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과 안희경의 대담을 엮은 <최재천의 공부>를 보며 우리의 교육 현실에 혁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자립을 향해 가고 있는 세 자녀의 앞길도 교육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관심을 가지고 읽었다. 네 가지로 책에서 얻은 점을 포스팅한다.
첫째, 최재천 교수가 배우는 즐거움을 찾고 노력한 과정을 알 수 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하버드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마칠 때까지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호기심과 과감한 참여가 있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에 대해서는 당당하게 질문했다. 미국에서도 '겁이 없다'라고 친구들이 이야기할 정도로 대담하게 도전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갔다.
대학시절에 배우는 즐거움을 깨닫고 잠을 줄여가면서 공부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 교육의 지향점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게 사실이다. 고등학교까지는 대학입시를 향해 전력질주 하지만 대학에 들어간 후에는 학교와 전공이 자신의 미래를 책임져줄 것처럼 느슨해진다. 본격적으로 배움의 길을 가고 자신의 길을 찾아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많은 학생들이 방황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삶을 살아간다.
독서는 일입니다. 빡세게 하는 겁니다. 읽어도 되고 안 읽어도 되는 책을 그늘에 가서 편안하게 보는 건 시간 낭비이고 눈만 나빠져요. (144)
세상은 어느덧 경험을 소중하게 여기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대기업들은 성적 좋은 지원자들을 우선 뽑았습니다. (...) 기업은 월급을 줄 사원을 뽑는데, 평점만 보고 뽑는다면 기업의 미래를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180~181)
기성세대는 앞에 있는 키 큰 아이 너머로 다음 20년을 내다봐야 합니다. 그러면 40년을 내다봐야 하는데, 키 큰 아이 뒤에선 잘 볼 수가 없죠. 아이들은 20년만 내다보면 돼요. 아이들은 지금 그 20년 앞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어요.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이유를 묻지 말고 무조건 도와주는 겁니다. 제가 보기엔 그게 답이에요. (184)
우리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악착같이 찾아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대부분은 내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돼요. 내 길이 아니라는 걸 발견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되죠.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고속도로 같은 길이 눈앞에 보입니다. ‘이거다!’ 싶으면 그때 전력으로 내달리면 됩니다. (285~286)
둘째, 미국 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습량이 얼마나 많은 지 보여준다. 미국에서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수준을 한국에서 요구했을 때 '비현실적이다'라고 할 정도로 대학생들의 배움에 대한 태도가 느슨하다. 매주 한 권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쓴다는 자체도 엄청난 일일 텐데, 이 외에도 많은 참여와 토론을 요구한다. 잠을 줄이지 않을 수 없다.
대학교 2학년인 둘째 아들의 학교생활을 견줘보게 된다. 평일 아침을 시작하는 모습이나 주말에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면 미국 대학생들에게 요구되는 학습량을 따라갈 수 없다. 잔소리로 비칠 수 있기에 간접적으로 분발을 요구하며 책을 권하고 있다.
제가 미국에서 동물행동학 Ethology을 가르칠 때, 학생들은 수요일 저녁에 학교에서 동물 다큐멘터리를 봐야 했어요. 참석도 평가에 들어가고 소감도 써서 내야 했습니다. 매주 별도의 토론을 하고 그에 관한 글도 썼습니다. 거의 매주 책 한 권을 읽고 독후감도 제출해야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교수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이와 똑같은 일정을 요구했더니, 학생들이 ‘제정신이냐'라고 묻더군요.(...)
“미국에서 가르칠 때는 지금 요구하는 것의 두 배를 요구했고, 미국의 대학생들은 한 학기에 내 과목 같은 수업을 다섯 개 듣는다.” 미국의 좀 괜찮은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잠이 부족할 정도로 공부합니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카페에 가서 차도 마시고 친구도 만나고 게임도 합니다.
제가 가끔 강연할 때나 인터뷰에서 “대한민국 교육을 내 손에 쥐어주면 지금 우리나라 대학생들을, 속된 표현으로 오줌을 지릴 정도로 만들어놓겠다”라고 말합니다. (127)
셋째, 주젠이란 중국 유학생의 에피소드로 보는 중국과 한국의 미래 경쟁력이다. 주젠이 최재천 교수의 명성을 듣고 유학을 오기 전에 온갖 생물학 강의를 듣고 왔다는 점에서 놀랐다. 그리고 유학생활 중에 9개월간 한국어를 배워서 발표할 정도까지 도달했다. 2년 만에 논문을 썼고 그 논문을 세계적인 최고의 저널에 올렸다.
주젠과 같은 사람들이 중국에 100만 명이 될 거라고 추정한다.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 식으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스카이의 과잠바를 자랑스레 입고 다니지만 학습량은 저조하다. 의대 등 특정 직업이 성공의 상징인 것처럼 편중되어 있다. 미래의 먹거리를 만들 인력과 산업육성에 대한 정부의 관심은 정치에 파묻혀서 표류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10년 전에 중국 학생 한 명이 저와 공부하겠다며 유학을 왔습니다. 북경사범대학교를 졸업한 학생이에요. (...) 성적표를 보내왔는데 제가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생물학 수업을 다 들었어요. 무지하게 많이 들었습니다. (...) 오전에는 어학 수업을 듣는다고 했어요. (...) 한국어 수업을 들은 지 9개월 지난 뒤, 세미나에서 한국어로 발표했습니다. (...) 2년 만에 논문을 썼어요. 중국으로 돌아간 뒤, 그 논문을 쪼개서 저희 분야 최고 저널에 두 편을 냈습니다. (...) 그 학생 이름이 주젠Zhu Zhen이에요. (...) 저는 중국에 주젠 같은 학생이 적어도 100만 명쯤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나라와 지금 우리가 경쟁하고 있습니다. 대학생들에게 강연할 때 저는, 여러분들이 그 경쟁에서 이길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되지 않는다고 솔직히 말해요. (128~129)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은 일주일 전에 마감한다. 사람을 통해 배울 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최재천 교수가 학생에게 배운 점 중의 하나가 미리 하기다. 마감일에 쫓겨서 하게 되면 마음도 조급해지고 성과물의 품질도 저하될 수 있다. 마감 날짜보다 일주일 먼저 할 일을 마무리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틈틈이 교정하는 일을 통해 품질을 높인다고 한다. 마음에 여유도 생기고, 성과물을 질도 높아지는 방법이다. 개인적으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시간관리 방법이다.
