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인 딸이 선생님 추천도서라서 빌렸는데 내용이 어렵다며 반납하려던 책, <바벨탑 공화국>을 읽었다. 어떤 책인지 보니 저자가 강준만 교수다. 저자의 생각에 많은 부분 동의하고 지지해 오랜 기간 그의 독자로 지내고 있다. 주말에 포항으로 내려오는 중에 재미있게 머리를 끄덕이며 읽었다.
저자는 언론에서 다루지 않는 우리 사회 곳곳의 곪은 부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그의 글은 매력적이다. 상처를 드러내고 곪은 곳은 짜내고 약을 발라 치료해야 하듯이 우리 사회의 상처들도 치유돼야 한다.
저자는 정보와 돈, 권력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국민들에게 운동장이 기울어져 있다고 소리치는 사람이다. 불공평한 사회를 알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바로잡는 노력에 동참하도록 이끌어주는 책이다.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욕망에 굶주려 미쳐 돌아가는 한국 사회에서 우리 내면을 바라보게 한다. 잠시 멈춰서 그들이 하는 행동을 생각하게 한다. 자기가 하는 행동이 가져올 결과를 곰곰히 생각하지 않는 사회에서 이 책은 가뭄의 단비처럼 반갑다.
이 책은 많은 전문가의 견해를 인용하고 있다. 소개된 책들은 대부분 다음에 읽고싶은 책 리스트에 기록된다. 정약용 도서관에 로그인 후 관심대상으로 등록해두면 유용하다. 도서관에서 후보들을 보고 대출하면 편리하다.
정약용 도서관에 없는 경우에는 다른 도서관에서 상호대차 신청으로 빌린다. 무료로 책읽기 참 좋은 시대다.
책에서 마음에 드는 문장이 많아 아래에 모아둔다.
이 책은 우선적으로 일부 청년들이 왜 '헬조선'을 외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다.-6페이지
이미 10년 전 박철수가 <10억짜리 욕망의 바벨탑: 대한민국 아파트, 거주 공간 아닌 금전적 이익의 결정체>라는 글에서 잘 지적했듯이, "재건축 아파트 조합 결성을 아이의 대학 합격 소식보다 더 반기는 부모들, 아파트가 구조적으로 튼실하지 못해 곧 무너지게 생겼다는 구조 안전 진단 평가 결과에 경축 현수막을 서둘러 붙이는 건설업체와 이름도 다양한 추진위원회" 등으로 대변되는 한국 아파트 문화의 발상지이자 전파지가 바로 강남이다.-31페이지
정치학자 이브 생토메르Yves Sintomer에 따르면, 정치인들은 "그들의 습관, 삶의 방식, 그들만의 고유한 사회 경험에 둘러싸여 관심사와 세계를 보는 관점이 일반 시민들에 비해 독특해졌다. " 이런 사람들로 이루어진 정당이 정상일 리 만무하다.-56페이지
대학생은 자신이 다니는 대학, 초등학생은 자신이 사는 아파트의 서열을 기준으로 낮은 서열에 속하는 사람을 차별하도록 배우며, 그 배움을 능동적으로 실천한다. 이런 상황에선 0명대의 출산율은 물론 '정치의 사유화'에서부터 '갑질'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주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61페이지
미국 정치학자 버트럼 그로스Bertram Gross,1912~1997는 고전적 파시즘 체제가 보여주던 외양은 사라졌지만 날이 갈수록 심화되는 대기업의 지배와 정경유착 구조에 의해 개인의 자유와 민주적 권리가 억압받는 상태를 묘사하기 위해 '부드러운 파시즘friendly fascism'이라는 말을 썼다.-66페이지
박세길은 "한국은 합법적으로 부동산 투기가 조장되고 있는 가운데 말 그대로 투기의 천국이 되고 있다. 그러면 정부에서는 왜 이렇게까지 투기를 방치해두며 심지어는 조장까지 하고 있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 자신이야말로 '투기의 공범자'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69페이지
이런 '토건 이데올로기'는 대중의 일상적 삶과 의식까지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부동산 개발은 발전과 진보로 간주되는 반면 그 이면에서 벌어지는 약탈은 자신이 피해자가 아닌 이상 비교적 작은 문제로 보면서 망각의 쓰레기통으로 쉽게 내던져버린다. -74페이지
