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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529]베이컨 수필집_시간과 공간을 넘는 지혜

by bandiburi 2022. 2. 15.

프란시스 베이컨이란 이름이 친숙하지만 어떤 사람이냐라고 설명하려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철학책에서 본 것 같고 그가 쓴 글은 어려울 것 같은 선입견이 든다. 그의 책 <베이컨 수필집>은 59개의 다양한 주제에 대한 베이컨의 글을 모아놓은 책이다. 각 주제에 대한 베이컨의 생각을 들여다보면 상당히 많은 부분이 400년이 지난 현재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

신교와 구교가 다투는 종교적 환경과 영국이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무찌르고 대서양으로 진출하며 해양국가로서 성장하는 정치 지리적인 환경을 고려하면 조금 더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

책에는 각주가 많이 달려 있는데 그리스 신화와 로마 시대의 인물에 대한 인용이 많다. 그리고 성경의 내용도 상당히 많이 인용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다양한 분야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동양과 서양에 대한 고전과 역사, 그리고 성경을 시작으로 기독교나 이슬람의 역사를 익힐 필요가 있다.

그의 수필집에 있는 내용이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도 드러난다. 17세기 전후에 지식인으로 살았던 베이컨으로서는 최신의 정보를 해석한 것이겠지만 세월이 흘러 지금은 바로잡힌 지식들이다. 상당한 기간 동안 베이컨이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한 책을 접하며 우리도 일 년에 하나의 주제만 진지하게 고민하고 기록한다면 세상과 작별하는 순간에는 각자의 역작이 나오지 않을까 기분 좋은 생각을 해봤다.

이하는 책에서 흥미로운 글을 발췌했다
.

 

 

열심히 살다가 죽는 사람은 흥분해 있는 동안 상처를 입는 사람과 비슷하다. 우선 당장에는 그 아픔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 그러므로 마음이 무엇인가 좋은 일에 기울어 고정되어 있으면 죽음의 아픔을 피할 수 있다. 모든 것 중 제일 아름다운 노래는 고귀한 목적과 기대를 완수한 사람의 "이제 놓아주옵소서" 하는 말일 것이다.(15)
아내는 젊은이에게는 연인이고, 중년에게는 반려자이며, 늙은이에게는 간호사다. 그러므로 언제라도 결혼해야 할 까닭은 마련되어 있는 셈이다.(36)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은 삼중(三重)의 종이다. 군주 혹은 국가의 종이요, 명성의 종이요, 업무의 종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의 몸에도, 자기의 행동에도, 자기의 시간에도 자유가 없다. 권력을 추구하면서 자유를 빼앗기고, 남에 대한 권력을 추구하면서 자신에 대한 권능을 상실케 하는 이 욕망은 매우 이상한 것이다. (47)
일반적으로 한 왕국의 인구가 (특히 전쟁에 의한 인구의 희생이 없는 경우에) 이 인구를 부양하는 나라의 생산량을 앞지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 인구를 사람의 머릿수로만 헤아려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생산은 적게 하면서 소비는 많이 하는 소수가, 생활 수준은 낮지만 생산을 많이 하는 다수보다 훨씬 쉽사리 나라를 피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귀족과 고위층이 양적으로 많아져서 일반 백성과 심한 불균형을 이루면 나라는 급격하게 궁핍해진다. 성직자 계급이 팽창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생산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관직으로 흡수할 수 있는 숫자 이상으로 많은 학자들이 양성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68)

 

무엇보다도 좋은 정책을 활용하여 나라의 돈과 재물이 소수의 손에 집중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국가는 넉넉한 생산량에도 불구하고 굶주릴 것이기 때문이다. (69)

 

여행은 젊은 사람에게는 교육의 일부요, 나이 든 사람에게는 경험의 일부다. 지금 여행하려고 하는 나라의 말을 아직 모르고 있다면, 그는 학교에 가는 것이지 여행 떠나는 것이 아니다.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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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는 천체와 같아서 길조의 원인도 되고 흉조의 원인도 된다. 또 군주는 많은 존경을 받지만 마음 편한 날이 없다. (89)

 

세상에는 카드를 교묘하게 섞어서 눈속임을 할 줄 알면서도 정작 카드놀이를 하여 이득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마찬가지로 유세(遊說)와 파벌에는 능하지만 다른 면으로는 나약한 사람이 있다. (중략) 따라서 어리석은 사람과 현명한 사람을 구별하는 옛사람의 방식, "모두 벌거숭이 모습으로 낯 모르는 사람에게 보내보면 알 수 있다"는 방식의 경우에 빈틈없이 들어맞는다. (98)

 

병들었을 때는 주로 건강을 생각하고, 건강할 때는 운동을 생각하라. 건강할 때 몸의 지구력을 길러둔 사람은 그다지 심한 병이 아니라면 오로지 식사와 몸조리만으로 회복할 수 있는 법이다. (140)

 

