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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526]눈 떠보니 선진국_우리 사회가 가야할 길

by bandiburi 2022. 2. 6.

어릴 때 배우고 익힌 건 이제 금세 쓸모가 없어지는 세상이 됐다. 조기교육을 하고, 뭔가를 죽어라 하고 외우는 건 약효가 몇 년을 가지 못한다. 쓸모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진짜로 배우고 가르쳐야 할 것은 혼자서 공부하는 방법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뭔가가 나오고, 그게 일상의 생활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다. 그때 혼자서 익히는 법을 알아야 한다. (중략) 육상, 수영, 배드민턴, 요가와 같은 다양한 종목으로 반응속도, 근력, 시각능력을 키워야 한다. 십 년이면 강산도 바뀐다고 하지만 요즘은 그게 3년도 안 걸린다. 다 외울 때쯤엔 아무데도 쓰이지 않을 낡은 지식으로 머리를 꽉 채워 무얼 하나, 혼자 공부하는 법을 가르치는 게 진짜 교육이다. (76)

 

좋은 책은 독자에게 이슈에 대해 공감하게 하고 생각을 확장하게 돕는다. 책을 읽고 나서도 읽는 과정에서 느꼈던 만족감과 감동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 책 <눈 떠보니 선진국>은 경제나 문화적으로 글로벌 수준에 도달했다고 자부하고 있는 우리에게 한국 사회의 현재를 냉철하게 진단하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책이다. 각 페이지가 모두 저자의 고민이 담겨 있고 독자에게 좋은 통찰을 줄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책을 읽은 소감은 아래 세 가지로 정리하고 나머지는 인용했다. 결국 인용된 부분이 많아졌다.

첫째, 교육에 대한 부분이다. 우리 교육의 문제점은 늘 지적되지만 변화는 더디다. 주입식 교육과 답을 고르는 형식을 벗어나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혼자 공부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어려서부터 과도한 학습을 요구하기보다는 다양한 놀이와 육체적인 운동이 필요하다. 미래 사회가 어떻게 변할 것이고 무엇이 요구될 것인지 토론하고 느끼고 준비하는 교육이 돼야 한다.

둘째, 우리말에 대한 부분이다. 김상균 이사장이 언급한 '입말'이란 용어가 정겹다. 언론에서 검찰에서 판결문에서 사용하는 말은 일반인들에게 어렵고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독일이나 영국과 같이 민중들의 언어로 정착되는 과정이 없이 우리 한글은 한자에 비해 언문으로 비하되고 민중속에서 정착되는 과정을 거치지 못한 채로 일제강점기로 들어갔다. 결국 우리의 한글 속에는 일제강점기에 정립된 용어들이 여전히 많이 남아있다. 소위 엘리트라는 사람들이 일본식 한자어를 계속 사용해서 현재에 이른 것이다. 이제는 언론과 사법 권력이 '입말'을 사용해 일반인의 눈높이로 용어를 순화해야 한다. 처음 접하는 주장이나 충분히 공감하고 지지하는 의견이다.

셋째, 데이터를 대하는 정부의 태도다. 4차산업협명이니 전자정부니 인공지능 시대의 변화를 강조하는 정부가 여전히 국민들이 사용 가능한 데이터 형식이 아닌 PDF나 아래아 한글로 자료를 공개하고 있다는 부분은 충격이었다. 개인적으로 정부 자료를 활용할 일이 없어 체감하지 못했는데 저자의 설명을 읽고 왜 그럴까 걱정이 앞선다.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동일한데 그 정보를 데이터로서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닐까. 데이터가 새로운 자원이라고 한다. 미국이나 영국과 같이 우리나라도 서둘러 국가적인 차원에서 데이터를 제대로 관리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유엔경제총회인 운크타드UNCTAD는 195개 회원국 만장일치로 한국을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격상시켰다. 1964년 창설 이래 개도국을 졸업한 나라는 대한민국이 처음이다. 그래서 우리는 선진국이 된 것일까? (4~5)

