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교수의 책을 시작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죽음'에 대한 책을 탐독하고 있다. 이번에는 <드라이빙 미스 노마>라는 말기 자궁암 진단을 받은 노마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유목민의 삶을 살고 있던 아들 부부의 삶에 노마 할머니가 동행하면서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흥미로운 여행길이 시작된다.
저자가 책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점은 죽음과 마주할 때까지의 삶의 질과 주체성이다. 노환이나 치유 불가한 질병으로 항암치료로 인해 육체가 쇠약해지고 스스로 활동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 자존감을 잃거나, 인공호흡기와 같은 연명치료 기구에 의지해 의식도 없이 중환자실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것은 자율성이 없는 불행한 생의 마무리다.
대부분의 환자가 응급실로 향하고 조금이라도 여생을 늘이려고 의사가 권하는 수술과 치료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후유증으로 몸이 쇠약해지고 주도적으로 누릴 수 있는 시간을 갉아먹는다.
우리의 삶에서 죽음은 피할 수 없다. 질병이나 노환이 주요 원인이다. 언젠가 그런 상황에 마주칠 때 노마 할머니의 선택과 같이 한정된 시간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즐거운 추억을 만들자.
아들 부부와 함께하는 여행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페이스북으로 시작한 여행기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과 바람직한 선택의 길을 보여줬다.
그리고 임종이 다가왔을 때는 병원을 찾기보다 호스피스 지원 센터를 찾아 완화치료를 받고 죽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감옥과 같은 중환자실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작별인사도 못 나누고 죽음음 맞는 비참함과 대비된다.
자신이나 가족, 주변인 중에서 질병이나 노환으로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있는 분들은 이 책을 통해 용기를 얻고 죽음에 대해 절망보다는 남아 있는 시간에 희망을 갖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소중한 시간을 완화 치료를 통해 주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길을 택하면 좋겠다.
길 위의 삶은 단순하고 자유롭다. 라미와 나는 단순함과 자유가 현대인의 삶에서 고충을 덜어줄 수 있는 해독제라고 생각했다. 가진 것이 적을수록 걱정거리도 적었다. 알람시계 대신에 태양이 뜰 때 일어나고 태양이 질 때 잠자리에 들며, 몸의 리듬에 맞추어 하이킹을 하고, 순간을 즐기고, 책을 읽고, 음식을 먹는 것이 유목민처럼 떠돌아다니는 가장 큰 장점이었다. (23)
우리 여행은 미리 짜 놓은 일정대로 하나씩 지워나가는 그런 여행이 아니었다. 맥키낵대교에서 계획이 틀어지면서, 그리고 길을 가다가 눈에 띄는 곳, 마음에 끌리는 곳에 무작정 가보기 시작하면서 이번 여행은 이 순간을 즐기는 여행이 될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떤 후회도 없을 것이며, 시간에 쫓겨 다닐 필요도 없었다. (77)
어머니는 맛있게 한 모금을 마시더니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요양원에 들어갔더라면 결코 이런 걸 맛볼 수 없었을 텐데. 정말 좋구나." 그러고는 차가운 맥주를 쭉 들이켰다. (79)
우리는 너무 늦게 아버지의 약제 복용에 대해 개입했지만, 의료계 사람들을 만날 때에는 정보를 잘 파악하고 자기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사람이 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의료 보험과 좋은 약제 덕분에 우리 아버지와 같이 나이 든 환자들이 치료받을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렸지만, 어느 누구도 이 엄청난 제약과 의료 산업계의 미로를 잘 헤쳐나갈 수 있도록 아버지를 도와주지는 못하고 있었다. (108)
우리는 물론 의약 전문가가 절대 아니다. 하지만 아흔 살 노인을 돌보는 데 있어서 이런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약을 먹고 그 때문에 인생의 즐거움이 사라진다면 그 약이 진정 좋은 약이라고 할 수 있을까? (116)
가완디 박사의 회상과 그가 책에서 했던 말이 단어가 아닌 느낌으로 다가왔다. 처음 열기구 탑승 계획을 세울 때부터 차곡차곡 쌓였던 두려움이 모두 눈 녹듯이 사라져 갔다. 어머니의 눈빛을 보며 나는 평온한 생활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 주도하여 인생의 의미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161)