나는 10년 전 조지프 히스Joseph Heath가 <자본주의를 의심하는 이들을 위한 경제학>에서 지적한 이런 주장을 떠올렸다. "좌파는 의도는 좋지만 성공할 가능성이 없거나 돕고자 하는 수혜자에게 실상 도움이 되지 않는 정책을 만들고 선전하느라 너무나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77페이지
부동산 거품이 꺼지는 건 필연인데, 그로 인한 재앙을 유예하기 위해 거품을 지속시킨다고 붕괴를 피할 수 있을까? 서서히 거품을 빼나가는 게 옳은 대안일 텐데, 이 나라의 엘리트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은 둘째치고 그런 마인드나마 있는 걸까?(중략) '사회'는 없고 오직 '나와 내 가족'만 생각하는 '바벨탑 멘털리티'에 근본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83페이지
<안티 젠트리피케이션: 무엇을 할 것인가?>(2017)의 저자들은 젠트리피케이션을 '도시형 재난'으로 선언한다. 재개발처럼 '용역 깡패들'의 폭력이 동원되지 않아 그 문제의 심각성을 잘 느끼지 못할 뿐, 매우 고약한 '구조적 폭력structural violence'이라는 것이다.-89페이지
헨리 조지는 그런 뜨거운 심성으로 2년간 책을 썼는데, 그게 바로 그 유명한 <진보와 빈곤Progress and Poverty>(1879)이다. 그는 이 책을 쓴 후 가슴이 벅차올라 눈물을 쏟았지만 책을 내줄 출판사를 찾을 길이 없었다. 노동자 출신으로 학력도 이름도 없는 사람의 책을 누가 출판해주겠는가. 그는 결국 자비 출판으로 자신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런데 이 책이 미국과 영국에서 수십만 부, 나중엔 수백만 부나 팔려 나가는 '기적'이 일어났다. 토지가 빈곤 문제의 핵심이라는 그의 통찰력이 호응을 얻었기 때문이다. -95페이지
그는 '생산하는 사람이 소유해야 하고 저축하는 사람이 누려야 한다는 것은 인간의 이성과 자연적 질서에 부합하는 말이다"며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 비춰보면 현재의 불평등은 정당화 될 수 없다. 사실, 대부호들 중에 공정하게 부를 획득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들이 소유한 부 가운데 소유한 자신이나 그들에게 부를 건네준 사람들이 생산한 것의 비중이 얼마나 될까?"-96페이지
"토지 가치세는 바람직한 조세가 갖춰야 할 모든 경제적 도덕적 조건을 다 갖추고 있다. 개인의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존재하고 성장하기 때문에 생기는 토지 가치를 사회가 징수해서 사회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쓰자는 말보다 더 정의에 부합하는 말이 어디 있겠는가?"-97페이지
정원오는 건물주들을 만나면서 떠올린 건 라인홀드 나부어Reinhold Niebuhr, 1892~1971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Moral Man and Immoral Society>(1932)라는 책이었다고 말한다. 건물주 개개인이 문제가 아니라 비도덕적인 사회구조와 시스템이 문제라는 것이다.-99페이지
대체적으로 보아 개혁을 하겠다는 정치 세력은 사적 이익을 위해선 뱀의 지혜를 발휘하면서도 공적 이익을 위해선 한사코 '비둘기의 순진무구함'을 과시해 면책해보려는 헛발질이나 똥볼 차기만 일삼고 있는 게 현실이다.-101페이지
문제는 공공 공간이다. 단위 면적당 부동산이 가장 비싼 뉴욕에 사는 뉴요커들이 좁은 집에 살면서도 비교적 만족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자기 집은 작아도 센트럴파크나 브라이언트파크 같은 각종 공원들을 비롯한 공공 공간이 워낙 넓기 때문에 굳이 공간을 자기 집으로 한정시켜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 서울은 작정한 듯 정반대의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공공 공간은 좁을수록 좋고 사적 공간은 넓을수록 좋다고 작정한 듯 보인다. -114페이지
