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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786]구스타프 클림트_56년 생애와 작품들에 대한 배경과 이해를 돕는 책

by bandiburi 2023. 10. 1.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에게 구스타프 클림프의 삶과 그림에 대해 접근하기 좋은 책이었다. 클림트라는 화가를 떠올리면 황금색 그림이 어렴풋이 떠오를 뿐이었다. 클림트가 어떤 인생을 살았고 그의 그림 세계는 어떻게 변했는지 노동법 전문가인 박홍규 교수의 시각으로 설명한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지만 그의 주변에 여러 여인들이 있었다. 그 여인들은 그림 속에 등장한다. 그림을 그릴 때면 늘 통짜 옷을 입었다. 그의 외모는 그림 세계와는 다르게 평범하면서 노동자의 세계를 떠올리게 한다. 

예술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창작자의 삶을 이해해야 한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삶도 늘 황금색 그림처럼 화려하지 않았다. 그는 가난한 노동자의 가정에서 자랐다. 그의 대표적인 그림 <키스>나 <베토벤 벽화>처럼 자세히 들여다봐야 하는 그림 이전에 사진 같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였다. 또한 풍경화도 다수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클림트의 여러 그림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빈 대학 천장화 <법학>, <의학>, <철학>이었다. 지금은 소실되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니 안타깝다. 다행히 사진은 남아 있어 여전히 그의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설명을 듣지 않고 이 세 개의 그림을 보면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저자의 설명을 듣고 그림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클림트가 그림을 통해 보여주고 싶어 했던 의도를 살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클림트의 위대한 면을 볼 수 있다. 

책을 통해 또 한 명의 위대한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좋은 책은 늘 마음에 풍족함을 가져온다. 다음엔 영화 <클림트>를 보며 그의 삶의 다시 한번 들여다봐야겠다. 아래는 책에서 남기고 싶은 문장을 인용했다.


누구에게든 상대방에게 자신의 취향을 강요하지 마라. 그것도 문명의 이름으로 강요하지 마라. (43)

사진은 50세의 클림트 모습이다. 보기 나름으로는 50세 이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키스>를 그린 무렵의 사진이다. 영화 <클림트>에 나온 존 말코비치를 연상케 하는 얼굴이지만 조금은 냉정하게 심술기나 변덕기가 있는 듯도 한 말코비치보다는 훨씬 다정하고 소박하며 솔직한 느낌, 또는 어색해하고 부끄러워하며 고통스러워하는 느낌, 심지어 화려한 옷을 입은 <키스>의 빈 남자와는 전혀 다른 이방인이나 원시인, 또는 수도자나 은둔자 같은 느낌까지 준다. (84)

작업실 앞의 클림트 1912년 (출처: Flickr)

이방인, 원시인, 수도자, 은둔자, 노동자, 건달 등 그 어느 모습으로 보아도 클림트의 세련되고 화려하며 탐미적인 장식 그림과는 너무나도 다른 느낌이어서 놀라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거칠고 막 되먹으며 촌스러운 노동자 같은 사람이 어떻게 그 세련되고 우아하며 화려한 기하학적 장식의 귀족적인 그림들을 그렸단 말인가? (85)

키스 (출처: Flickr)

자신의 그림이 자신과 같은 노동자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고통을 치유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 바람으로 그림을 그린 화가, 모든 노동을 경험한 뒤 마지막 노동으로 그림을 그린 화가는 이 세상에 빈센트 밖에 없다. 그는 부자나 부자 예술가들을 경멸했고, 당대의 모든 부르주아적 안락함을 포기하고 수도승처럼 살면서 오로지 자신의 열정만으로 그림을 그렸다. (89)

그 자신에 대한 유일한 기록으로는 다음과 같이 기록을 하지 않은 이유를 적은 메모 정도가 남아 있을 뿐이다. (...)
1. 나는 결코 자화상을 그린 적이 없다. (...)
2. 나는 말이나 글에 재주가 없다. (..) (96)

19세기 말 빈의 음악가로 슈트라우스의 전통에서 분리한 음악가인 말러는 클림트보다 더 가난한 보헤미안 출신이었다. 게다가 그는 당시에 차별받은 유대인이었다. 일찍부터 쇼펜하우어와 니체에 열광한 점도 클림트와 유사했다. 그러나 그는 클림트와 달리 빈 대학에서 공부한 지성인이었다. (110)

구스타프 말러 (출처: PICRYL)