암 병동에서 일하는 어떤 간호사는 말기 암 노년 환자들이 침습적이며 고통스럽고 힘든 수술과 치료를 받는 대신 어머니처럼 평화롭게 말년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그 간호사는 노년 환자들이 치료를 받으면 얼마간 더 살 수는 있겠지만 여생의 즐거움은 상실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안타까워했다. (164)
그날 밤,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다 나름대로의 사연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맨다는 사실 칵테일이 아니라 음악을 작곡하는 데 관심이 있었고, 언젠가는 영화 음악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201~202)
잠시 후 빅 조지는 이 유명한 식당에 어찌하여 직원이 온통 남자 직원들뿐인지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그는 행운이 비켜가는 듯한 젊은이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젊은 남자들을 고용하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그는 그렇게 고용한 직원들에게 일자리와 월급을 마련해줄 뿐 아니라 마치 양부모처럼 때론 멘토가 되어 사랑을 주며 살고 있었다. (259)
산소발생기를 쓰면 조금 좋아지지 않을까 싶어 시도해보고 싶었지만 어머니는 기계를 쓰고 싶지 않다며 완강히 거부했다. 산소 발생기를 몸을 편하게 해주는 도구가 아니라 생명 유지 장치로 오해한 것 같았다. (...) 연결하고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의 호흡이 훨씬 편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289)
의사는 우리에게 병이 악화되면 가장 가까운 호스피스 기관을 찾아가 도움을 구하라고 말했다. "그러면 호스피스의 도움을 받아서 이동 주택에서 마지막 순간을 함께 보내실 수 있을 겁니다." (290)
산후안섬에서 어머니의 건강은 나날이 나빠졌다. 그래서 우리는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집어온 책자인 <다섯 개의 소원>에 실린 지침대로 해보기로 했다.
이것은 일종의 살아 있을 때 쓰는 유언장 같은 것이었는데 사람이 죽기 전에 개인적인 소원, 감정적인 소원, 영적인 소원 그리고 뿐만 아니라 의학적으로 어디까지 진료를 받기를 원하는지에 대한 내용을 작성하는 것이었다. (295)
밤에는 성인용 기저귀를 찬 덕분에 화장실을 가는 횟수가 줄어들어 편해졌다. 마지막까지 자존심과 존엄성을 지켜드리고 싶었지만 어머니의 몸이 조금씩 무너져가는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307)
아버지와 보낸 마지막 날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새삼 엄마가 보낸 마지막 날들이 아버지가 병원에서 보냈던 날들보다 100배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책도 가고, 모닥불 앞에도 앉고, 바닷가재도 먹고, 당연히 병원 침대에 누워 있던 것보다 훨씬 좋았을 것이다. (334)
■ 저자: 팀과 라미 Tim Bauerschmidt & Ramie Liddle
라미는 고등학교 상담교사이고, 팀은 주택 리모델링업을 하고 있다. 이들은 스탠더드 푸들 링고와 함께 유목민처럼 떠도는 삶을 선택했다.
나이 든 부모를 돌봐야 하는 상황에 처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팀과 라미도 처음에는 아흔 살 어머니와 함께 여행을 하는 것에 자신이 없었다.
2011년, 이들은 www.poodleinapod.blogspot.com에 '길위에서의 삶'에 대한 사진과 이야기를 띄우기 시작했다. 2015년 8월 말 팀의 어머니 노마가 여행에 합류한 후에는 '드라이빙 미스 노마'라는 페이스북을 시작했다. 수개월 후 이 페이스북은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져 50만 명의 사람들이 팔로우를 하고 있다. 미스 노마 할머니 이야기는 전 세계 주요 뉴스 매체에서 소개될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과 감동을 불러일으켰고, 이 1년간의 여행기는 10개 언어로 출간될 예정이다.
라미는 캠핑카 여행에서 사진사, 기자, 상담사의 역할을 해낸다. 팀은 안전하게 운전하고, 고장 난 것을 고치는 재주가 있으며, 요리를 잘해 여행길의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노마가 숨을 거둔 뒤에도 두 사람은 여행을 계속하며 여러 곳을 탐험하고 있다. 하이킹, 카약, 서핑을 즐기고 친구들과 또 낯선 사람들과 식사하며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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