아파트값은 주인의 노후, 나아가 자녀의 미래를 좌우한다. 학벌 일자리 부동산을 둘러싼 필사적 각자도생의 바닥에 있는 현실이다.-119페이지
"프롤레타리아의 위협을 막기 위해 시도된 파리의 도시 대개조는 1871년 파리코뮌이라는 거대한 혁명 앞에서 결국 수포가 되었다. 분리와 배제가 거세질수록 프롤레타리아의 분노는 더 커지고, 도시 전체가 전복될 수도 있음을 역사는 증명한다. 파리 아비타Paris Habitat는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공기업이다. -123페이지
김윤영의 단편소설 <철가방 추적작전>은 그렇듯 차별을 내면화한 사람들의 극악스러움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강남의 외딴섬, 또는 강남의 음지로 불리는 수서의 임대아파트 단지는 그 큰 규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근 주민들의 눈엣가시였다. (중략) 집값 떨어진다고 하는 정도는 불평 축에도 못 낀다. 임대아파트 애들이랑 놀지 말라며 문둥병자 취급하는 부모들 중에 박사며 교수며 의사가 있었다."-128페이지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끼리 상호 교류를 통해 얻게 되는 인간적 신뢰와 지역공동체에 대한 관심은 지역의 안녕과 질서는 물론 지역 발전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그런 신뢰, 관심, 유대를 가리켜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라고 부른다. 돈이라고 하는 경제 자본 못지않게 또는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233페이지
대학은 교육 산업이라기보다는 부동산 산업에 가깝다. 특히 '인서울' 대학들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지원하에 서울을 벗어나 다른 지역에 새로운 캠퍼스를 짓는 등 '공룡화 전략'을 스고 있다. 토건 대학이라고 해서 다 똑같은 토건 대학이 아니다. 서울과 지방의 땅값 격차를 생각해보라.-239페이지
"이미 선진국들은 공교육 시스템과 실업 부조뿐만 아니라, 아동 수당과 공공 보육, 공공 주거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미래 세대에 대한 각종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이처럼 선진국들이 21세기 가장 소중한 자원인 '사람'에 대한 투자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정작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자원인 우리나라만 뒤처지고 있다"-242페이지
<지방 흙밥 보고서>라는 책에 나온 증언을 들어보자. "뭔가 새로운 걸 해보려 하면 '중뿔나다'는 지적만 받는다. 지방의 왜곡된 공동체성은 때로 도시의 익명성보다 무섭다. 무엇보다 그저 나고 자란 곳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은' 청년들을 '남아 있는' 패배자로 바라보는 눈길에 지방 청년들은 분노하면서도 주눅 들어 있었다.(중략)" -244~245페이지
지방분권 사기극의 대표작이라 할 복지 분권 사기극을 보자. 2005년 정부는 지방분권이란 미명하에 빈곤층, 노인, 장애인 등에 대한 순수 복지 사업 67개를 몽땅 지방에 이양했다. 그 대신 지방에는 담배소비세가 중심이 된 '분권교부세'를 만들어주었는데, 이게 기막힌 이야기다. 이후 5년간 분권교부세 수입은 연평균 8.7퍼센트 증가한 반면, 복지비 지출은 고령화 촉진 등으로 연평균 18퍼센트씩이나 늘어났기 때문이다.-253~254페이지
독서습관368_바벨탑 공화국_강준만_2019_인물과사상사(21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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