 인용했다.
심지어 선진국에서마저 대단위의 도시화는 공동체 해체의 직접 원인이 되고 있으며 그 부작용으로 소외 현상에서부터 범죄, 폭력, 마약 등의 사회문제가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22)
국내총생산 대신 국내총행복GNH이라는 개념을 우리의 경제와 사회적 안녕의 척도로 사용한다면 이 세계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23)
이곳의 이름인 '라다크Ladakh'는 '라 다그스 La Dags'라는 티베트어에서 파생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뜻은 '산길의 땅'이라고 한다. (51)
고도 1만 피트의 고원지대인 이곳에서는 1년 중 작물이 자랄 수 있는 기간이 4개월 정도에 불과하다. 따라서 라다크 사람들이 재배할 수 있는 작물은 한정될 수밖에 없다. 티베트 고원의 다른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이곳의 주요 작물은 보리이며 라다크 사람들은 보릿가루를 구워 만든 '은감페ngamphe'라는 음식을 주식으로 하고 있다. (53)
대략 한 사람당 1에이커 정도가 그 적정 면적인데 이곳 농부들에게 그 이상의 땅은 소용이 없다. 기본적으로 이곳 사람들은 경작하지 못하는 농지를 소유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53)
이 지역에 있는 모든 마을의 입구에 있는 초르텐Chorten'이라 불리는 이 석탑은 체스판의 '폰 pawn'처럼 생겼는데 마치 거대한 산이 땅에서 우뚝 솟아 올라온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보통 석회석과 진흙을 섞어 만든다는 이 석탑은 20피트 정도의 높이인데 윗부분으로 갈수록 좁아져 끝이 뾰족한 첨탑의 모양을 갖추고 있다. (61)
라다크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아주 오랜 세월 모든 것을 재활용해 왔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그냥 버려지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열악한 자원만을 가지고 라다크의 농부들은 거의 완벽한 자립을 이룰 수 있었다. (76)
지극히 기초적인 작업 도구만을 가진 이들이 그토록 만족스러운 생활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게 느껴진다. 쟁기와 베틀 같은 것을 제외하고 라다크에서 '기술'이라 부를 만한 것은 간단하지만 정교한 구조로 고안된 물레방아 정도이다. (92)
갈등보다는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이들은 자연스럽게 제3자의 중재를 따르게 되는 것이다. (113)
거래가 이루어지는 경우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서로 인간적인 유대를 맺고 있는 관계여서 경솔함이나 속임수 같은 것이 생기기 어렵다. 따라서 부패라든가 권력 남용의 사례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또 이 작은 규모의 공동체는 한 사람에게 권력이 편중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119)
"예쁜지 아닌지가 중요한가요?"
"그렇지는 않아요. 중요한 건 그 사람 내면이 어떤가 하는 거예요. 외모보다 성격이 더 중요하지요. 라다크에는 '호랑이의 줄무늬는 밖에 있지만 사람의 줄무늬는 안에 있다'라는 말이 있어요." (153)
존재에 대한 라다크 사람들의 개념은 윤회, 다시 말해 멈추지 않는 반복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번 인생이 유일한 것이라는 관념은 없다. 그들에게 죽음이란 것은 끝이기도 하지만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168~169)
라다크의 문화를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 나는 집을 떠난다는 것은 개인의 성장에 있어 그 일부가 되는 것이며 성인이 되기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대가족제도와 작은 규모의 공동체 생활이 성숙하고 균형 있는 인격이 만들어지는 데 있어 더욱 훌륭한 기초를 형성한다고 믿고 있다. 건강한 사회란 구성원 사이의 친밀한 연관관계와 서로 돕는 분위기를 더욱 북돋아주어야 하는 것이며 개개인에게 무조건적으로 정서적인 지원을 제공할 수 있는 사회를 말한다. (175~176)
만족이라는 것은 자신이 삶의 흐름에 있어 한 부분이 된다는 것을 느끼고 이해하면서 그것과 함께 여유롭게 흘러가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178)
변화
그 변화의 과정이 본격화된 것은 인도 정부가 그 지역을 관광 지역으로 개방했던 1974년부터였다. 그것은 라다크가 인도의 통치권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하려는 의도였던 것 같다. (...) 라다크 내에서 그 정책을 집행하는 것은 라다크인이 아니라 라다크 언어도 모르는 행정관리들이다. (...)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와 마찬가지로 라다크에서의 개발 역시 서구식의 개발의 의미한다. (182)
서구문화의 영향력이 갑작스럽게 유입됨에 따라 라다크 사람들 가운데 특히 젊은이들 중에는 자신들의 고유문화에 대한 열등의식에 사로잡히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자신들의 고유문화를 전적으로 거부하고 새로운 문화를 껴안으려 하고 있다. (191)
인도 정부의 정책에 따라 라다크 지역을 관광 지역으로 개방하면서 원치 않는 변화가 불어닥쳤다. 젊은이들은 라다크의 삶을 외부와 비교하면서 고유문화를 열등하다며 거부했다. 세대 간의 문화의 단절이 시작된 것이다. 또한 자립적인 삶을 살았던 이들에게 화폐경제가 들어오면서 돈이란 것에 대해 집착하게 되었다.
