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툴 가완디의 책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김현아 교수의 책 <죽음을 배우는 시간>에 이어서 읽었다. 김 교수의 책이 입문서이고 가완디의 책이 심화 과정처럼 느껴졌다.
<죽음을 배우는 시간>은 한국에서 일어난 환자들에 대한 경험담이면서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를 이해하기 쉽게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사회적, 역사적, 과학적인 배경을 설명하며 저자의 아버지를 포함해 미국에서 임종을 앞둔 환자들에 대한 경험을 통해 바람직한 죽음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 보여준다. 두 책 모두 의사가 전하는 메시지라서 독자들의 깊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소감을 몇 가지로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죽음 전 병원 중환자실이 아닌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보낸다.
아프면 병원에 가고, 병원은 치료하는 곳이다라는 생각은 치료 가능한 질병이나 사고의 경우에 해당한다. 남은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나, 노환으로 치료할 경우 자율적인 삶이 불가한 노인들의 경우 앞으로 남은 여생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평소에 진지한 고민이 없을 경우, 항암치료, 수술, 회복, 인공호흡기, 투석기 등으로 신체를 만신창이로 만들고 정신은 혼미해지는 가운데 쇠약해져 중환자실에 갇혀있는 신세로 죽음을 맞이하기 쉽다.
어차피 죽음이 멀지 않았다면 <드라이빙 미스 노마>의 노마 할머니처럼 가족들과 여생을 함께 자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편이 좋겠다. 그리고 통증이 심해지며 거동이 불편해지면 호스피스의 완화치료의 도움을 받아 가족들과 함께 서서히 죽음을 맞는 것이다. 이 책의 핵심이다.
둘째, 요양원의 유래와 기능을 알게 되며 가능한 피하고 싶다.
책에서 구빈원에 대한 설명에 이어 요양원이 오랜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을 병원에서 내보내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Nursing Home이라는 것에 놀랐다.
요양원에 입실한 사람 개개인에 대한 개성을 돌볼 여력이 없이 효율과 기능만을 앞세우며 획일적인 일정에 맞춰 음식, 약, 생활패턴을 강제한다. 즉, 요양원에 입실한 사람들은 개성에 대한 존중 없이 가족을 대신해서 관리해주는 장소다. 끔찍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자녀와 함께 할 수 없는 부모들이 따로 생활하다 노환으로 혼자서 생활할 수 없으면 요양원에 들어가는 노인이 많아지고 있다. 어쩌면 홀로 살다 요양원으로 가는 것이 당연한 과정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요양원이 최선의 선택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가족들이 가까이서 돌볼 수 있는 환경으로 재구성하고 필요하면 호스피스 케어를 받으면서 자신이 하고 싶었던 여행이나, 늘 하던 취미 생활을 지속하면서 임종을 맞이하는 편이 좋겠다. 구체적인 방법은 각자 처한 환경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떻게 죽을 것인가'란 측면에서 자신과 부모를 바라보면 훨씬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래는 책에서 남기고 싶은 문장을 인용했다.
우리는 아흔일곱 먹은 노인이 마라톤을 완주한 일화 등을 들먹이며 그게 엄청난 생물학적 행운이라기보다 누구에게나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일인 것처럼 말한다. (54)
피부세포 안에서 노폐물을 제거하는 장치가 서서히 기능을 잃으면 잔여물이 뭉쳐서 끈적끈적한 황갈색의 리포푸신 lipofuscin(지방갈색소)이 된다. 이것이 바로 피부에 나타나는 검버섯이다. 리포푸신이 땀샘에 축적되면 땀샘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나이가 들면 일사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고 더위에 빨리 지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62)
이 새로운 인구 구조에 제대로 대처하고 있는 사회는 거의 없다. 우리는 여전히 65세에 은퇴하는 개념을 고수하고 있다. 65세 이상 인구가 아주 적은 비율이었을 때나 말이 됐지, 그 비율이 20%를 육박해 감에 따라 점점 유지하기 어려운 개념이 되고 있는데도 말이다.