 

독일 정부의 <산업 4.0>과 <노동 4.0>은 2년여에 걸친 전 사회적 토론의 결과물이다. 4차 산업혁명이 도대체 무엇인지, 그게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를 정의하는 데 독일 정부는 2년이 넘는 시간을 투자한 것이다. 사회 전체가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이렇게 토론으로 합의하고, 이슈들에 대해 전 사회의 중지를 모으고 나면, 그것을 추진하는 데 얼마만큼의 동력이 실릴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정의'를 내리는 것이다. (20~21)

 

사회의 가장 뛰어난 자원들이 정부의 CIO, CDO로 이 큰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조그마한 회사들도 다 CTO, CIO를 갖고 있는데, 정작 한 해 예산 558조의 정부에 CIO 한 명이 없다는 건 터무니없는 일이다. 미국도, 영국도 진작에 다 하고 있는 일이다. (27)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더 이상 몸집만 불려서는 안 되는 때가 되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다. 시기에 맞는 국정지표가 필요하다. 지금 한국 사회에는 '중산층의 비율'이라는 선진의 지표가 있다. (33)

 

죄를 짓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비용을 물릴 게 아니라, 죄를 지은 몇몇 특히 화이트칼라 엘리트들에게 허리가 부러질 정도의 징벌적 배상제를 하자. 이게 우리 사회에 쌓인 신뢰자본을 제대로 활용하는 길이다. 신뢰자본을 제대로 쓰는 사회가 선진국이다. (43)

 

독일의 경우 1521년 교황청의 제지를 무릅쓰고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한 마틴 루터를 들 수 있다. 루터는 궁중이나 성 안에서 쓰는 언어가 아니라 백성들의 일반어를 기준으로 삼았다. 그의 번역은 종교개혁의 원동력이 되었을 뿐 아니라 미적으로나 표현력에서 현대 독일어에 다대한 공헌을 했다. 영어권에서는 16세기의 셰익스피어가 있었다. 현대 한글은 조선말에서 개화기로 넘어오면서 이와 같은 발전기를 가지지 못했다. 오랫동안 한자에 밀려 언문으로 불리다 그만 일제 강점기를 맞고 말았던 것이다. (54)

(출처: 미디어오늘)

 

김상균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은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입말'을 방송에서도 써야 한다고 지적한다. 방송말과 생활말이 다를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55)

 

 

"(중략) 검찰 개혁이 시대적 화두라면 그곳에 종사하는 이들의 정신 상태에 자극과 변화를 줘야 한다. 그들이 당연하다고 쓰는 '폼 잡는 말'을 우리가 먼저 뭉개버리면 된다. 영장 발부? 그냥 '영장을 쳤다'라고 하면 되는 것이다. 파기환송심? '재판을 다시 열라고 돌려보냈다'라고 하면 된다. 박근혜 탄핵안이 인용됐다는 보도에 태극기 부대가 박수 쳤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다. '박근혜가 탄핵됐다'라고 보도하면 된다."(56)

 

한 사회의 자원배분의 요체는 그 사회의 보상체계, 즉 인센티브 시스템을 어떻게 만드는가에 달려 있다. 돈도, 인재도 그 사회가 파놓은 보상체계의 물길을 따라 흘러간다. 잘못된 인센티브 시스템은 사회의 영혼을 망가트린다. (73)

(출처: 정약용 도서관)

 

2008년 뇌와 체육의 관계를 밝혀낸 책 <운동화 신은 뇌>를 서서 세계적으로 화제를 일으킨 존 레이티 John Ratey 하버드 의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온종일 앉아만 있는 한국식 교육은 학생들 뇌를 쪼그라들게 만들 수 있다"라고 경고한다. "아이들을 좁은 교실에 가둬놓고 몇 시간씩 움직이지 말고 공부하라는 건 뇌를 죽이는 일"이라는 것이다. 레이티 교슈는 '운동이 학생들의 뇌를 활성화해 공부를 더 잘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입증했다. 대표적 사례가 미국 일리노이주 네이퍼빌 센트럴고 얘기다. (77~78)