식민지가 성장하여 튼튼해지면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도 식민할 시기가 된다. 이제 외부로부터의 이민 없이도 식민지 스스로 자자손손 번창하도록 하는 것이다. 일단 착수한 식민 사업을 도중에 포기하거나 저버리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큰 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1500

 

재물을 날개를 달고 있어서 때로는 홀연히 날아가버린다. 또 때로는 더욱 많은 것을 물어오도록 날려 보내야 한다. (155)

 

마지막으로 (아마 이것이 가장 중요한 까닭일 것이다), 이러한 예언의 거의 전부가 비록 수는 많으나 할 일 없고 교활한 사람들이 사건이 일어난 다음에 날조하고 가져다 붙인 협잡이라는 점이다. (159~160)

 

아름다움은 여름철 과일과 같아서 썩기 쉽고 오래가지 않는다. 그리고 대체로 젊은 사람을 방탕하게 하고 나이가 든 후 뒤늦게 후회하게 한다. (186)

 

 

학문은 기쁨과 장식(裝飾)과 능력을 준다. 기쁨은 주로 홀로 있거나 공직에서 물러났을 때 나타나고, 장식은 주로 이야기할 때 나타나며, 능력은 주로 문제를 판단하고 처리할 때 나타난다. (212)

 

책을 읽는 것은 반박하고 논박하려고도 아니요, 쓰인 대로 믿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려 함도 아니요, 화젯거리나 이야깃거리를 찾아내려는 것도 아니다. 오직 분별심을 키우고 사려를 깊게 하기 위함이다. 어떤 책은 맛만 보면 되고, 어떤 책은 삼켜야 하고, 더러는 잘 씹어서 소화시켜야 할 책도 있다. (212~213)

 

이솝 우화에 대단히 재치 있는 구절이 있다. 파리가 전차의 굴대에 앉아서 하는 말이 "내가 일으키는 이 먼지를 보라!"고 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무엇이든지 저절로 움직이거나 어떤 큰 힘으로 움직이는 일에 자신이 조금이라도 관여하고 있기만 하면, 이를 움직이는 것이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허망한 사람들이 있다. (224)

 

군주와 국가에 관련되는 면을 살펴보자. 법관은 무엇보다도 로마의 십이동판법(十二銅板法)의 결론으로 되어 있는 "인민의 안녕이 최고의 법률"이라는 말을 명심하고, 가당치 않은 신탁임을 알아야 한다. (234)

 

세계에 야만 민족이 극히 적은 데다가 생계 수단이 확실할 때까지 혼인하거나 자식을 낳지 않으므로 (오늘날 대개의 습속이 그러하다. 타르타르족은 예외지만), 사람이 넘쳐흐를 만큼 인종이 많아질 위험은 없다. (243~244)

 

그러므로 무릇 모든 현명한 통치자는 행동이나 계획에 대한 관심과 마찬가지로 소문에 대해서도 크게 경계하고 조심할 일이다. (248)
불화의 여신이 떨어뜨린 사과를 두고 여러 여신이 경쟁했을 때, 심판자가 된 트로이의 파리스는 헤라의 권력과 아테나의 지혜를 물리치고 아름다운 여자를 선물하겠다는 아프로디테를 뽑아주어 그 대가로 메넬라오스의 아내인 헬레나의 사람을 얻게 되어 트로이 전재의 발단이 되었다. (253)
스콜라 철학(9~14세기)은 간단히 말하여 그리스도교 교리를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을 빌려 설명하는 것이었는데, 베이컨은 이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258)

 

1588년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한 기골찬 승리는 대단히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그리고 시대의 기운은 인본과 합리의 정신이 중세적 우상과 권위에 전면적으로 도전하는 쪽으로 움직였다. (273)


독서습관529_베이컨 수필집_프랜시스 베이컨_2015_문예출판사(220214)



■ 저자: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1561~1626)

엘리자베스 여왕 치세이던 1561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르네상스 후의 근대철학, 특히 영국 고전 경험론의 창시자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이 강했던 케임브리지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공부한 후, 스물세 살에 하원의원이 되었다. 이해에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바치는 진언서>를 집필하기도 했으나, 여왕의 신임을 얻지는 못했다.

1603년 제임스 1세가 즉위한 후 급속히 권좌에 올라 1618년에는 대법관이 되었고 1621년에는 세인트 올번스 자작 칭호를 얻었다. 그러나 바로 그해 왕실과 의회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왕실의 특권을 옹호했던 베이컨은 의회의 공격 목표가 되었고, 마침내 소송인들에게 뇌물을 받은 죄로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받고 영원히 공직을 떠나게 된다.

베이컨은 정치적으로 보수적 인물이었지만, 그의 과학 정신은 당대 누구보다 앞서 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를 그저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관찰하고 실험하고 연구하여 인간이 지배권을 획득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17세기부터를 근대라고 부르기로 한다면 베이컨은 근대의 문을 연 사람이고, 근대정신의 특징 가운데 하나를 과학적 접근 방법이라고 한다면 베이컨의 귀납적 관찰 방법은 근대 과학정신의 초석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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