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은 커가면서 세상 누구보다 편한 엄마에게 마구 대하곤 한다. 하지만 엄마도 자식에게 마구 대하곤 한다는 것을 솔이와 있으면서 느낀다. 다른 사람에게는 하지 않을 행동과 말투를 솔이에게 하고 만다. 육아에서 제일 힘든 일은 감정조절이라고 생각한다. 감정조절에 실패하는 순간 내가 보고 싶지 않은, 보기 싫은 나의 모습을 보게 된다. 밑바닥까지 모조리 드러내는 기분. 그 모습을 보이는 대상이 나의 가족, 특히 나의 딸이라는 것이 더욱 절망스럽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엄마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엄마가 겪었을 일들을 나도 모르게 경험하게 되면서 엄마를 이해하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다. 엄마이기 이전에 자기 자신이었고, 엄마 역할도 처음 맡았을 뿐이다. 도대체 엄마는 왜 그럴까 몇 번씩 던지던 물음의 답을 이제는 너무나도 잘 알겠다. (147~148)
회사 작은도서관에서 제목이 의미심장해 보여서 고른 <엄마가 모르는 나의 하루하루가 점점 많아진다>를 보며 한 편의 영화를 본 듯한 감동을 느꼈다. 저자 김소은이 유방암과 암의 전이로 이별한 엄마와의 추억을 어린 시절의 일기로부터 소환하고 일상에서 있었던 일들을 그림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책이다.
엄마와 나, 그리고 얼떨결에 결혼해서 나은 딸 솔이와 엄마인 나, 솔이와 할머니인 나의 엄마와의 관계가 사랑으로 그림과 함께 표현되었다. 아빠와 두 여동생, 그리고 훈버터로 닉네임 된 남편이 가족으로 등장한다. 엄마가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로 고통받고 마지막에는 호스피스 병원으로 옮겨 사망할 때 아빠가 감옥에 있어야 하는 상황은 독자로서도 마음이 아팠다.
서른 살이 된 나의 답글: 이 일기와 얼추 비슷하게 살고 있어서 신기하고 재미있다. (...) 나이가 들수록 말하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살게 된다는 것을 점점 더 느낀다. 먼 미래를 대비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어떤 모습으로 나이 들고 싶은지는 종종 생각해보곤 한다. 지금 그리는 모습의 내가 10년 뒤에 이 글을 다시 읽었으면 좋겠다. (197)
어린 시절에 적었던 '서른 살에 적는 일기'라고 상상하며 기록했던 일기장을 보니 현재의 모습이 과거에 그렸던 것과 비슷하다.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고 행동하는 대로 우리의 모습이 만들어진다는 말이 생각난다. 현재는 다시 과거가 되기에 지금 상상하는 10년 뒤의 모습을 글로 적어두고 10년 뒤에 다시 읽는다면 어떨까. 10년이 아니라 5년이나 1년 뒤의 내 모습을 그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은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다. 이제 주민등록증을 가진 세 자녀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부분이다.
방사선 치료에 따라올 고통과 부작용들. 어느 것이 엄마를 위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방사선 치료를 받을 것인가 아니면 엄마가 더 이상 아프지 않도록 통증 완화만을 위해 호스피스 병원으로 옮길 것인가 앞이 보이지 않지만 마지막 한가닥 남은 치료의 끈을 쉽게 놓을 수가 없다. (235)
저자 김소은의 엄마의 유방암 말기 투병생활을 보며 최근에 읽었던 김현아 교수의 책 <죽음을 배우는 시간>이 떠올랐다. 말기암이나 노환으로 병원에서 치료에 관계없이 여생이 몇 개월 남지 않았다면 항암치료나 방사선 치료, 인공호흡기나 에크모와 같은 연명치료를 하지 않는 편이 좋다는 생각이다. 대신에 호스피스 병동에서 통증완화 치료를 받으며 가족과 지인들과 소중한 시간을 함께 하며 마지막 추억을 만드는 쪽이 삶의 질을 높이는 쪽일 것이다.
