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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528]사마천의 부자경제학 사기 화식열전_중국 고전에서 배우는 경제이론

by bandiburi 2022. 2. 13.

어렵게만 느껴지는 중국 고전을 저자의 해박한 지식으로 현대에 맞게 해석한 책 <사마천의 부자 경제학 사기 화식열전>을 재미있게 읽었다. 사마천의 <사기>는 익숙한 책이지만 그 안에 담긴 '화식열전(貨殖列傳)'은 생소했다. 다른 책에서 소개된 책인데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성공했던 부자들의 삶을 담은 책이 '화식열전'에 담겨 있다고 해서 궁금해서 도전했다.

이전에 <논어>를 풀어서 설명한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좋은 말만 계속해서 나오고 고등학교 시절에 한자 수업시간에 배웠던 내용도 있어서 지루했던 기억이다. 하지만 이 책은 화식열전 중에서 저자가 인용한 부분을 중심으로 전국시대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와 관련된 현대 경영 경제 관련 실상을 접목해서 설명하고 있어 흥미진진하게 읽게 된다.

대학생이 되는 아들에게 책을 소개해줬더니 한자 세대가 아니라서 한자를 왜 해야 하냐며 반문을 한다. 한글을 사랑해야 한다고 변명을 한다. 한자가 물론 어렵지만 한자 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한중일 관련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자를 피해갈 수 없다. 이 책에서 인용된 '화식열전'의 인명, 지명, 도구에 관련된 한자는 거의 보기 힘든 것도 있다. 하지만 일상에서 사용하는 우리말 속에도 한자어에서 유래한 것이 많기에 제대로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한자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때가 되면 아이들도 한자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라 기대한다.

'호리지성'이란 말이 우리의 부와 재산에 대한 욕구를 잘 말해주고 있다. 요즘 주식과 부동식, 코인에 대한 관심도 '호리지성'의 발현이다. 2000년 전의 사람들도 동일하게 부자가 되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었고 시대를 관통하는 인간의 심리라는 것을 '화식열전'은 알려주고 있다. 고전을 통해 과거를 반추하고, 인간의 본성을 알게 되는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저자에 대해 구글링해서 찾아보니 2018년에 사망하셨다고 나와 저자의 지식도 함께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안타깝다. 그나마 이런 책으로 조금이나마 흔적을 남겨서 다행이다. 

 

 

사마천이 상가(商家)의 적극적인 옹호자가 된 데에는 돈이 없어 궁형을 당한 자신의 경험이 적잖이 작용했을 것이다. 당시에는 속죄금을 내고 죽을죄까지도 사면을 받는 속사(贖死) 제도가 있었다. 궁형은 죽을죄보다 가벼운 죄여서, 사마천도 돈을 내기만 하면 얼마든지 궁형을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비용이 엄청났다. 사마천의 집에는 그런 큰돈이 없었다. 그가 이를 원통하게 생각했을 공산이 크다. 사마천이 <사기> 전편에 걸쳐 큰 뜻을 가슴에 품은 진취적인 인물을 상세히 소개해 좋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32~33)

 

인간의 본성인 호리지성(好利之性)의 충돌로 인한 혼란을 막기 위해 공자와 순자처럼 극기복례의 예치를 해법으로 제시할 수도 있으나 이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위정자가 아무리 솔선수범해 극기복례를 외치더라도 실효를 거두기가 어렵다. 관중과 사마천이 필선부민의 이민을 요체로 내건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먼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만 극기복례도 가능하다고 지적한 것이다. (65)

 

사마천 (출처: 나무위키)

농단(壟斷)은 원래 '언덕 위로 올라가 결단하다'는 뜻이다. <맹자> <공손추> 하편에 이에 관한 일화가 나온다. 한 상인이 두 고을 사이에 있는 언덕 위로 올라가 좌우 양쪽에 있는 마을의 모습을 내려다보면서 두 마을의 시장 상황을 파악했다. 한쪽 마을에서 어떤 물건이 달려 값이 올라가는 것을 보면 값이 치솟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른 한쪽 마을에서 물건을 사다가 곧바로 물건이 달리는 마을에 공급하는 것이다. 그러니 배나 남는 장사가 될 수밖에 없게 된다. 여기서 바로 농단이란 단어가 나왔다. 이는 요즘 말로 바꾸면 '시장 정보의 독점' 내지 '독점 가격의 형성'을 뜻한다. (86~87)

여불위(출처: 위키피디아)

유사한 인물로 전국시대 말기 최강국인 진나라에서 상국의 자리에까지 오른 여불위를 들 수 있다. 원래 그는 중원 한나라 양척 땅의 상인이었다. 그는 여러 도시를 오가며 투기적인 상업으로 거부를 쌓았다. 그를 역사적인 인물로 만든 것은 사람에 대한 투기였다. 조나라 도성 한단에 인질로 잡혀와 있던 진시황의 부친 공자 자초에 대한 투기가 상상을 초월하는 부와 권력을 그에게 안겨준 것이다. 이는 당시 경제력이 집중된 대도시에는 농촌 도시와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조직 원리가 작동했음을 시사한다. (95)

