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영토, 샘터라는 용어와 연결되는 꽃삽이란 책으로 알게 된 이해인 수녀의 책을 오랜만에 도서관에서 만났습니다. 고 박완서 작가와 가까이 지냈고 암투병을 하고 계시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글을 읽어가며 저자의 육체적인 정신적인 고통과 그 기간을 종교적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하고 계신 것을 알게 됩니다.
글을 보면 읽는 이도 시적인 분위기로 젖어들게 합니다. 행복을 바라고 자기를 인내하고자 노력하는 모습, 자신을 부인하고 정제된 자아를 통해 주변을 밝게 하고자 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책의 중간 중간에 안배된 삽화가 책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줍니다. 삽화가 어쩌면 이렇게 쉬운 듯하면서도 리얼하게 행복한 모습을 그려냈는지 감탄하게 됩니다. 참 잘 그렸습니다.
어느덧 수녀로서의 길을 50주년을 앞두고('18.5월) 있는 저자의 길다면 긴 여정을 이 책 속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에 모아둔 젊은 시절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남겨둔 짧은 일기들을 보며 시대상도 얼핏 보이면서 내면의 성찰을 지속적으로 해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몇 줄이라고 하루하루의 감정을 적으며 더욱 긍정적으로 삶을 살고자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책을 통해 저자에 대해 알 수 있고, 저자가 경험한 것들을 함께 나눔으로 독자 또한 간접 경험하게 됩니다. 이 책을 통해 마더 테레사도 만나고 1960년대로 시간여행도 다녀옵니다. 저자가 추천하고 언급한 책들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이하 책의 내용중 기억하고 싶은 부분을 적어둡니다.
[48] 오늘은 <소록도의 마리안느와 마가렛>이라는 책에 대한 추천의 글을 썼다. 거의 반세기를 소록도에서 한센병 환우들을 돌보다 어느 날 편지 한 장을 남겨놓고 본국인 오스트리아로 떠난 그리스도왕시녀회(평신도재속회)의 두 사람. 이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든 윤세영 감독의 부탁으로 내가 나레이션을 맡았기에 더 관심 갖게 되었다. 이기적으로만 살기에는 너무도 할 일이 많은 세상에서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봉사하고 사랑해야 하는가를 이들의 삶을 통해 다시 알게 되는 기쁨!
[52] ~ 서점에서 산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를 다 읽고 나서 독후감을 쓰려다가 뜨거운 감동이 밀려와서 글을 앞당겨 쓰게 되었다는 것, 그날도 왠지 울적했는데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떡을 주고 덕담을 건넨 따뜻한 맘씨에 감동했다는 것,~
[58] 안드레아 토르니엘리와 프란치스코 교황의 대화집인 <신의 이름은 자비입니다>라는 책에 인용된 어느 사제의 기도를 읽다가 마음이 뜨거워져 울었다. '주님 제가 너무 많이 용서해버린 것을 용서해주세요. 하지만 저에게 그런 나쁜 표양을 주신 분은 바로 당신이었잖아요!' 나도 이런 기도를 바칠 수 있길 바란다.
[67] ~ 직원들과 사진을 찍자며 새해 덕담을 위한 방명록부터 내미신다. 나는 각자의 자리에서 덕을 쌓고 복을 짓는 심부름꾼으로서의 '복덕방'이 되면 좋겠다고 적으니 다들 옆에서 고개를 끄덕인다.
[84] 'Christ is the head of this house, The unseen guest at every meal. The silent listener to every conversation(그리스도는 이 집의 으뜸이시고, 매 식탁의 보이지 않는 손님이시며, 모든 대화의 고요한 경청자이십니다).'
1994년 12월 인도 콜카타 '사랑의 선교 수녀회'에서 마더 데레사를 만나 며칠간의 인터뷰를 마치고 떠나기 전 나는 초록색 바탕에 하얀 글씨가 적힌 조그만 글판 하나를 객실 벽에서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유심히 바라보다 그 내용이 참 좋다고 하니 마더 테레사는 선뜻 떼어서 내게 건네주며 '좋으면 한국에 갖고 가세요'라고 하셨다.
[96] 요즘 부쩍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록 그룹 '부활'의 김태원이 시를 쓰고 곡을 만든 <사랑이라는 이름을 더하여>라는 노래를 몇 번 듣고 나니 아름다운 중독성이 있는지 나도 자꾸만 속으로 흥얼거리게 됩니다.
(.....)
삶이란 지평선은 끝이 보이는 듯해도
가까이 가면 갈수록 끝이 없이 이어지고
저 바람에 실려가듯 또 계절이 흘러가고
눈사람이 녹은 자리 코스모스 피어 있네
가려무나 가려무나
모든 순간에 이유가 있었으니
세월아 가려무나 아름답게
다가오라 지나온 시간처럼
가려무나 가려무나
모든 순간에 의미가 있었으니
세월아 가려무나 아름답게
다가오라 지나온 시간처럼
[130] 그동안 나의 글들을 아끼고 사랑해준 많은 독자에게 일일이 감사의 편지를 쓰진 못하더라도 두고두고 선물이 될 수 있는 한 편의 멋진 시를 쓸 수 있기를 기대해볼까. 아니면 서툰 솜씨로나마 산과 바다와 흰구름이 있는 한 폭의 수채화를 남겨놓을까. 꼭 글이나 그림으로 작품을 남기진 못하더라도 나의 삶이 한 편의 시가 되고 그림이 될 수 있도록 순간순간을 더 성실하고 겸손하게, 더 단순하고 투명하게 내 남은 날들을 채우고 싶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대 졸업식에서 한 말을 나는 늘 기억하고 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게 인생의 고비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데 큰 도움이 된다"라는 그 말을.