안타까운 점은 서구식 교육이 도입되었지만 라다크에 대한 것은 아무 것도 포함되지 않은 인도식 교육이었다. 어쩌면 영국식 교육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모든 것을 활용하는 자립사회에서 쓰레기가 없었지만 관광지로 개방되면서 온갖 쓰레기가 넘치기 시작했다.
라다크 사람들이 갑자기 국제 화폐경제의 한 부분이 되면서 아득히 먼 곳에 있는 외부세계의 영향력에 의존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 기본적 욕구 충족에 필요한 재화의 공급마저도 전혀 다른 경제체제에 의존하게 되고 예측하지 못할 인플레이션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자 사람들이 온통 돈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는 현실이 그리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196~197)
라마승에서 엔지니어 세계관으로의 변화는 모든 생명체 사이의 자비로운 관계를 부흥하는 윤리적 가치관에서 윤리적 기초를 갖지 못한 가치중립의 '객관성'으로의 이전을 의미한다. (210)
서구식 교육이 라다크에 처음 들어온 것은 1970년대였고 현재 200여 개의 학교가 있다. 기본 교과과정은 인도 학교의 교과과정을 부실하게 모방한 것인데 인도의 교과과정 역시 영국의 것을 모방한 것이다. 라다크에 관한 것은 아무 것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213)
전통 마을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쓰레기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레에는 쓰레기를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 음식 찌꺼기에서 플라스틱, 유리, 종이 그리고 원거리 수송에 필요한 금속 포장재까지 온갖 종류의 쓰레기가 쌓여가고 있다. (222)
지역의 정치 경제적 연계가 붕괴됨에 따라 사람들은 점점 더 자신의 본질에서 벗어나 익명성의 그늘 속으로 숨어들어가는 경향을 보인다. 생활의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사회적 유동 경향이 증가하면서 친밀했던 인간관계들마저도 피상적이고 간편한 것으로 변질되고 있다. (233)
라다크의 변화는 곧 우리 사회의 변화를 되돌아보게 한다. 마을 공동체가 붕괴되며 도시의 익명성에 숨어 사는 사람들이 되었는데 라다크에서도 동일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그렇게 강하고 활발한 모습을 보이던 라다크 여성들이 자심감 없고 외모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신경을 쓰며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라다크에서는 전통적으로 여성의 외모를 중시하긴 했지만 인내심이나 사회적인 역할들을 더 중시했다. (236)
강요된 서구의 표준 이미지를 추구한다는 것은 자신의 고유문화와 뿌리를 부정하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그에 따른 소외 현상은 적개심과 분노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오늘날 세계 전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폭력 사태와 근본주의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242~243)
미래
현대화란 지역의 다양성과 독립성을 하나의 단일 문화와 경제체제로 대체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개발은 자본의 도입을 절대적인 진보라고 전제한다. 개발의 관점에서 돈이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주류의 경제구조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적용할 수 있지만 지역의 자원들을 기반으로 한 비화폐경제체제나 자급경제체제에 속한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는 적용할 수 없는 것이다. 의식주 문제를 자급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불안정한 금전적 이익을 위해 고유의 문화와 독립성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삶의 질이라는 측면에서 중대한 손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261~262)
그 이미지에는 물론 개발로 인한 부작용, 오염, 심리적 스트레스, 약물 중독, 노숙자 같은 것들은 담겨 있지 않다. 경제개발이란 동전의 한쪽 면만을 접해본 사람들은 현대화에 대해 내성을 갖지 못한 채 그것을 열망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281)
반개발은 또 가정과 공동체의 붕괴 현상에 주목할 것이고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사회의 감추어진 부작용들을 드러내보일 것이며 환경 피해로 인한 손실 비용을 경제 대차대조표의 부채난에 기록할 것이다. 간단히 말해 산업화 사회 생활방식에서의 증가하는 피해 비용을 모두 다 드러내 보일 것이다. (287)