제가 이 일도 하고 저 일도 하고 무슨 일에도 관여한다고 신문에 실리니까요. 저에게 다들 묻습니다. 도대체 그 많은 일을 하면서 어떻게 느긋할 수 있느냐고요. 제 답은 하나죠. 마감 1주일 전에 미리 끝냅니다. 마음에 엄청난 평안을 줘요. 결과물의 질을 높일 수도 있고요. 딱 한 가지 나쁜 건, 시간 관리가 된다는 자신감이 넘쳐 너무 많은 일을 수락한다는 겁니다. (104)
저도 제 글을 써놓고 읽습니다. 소리 내어 읽으며 어딘가 숨쉬기가 좀 불편하면 그 문장을 뜯어고쳐요. 물 흐르듯이 흘러갈 때까지요. 1주일 전에 탈고한 뒤 3~4일간 거짓말을 조금 보태면 한 50번을 고칩니다. 읽고 고치고 또 읽고 고치고 저장해요. (...) 읽어줄 만한 글이라고 생각할 때까지 하는 겁니다. (114)
국영수에 매몰된 산업화 시대의 교육을 여전히 하고 있는 우리의 교육 현실에 시사점을 던져주는 책이다. 학부모와 학생들이 이 책을 읽고 평생학습의 시대 자신의 길을 찾고 학습량을 높여서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가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생물학은 80억 인구와 1,500만에 달하는 생물 종을 다루잖아요. 그 안에 깃든 이야기는 무궁무진하죠.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서 ‘삶에 대한 태도가 바뀌는 공부'가 ‘진짜 공부'라는 생각이 듭니다. (71)
당신이 본 가장 아름다운 학교는 헝가리 시골에 있는데, 여러 학년이 한 교실에서 그룹별로 수업을 하면서 윗반이 아랫반을 가르쳐주며 서로 배우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칙센트미하이 선생님이 그 방식을 최고로 치는 이유는,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서로를 돌보는 보살핌을 발현시킨다는 점인데요. 학교에 오면 윗반 선배들이 아랫반 후배들의 외투를 벗겨주고 신발 끈을 풀어주고, 수학도 6학년이 4학년을 가르치고 5학년이 3학년을 이끌어준다고 합니다. 그럼 교사는 뭐 하느냐 물었더니, 판을 벌이고 그저 바라보면 되는 거래요. 교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아이들의 호기실을 자극하면서 서로 소통하게 하는 거니까 그만으로도 충분하다고요. (44~45)
저는 십몇 년째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 다니며 하루를 시작하는데요. 저에겐 딱 알맞은 정도의 운동이에요. 매일 아침 걷기는 온몸을 깨워요. 당연히 두뇌도 활성화되고요. (217)
https://bandiburi-life.tistory.com/2491
독서습관 716_최재천의 공부_최재천&안희경_2022_김영사(230416)
■ 저자 1: 최재천
평생 자연을 관찰해온 생태학자이자 동물행동학자. 서울대학교에서 동물학을 전공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교에서 생태학 석사학위를, 하버드대학교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0여 년간 중남미 열대를 누비며 동물의 생태를 탐구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생명에 대한 지식과 사랑을 널리 나누고 실천해 왔다.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한국생태학회장, 국립생태원 초대원장 등을 지냈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며 생명다양성재단의 대표를 맡고 있다.
■ 저자 2: 안희경
재미 저널리스트. 세계에 부는 성찰적 기운과 대안 활동에 관한 글을 써왔다. 우리 문명의 좌표를 조망하기 위해 4여 년에 걸쳐 놈 촘스키, 재레드 다이아몬드, 장 지글러, 스티븐 핑커, 지그문트 바우만 등 세계 지성을 만나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문명, 그 길을 묻다> <사피엔스의 마음> 3부작 기획 대담집을 완성했다.
현대미술가와의 대담을 담은 <여기, 아티스트가 있다>, 리베카 솔닛, 마사 누스바움, 반다나 시바 등과 사회 구조와 삶의 전환에 대해 나눈 대담을 엮을 <어크로스 페미니즘>, 코로나19 시기의 모색과 인류의 미래에 대한 대담집 <오늘부터의 세계>, 이해인 수녀의 삶과 통찰을 담은 대담집 <이해인의 말>, 인류 문명 생존을 위한 10년 전략을 제시하는 기획 대담집 <내일의 세계>를 펴냈다. 샬럿 조코 백의 <가만히 있다>, 틱낫한의 <우리가 머무는 세상>, 사쿙 미팜의 <내가 누구인가라는 가장 깊고 오랜, 질문에 관하여>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에세이 <나의 질문>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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