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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683]열세 걸음_문화혁명과 개혁개방 시기 자기를 잃어버린 중국인들의 삶

by bandiburi 2023. 1. 19.

어디에서 추천받았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도서관 읽을 책 리스트에 있던 <열세 걸음>을 만났다. 500페이지가 넘는 제법 두꺼운 소설이다. 책표지에 저자 모옌에 대한 소개글을 읽었다. 저자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문화대혁명(1966~1976)을 맞아 학업을 포기했다. 한창 무언가를 배울 나이에 농촌에서 생활하고 열여덟 살에는 노동자가 되었다.

세상을 경험하고 배우며 인생관과 세계관을 형성해야 할 시기에 문화적 퇴행을 경험했다. 그래서 저자는 지극히 가난했던 문화대혁명 시기와 등소평을 중심으로 개혁개방을 추구하며 자본주의를 도입하던 시기를 모두 경험하며 소설의 뼈대를 만들었던 것 아닐까 생각되었다.


팡푸구이가 교육을 생각하는 스승이 아니라 입시만 생각하는 선생으로 살아야 하고, 죽음 소동을 거친 뒤 성형을 통해 타인으로 살고, 그의 아내 투샤오잉은 러시아어 선생으로 살지 못하고 통조림 공장 노동자로 살며, 장츠추가 교단을 버리고 행상으로 떠도는 것은 표면적으로 보자면 개인의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사회에 강요당한 선택, 현실에 내몰린 나머지 어쩔 수 없이 하는 선택이다. 심지어 팡푸구이는 자신의 이름으로 죽는 것이 아니라 그의 친구 장츠추의 이름으로 죽고, 사람들은 장츠추의 이름으로 그를 추모한다. 팡푸구이는 이미 없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 소설은 억압적 현실에 내몰려 주체를 상실해 가는 인간들의 비극적인 변형기이다.

그런데 변형기이기는 하지만, 교사를 중심으로 한 지식인들의 변형기이다. 모예은 이 소설을 원래 1988년에 발표하였다. 중국 지식인들, 특히 교사는 마오쩌둥 시대는 물론이고 개혁개방이 진행되던 1980년대 중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사회의 변방으로 내몰렸다. 마오쩌둥 시대에 지식인들은 반동계급, '더러운 아홉 번째 계급' 취급을 받았고, 개혁개방이 추진되던 1980년대 중후반에는 돈과 상업주의 조류 속에서 주변으로 내몰렸다.

소설에서 다섯 식구가 한 칸 반짜리 집에서 살고 아이들은 방이 없어 벽장에 사는 곤궁한 처지는 교사로 상징되는 중국 지식인의 처지를 압축하여 보여준다. 소설 속 교사의 처지는 이념과 돈이라는 두 극단의 시대에 주변으로 내몰린 중국 지식인 계층을 상징하는 것이다. (559~560)


문화대혁명 (출처: flickr)

소설은 도입부부터 등장인물과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집중해야 했다. 두 부부가 중심이 되는 책이다. 같은 학교 물리교사인 장츠추와 팡푸구이다. 장츠추의 아내는 책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하는 장례미용사 리위찬이다. 그리고 팡푸구이의 아내는 러시아계 혼혈인 투샤오잉이다.

소설이 시계열에 따라 순차적으로 전개되지 않아 독자가 저자의 세계로 몰입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등장인물들에 대한 현실의 이야기인가 싶은데 어느 순간 상상 속에 들어와 있다. 소설인데 많은 이야기가 인용된다. 독자로서 수시로 길을 잃고 어디를 가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그만큼 독자가 몰입해서 보기 어렵고 피로감도 높은 책이다. 저자는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일까 수시로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공산당 지도자 모택동이 이끄는 대로 전 국민이 혁명의 세계로 들어가 실질적인 노동의 세계에서 열심히 일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지독한 가난이었다. 겉으로는 대단한 것처럼 선전하지만 실체를 들여다보면 결국은 거짓과 위선으로 덧칠해진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고 느꼈다.

