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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787]소년이 온다_동호와 정대의 잔혹한 죽음과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으로 광주민주화운동을 다시 보다

by bandiburi 2023. 10. 2.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잔혹함에 대한 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

일반적인 소설과는 달리 각 장마다 말하는 화자가 달라진다. 군인들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정대, 정대를 찾는 동호, 살아남은 자 은숙과 선주, 그리고 자식을 잃은 동호의 어머니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소설은 광주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죽음을 당한 사람들이 얼마나 평범한 시민들이었는지 보여준다.

그만큼 전두환과 그의 지시를 받아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들의 잔혹함은 강조된다. 고등학교 1학년에 불과한 정대와 동호가, 여성들에 대한 무자비한 고문과 살인은 당시 시민을 향한 전두환 군부의 실체를 온전히 보여주고 있다. 

죽음을 당한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도 크다.

하지만 그 아비규환의 상황을 경험하고 살아남은 자들에게 남은 트라우마는 크다. 정신적은 충격을 극복하지 못하고 김진수와 같이 사망하거나 김영재처럼 정신병원에서 평생을 보내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1980년 5월 광주에 있었던 사람들의 고통을 몰랐다. 지금도 그들의 고통을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자신의 가족과 일가친척, 친구, 동료들이 국방을 위해 존재하는 군인들에 의해 하루아침에 목숨을 잃는 경험은 쉽게 공감하기 어렵다. 작가도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여러 자료를 읽고 장소를 방문하는 등 노력했다고 북콘서트에서 언급했다. 

마지막 6장에서 동호의 어머니가 하는 광주 사투리는 독자의 마음을 울린다.

막내아들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주검으로 마주해야 했던 엄마의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자식을 가진 부모의 입장에서 눈이 촉촉해졌다. 동호의 실존인물은 문재학군이었다고 한다. 문재학 군과 그의 어머니에 대한 기사를 보고, 사진도 찾아봤다. 소설의 내용이 실제 사진과 이어지며 더욱 그의 어린 죽음이 마음에 와닿았다. 

오늘의 평화로운 대한민국은 누군가의 희생 위에서 이루어졌다.

작가가 용산참사를 보며 광주항쟁을 떠올렸다고 하는 마지막 부분에 공감한다. 인권이 향상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공정하지 못한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경우가 있다. 국가의 권력이 부당하게 행사될 때 국민은 국가의 주인으로서 당당하게 인권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야 또 다른 광주가 없을 것이다.


나를 죽인 사람과 누나를 죽인 사람은 지금 어디 있을까. 아직 죽지 않았다해도 그들에게도 혼이 있을 테니, 생각하고 생각하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았어. (...) 그들을 향해 날아가고 싶었어. 묻고 싶었어. 왜 나를 죽였지. 왜 누나를 죽였지, 어떻게 죽였지. (52)

그녀는 인간을 믿지 않았다. 어떤 표정, 어떤 진실, 어떤 유려한 문장도 완전하게 신뢰하지 않았다. 오로지 끈질긴 의심과 차가운 질문들 속에서 살아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95~96)

구 상무관 (5.18민주평화기념관) (출처: 근현대사아카이브)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115)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135)

그들이 욕설을 뱉으며 당신의 몸에 물을 끼얹던 순간을 등지고 여기까지 왔다. 그 여름 이전으로 돌아갈 길은 끊어졌다. 학살 이전, 고문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은 없다. (174)

가끔은 말이다이, 내가 뭣한다고 문간채에다 사람을 들였을까... 생각한다이. 그까짓 사글세 몇푼 받겄다고... 정대가 이 집으로 안 들어왔으면 네가 정대를 찾는다고 그리 애를 쓰지 않았을 것인디... 그라다가 느이 둘이 배드민턴 침스로 웃던 소리가 생각나먼, 죄 받제... 죄 받아, 그람스로 고개를 흔들어야. 그라제, 내가 그 불쌍한 남매를 원망하면 큰 죄를 받제. (187)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 (207)


독서습관 787_소년이 온다_한강_2014_창비(231002)


■ 저자: 한강

1970년 늦은 11월에 태어났다.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1993년 <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고,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소설집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노랑무늬영원>,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등이 있다. 동리문학상, 이상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한국소설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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