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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715]채식주의자_영혜의 변화와 죽어감을 통해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 요구

by bandiburi 2023. 4. 9.

읽고 싶었던 책이었던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만났다. 아내가 정약용도서관에서 대출했기에 덕분에 냉큼 읽었다.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는'으로 시작되는 첫 문장부터 몰입해서 읽게 되는 책이다.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으로 나뉘어 각각이 단편처럼 보이지만 모두가 연결되는 줄거리다. '채식주의자'와 '몽고반점'의 마지막 부분은 너무나 극적으로 마무리된다. 그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독자의 상상을 자극하며 끝나기 때문이다.

영혜의 채식주의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남편과의 갈등, 가족들과의 갈등으로 전개된다. 왜 극단적으로 고기를 혐오하게 되었는지 그녀는 설명하지 못한다. 꿈 이야기를 할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채식주의자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고 사회적으로 용인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대부분의 음식에 육식이 포함되어 있다.

그렇게 그녀는 영혜의 운명에 작용했을 변수들을 불러내는 일에 골몰할 때가 있었다. 동생의 삶에 놓인 바둑돌들을 하나하나 되짚어 헤아리는 일은 부질없었을뿐더러 가능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생각을 멈출 수는 없었다. 만일 그녀가 그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마침내 거기에 생각이 이를 때, 그녀의 머리는 둔중히 마비되곤 했다. (192)

독자로서 영혜의 입장을 이해하기 힘들다. 어느날 갑자기 채식을 선포하고 가족들의 관계, 부부 관계보다도 우선이다. 자신의 손을 그을 정도로 목숨과도 같은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몽고반점'에서는 녹색의 식물에 친화적인 모습을 보이는 영혜가 등장한다. 단순한 채식주의자가 아니라 자연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언니의 남편과의 해프닝이 있지만 작가의 의도는 영혜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리고 마지막 '나무 불꽃'에서는 정신병동에 있는 영혜를 찾아가는 언니의 모습이 담겼다. 동생 영혜가 식음을 전폐하고 점점 한 그루의 나무처럼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본다. 영혜가 잔잔했던 삶에 큰 변화를 몰고 온 태풍이라면, 태풍피해를 고스란히 감당하는 것은 언니다. 언니는 삶을 복기하며 영혜의 운명을 복기한다. 인생에 '만약'이란 말은 있을 수 없지만 그녀는 '만약'을 되뇐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무엇을 주장하고 싶은 것일까 생각해 봤다. 타인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만을 고수하는 우리 사회를 비판하고자 한 것일까. 육식주의에 대한 비판일까. 모두 다 일 수도 있다. 아버지가 고기를 먹지 않으려는 영혜에게 따귀를 날리고, 억지로 입에 넣으려 하는 모습은 내세우며 힘으로 권력으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려는 사람들의 상징일지도 모르겠다.

재미있게 몰입해서 볼 수 있는 소설 <채식주의자>다. 마지막에 허윤진 씨의 해설은 또 하나의 소설처럼 다가왔다. 시간을 가지고 성찰을 요한다.

이 모든 것은 무의미하다. 
더 이상은 견딜 수 없다. 
더 앞으로 갈 수 없다.
가고 싶지 않다.

그녀는 다시 한번 집 안의 물건들을 둘러보았다. 그것들은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삶이 자신의 것이 아니었던 것과 꼭 같았다. (200)

세계의 경계에서 위태로웠지만 그래도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영혜와 달리, 언니로 아내로 엄마로 처형으로 딸로 복무해야 했던 그녀의 삶을 떠올렸다. 의식의 퓨즈가 나가는 편이 덜 고통스러운가, 의식의 퓨즈를 잇는 편이 덜 고통스러운가. 소설은 의식의 퓨즈가 서서히 끊어지는 이를 중심으로 진행된다고 읽힐 수도 있지만, 의식의 퓨즈를 끊고 싶어도 이을 수밖에 없었던 이를 중심으로 지체된다고 읽힐 수도 있다. (223)

사람들은 그녀가 왜 고기를 먹지 않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타인을 이해할 수 없을 때 그/녀를 그저 자연스럽게 움직여가도록 놓아주는 것도 이해의 방편 중 하나이다. 생각보다 타인의 습성과 문화에 대해서 이해하려 노력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채식주의자'는 사람들이 그녀의 행위를 이해하기 쉬운 속성으로 환원한 호칭에 불과하다. (231)


독서습관 715_채식주의자_한강_2016_창비(230409)


■ 저자: 한강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나 연세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 계간 <문학과 사회> 겨울호에 시가,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만해문학상, 이상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오늘의 젋은예술가상, 한국소설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재직 중이다. 

<채식주의자>는 "탄탄하고 정교하며 충격적인 작품으로, 독자들의 마음에 그리고 아마도 그들의 꿈에 오래도록 머물 것이다"라는 평을 받으며 한국인 최초로 2016 맨부커 인터네셔널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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