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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독서습관303_언론과 신문사들에 진실 보도를 촉구하는 책_한국 현대사의 길잡이 리영희_2004_개마고원_독서후기(201129)

by bandiburi 2020. 11. 30.

■ 저자 : 강준만


1980년 성균관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아 대학교와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각각 신문방송학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김대중 죽이기>를 필두로 저널룩 <인물과 사상> 시리즈 등의 정치 사회 이슈를 주제로 쓴 책들과 <대중매체 이론과 사상> <이미지와의 전쟁> 등의 대중문화 관련서 다수가 있다.

 

■ 소감


지난주에 김삼웅 씨의 <리영희 평전>을 읽고 나서 바로 강준만 교수의 <한국 현대사의 길잡이 리영희>를 읽었습니다. 읽기 전에는 꽤 많은 부분이 중복될 거라 생각했는데 <리영희 평전>에서 나오지 않았던 많은 사실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리영희 교수에 대한 기본 지식을 가진 상태에서 읽게 되니 이해하는데 많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고1인 막내와 일제시대에 다양한 사상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공산주의'에 대한 차이점을 설명해줘야 하는데 명쾌하게 설명을 못했습니다. 마침 책에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언급이 몇 번 나와서 궁금증이 조금은 해소가 되었습니다. 구소련의 붕괴로 사회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승리한 듯이 보이는데 사회주의적인 요소가 없는 자본주의는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물질주의 무한경쟁, 빈부격차 등 폐해가 부득이하기에 자본주의를 보완하기 위한 사회주의적인 요소가 반영돼야 합니다.

'조선일보'와 군부세력과의 결탁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었고, 오늘날 조선일보가 왜 그렇게 수구세력으로 '반공'과 '충효', '새마을', '친미'적인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언론사긴 하지만 그 전에 언론사주의 이해관계에 따라 논조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친일 기득권 세력에 빌붙어서 승승장구하던 언론사였기에 오늘날까지도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세력들과 손발이 맞는 것은 아닌지 싶습니다.

'미국'은 우방이요 이 나라가 어려울 때 식량을 원조해준 국가, 또한 선교사를 통해 무지한 백성을 계몽한 나라라고 배우고 암암리에 이해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학교에서 언론에서 수시로 그런 내용을 주입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통해 미국의 적나라한 민낯이 드러났습니다. 해방 직후 미국에 의해 남한이 통치되며 친일세력을 기용하는 것으로 남한의 역사의 단추는 어긋났습니다. 이후에 권력과 돈을 가진 자들은 친미가 되었습니다. 기득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자녀들은 교수가 되고 소위 지식계층이 되어 미국의 사상을 설파합니다.

우리는 미국이란 나라를 제대로 바라봐야 합니다. 주한미군이 왜 북한의 위협을 운운하며 아직도 남아 있어야 하나요. 동북아에서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입니다. 전지작전권을 반환받고 주한미군을 감축하고 자주국방을 만들어야 합니다. 일본의 36년 지배 보다도 더 긴 세월을 우리도 알지 못하는 속국이 되어 미국의 영향을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세계적인 대형교회가 많고 기독교인의 비율도 높은데 정의롭지 못하고, 부패한 권력이 지배할 때 어느 종교인들이 큰 목소리를 낸적이 있었는가요. 돈으로 타락한 대형교회와 목회자들의 부도덕함은 사기꾼과 같습니다. 종교를 통해 자신과 가족의 삶을 먼저 추구하는 사람들은 차라리 종교를 떠나서 자연인으로 사는 것이 좋겠습니다. 종교에 세뇌된 많은 신도들은 생각 없이 맹신하며 추종합니다. 그래서 무리가 됩니다. 요즘은 사랑제일교회가 그 대표적인 사례로 보입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리영희 교수와 같은 생각이 있는 오피니언 리더들이 많아야 이 나라가 발전할 것입니다. 나부터 조심스런 발자국을 떼어봅니다.



■ 마음에 동하는 문구


6페이지) 그건 리영희만큼 해방 이후 한국 현대사의 큰 사건들을 그 누구보다 더 직접적으로 광범위하고 치열하게 겪은 사람이 또 있을까 하는 것이다. 그의 글은 늘 실천이었기에 그는 누구보다 더 넓은 행동 반경에서 살아왔다. 리영희의 삶이 곧 한국 현대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14) 최남선은 1929년 10월 조선총독부의 조선사편수회의 촉탁으로 임명되었고 12월에는 조선사편수회 위원이 되었으며, 이후 노골적인 친일 행각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

21) "세태는 날로 더 혼란해지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악마적인 상태가 되어갔다. 각종 권력의 중심부와 주변에 기생하는 자들은 일본인이 남기고 간 나라의 부를 서로 찢어 나누어 먹고 있었고, 헐벗고 굶주린 조무래기들은 서로 속이고 뺏는 것으로 그날그날의 생존을 이어갔다.