클림트는 1862년에 태어나 1918년에 죽었다. 56년의 생애다. 나는 이를 5등분하여 그의 생애와 작품을 구분하고자 한다. (...)
1. 1862~1878(출생~16세) 성장기
2. 1879~1888(17~26세) 역사화 시기
3. 1889~1897(27~36세) 전환기
4. 1898~1907(37~46세) 장식화 시기
5. 1908~1918(47~56세) 채색화 시기 (118~119)

이어 1888년 빈 시로부터 의뢰받아 <구 부르크극장의 관람석>을 그렸다. 클림트가 그린 150명의 작은 인물들에는 당시 빈의 유명한 사람들이 모두 포함되었다. 그들은 클림트에게 자신의 모습을 그려줌과 동시에 그것을 집에 걸 수 있도록 복제화로 그려달라고 했다. (129)

구 부르크극장의 관람석 1888년 (출처: Rawpixel)

앞에서 설명한 상징주의를 포함한 19세기 후반 미술 운동의 하나를 아르누보라고 한다. 아르누보란 하나의 통일양식이 아니라 운동을 뜻하는 점에서 뒤에 클림트가 주도한 분리파 운동과 비슷하다. 분리파나 아르누보나 전통적인 평범한 순수미술(주로 아카데미즘 역사주의)과 장식미술의 구분을 파괴하고 통합하고자  한 점에서 마찬가지다. 그 밖에는 그 참여자들 사이에 공통점은 거의 없다. (141)

그해 6월 14회전을 관람한 로댕은 클링거의 조각을 무시하고 오로지 <베토벤 벽화>를 찬양했다. (169)

Beethoven Frieze (출처: Flickr)

빈 작업실과 클림트의 공동작업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아르누보의 걸작인 스토클레 저택식당의 장식이었다. 벨기에 철도회사의 간부였던 그는 빈에서 살다가 브뤼셀로 이사하면서 자신의 저택을 빈 작업실에 의뢰했다. 호프만은 장엄한 저택의 내부를 설계하면서 식당의 장식을 클림트에게 맡겼다. (173)

Stoclet Frieze (출처: Collections-GetArchive)

기본적으로 종합예술은 예술가치와 사용가치를 혼동했다는 점에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다. 즉 편리한 생활도구에 불과한 것에까지 억지로 예술이라는 것을 불어넣고 소유자의 개성을 표현한다고 하는 극단의 과잉된 방식으로 삶을 재구성하려고 한 점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176)

바우하우스는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했음에도 그런 자본주의의 악몽으로 귀결되었다. 결국 아르누보나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이 자본주의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어쩌면 이는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 아닌가? (177)

의학 (출처: Wikimedia Commons)

스핑크스 왼쪽에는 위로부터 빛나는 어린이로부터 건장한 청년의 모습, 그들의 사랑과 고뇌, 욕망과 절망, 노동과 갈등, 그리고 그 마지막에는 머리를 숙이고 감싼 노인의 죽음이 그려진다. 즉 인간의 출생으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고뇌를 표현한다. (187)

철학 (출처: Flickr)

중요한 것은 형법으로 상징되는 법이 인간을 고통의 지옥으로 빠뜨리는 모순에 대한 클림트의 법학 비판이 <법학>에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하는 점이다. 그리고 그 비판은 새로운 법학을 대망하는 비전에서 그려졌다. 그래서 이 그림은 위대하고, 클림트는 위대한 화가이다. (201)

법학 (출처: Rawpixel)


독서습관 786_구스타프 클림트_박홍규_2009_가산출판(230927)


■ 저자 : 박홍규

척박한 이 시대에 르네상스적 인물로 평가되고 있는 저자는 노동법을 전공한 진보적인 법학자로서 영남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전공뿐만 아니라 인문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한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여러 예술가들에 대한 폭 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의 평전과 역저들을 출간하고 있는 저자는 영국의 진보적 사상가 윌리엄 모리스의 생애를 조명한 <윌리엄 모리스의 생애와 사상>, 베토벤의 삶과 음악 세계를 새롭게 해석한 <베토벤평전 : 갈등의 삶, 초원의 예술>, 오페라를 그 시대 정치와 사회의 관점에서 살펴본 <비바 오페라>, 빈센트 반고흐의 예술 세계를 그린 <내 친구 빈센트> 루쉰의 사상과 문학 전체를 넓은 시야에서 조망한 <자유인 루쉰>, 자유 학교를 위한 순교자로 알려진 페레의 생애를 쓴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마라> 등의 책들을 집필하였으며,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대상 저작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등을 국내에 처음 번역하여 소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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