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적 진실이자 사법 정의인 정답과 채점자가 정답으로 처리하는 답이 달라 선택의 갈림길에 설 때, 비로소 진짜 검사인지 여부가 판가름 납니다. 직업적 양심에 따라 정답을 고르는 검사도 있을 테고, 오답인 줄 알면서도 채점자 의도를 간파하여 오답을 고르는 사람도 있겠지요. 경우에 따라 극심한 인지 부조화에 시달리며 오답이 실체적 진실이자 사법 정의라고 우기며 오답을 고르는 자도 없지 않을 겁니다. 어떤 답을 고를 것인가? 작정하고 정답을 오답 처리하는 채점자에게 이의를 제기할 것인가? 우리는 숱한 갈림길에서 늘 주저하고 흔들립니다. (15페이지)
임은정 검사의 책 <계속 가보겠습니다>를 읽었다. 평범한 국민들이 검사와 업무적으로 만날 일은 거의 없다. 우리 사회에서 검사의 그릇된 위상이 언론에 등장한다. 검사 출신 정치인이 많은 것은 이들이 얼마나 권력과 가까울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일반인들에게 다른 별 이야기라고 생각되는 검찰 조직에 대해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책이다.
우리가 짊어진 과거의 업보가 아무리 무거워도 후배들에게 넘겨주어서는 안 되는, 지금 우리가 감내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임을 압니다. 또한 우리가 처리하는 사건 하나하나가 당사자에겐 목숨이 걸린 사건이고, 그러한 사건들이 모여 우리나라의 역사가 됨을 압니다. 故 김준엽 전 고려대학교 총장님의 말씀대로 '현실에 살지 말고, 역사에 살자'고 다짐합니다. (39)
책을 읽고 검찰에 대해 남은 잔상을 나열하면 아래와 같다.
1. 검사동일체란 말을 강조하며 검사 개인보다 검찰이란 조직을 우선시하는 집합체다.
2. 상명하복을 당연하게 여기고 문제의 정답보다 문제 출제자의 의도에 맞게 답하는 것이 기본인 사람들의 모임이다.
3. 수사권과 기소권을 휘두르며 피의자와 피해자들 위에 군림하는 존재다.
4. 여성 검사에 대해서 성희롱을 하고도 승진하는 집단이다.
5. 정의를 위해 법을 집행한다고 겉으로 말하지만 실제로는 검찰 구성원들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이익단체다.
6. 검찰 밖의 사람들에게는 엄정하지만 자신들에게는 너무도 가벼운 판결을 내리는 곳이다.
저는 권력이 아니라 법을 수호하는 대한민국 검사입니다. (47)
검찰에 몸담고 있는 대부분의 검사는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의 사건을 처리하면서 자신의 본분에 충실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청장에 이르는 주요 보직을 가진 검사들은 검사동일체, 상명하복을 강조하며 자신의 라인을 따라 판단한다.
제가 느끼고 깨달은 법의 정신은 36.5도의 체온이 담긴 인간에 대한 신뢰와 연민입니다. 공판검사에게는 피해자의 고통과 절망, 우리 사회의 분노와 자책, 피고인에 대한 연민과 충고 등 모두를 대신하여 법정에서 말할 의무가 있지요. (53)
저자도 한 때 진골이 될 기회가 있었지만 자신의 양심에 어긋나지 않는 선택을 하기로 결단한다. 진골 검사들에게 미운털이 박히고 아웃사이더로 검찰 비판자의 역할을 10년 이상 지속하고 있다.
그녀가 두려움에 가슴 떨리는 상황에서도 가까스로 극복하고 상사와 조직의 비리에 대해 이프로스에 의견을 밝혔다. 그리고 예상했던 비난과 차별을 감수했다.
검사의 언행과 결정의 무게, 그 파급력을 안다면 생각 없이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 수 없지요. (56)
조직에서 의견이 다르다고 상사에게 강하게 의사를 표명하기는 쉽지 않다. 밥줄이 눈앞에서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저자도 가족이 어려움에 처해 자신의 검사 지위에 대해 고민했다.
저자가 개혁을 촉구하면서 검사직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치밀함이다. 삶을 통해서 체득한 지혜를 통해 조직의 생리를 간파하고 필요한 근거를 갖춘다. 밉지만 자를 수 없는 사람이 된 것이다.
법은 법이 필요 없는 가지고 쥔 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보호 장치입니다. (88~89)
검찰 내부의 이프로스에서 나아가 경향신문 연재로 검찰 비리와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주장했다. 혼자만의 목소리가 점점 여러 사람의 목소리로 변하고 있다.
이제는 <계속 가보겠습니다>에서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검찰 내부에서 있었던 믿기 힘든 사건들을 대중에게 보여준다. 책은 검찰이 왜 존재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한편으로는 검사들이 왜 그렇게 강하게 검찰개혁을 거부하는지도 알겠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저항한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결국은 바로잡힐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검사 선언 대로만 하면 된다.
상급자의 지휘권, 징계권, 인사권의 오남용, 길들여진 검찰 구성원의 침묵과 동조는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검찰의 위기를 초래한 주요 원인입니다. (101)
검찰공화국이라고 불리는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주요 직위를 차지하고 있는 검사 출신들이 국가를 위해 충분한 역량을 발휘하길 바란다. 이 나라를 위해서다. 검찰 조직에 있을 때와 같이 특정 집단을 위한 의사결정을 하면 안 된다. 법 집행이 아니라 한 나라의 살림을 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임은정 검사가 대한민국을 위해 소신대로 역할을 할 수 있는 시기가 올 것이라 생각한다. 그녀가 사람에 복종하는 검사들보다 우리에게 훨씬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지만, 임은정의 책은 사람다운 삶을 열어가는 한 사람을 보여줍니다. 책을 털고 나서도 울려오는 함성은 역시 이 한마디입니다. "이 사람을 보라." (328)
피해자인 유수성은 7년간 법정을 오가며 지옥을 헤매었는데, 가해자들은 여전히 안녕하고 무탈합니다. 검찰은 책임을 묻는 조직일 뿐 책임을 지는 조직이 아니니까요. (201)
독서습관635_계속 가보겠습니다_임은정_2022_메디치미디어(221004)
■ 저자: 임은정
1974년 7월 14일 부산에서 나고 자랐다. 등록기준지는 경북 영일군(현 포항시)이다. 1998년 사법시험 40회에 합격했고, 1999년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2001년 인천지검 검사로 임관한 후 경주지청, 부산지검, 광주지검, 법무부(법무심의관실), 서울 중앙지검, 창원지검, 의정부지검, 서울 북부지검, 충주지청, 울산지검, 대검, 법무부(감찰담당관실)를 거쳐 현재 대구지검에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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