사람들이 노후를 위해 저축해 두는 액수는 대공황 이후 최저 수준이다. 최고령층의 절반 이상이 배우자 없이 살고 있으며, 우리 대부분은 전례 없이 적은 수의 자녀를 두고 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우리는 노후에 혼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거의 생각을 하지 않는다. (64)
넘어지는 데는 세 가지 주요 원인이 있다. 균형감각 쇠퇴, 네 가지 이상의 처방약 복용, 그리고 근육 약화다. 이런 위험요인을 가지지 않은 노인이 1년 사이에 낙상할 확률은 12%다. 반면 이 요인들을 모두 가진 노인의 낙상 확률은 거의 100%에 가깝다. (70)
블루다우 과장은 나중에 내게 어떤 의사든 환자가 삶의 질을 유지하도록 할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말은 질병의 폐해로부터 가능한 한 자유로울 수 있게 하고, 세상에 능동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기능을 유지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의미였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질병만 치료하면 나머지는 저절로 해결될 거라고 생각한다. (71~72)
노인병 전문의가 하는 일, 다시 말해 노령 환자들이 회복력과 역경을 헤쳐 나가는 능력을 강화하도록 북돋는 일은 너무나 어려운 데다 눈길을 끌지 못할 만큼 제한적이다.
노인병 전문의는 환자들의 신체와 신체의 변화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들의 영양 상태, 복용 약, 생활상 등도 계속 주시해야 한다. 게다가 환자의 생활방식을 재조정하기 위해 필요한 아주 작은 변화라도 이루려면 환자로 하여금 우리 삶에서 바꿀 수 없는 것, 다시 말해 누구나 불가피하게 직면해야 하는 노령과 생의 종말에 대해 생각해 보게끔 만들어야 한다. (78)
"방법이 없어요." 그의 대답이다. "너무 늦었습니다." 노인병 전문가를 양성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데, 이미 그 수가 너무 적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노인병 전문 훈련 과정을 마치는 의사 수는 1년에 300명도 되지 않는다. 가까운 장래에 밀어닥칠 수요를 충족시키기는커녕 은퇴하는 노인병 전문의들을 대체하기도 힘든 숫자다.
노인을 전문으로 다룰 훈련을 받은 정신과 전문의, 간호사, 사회복지사도 노인병 전문의 못지않게 아쉬운 형편이지만 충분히 공급되고 있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다른 나라의 상황도 이와 비슷하거나 더 안 좋다. (87)
그런데 갑자기 병원들이 많이 생기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쇠약해진 노인들이 들어가기에 상대적으로 매력 있는 시설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제서야 구빈원을 찾는 사람들의 수가 줄기 시작했다. 1950년대를 지나면서 구빈원들이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하자 노인들 중 '극빈자'로 분류된 이들에 대한 책임이 복지부로 넘어갔고, 병들거나 장애를 가진 이들은 병원으로 보내졌다.
(...) 의회는 1954년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환자들을 수용할 수 있는 별도의 시설을 지을 자금을 제공하도록 했다. 바로 이것이 현대 요양원의 시초였다. 노령에 접어들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 병실을 비우기 위해 시작된 것이다. 바로 그 때문에 'nursing home', 즉 요양원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116)
윌슨은 쇠약한 노인들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돌보는 대신 노인들이 그들을 보살피는 일에 대해 가능한 한 많이 주도권을 유지하게끔 해 줄 수 있는 대안을 하나하나 적어 나가 보기로 결심했다. 마음속에 계속 떠오르는 핵심 단어는 '집 home'이었다. (144)
'어시스티드 리빙'이라고 알려진 윌슨의 개념은 아무도 보호시설에 감금됐다고 느끼지 않도록 하자는 데 목표를 두고 있었다. (147)
카스텐슨 교수는 자신이 경험한 것을 기초로 해서 하나의 가설을 만들었다. 우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싶어 하는지는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달려 있다는 가설이다.
젊고 건강할 때는 자신이 영원히 살 것처럼 믿는다. 가지고 있는 기능과 능력을 잃을까 봐 걱정하지 않는다. (...) 젊은이들은 현재의 즐거움을 기꺼이 뒤로 미룬다. (...) 어머니와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친구를 비롯한 사회적 관계를 넓히는 일에 더 몰두한다. (...)