여론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진실을 추적하거나 공격을 퍼붓는 습성이 있다 - 떠받들 때는 있는 대로 떠받들다가 때릴 일이 생기면 인정사정없이 때리는 것이다. 따라서 영예는 사람을 천천히 죽이는 독약이다. 적에게 대처하는 최선의 방법은 단 하나, 상대방을 치켜세우는 것이다! (...) 신문이나 텔레비전에서 방직공장에서 방추를 건져내려다 불에 타죽은 여공을 하늘 꼭대기까지 치켜세웠을 때, (...) 누구보다 먼저 주목받은 것은 물론 남편인 해방군 중위였다. (154)

장례미용사 리위찬이 죽었던 옆집 아저씨 팡푸구이를 자신의 남편과 같이 성형을 해서 학교로 보내는 부분은 '뭐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SF도 아니고 자신의 남편인 장츠추에게는 100위안을 주고 사업을 하라고 하고 같은 물리교사인 팡푸구이를 대리교사로 보낸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어디인지 모호하다. 특히나 독자는 '물리교사'라는 말이 나오면 장츠추의 이야긴지 팡푸구이의 이야긴지 혼란스럽다.

"죽은 사람이 뭐가 무섭다고 그래?" 장례미용사가 남편을 타박했다. "어우양산번 박사 말이 '삶과 죽음 사이에는 명확한 경계가 없다'잖아! 그렇다면 당신은 살아 있는 것처럼 보여도, 어쩌면 벌써 죽었는지도 모르는 거지. 사람들이 모두 팡 선생이 죽었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다시 살아났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193)

책 속에는 성적인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결혼한 여자지만 다른 남자와 성적인 쾌락을 즐기는 부분이 곳곳에 나온다. 남성 중심 사회에 대한 반발인지. 여성에 대한 성적 억압에 대한 반발인지 해석이 어렵다. 다만 남성과 동일하게 여성에게도 성적인 욕구가 있다는 점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측면은 긍정적이다.



맑고 우렁찬 음악이 너의 배 속을 돌아다녔다. 그것은 가정과 애정, 행복과 고통에 관련된 음악이었다. 그 음악은 직업이라는 쇠사슬에 얽매여 갇혀 살아온 수십 년, 생계의 무거운 짐에 억압당한 수십 년, 격동하는 사회의 소용돌이 속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던 수십 년 이후 처음 얻은 해방이었다. 처음으로 허리에 돈주머니를 차고, 처음으로 성(性)과 사랑의 바닷가 풍경을 본 중학 물리교사는 이제 우여곡절을 끝내고 진퇴양난의 모순된 심정을 진술하고 있었다. (349)


모택동 사상 선전_문화대혁명(출처:flickr)

학교가 운영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토끼 고기 통조림 공장을 운영한다. 팡푸구이의 아내 투샤오잉은 러시아어를 가르치는 교사를 하고자 하지만 토끼 통조림 공장에서 해체하는 작업을 하는 노동자로 일한다. 살아있는 토끼를 기절시키고 껍질을 벗기고 고기를 해체하는 과정을 설명한 부분은 잔인하면서 유튜브에서 봤던 소 도살장을 연상케 했다.

투샤오잉이 공산당 입당신청서를 제출하며 순식간에 급여도 오르고 관리자가 된다. 하지만 그녀는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한다. 그리고 장례미용사인 리위찬의 손에서 보기 좋게 꾸며진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며 아무리 만신창이가 된 시체도 예전의 모습으로 꾸며주는 장례미용사의 존재는 생사의 경계를 흐리게 한다.

학교 당 총지부에서 특별회의를 소집해 당신 문제를 논의했소. 팡푸구이 선생이 살아 있을 때, 그리고 죽은 후 학교에 이바지한 공로를 감안해, 또 당신이 공장에서 보여준 일관된 작업 태도를 감안해, 당 총지부는 당신을 제8중학이 운영하는 토끼고기 가공 공장 제1 공정의 현장 부주임 겸 상품판매촉진부의 부부장직을 맡기기로 결정했소.

회의석상에서 당신을 다시 교직에 종사하게 하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나는 교단에서 출세한 이는 없다고 생각하오. 나라 형편이 어려운 지금, 교육 사업을 계속해나가려면 학교마다 생산성 있는 사업으로 자구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현재 일하는 자리가 열 명의 교사보다 더 중요한 거요. (...) '여성 정치위원'이 입당신청서 한 장을 너의 손에 쥐여 주었다. (477~478)