 

(출처: 네이퍼빌 센트럴고 홈피)

 

OECD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실질문맹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OECD는 지난 2013년 세계 22개국에서 15만 명 이상을 방문면접 조사해 이런 놀라운 결과를 뽑아냈다. 특이한 것은 다른 나라들은 30~35세에 가장 높은 독해력을 나타낸 다음 서서히 떨어지는데, 한국은 20대 초반에 정점을 찍은 뒤 연령이 증가할수록 급격히 감소하는 패턴을 보인다는 것이다. OECD의 연구 담당자는 "책을 읽지 않는 채로 나이가 들면 독해력이 크게 떨어진다"라고 설명했다. (81)

 

좋은 야구선수가 되기 위해선 야구뿐만 아니라 육상, 수영, 배드민턴, 요가와 같은 다양한 종목으로 반응속도, 근력, 시각능력을 키워야 한다. AI도 마찬가지다. 컴퓨팅적 사고력과 책 읽는 습관, 정성껏 듣고 주의 깊게 관찰하고 커뮤니케이션 잘하기, 뇌가 자랄 수 있도록 마음껏 뛰어놀고 평생 즐길 하나의 운동을 갖게 하기, 이것이 참된 AI 교육이 될 것이다. (83)

 

마틴 루터는 젊긴 했지만 그 이론적 깊이로 당시에 매우 존경받던 신학자였다. 그는 95개 조 반박문을 교회문에 내걸었다. 이 반박문은 그때쯤 나타나 있었던 구텐베르크의 인쇄기 덕분에 14일 만에 유럽의 독일어권 전역에 퍼졌다. 루터는 그 뒤 10개월 동안 틀어박혀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한다. 그가 선택한 독일어는 궁중이나 성 안에서 쓰는 언어가 아니라 백성들의 일반어였다. 성서는 다음 해인 1522년 9월 출판되었고, 이 성경과 함께 경로 독점이 무너졌다. 누구나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소통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들이 읽은 성서 어디에도 '면죄부'는 없었다. (88~89)

 

 

사실은 판결을 모두 공개하면 '전관 비리'에 관한 통계도 함께 드러난다. 변호사가 사시 기수가 같거나, 근무처가 같거나, 동창/동향인 경우의 판결의 결과가 다른 사건과 견주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도 쉽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성의하게 작성했던 판결문도 다 공개가 된다. (96)

 

"권력은 부패하기 쉬운 경향이 있고,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라고 영국의 역사가 액턴 경은 말했다. 이 말에 따르면 현재의 검찰은 절대 부패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개개 검사의 도덕성과는 무관한 얘기다. (97)

 

정치는 말하자면 '한 사회의 자원을 어떻게 분배할지를 결정하는 일'이다. "대표 없이 과세 없다" 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는 미국 독립전쟁의 모토다. 미국에 사는 주민들의 의견을 하나도 듣지 않은 채 '설탕법'과 '인지세법'을 제정했던 대영제국은 이 일로 영원히 미국을 잃었다. 그러므로 정치가의 일은 자원을 어디에 어떻게 쓸지에 관한 '공론'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각계각층의 이해관계자들의 상충하는 이해들을 조정하고, 능숙한 관료들의 은밀한 저항을 받아내며, 세대 간의 자원 배분의 형평성까지를 고려해가며 '공론'을 만들어 내는 것이 곧 정치가의 일이다. 이것은 대단히 전문직이다. (108~109)

 

공장과 농장의 수많은 IOT 센서들이 뿜어내는 데이터들을 실시간으로 받아들여 분석하는 엣지컴퓨팅에 5G가 필수적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데이터 이용료가 얼마가 되어야 그 많은 5G 투자비를 뽑아낼 수 있을까? 결정적으로 그런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공장과 농장이 지금 우리 주위에 몇 군데나 되나?(122)