그러나 삶의 시야가 축소되어 눈앞의 미래가 불확실하며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삶의 초점은 지금, 여기로 변화하게 된다. 일상의 기쁨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로 옮겨 가게 되는 것이다. (155)
톨스토이는 생명의 덧없음과 씨름해야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관점 사이에 얼마나 깊은 틈이 있는지를 본 것이다. 그는 특히 그런 사실은 혼자서 감당해야만 하는 사람이 겪는 고통을 이해했다.
그런데 톨스토이의 통찰력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언젠가 죽게 되고 말 거라는 생각에 욕구의 우선순위가 바뀐다 해도, 그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이반 일리치의 가족, 친구, 의사들 중 그 누구도 그가 필요로 하는 걸 알지 못하지만, 그의 하인 게라심은 이해한다. 게라심은 일리치가 고통스럽고, 두렵고 외롭다는 걸 알아차리고 그를 가엾게 여긴다. 언젠가 자신도 주인과 같은 운명을 겪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158)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살아야 할 이유가 생기면 장애가 있는 노인들의 사망률이 떨어진다는 것도 토머스가 한 실험의 가장 중요한 결과는 아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요양원 노인들에게 살아야 할 이유를 제공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것이 전부다. (196)
의학, 그리고 늙고 병든 사람들을 돌보기 위해 의학이 만들어 낸 기관들이 삶을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게 무언지를 두고 잘못된 관점을 가져왔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아예 관점 자체가 부재하다는 사실이다.
의학은 아주 작은 영역에 초점을 맞춘다. 의료 전문가들은 마음과 영혼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신체적인 건강을 복구하는 데 집중한다. (200)
온갖 장애에도 불구하고 케런 윌슨이 도입한 근본 개념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토록 결의에 차고, 그토록 상상력이 풍부하고, 그토록 영감을 주는 사람들을 만나 보지 못했다.
앨리스 할머니가 그런 사람들 중 단 한 명이라도 만났더라면 그녀의 마지막 시간들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에 우울해지곤 한다. 할머니가 뉴브리지나 에덴 올터너티브 프로그램, 혹은 피터 샌본 플레이스 같은 곳에 의지할 수 있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216)
설문지의 내용은 네 가지 핵심적인 문제로 압축된다. 삶의 현재 시점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싶은지 묻는 질문들이다.
1. 심장이 멈추면 심폐소생술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2. 삽관이나 기계적 인공호흡기 같은 공격적 치료를 받기를 원하십니까?
3. 항생제 투약을 원하십니까?
4. 스스로 음식을 먹지 못할 경우 관이나 정맥 주사로 영양 공급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274)
마지막에 이른 사람들은 차마 꺼내기 어려운 대화를 기꺼이 나눠 줄 의사와 간호사를 필요로 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이야기해 주고, 앞으로 닥칠 일에 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아무도 원치 않는 '죽음을 기다리는 창고' 같은 시설에서 잊혀 갈 운명을 피할 수 있도록 도와줄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287)
■ 저자: 아툴 가완디 Atul Gawande
스탠퍼드 대학교를 졸업한 뒤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윤리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하버드 보건대학에서 공중보건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하버드 의과대학과 보건대학 교수, 보스턴 브리검 여성병원 외과의이며 <뉴요커 The New Yorker>지 전속 필자로 활동하고 있다.
첫 저서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Complications>은 내셔널 북 어워드 최종 후보에 올랐고, <닥터, 좋은 의사를 말하다 Better>는 2007년 아마존 10대 도서에 선정되었으며, <체크! 체크리스트 The Checklist Manifesto> 역시 베스트셀러에 올라 저술가로서 확고한 입지를 다졌다.
그는 최고의 과학 저술가에게 수여하는 루이스 토머스 상을 비롯해 내셔널 매거진 어워즈를 2회 수상했고, 사회에 가장 창조적인 기여를 한 인물에 수여하는 맥아더 펠로십을 수상했다. 또한 그는 <타임 Time>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100인'에 이름을 올렸으며, 2015년 영국 <프로스펙트 Prospect>지가 선정한 '세계적인 사상가 50인'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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