41) 리영희보다 4살 연상인 프란츠 파농은 이즈음 프랑스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지만, 얼마 후 알제리의 해방 투사로 일하면서 리영희와 마찬가지로 민중의 어두운 면을 뼈저리게 절감하게 된다. 그 결과 내놓은 파농의 메시지 가운데 하나가 바로 '민중'에 대한 아첨을 경계하라는 것이었다.(중략) 그런데 또한 중요한 것은 지식인과 민중 사이의 관계는 상호 교육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리영희는 민중의 무지, 탐욕, 이기주의, 냉혈적 무관심을 저주하지 않았다. 그는 훗날 모든 것이 민중의 의식수준에 달려 있다는 전제하에 자신의 모든 걸 걸고 민중과의 '상호 교육'에 나서게 된다.

42) 해방정국에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 데 있어서 친일파 위주의 기능적 효율성만을 따져선 안 될 이유가 전쟁중에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말았다. 지배집단은 일제 시기에도 그랬던 것처럼 전쟁이 터지자 다시 해방 전으로 돌아가 자신과 자기 가족 챙기기에만 바쁜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45) 이미 1949년부터 시작된 '이승만 우상화'는 조선조의 왕도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극을 치닫고 있었다.

59) 그와는 반대로 군대의 특무대 방첩대는 변혁에 대한 반동세력이었고, 학생들에 대해서 시종일관 원수와 같이 대하였다. 이 나라의 군대, 특히 군대 중의 '사상경찰'로서의 방첩대 특무대의 본질을 알게 되면서 나는 소름이 끼쳤다.

60) 신문에 난 '한 장의 사진'이 역사를 바꾼 것이다. 뒤통수에 최루탄이 박힌 처참한 16세 소년의 시체가 마산 앞바다에 떠오르지 않았다면 그리고 이러한 사진이 부산의 신문에 그치고 서울의 신문에까지 나지 않았다면 그 4월의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 확실하다. (김주열의 시신)

66) 그런 '치욕과 울분'의 와중에서도 1961년 봄은 '통일논쟁'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문자 그대로 백화제방 백가쟁명(百花齊放 百家爭鳴)의 시대였다.

73) 국가재건최고회의 박정희 의장의 미국 방문은 5.16 쿠데타를 대국(大國)으로부터 승인받기 위한 사대주의적 행보에 다름 아니었다.

99) 그러나 일체를 흑과 백, 천사와 악마로 양단해버리는 식의 선전은 거꾸로 우리 국민의 과학적 사고능력과 이성을 마비시킨다. 또 모든 사물에는 가치체계의 차이에 따라 선악의 기준도 다를 수 있다는 정도의 '자유스러운 사고능력' 마저 박탈해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와 같은 흑백식 사고방식은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이 사회와 국민 사이에 사고와 가치관의 획일주의의 굴레를 씌우게 될지도 모른다.

123) 효 사상은 본질적으로 종적(縱的) 지배와 예속질서인데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것은 수평적 평등 질서라는 것이다. 수평적 평등지향 사회와 어용적, 제도화된 효 사상이 상응하기 어려운 점이 이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사회에 효의 도덕을 모순 없이 보편적인 것으로 만들고자 한다면 연령, 성, 재산(수입), 사회적 지위, 인종, 사상과 신념의 차이에 구애되지 않는 전체 사회 구성원 간의 수평적 '우애' '시민적 평등' '인류애'의 형태 속에 그 자체를 승화시켜야 할 것이다.

148) 80년대의 학생들은 어떤 영향을 받았던 걸까? 정재숙에 따르면, "닳아 해진 복사물이건, 선배들의 손때 꾀죄죄한 원본이건,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은 이들은 머리를 한 방 먹은 충격으로 잠시 비틀거렸다. 학교 교육이 주입시킨 '반공'과 '고마운 나라 미국'과 '새마을'과 '충효'의 우상이 와르르 무너졌기 때문이다.

152) 일본인의 오만을 규탄하고, 그들의 정신적 자세를 윽박지를 때, 우리 민중은 일본인에 대한 것에 못지않는 분노와 회한으로써 이 나라 지도층의 과거와 현재의 실태를 파헤쳐 반성할 필요가 있다.

158) 노신은 그 시대의 중국사회에서 해야 할 일은 전통과 지배계급의 허위를 까밝히는 일이었다. 몽매한 민중의 의식을 깨우치는 작업이었다. 그러자면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 쉬운 말을 가지고 알기 쉽게 써야 한다.