(...) 화려함의 이면에 있는 고독함, 불행, 부정의와 낭비 등을 보게 된 것이다. 환상은 하나하나 깨지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고국문화가 오히려 서구사회가 잃어버린 많은 장점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그로부터 그는 자신의 고국이 유지해 온 자급경제체제의 장점들을 옹호하기 시작했다. (289)
지역경제체제는 단순한 유토피아적 이상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난 수천 년 동안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사람들을 위해 훌륭하게 봉사해 왔고 성장추구의 중앙집중형 경제체제에 비해 더욱 공정한 부의 분배를 지향했으며 인간생활의 기본적 필요 요소와 자원의 한계라는 문제에 대해서도 더욱 긴밀하게 응답해 왔다. 지역경제체제의 부활을 지원함으로써 우리는 문화와 생태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97)
1983년 우리는 '라다크생태개발그룹 LEDeG'이라는 단체를 정식으로 발족시켰다. (...) 이 단체는 라다크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비정부기구로 성장했고 라다크 프로젝트와의 연대를 통해 모든 유관분야의 적정 기술 개발을 지속하며 그로 인해 새로운 대안들을 제시하고 있는데 현재는 자체적으로 소화하기 힘들 만큼 외부의 개발 의뢰가 쇄도하고 있다. (306~307)
인종 간의 폭력 사태나, 대기와 수질오염, 가족해체, 문화붕괴 등의 문제들은 외관상 연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것들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319)
우리는 끊임없이 경제성장과 물질적인 번영에 대해 정신적 사회적 빈곤과 심리적 불안감 그리고 문화적 활성화의 상실이라는 대가가 지불되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젊은이들이 정신적인 공허감을 메우기 위해 마약에 탐닉하거나 사이비 교주들을 추종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게 된다. 아마도 우리가 라다크의 경우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부분은 행복에 관련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것을 무척 더디게 깨달았다. (321)
분명히 예외가 있을 수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대가족제는 그 구성원들에게 더 넓은 공간과 유연함을 제공하는 동시에 정서적으로나 책임감이라는 측면에서는 훨씬 더 적은 부담을 준다. 그것은 특히 노인이나 여성 그리고 아이들에게 더 많은 도움을 주는 제도이다. (326)
우리는 모든 인간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났으며 어린아이들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 보이거나 권리를 얻기 위해 힘들일 필요가 없는 가족체제 안에서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바람직한 성장을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것은 라다크 사람들이 단 한 번도 잊은 적 없는 가르침이다. (337)
삶을 바라보는 그리고 죽음을 바라보는 라다크 사람들의 시각은 무상함에 대한 이해와 집착을 버리려는 자세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듯하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생각에 집착하는 대신 세상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능력으로 인해 라다크 사람들은 정말 축복받은 사람들처럼 보인다. (347)
독서습관 816_오래된 미래_헬레나 노르베리 호지_2019_중앙일보플러스(231217)
■ 저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Helena Norberg-Hodge
언어학자이자 작가이자 사회운동가
스웨덴과 독일, 오스트리아, 영국, 미국을 오가며 연구활동을 하고 있고, 에콜로지및문화를위한국제협회SEC와 라다크프로젝트의 설립자이며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1986년 노벨상에 버금가는 권위를 지닌 Right Livelihood Award의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며, 이 책을 영상화한 동명 영화에 공동 제작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50여 개 국가의 언어로 번역된 책과 영화는 현재까지 세계 전역의 민간운동기구 관계자들 사이에 주요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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