맹자(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그러자 맹자가 이같이 말했다. "세상에는 대인과 소인이 할 일이 따로 있소. 사람들에게는 장인들이 만든 물건이 필요하오. 만일 사람마다 모든 것을 손수 만들어 사용해야 한다면 이는 세상 사람을 지치도록 이끄는 길이오. 그래서 옛사람이 이르기를, '혹자는 마음을 수고롭게 하고, 혹자는 몸을 수고롭게 한다'고 한 것이오. 본래 마음을 수고롭게 하는 자는 남을 다스리고, 몸을 수고롭게 하는 자는 남의 다스림을 받는 법이오. 남의 다스림을 받는 자는 사람을 먹여주고, 남을 다스리는 사람은 남으로부터 먹을 것을 얻게 되오. 이것이 천하의 변함없는 이치요."(100)

 

그(피터 드러커)가 끊임없이 자기 변화의 주체가 되기 위해 노력한 것은 <주역>이 역설하는 자강불식(自强不息)을 실천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의 다음 언급이 이를 뒷받침한다. 개인이 조직과 사회에서 경쟁력을 지니기 위해서는 최소한 세 가지 능력을 갖춰야 한다. 첫째 정보를 수집하는 능력, 둘째 정보를 가공하는 능력, 셋째 끊임없이 배우는 학습 능력이 그것이다. (169)

 

진나라는 상앙의 변법을 통해 부국강병의 확고한 기틀을 다지게 되었다. 진나라 백성은 전쟁이 터지면 부귀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다고 서로 축하하고, 자나 깨나 전쟁이 일어나기를 노래했다. <상군서> <획책>편에는 자식과 남편을 전쟁터로 떠나보내는 부모와 아내들이 다음과 같이 절규하는 대목이 나온다.

군공을 세우지 못하면 절대 집에 돌아올 생각을 하지 마라! (191)

 

따지고 보면 지난 2009년 5월에 고향 마을에서 투신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도 일족의 뇌물수수 혐의와 무관하지 않은 만큼 큰 들에서 볼 때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재물과 명예, 권력을 모두 거머쥐려고 시도한 게 화근이었다. (227)
이 부분은 저자가 책을 지을 당시 검찰의 조작이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기 전이라서 오해가 있다. 사법과 언론 분야에 대한 개혁이 필요한 이유가 2022년 대한민국에는 여전히 많다. 

 

그(철강왕 카네기)는 자서전인 <부의 복음>에서 이같이 말했다.

많은 유산은 의타심과 나약함을 유발하고, 비창조적인 삶을 살게 한다. 통장에 많은 돈을 남기고 죽는 것처럼 치욕적인 인생은 없다. (252)

 

'조선 식화지'의 관점에서 볼 때 수많은 정관계 인사가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부산저축은행 사태는 내용상 홍경래의 난과 진주민란이 터질 때의 상황과 사뭇 닮아 있다. 최고 통치권자의 쾌도난마 결단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데도 청와대와 정치권 모두 미봉으로 일관하는 양상이다. 일각에서는 관상유착을 주도하는 소위 '모피아'를 배경으로 꼽고 있다. 법조계 비리의 상징인 '전관예우'를 뺨치는 이들의 행태는 고염무와 정약용이 각각 <일지록>과 <목민심서>에서 탄식했듯이 지방 관장의 수족 역할을 하며 조선과 명 청조를 패망으로 이끈 아전 및 서리의 행태를 방불케 한다. (258)

 

자신에게는 하찮은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귀중한 재화로 간주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를 포착하는 게 상인의 안목이다. 남들은 전혀 상품으로 간주하지 못하는 것을 상품으로 간주하는 식견을 말한다. (277)

 

한국에는 이보다 더욱 뛰어난 사례가 있다. 바로 경주 최부잣집이다. 조선 중엽인 17세기 중반까지 무려 300여 년 동안 12대를 내려오며 만석꾼의 전통을 이어왔던 최부잣집 역시 임 씨 집안처럼 소위 6훈(六訓)과 6연(六然)으로 요약되는 가훈을 철저하게 지켰다. 

6훈을 보면 첫째,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말라'고 했다. 당쟁에 얽히지 말라는 취지이다. 둘째, '재산은 만 석 이상 지니지 말라'고 했다. 욕심을 부리지 말고 사회에 환원하라는 취지이다. 셋째,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는 것은 인정을 베풀어 적을 만들지 말라는 취지이다. 넷째, '흉년에는 땅을 사지 말라'고 한 것은 가진 자로서 없는 자를 착취하지 말라는 취지이다. 다섯째,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고 했는데, 이는 근검한 생활을 체득하라는 취지이다. 여섯째,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것은 상부상조하며 살라는 취지이다. 