[156] 사랑하는 이들이 먼저 떠나가서 친숙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은 가보지 않은 세상이기에 두렵고 낯설기도 한 죽음을 깊이 묵상하는 11월, 우리는 그 무엇에도 그 누구에게도 매이지 않는 가벼움과 자유로움으로 순례자의 영성을 살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하루에 한 번 아직은 오지 않은 자신의 죽음을 잠시라도 묵상하는 것은 오늘의 삶을 더 충실하게 가꾸는 촉매제가 되어줍니다.
[171] 내가 좋아하는 책 중엔 엘레나 포오터의 <파레아나의 편지>가 있는데 상황이 어렵고 힘들어도 좌절하지 않고 꾸준히 '기쁨의 게임'을 실천하여 온 마을 사람들을 희망과 기쁨으로 변화시켜가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해 성탄 선물 뽑기에서 인형을 받고 싶어 하는 어린 파레이나에게 지팡이를 주자 서럽게 우는 걸 보고 목사님인 아버지가 말합니다. '바보같이 울긴 왜 울어? 너에게 지금 이 지팡이가 필요 없다는 걸 기뻐하면 되잖니?'라고.
[174] ~ 독서는 일반 책보다 영성 서적을 우선으로 선택해서 읽을 것, 내가 먹는 약의 종류가 하도 많아서 먹기 싫을 때 유혹을 물리치고 오히려 경건한 예식을 치르듯이 충실하게 먹을 것, 식탁에서 음식을 골고루 먹되 조금씩 절제할 것, 한참 일에 몰두할 때 누가 방문하면 계속 일을 하고 싶은 유혹을 물리치고 즉시 일어나서 기쁘게 인사할 것, 찾아오는 손님들에겐 종교와 관계없이 정성스럽고 친절하게 대할 것, 누가 내게 시간이나 어떤 물건을 달라고 요구하면 부정적인 응답보다는 일단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며 방법을 모색할 것, 무엇을 함께 선택하는 기회가 있을 적엔 마음에 드는 것을 다른 이에게 먼저 양보하는 관대함을 보일 것, 글씨를 남이 알아보기 쉽게 또박또박 쓸 것, 공동 방에서 먼저 나올 땐 다른 이의 신발을 신기 좋게 돌려놓는 것 등등 다 열거하자니 많기도 합니다. 주어진 일상의 삶에 충실한 것이야말로 우리가 실천해야 할 기본적인 덕목이며 아름다운 극기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179] ~ 웨스트민스터 사원 어느 주교님 묘비에 새겨져 있다는 한 구절을 다시 묵상해봅니다.
'이제 죽음을 맞이하는 자리에서 나는 깨닫는다. 만을 내가 나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내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얻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을. 누가 아는가, 그러면 세상까지도 변화되었을지!'
[182]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도 스타치오(statio)의 순간들이 필요하다. 나는 요즘 어떤 방문객을 만나기 전에 잠시라도 미리 그를 기억하며 '만나서 무슨 덕담을 건넬까?', '어떤 선물을 주면 좋아할까?' 스타치오를 하는데 이 방법은 매우 도움이 된다.
[216] 아주 오래전 내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갔을 적에 어느 날 친지들이 안내하는 선물의 집에 들른 일이 있다. 거기서 조그만 크기의 책갈피를 하나 사게 되었는데 그 안에 적혀 있는 바로 이 글귀가 마음에 들어서였다.
'Today is the first day of rest of your life(오늘은 그대의 남은 생애의 첫날입니다).'
그 순간 이 글이 내 마음에 어찌나 큰 울림을 주었는지! 삶에 대한 희망과 용기, 위로를 주는 멋진 메시지로 다가왔다.
[232] ~ 신영복 선생님의 강의록을 모은 책 <담론>을 읽으려고 구해두었는데. 감옥에서 이십 년 만에 출소한 그분이 대중 앞에서 첫 강의를 하실 때 나는 마침 서울에 있어 강의를 들으러 갔었다. 선생님의 애독자로서 우리 수녀원에 강의를 와주십사 청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못했고, 그 대신 '평상심'이라는 글씨를 한지에 써 보내주셨기에 지금껏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236] 휴가는 필경 '게으름의 찬양'에 맛 들이는 시기이다. 내가 좋아하는 러끌레르끄의 책 <게으름의 찬양>을 다시 읽어보니 이 구절이 마음에 들어온다.
"아름다움이 아름다움으로 보이고 꽃을 피우게 되는 것은 뛰면서 되는 일도 아니고 군중의 소란 한가운데서 이루어지는 일도 아니고 번다한 일도 아니고 바쁜 일들 틈바구니에서 생기는 일도 결코 아닙니다. 고독, 정적, 한가로움이 있고서야 탄생도 있는 법입니다. 때로는 섬광 짓듯 생각이나 걸작이 피어나는 것도, 이미 오래고 한가로운 잉태기가 그에 앞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312] 이제는 그야말로 '불후의 명저'로 자리매김한 책 <죽음과 죽어감>을 찬찬히 다시 읽으며 여러 가지 상황적인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수백 명의 죽어가는 환자와 진심 어린 인터뷰를 감행한 당신의 그 겸손한 용기, 지극한 인내, 반대하는 이들조차 설득시키는 그 지혜로움에 새삼 감동하였습니다. ~
<죽음과 죽어감>은 누구나 적어도 한 번은 읽어야 할 필독서로 추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책은 죽음에 대한 책인 동시에 삶을 이야기하는 책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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