투샤오잉은 아름다운 강물에 뛰어들었다. 사흘 후 그녀의 주검은 도시에서 30킬로미터 떨어진 모래사장에 걸렸다. (...) 투샤오잉은 세차게 타오르는 불길 속에 뛰어들어 국가 재산을 구해내려다 불행히도 희생된 걸로 처리되었다. 그녀의 시신은 '아름다운 세상'으로 보내졌으며, 그녀의 시신을 매만져준 것은 특급 장례미용사 리위찬이었다. 너는 특수한 기술로 그녀의 본래 모습을 완전히 복구시켰으며, 또 그녀의 가슴 위에 흰색 난초, 노란 국화, 초록색 모란, 그리고 또 그윽한 향기를 흩뿌리는 카네이션으로 된 커다란 꽃다발을 올려놓았다... (489~490)


참새 Sparrow (출처: Wikimedia Commons)

책의 제목도 '열세 걸음'이고 내용의 구분도 열세 개의 걸음으로 나눴다. 왜 '열세 걸음'일까. '열세 걸음'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책에서 잠깐 소개되는 참새에 대한 이야기에 실마리가 있다. 참새는 두 발로 뛰어다니지 한 걸음씩 다니지 않는다. 참새가 한 걸음부터 열두 걸음까지를 보는 것은 길한 것이지만 열세 걸음을 보는 순간 운이 반대로 작동한다고 한다. 처음 듣는 전설이다. 마지막 장인 '열세 걸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 기대를 하고 봤다. 하지만 마지막 페이지 마지막 글자는 '12'였다.

"아주 오래된 아름다운 전설이 하나 있어요. 참새가 한 걸음씩 내딛는 것을 본 사람이 있었대요. 참새가 병아리처럼 한 발 한 발 걸어가는 걸 보면 하늘에서 행운이 뚝 떨어진대요. 참새가 한 걸음 내디디면 횡재수를 안겨주고, 두 걸음을 내디디면 관운을 안겨주고, 세 걸음을 내디디면 여복을 안겨주고, 네 걸음을 내디디면 건강운을 안겨주고, 다섯 걸음을 내디디면 기분이 늘 유쾌한 상태를 누리게 되고, 여섯 걸음을 내디디면 사업이 순조로워진대요. 일곱 걸음을 내디디면 지혜가 곱절로 늘어나고, 여덟 걸음을 내디디면 아내가 잘하고, 아홉 걸음을 내디디면 이름을 온 세상에 떨치게 되며, 열 걸음을 내디디면 생김새가 멋지게 바뀌고, 열한 걸음을 내디디면 아내가 아름다워지며, 열두 걸음을 내디디면 아내와 애인이 화목하게 어울려 자매처럼 친한 사이가 된다는 거죠. 하지만 절대로 열세 번째 걸음을 보아선 안 된대요. 만일 참새가 열세 번째 걸음을 내딛는 걸 보았다가는 앞서의 모든 행운이 죄다 곱절의 악운으로 바뀌어 당신 머리 위에 뚝 떨어져 내린다지 뭐예요!(552)

우리는 묵묵히 그것의 걸음 수를 세기 시작했다. (...) 12 (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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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그는 인체의 기본 구조를 완전무결하게 다시 체험할 수 있었다. 가정의 음악이 다시 우렁차게 울리면서 감정이 나타났다. 갑자기 분필가루 냄새가 났다. 그 냄새가 얼마나 친근하고 고귀하게 느껴졌는지, 그의 눈언저리가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너는 분필가루로 지저분해진 입술을 문질러 닦으면서, 눈물이 글썽글썽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496)

그는 화가 나서 장례미용사에게 말했다. "나를 수술해 주시오! 내 얼굴을 돌려줘요!" 장례미용사는 멍하니 앉아 있기만 할 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535~536)

그는 어느 여학생의 필통에서 연필깎이 칼을 하나 찾아내어 유리창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며 깎아내기 시작했다고. 동작이 워낙 둔하고 서툴러 마치 러시아의 부엌데기 할멈이 썩어 문드러진 감자껍질을 벗겨내는 것 같았다고. 어떤 때는 거울 때문에 방향이 헷갈려 연필깎이 칼날이 우스꽝스럽게 헛나가기도 했다고. 그의 얼굴은 피와 살점이 뒤범벅되어 보기 흉하게 변했다. (549~550)

쉽지 않은 책이면서 집중해서 봐야 하는 책이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소설에 대한 '해설'이 있다. 마치 가뭄 속의 단비처럼 어렵게 읽은 내용을 시원하게 설명해 줬다. '개인이 더 이상 자기 삶의 주재자가 아니고, 주체란 없다'라는 문장이 이 소설을 잘 설명하고 있다. 국가에 의해, 권력에 의해, 돈에 의해 그리고 사회적 관습에 의해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결국은 비극적인 결말로 이어진다. 팡푸구이와 거의 아내 투샤오잉은 자살로 마무리한다. 장례미용사는 세 개의 금이빨로 대박을 꿈꿨지만 빼앗긴다. 장츠추는 사업으로 대박을 노렸지만 고생만 하다 자신의 제자와 가족조차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늙어버렸다. 열세 걸음을 모두 봐버린 사람들이 아닐까. 곱절로 악운이 찾아들었다.