184) 리영희는 이 칼럼을 미 국방부 부장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의 의회 증언을 소개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주한미군은) 일종의 우산이다. 그것은 한국만을 보호하기 위한 우산이 아니다. 미국은 많은 사람이 즐겨 주장하는 것과 같은 박애주의자가 아니다. 우리는 수지타산에 투철한 현실주의자다. 미국이 그곳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는 이유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다."

199)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전면적으로 의존한 결과로 해서 자본주의는 인간성 파괴의 벽에 부딪쳤고, 뭔가 21세기적인 전인류적 각성을 할 때가 왔다고 봐야겠지. 앞으로는 사회주의의 구조 결정론과 자본주의의 물질주의를 모두 극복한, 또 양자를 모두 수렴한 새로운 변혁을 이뤄내는 것이 과제라고 생각해.

205) 지금은 그에서 그치지 않고 집주인의 목숨 보호자를 자처하게 되었다. 집주인은 그러는 동안에 사나이의 보호 없이는 영원히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을 것 같은 '자기최면'에 빠져버렸다. 영원한 '능력 상실자'가 된 것이다. 이 최면술의 명칭이 '안보공약'이라는 것이다.

207) 세계에서 기독교가 가장 위세를 떨치는 나라 대한민국의 꼴이 왜 이럴까? 1994년 4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와 사회에서 전세계를 향한 뉴스는 한국 종교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반대로 철저한 타락과 추악함이다. 권력과 돈에 눈이 먼 종교가 어떻게 인간의 영혼을 구제할 수 있을까?

210) 나는 원래 <월간조선>을 손에 들어본 적이 없어요. <조선일보>에 있어봐서 본질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 신문은 원래 북한에서 내려온 실향민을 중심으로 한 1세대를 주독자로 출발한 신문입니다. 그들은 북한을 공격함으로 해서 심리 보상을 하는 거지요. (중략) 자연히 주로 군부와 경찰이 연결되어서 정보가 입수되고 있지요. 지금 <조선일보> 건물이 광화문에서 길거리로 20미터쯤 나와 앉아 있지요. 광화문에서부터 박정희가 도로 개혁을 하다가 <조선일보>에서 멈췄어요. 허물지를 못하고. 박정희 군사정권과 <조선일보>가 어떤 관계가 있었겠습니까? 군부독재정권이 영구불멸로 이어지기를 바랐던 게 <조선일보>입니다. 그런 사람들로부터 무슨 얘기가 나오겠습니까. 그 <조선일보>가 써온 문장들, 사설, 논평들을 우리는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어요.

215) <조선일보>와 <월간조선>이라는 출판물을 그 '적색공포증' 선동의 대변자로 삼은 이 비정상과 반논리의 폭력은 금년 초부터 그들의 구미에 맞지 않는 지식인들을 하나씩 골라서 조준경에 맞추어 사살해왔다.

226) 역대 정권은 집권과 동시에 부패하기 시작했다. 부패하는 권력집단은 그들의 의도와 알몸을 비단으로 감싸줌녀서 국민 대중의 눈과 귀와 입을 막아주는 소위 '언론(기관. 인)'이 절대로 필요했다. 권력의 거짓을 진실로 둔갑시키고, 그들의 범죄를 '반공'으로 정당화하며, 그들의 사리사욕을 '애국충정'으로 칭송하는 '언론인'들이 필요했다.

229) 또한 그는 글을 간단하게 쓰지 않는다. 글 하나 하나에서 이유와 근거가 분명하고 이론적 틀이 단단하다. 나 자신이 자료에 대한 엄격한 판독과 그런 글쓰기 원칙 및 방법론을 고집스럽게 지켜온 입장에서, 김민웅의 글은 오늘날 만연하고 있는 '난해하게 꼬아트는 문화주의적 세련'이 담고 있는 허영스러운 논리들과 날카롭게 대조될 것이다.

232) 사회주의란 견제 장치를 잃어버린 21세기의 자본주의는 앞으로 더욱 병들게 될 거예요. 사회주의는 나름대로 자본주의의 병폐와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마이신 역할을 해주었어.

241) '돈'과 '재물'을 신으로 모시게 된 인간과 사회의 공통적 현상이다. 어떡하면 좋을까. 나는 어쩐지 자본주의의 자유 및 물질적 우월성과 사회주의의 도덕적 가치를 지혜롭게 배합하는 것이, 최선이 아니더라도 차선의 해답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258) 나의 견해로는, 휴전선 이남의 자본주의적 생활양식과 그 이북의 사회주의적 생활양식에는 각기의 장점과 결점이 공존한다. 그러기에 서로가 자기의 제도를 미화하고 상대방의 그것을 매도해온 것과는 달리, 휴전선 남과 북에는 지옥도 없고 극락도 없다. 이 관점이 이 책을 관철하는 근본 사상이다.