 

(출처: 정약용 도서관)

 

에드워드 글레이저 하버드대 교수는 그의 책 <도시의 승리>에서 메가시티와 관련한 몇 가지 숫자들을 소개한다. 대부분의 선입견과 달리 일반 교외 주택지의 환경발자국이 도심 아파트보다 많다. 뉴욕주의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은 미국 전체에서 맨끝에서 두 번째다. 모여 사는 탓에 대중교통을 타거나 걸어다니는 비중이 높고, 집단주택이라 에너지 효율도 그만큼 좋기 때문이다. 모여 사는 편이 환경에도 더 좋다. 도시에 사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고 느낀다. (127)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는 AI가 고졸 이하 인력보다 대졸자를 5배가량 대체하게 될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보고서는 AI 기술이 갈수록 더 정교해지고 더 많은 산업 분야에 적용되면서 대학교육을 받은 더 많은 근로자들이 위협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153)

 

 

인공지능이 만능이 아니다. 집어넣는 데이터가 오염이 되어 있거나, 알고리듬을 잘못 짜면 편향되고 공정하지 않은 결과를 뱉어낼 수밖에 없다. AI가 사회의 전 영역에 침투하고 있는 이즈음, 편향성과 불공정성을 체크하고, 투명하고 믿을 수 있는 인공지능을 만드는 것은 시급한 과제다. (173)

 

개방향문서형식Open Document Format for Office Applications, ODP이라는 게 있다. (중략) 이 포맷을 쓰면 기계가 읽을 수 있다. 데이터가 된다는 뜻이다. 기계가 읽을 수 있다는 것은 '기계가 자동으로 처리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수백만 개의 정부 발행문서들을 사람이 일일이 수작업으로 처리하기는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버려지는 문서라는 뜻이다. 아래아 한글은 표준 포맷이 아니어서 기계가 자동으로 처리를 할 수가 없다. '데이터는 새로운 석유다', '디지털 경제는 데이터 경제다'를 주창하는 정부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기계가 읽을 수 없는 문서들을 끊임없이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는 것은 진심으로 안타까운 일이다.(177~178)

 

오바마는 "디지털 경제에 능동적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학생들로 하여금 컴퓨팅적 사고능력 computational thinking skills을 강화하겠다"라고 말했다. 오바마는 왜 프로그래밍 능력이나 코딩 능력이라고 하는 대신 컴퓨팅적 사고능력이라고 한 걸까?(189)

 

한국의 교육이 정답이 정해지지 않은 문제를 해결하는 논리적 사고력, 즉 컴퓨팅적 사고능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이뤄지기를 기원해 마지 않는다. 세상의 문제의 대부분은 정의되지 않은 채로 던져진다. 소프트웨어가 세상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있는 지금, 주어진 문제에서 답을 찾으라는 사지선다형의 교육은 말 그대로 시대착오다. 문제를 판별하고 정의해내는 능력, 혼자서 해결책을 찾는 능력을 길러주는 게 참된 교육이다. (195)

 

한국정보산업연합회가 지난해 11월 SW 개발, 웹콘텐츠 개발, 컨설팅, IT 서비스 등 IT 전문인력 48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70%는 열악한 근무환경, 적은 급여 등으로 IT 업계를 떠나고 싶다고 답했다. "소프트웨어 산업은 '저가 구매 → 경영난 심화 → 개발자 처우 열악 → 우수 인력 지원 기피 → 품질 저하'의 악순환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 끊임없이 돌고 있다"라는 것이다. (206)

독서습관526_눈 떠보니 선진국_박태웅_2021_한빛비즈(220206)


(출처: 폴리뉴스)

 

■ 저자: 박태웅

한빛미디어 이사회 의장. KTH, 엠파스 등 IT 분야에서 오래 일했다. 2021년 정보통신분야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동탑산업훈장을 수훈하였다. <눈을 떠보니 선진국이 돼 있었다> 등 여러 칼럼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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