6연을 보면 첫째, 자처초연(自處超然)이다. 스스로 초연하게 지내라는 뜻이다. 둘째, 처인애연(處人靄然)이다. 사람을 온화하게 대하라는 뜻이다. 셋째, 무사징연(無事澄然)이다. 일이 없을 때 마음을 맑게 가지라는 뜻이다. 넷째, 유사참연(有事斬然)이다. 일을 당해서는 과단성 있게 대처하라는 뜻이다. 다섯째, 득의담연(得意澹然)이다. 성공했을 때 담담하게 행동하라는 뜻이다. 여섯째, 실의태연(失意泰然)이다. 실의에 빠졌을 때 태연히 행동하라는 뜻이다. (279)

 

사마천이 여기서 방점을 찍은 인물은 무염씨이다. 무염씨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전란의 상황에서 과감한 투자로 거만의 재산을 모았다. 이는 전한 초기에 소위 '오초7국의 난'이 빚어졌기에 가능했다. 기원전 154년, 한경제는 개혁파인 조조의 건의를 좇아 제후왕의 영지를 대폭 삭감했다. 황권을 강화하기 위한 강공책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방법이 서툴렀다. 화가 자신의 몸에 미칠까 두려워한 오와 유비가 주변의 제후왕에게 격문을 돌렸다. 구실은 간신 조조의 척결을 통한 황실의 안녕이었다. 6명의 제후왕들이 이에 적극 호응하고 나섰다. 사가들은 이를 오초7국의 난으로 부른다. 오왕 유비를 포함해 모두 7개 지역의 제후왕이 반란에 참여했다는 뜻이다. (283)

 

난세의 시기에는 장사 밑천을 마련하는 방법이 치세에 비해 상대적으로 다양할 수밖에 없다. 소설가 이병주의 <산하>를 보면 해방 전후의 혼란한 시기에 주인공이 적산을 헐값에 불하받는 등의 방법으로 돈을 벌어 나중에 국회의원까지 지내는 얘기가 실감나게 묘사돼 있다. 

사실 해방 전후 및 6.25전쟁 전후 시기의 경제 상황은 초기의 재벌 형성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당시 일본인 자본가와 기술자들이 떠난 후 한국의 산업은 사실상 붕괴 상태였다. 게다가 남북 분단이 경제에 던진 충격은 심대했다. 일제가 구축해놓았던 '북한은 산업, 남한은 농업'이라는 경제적 상호 보완 관계를 상실한 탓이다. (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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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신동준 (출처: 나무위키)

■ 저자: 신동준(1932년 2월 11일 ~ 2018년 12월 1일)

고전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과 람이 사는 길을 찾는 고전 연구가이자 평론가다.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탁월한 안목을 바탕으로 이를 현대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본서 역시 사마천의 <사기> 중 <화식열전>을 21세기의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게 재평가한 해설서다.

경기고 재학 시절 한학의 대가인 청명 임창순 선생 밑에서 사서삼경과 <춘추좌전>, <조선왕조실록> 등을 배웠으며, 서울대 정치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뒤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 등에서 10여 년 간 정치부 기자로 활약했다. 1994년 다시 모교 박사과정에 들어가 동양정치사상을 전공했고, 일본의 도쿄대 동양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을 거쳐 <춘추전국시대 정치사상 비교연구>로 모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21세기 정경연구소 소장으로 있는 그는 격동하는 21세기 동북아 시대를 슬기롭게 헤쳐나가기 위해 동양고전의 지혜를 담은 한국의 비전을 꾸준히 제시하고 있으며, 서울대 고려대 한국외국어대 등에서 학생들에게 동양 3국의 역사문화와 정치사상 등을 가르치고 있다. 동양 3국의 역대 사건과 인물에 관한 바른 해석을 대중화하기 위해 <월간조선>, <주간동아>, <위클리경향>, <이코노믹리뷰> 등 다양한 매체에 꾸준히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2012년부터는 <조선일보> 주말판 경제섹션 <위클리비즈>의 인기 칼럼 <동양학산책>을 연재 중이다. 

저서로는 <후흑학>, <조선국완 vs 중국황제>, <인물로 읽는 중국 현대사>, <삼국지 군웅과 치도를 논하다>, <조조 사람혁명>, <팍스 시니카>, <열국지 교양강의>, <춘추전국의 영웅들>(전 3권), <CEO의 삼국지>, <조선의 왕과 신하, 부국강병을 논하다>, 역서로는 <한 권으로 읽는 실록 초한지>, <자치통감 삼국지>(전 2권), <춘추좌전>(전 3권) 등이 있다. 

* 2018년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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