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게 숄의 책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62~65페이지에 등장하는 Gottfried Keller(1819~1890)의 시다. 잉게 숄의 남동생 한스 숄이 나치에 저항하며 인용한 시다. 이 시는 왠지 자연스럽게 민주화 시기의 대한민국과 2024년 대한민국을 생각하게 만든다.
캄캄한 동굴 속에서
사방을 기웃거리며 기어 나오는 도둑 하나.
돈지갑을 움켜쥐려던 그 놈은
욕심에 겨워 더 값진 것을 찾는다.
도둑은 아무것도 남지 않는 싸움과
잘못 이용된 지식과
갈기갈기 찢어진 깃발과
바보 같은 국민을 보게 될 것이다.
어느 곳을 밟든지 도둑의 눈에는 보인다.
궁핍에 신음하는 시대의 공허가.
그럼에도 도둑은 파렴치하게 활보할 수 있다.
그것도 모자라 도둑은 예언자가 된다.
더러운 두 발로
쓰레기 더미 위에 올라가서
어리석은 세상을 향해
그럴듯한 인사말을 속삭인다.
구름에 둘러싸이듯
야비함에 에워싸여
거짓말쟁이 도둑은 국민 앞에 선다.
곧 거대한 권력을 움켜쥐고 고개를 쳐든다.
그를 뽑는 선거에
모든 것을 제공한 그의 도우미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까치발로 서 있든, 잔뜩 웅크리고 있든
기회를 엿보는 사람들뿐이다.
하느님의 사자가 언젠가
다섯 개의 빵을 나누어 주었듯이
국민은 그의 입에서 나온 약속의 말을 나눠 가진다.
그의 말은 시간이 흐를수록 땅을 오염시킨다.
처음에는 개 한 마리, 바로 그 도둑만 거짓말을 했으나
지금은 그를 따르는 수천 명이 거짓말에 익숙하다.
때아닌 폭풍이 휘몰아치듯
도둑의 한 닢 동전은 돈 보따리로 부풀려졌다.
싹은 거침없이 쑥쑥 뻗어 오르고
땅은 바뀌고 말았다.
대중은 수치스런 나날들을 살아가고
'비열'이란 놈은 껄껄 웃고 있다.
이제야 알게 될 줄이야!
처음부터 무언가가 조작되었다는 것을.
선한 자들이 사라진 자리에
악한 자들이 의기양양하게 서 있다는 것을.
언젠가 이러한 고난이
얼음 녹듯 서서히 사라지면
사람들은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듯
예전의 고난에 대해 이야기하리라.
아이들은 들판 위에
허수아비를 만들어 세우리라.
슬픔의 심연으로부터 기쁨의 불꽃을 활활 지펴 올리고
오랜 암울의 시대로부터 새 아침의 빛을 길어 올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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