하지만 그는 사실 죽은 게 아니다. 실신했지만 죽은 것은 아니었고, 동료들이 그를 장례식장으로 이송할 때쯤엔 이미 깨어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다시 살아날 수가 없다. 자신이 죽지 않았다고, 살아 있다고 외칠 수가 없다. 교장의 말대로 그는 마땅히 죽어야 한다. "그 도시 교사들의 생활 조건을 개선해 그들이 오래 살게" 하기 위해서 그는 의롭게 죽어야 한다. 그의 죽음은 교사들의 열악한 처지를 고발한 죽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작은 비인도주의와 큰 인도주의를 맞바꾸"는 일이다. 그렇지 않고 "팡푸구이가 다시 살아난다면 그건 반동"이 된다. (...) 목숨은 분명 자신의 것이지만 개인의 선택이란 없다. 분명 죽지 않았는데 대의를 위해 사회적으로는 이미 죽은 것으로 처리되고 존재가 박탈되는 상황은 충분히 엽기적이고, 이런 엽기적인 상황은 억압적인 전체주의 사회에 대한 상징과 다름없다. 개인은 더 이상 자기 삶의 주재자가 아니고, 주체란 없다. (557~558)

팡푸구이의 부인인 투샤오잉은 사범대학에서 러시아어를 전공한 엘리트다. 그러나 투샤오잉은 토끼 고기 통조림 공장에서 토끼가죽 벗기는 일을 한다. 이제 과부가 된 그녀는 공장에서 승진도 하지만 공장 작업 주임과 밀애를 나누다 들켜서 결국에는 자살한다. 그런가 하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팡푸구이는 장츠추 대신 물리교사 일을 하지만, 자신을 둘러싼 비극적 상황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결국 자살한다. 자기 얼굴로 성형한 동료에게 물리교사 일을 시키고 자신은 장삿길에 나선 장츠추는 돈도 벌지 못한 채 유치장에 갇히기도 하고 범죄자로 몰리기도 하는 등 온갖 고초를 겪으며 귀신처럼 변해 떠돈다. 팡푸구이에게서 자신의 얼굴을 돌려받아 교단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끝내 그 꿈을 이루지 못한다. 다들 본래의 자신을 잃은 채, 자신이 아닌 남이 되어 비극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면서 파국을 맞는 것이다. (558~559)


독서습관683_열세 걸음_모옌_2012_문학동네(230119)


모옌 (출처: Wikimedia Commons)

■ 저자: 모옌 Mo Yan

중국 대륙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중국의 윌리엄 포크너, 프란츠 카프카로 불리며 2007년 중국 문학평론가 10명이 선정한 '중국 최고의 작가' 1위로 뽑힌 중국 현대 문학의 거장.

본명은 관모예. 글로만 뜻을 표할 뿐 '입으로 말하지 않는다'는 뜻의 '모옌'이라는 필명을 쓴다. 1955년 산동성 가오미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문화대혁명이 일어나자 학업을 포기하고 수년간 농촌 생활을 하다 열여덟 살에 면화가공 공장에 들어가 노동자로 일했다. 1976년 고향을 떠나 중국 인민해방군에 입대했고, 해방군 예술학원 문학과를 졸업했으며, 베이징 사범대학교 루쉰문학원에서 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1년 단편 <봄밤에 내리는 소나기>로 등단한 그는 1985년 발표한 <투명한 홍당무>로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7년 발표한 장편 <홍까오량 가족>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작품의 일부를 장이머우 감독이 영화 <붉은 수수밭>으로 제작해 1988년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 떠올랐다. 2000년 중편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가 영화 <행복한 날들>로 제작되면서 모옌과 장이머우 감독은 다시 한번 조우했다.

중국 다자문학상, 이탈리아 노니노 문학상, 홍콩 아시아문학상, 일본 후쿠오카 아시아 문학대상을 수상하고 프랑스 예술문화훈장을 받았다. 오랫동안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오르내리다가 마침내 2012년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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