263) 김일성의 독립운동 사실을 처음으로 밝힌 서대숙은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은 사실 그대로 기술해도 자랑할 만한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북한에서 김일성의 투쟁 경력을 침소봉대(針小棒大)하고, 김일성의 무장투쟁이 조선독립운동의 전부인 양 왜곡하는 것은 도리어 그의 업적을 훼손하는 일이다. 그는 독립운동을 억압했던 친일파들이나, 독립운동의 주의 주장을 막론하고 중도에 변절한 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애국 애족 운동을 한 것으로 충분히 빛나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269) 구소련, 중국과 심지어 미국에 대해서 민족적 이권과 자존심을 한치도 양보하지 않고 대등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견주어왔다. 이것이 어쩌면 약소한 북한으로서 비이성적 생존방식으로 비칠지 모른다. 특히 이와는 대조적으로 미국에 끝없이 비굴했던 남한의 우리들 관념에서는 그렇게 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280) 한 예로, 자본주의 체제에서 처음으로 사회보장제도 등 사회주의 정책을 도입한 사람은 1890년대 독일의 비스마르크입니다. 좌파에 의해 사회주의 철학이 국가정책에 도입된 것이 아니라 자본가계급의 철저한 대변자였던 사람에 의해 실시된 것이죠.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당시 사회는 자본주의의 무한이기주의적인 속성으로 말미암아 부패의 타락으로 휘말리거나 계급적 갈등의 극단까지 치달았을 것입니다.

283) 논어에 정명론이 있다. 표현하려는 사실의 내용과 성질에 맞게 이름을 이저야 오해와 곡해를 바로잡을 수 있고 그것이 정치의 근본이라는 것이다. 우리 언론이나 학자들이 '북핵문제', '북핵문제'하는데 이는 내용을 전적으로 오도하는 것이다. '북핵문제'라고 하면 마치 북이 핵무기를 가지려 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로 이해되지만, 그게 아니다. 미국이 서명한 제네바 합의에 대한 미국의 이행 여부에 관한 문제로 불러야 진실이 나타난다.

286) 소위 대미 현실주의 외교라는 것을 외치는 기득권자들은 주인이 밥만 먹여줌녀 주권이든 정부건 국민이건 인격적인 독립의 중요성은 전혀 생각지 않는 부류입니다.

287) 우리 사회가 물질적 가치와 인간적 가치가 균형을 이루며 한 단계 발전하려면 사회주의 정당, 철학, 사상, 생활화, 이론, 정부 이런 것을 자본주의의 그것과 같은 눈높이에서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89) 미국의 통치집단은 겁나는 집단이다. 겁난다는 거슨 힘이 무섭다는 말뿐만이 아니라 그 범죄성, 음흉함, 공작 능력이 그렇다는 것이다.

290) 여기서 잠시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이라는 책의 제1장 '흑인과 언어'에 나와 있는 세 토막의 이야기를 감상하고 넘어가자.

291) "노무현 대통령이 임명한 최고 보좌관들도, 국제정치라는 걸 가르치는 교수들도 모른다. 미국에 가서 박사니 뭐니 하고 돌아오는 것은 짧은 영어를 하면서 미국인들에게 괄시받고 열등의식에 젖어 들어오는 과정이다. 말을 못한다는 것은 본원적인 인간의 약점처럼 의식화가 되는 과정이다.

294) 마지막으로 특히 고쳐야 할 것은 한국의 보수 기독교 수구세력들이에요. 지난날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국가적으로 양육된 사람들의 미국 찬양이 아주 위험합니다. 유일신끼리는 완전히 배탖거인 거 아니에요.

309) 세계적으로 최고의 석학 대접을 받다 얼마전에 사망한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성찰적 사회학'이라는 이름하게 지식인은 냉엄한 자기 성찰을 통해 자신이 갖고 있는 한계 또는 편견을 정직하게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317) 리영희의 사회과학은 한국현대사의 온갖 질곡을 겪은 체험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한 체험이 없이, 오직 '공부'로만 얻는 사회과학의 이론적 체계는 단기적으로는 탄탄함을 자랑할 수 있겠지만 개인의 실천을 놓고 보자면 환경의 변화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수 있다. 반면 리영희의 사회과학은 끊임없이 '지적 고민'을 수반하면서 시종일관하는 생명력을 자랑한다.

319) 토마스 에머슨은 1970년대에 낸 <표현의 자유의 구조The System of Freedom of Expression>에서 표현의 자유가 필요한 이유를 4가지로 제시했다.

1. 개인의 자아실현 또는 자기완성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이다.
2. 지식을 발전시키고 진리를 발견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3.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결정행위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데에 필수적이다.
4. 안정과 변화의 균형을 위해서다.
5. 카타르시스 효과를 위해서다.
6. 사상의 도미노 효과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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