항암치료로 급격히 약해진 엄마와 제대로 된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이별한 저자의 상황을 보며 평소에 임박할 죽음의 상황에 대해 생각할 필요를 본다. 대부분은 저자와 같이 당황하며 고민할 것이다. 왜냐하면 김현아 교수의 조언과 같은 현실적인 대안을 모르기 때문이다.
복지관, 의원, 약국, 호스피스로 이루어진 전진상 의원. 벨기에에서 오신 수녀님이 고 김수환 추기경의 추천으로 1975년에 만든 곳이다. 주택을 개조한 곳으로 호스피스 병동은 일반 가정집의 모습이었다. 창 밖으로 뒷마당의 감나무, 모과나무가 보이는 엄마의 병실이 마음에 들었다. 건물이 오래되어서 걱정을 했었는데, 너무나도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249~250)
호스피스 병동에 대해 잘 몰랐는데 '전진상 의원'이란 곳으로 엄마를 모셨다는 저자의 경험담을 통해 알게 된다. 김현아 교수의 책과 김소은 작가의 경험담을 통해 더욱더 호스피스 병동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수많은 암환자들이 일말을 희망을 가지고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는다. 그리고 중환자실에 입원해서 제대로 된 죽음에 대한 준비도 하지 못한 채 떠나간다. 이런 분들이나 그 가족들이 김현아 교수의 책 <죽음을 배우는 시간>을 읽고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항암치료보다는 하고 싶었던 일을 해보고, 통증 완화 치료를 호스피스 병동에서 받으며 죽음의 길을 가면 좋겠다.
페이스북에서 어떤 분이 추천해주신 것을 보고 '아만자'라는 웹툰을 보았다. 보는 내내 울었다. 위암 말기인 주인공의 투병 이야기인데 '혹시 작가님 본인의 이야기인가?'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아픔이 잘 그려져 있었다. 당연히 엄마가 아플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얼마나 살고 싶었을까. (306~309)
이 글을 보고 웹툰을 어떻게 보는지 딸에게 카톡을 보냈다. '시리즈'라는 앱을 깔고 보면 되는데 처음은 보여주지만 뒤에는 유료라고 한다. '아만자'라는 웹툰이 나의 인생 첫 웹툰 앱 사용기가 될 것 같다. 얼마나 슬프고 암투병의 고통을 잘 그려냈으면 저자가 이렇게 적었을까 궁금하다.
예전에는 당연히 위로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말들이 위로가 되지 않았다. 마음속에, 영원히, 같은 말들. 돗자리를 정리하고 다시 엄마에게로 갔다. 엄마, 또 올게, 잘 있어. 답을 들을 수 없는 인사를 남기고 뒤돌아섰다. 엄마가 모르는 나의 하루하루가 점점 많아진다. (328)
책을 모두 읽고 나니 책 제목 '엄마가 모르는 나의 하루하루가 점점 많아진다'는 의미를 알겠다. 엄마는 떠나고 이제는 엄마의 기억에 없는 나의 삶은 계속되는 상황을 설명하는 문구였다. 가족 구성원들을 독특한 만화 캐릭터로 이야기를 만화로도 표현한 책이라 오래 기억되는 책이겠다. 만화에 도전해보진 않았지만 간단하게라도 그려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 저자: 김소은
홍익대 산업디자인학과 졸업. 제품, 광고, 영상, 인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 중이다. CJ OLIVE와 <오늘 뭐 먹지?>, 한솔교육과 'Finden Soundrug', 두타와 ♡to♡ FESTIVAL', YTN과 'Hello Weather' 등 여러 작업자와 함께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했다. 다음 웹툰리그에 연재해온 일상 만화 <버터와 소>에 실은 '엄마 3부작'이 계기가 되어 이 책 <엄마가 모르는 나의 하루하루가 점점 많아진다>를 만들었다. 일상을 그림으로 기록하는 그림일기를 즐기며, 지은 책으로는 <첫, 헬싱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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