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 시절 음악시간이 참 싫었다. 악보를 이해하는 것이 힘들었고 악기를 연주해본 경험이 없어서다. 하지만 대중음악과 서양음악을 접하며 조금씩 친숙해졌다. 이전에는 강요된 음악이었다면 지금은 작곡을 한 시대적 상황과 곡에 담긴 의미를 찾는 여행을 좋아한다.
음악 프로그램을 듣다 보면 자주 들리는 오페라 곡들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피가로의 결혼>이다. 내용은 모르지만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이 심취해서 듣는 모습이 떠오르는 곡이다. 다른 책에서 소개되어 한 걸음 더 가까이 가보고자 읽게 되었다.
보마르셰가 <피가로의 결혼>을 1784년에 발표되었지만 실제는 1780년 경에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검열이 있어서 지연되었다고 한다. 몇 년 뒤인 1789년에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으니 당시의 시대가 얼마나 혼란스러웠을지 짐작할 수 있다. <피가로의 결혼> 대사 중에도 기존의 왕과 귀족의 지배권력에 반발하는 부분이 있다. 시민정신이 어느 정도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소설과는 달리 연극을 위해 만들어진 대본이기에 복잡한 스토리가 있는 것이 아니고 구어체로 짧은 기간 동안에 등장인물들 사이에 일어난 일을 담고 있다. 피가로와 쉬잔느, 백작과 백작부인을 중심으로 마르셸린느, 셰뤼벵, 황셰트 등이 등장인물이다. <세빌리아의 이발사>와 연결되는 내용으로 다음에는 이것도 읽어봐야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짧은 대본을 통해 <피가로의 결혼>의 스토리 라인을 이해하고 모짜르트가 1786년에 작곡한 오페라도 관람할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 유튜브를 보니 일부 오페라 공연을 업로드 해놓은 것이 있다. 나를 위한 것 같다.
"아무것도 안 하려는 자, 진행도 없고 결과도 없다."-2막 2장에서 피가로의 대사
피가로가 능수능란한 언변으로 백작을 골탕먹이는 장면이 흥미롭다. 그중에 피가로가 본인도 정치를 안다면서 한 아래 대사는 시대와 장소를 넘어 현재의 대한민국의 정치에도 적용된다.
"알아도 모른 척, ㅗㄹ라도 아는 척, 이해 못 해도 이해한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특히 능력 이상 할 수 있는 척, 아무것도 아닌 걸 큰 비밀처럼 감추고, 펜츨 뾰족하게 갈 때도 문을 잠그고, 텅 빈 속도 심오한 듯 위장하고, 선인 또는 악인으로 가장을 하고, 염탐꾼을 사방으로 파견하고, 배신자를 보호하고, 봉함을 뜯어 편지를 가로채고, 수단의 빈약함을 목적의 중요함으로 포장하고, 이게 바로 정치 아닙니까?"-3막 5장 피가로의 대사
한편 마르셀린느의 대사에는 여자의 인권이 억압되고 있는 것에 대한 여성들의 심리를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남자들은 무정함도 부족해 경멸로 노리개들을 시들게 하죠. 어릴 적 여자들의 실수는 남자들 책임이에요. 우리를 심판한다고 거들먹거리면서 자기들 책임을 회피하고 우리가 제대로 된 직업도 못 갖게 막아버리잖아요. 그게 불쌍한 우리 여자들의 처지예요. 여자들도 뭐든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데, 남자들만 다 독차지하고 있다고요."-3막 16장 마르셀린느의 대사
삼국지에서 제갈량이 한 '수인사대천명'이란 말에서 유래한 '진인사대천명'이란 말이 있다. 사람이 할 일을 다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긴다는 의미다. <피가로의 결혼>에서도 유사한 대사가 등장한다. 쉬잔느가 자신들의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한 불평에 대해 피가로가 아래와 같이 의미 있는 말을 한다.
"운명에 맡길 수밖에. 세상만사 그런 거지. 계획하고 노력하고 정리하는 건 우리, 그걸 완수하는 건 운명."-4막 1장 피가로의 대사
18세기 후반 절대왕정 하에서 자본가계급이 성장하고 미국의 독립전쟁(1775~1783)으로 자유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평민들이 흉작으로 불만이 높아진 가운데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다. 1780년에 쓰여진 <피가로의 결혼>에도 시민의식이 담긴 대사가 있다.
"아무리 성주라도 그럴 수는 없어요. 부귀영화가 자랑인가요? 태어나느라 애쓴 거 말고 무슨 노력을 하셨죠? 나리의 평탄한 인생과 나의 파란만장한 삶. 단지 생존을 위해서도 스페인을 백 년 동안 다스릴 만큼의 지혜와 재주가 필요했는데, 그런 나와 겨루시겠다고요?"-5막 3장 피가로의 대사
독서습관367_피가로의 결혼_보마르셰_2019_연극과인간(21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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