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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682]시대를 훔친 미술⑥_민족주의 대공황 그리고 전쟁

by bandiburi 2023. 1. 19.

The Bus by Frida Kahlo 1929 (출처: Wikimedia Commons)

한국 사회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을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지식인과 정치인들이 있어 우려가 된다. 이 책의 저자가 잘 언급했듯이 식민지 근대화론은 침입자인 일본이 우리에게 주장하는 자기변명에 불과하다. 우리 민족은 스스로 발전할 능력이 되지 않기에 일본이 우리 땅에 들어와 발전을 도와줬다는 논리다. 말도 안 되는 스스로 저열한 민족이라고 자처하는 행위다. 

유럽 제국주의가 아프리카와 아시아,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로 삼기 위해 기독교를 앞세우고 나갔다. 하지만 그곳에서 신 아래 동등한 인간이 아니라 불평등한 인간으로 그들을 지배했다. 일본이 앞세운 것도 그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지 우리 민족을 위한 행위는 전혀 아니었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한국인들은 왜 그런 억지 주장을 하고 있을까 '왜'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그들은 일본과의 관계에서 깨끗한 것일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식민지 지배를 받은 민족들은 이중으로 질곡을 겪었다. 경제적 정치적 수탈과 더불어 지배를 받는 2등 국민으로 낙인찍힌 채 자존감의 훼손이라는 문화적 정신적 수탈을 당한 것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침입자의 죄책감을 덜어 주는 잘못된 논리였다. 식민지 건설 과정에서 유럽인들은 '야만'에 맞서 싸운다고 주장했지만 유럽인들의 방식이 '더 야만적'이었다. (454)

멕시코 여성 화가 프리다 칼로(1907-1954)는 멕시코혁명의 아이였다. 실제로는 1907년생이지만, 자신이 멕시코혁명이 일어난 1910년도에 태어났다고 주장할 정도로 멕시코혁명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그녀의 초기 작품 <버스>는 혁명 이후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사회적 관계와 해결책에 대한 암시를 동시에 보여 준다. 그림 중심에는 아이를 안은 인디오 여인이 있고, 그 오른편에는 인디오 원주민 혼혈계인 노동자와 가정주부가, 왼편에는 돈주머니 든 백인과 젊은 백인계 혼혈 여인이 앉아 있다. 어린 소년이 내다보는 창밖에는 상징적인 멕시코 풍경이 펼쳐진다. 한쪽에는 문명화되지 않은 광활한 멕시코의 자연이, 다른 한쪽에는 매연을 내뿜는 외국계 자본의 공장이 서 있다. (...) 실제로 눈썹이 짙은 독특한 외모의 프리다 칼로 역시 유대계 독일인인 아버지와 인디언과 스페인 혈통이 섞인 메스티소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455)

엘리자베스 키스 <Lady with a child> (출처: Wikimedia Commons)

키스는 '과부'라는 제목으로 한국 여인을 그렸다. 마루 끝에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초연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여인은 일제에 끌려가 온갖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서 풀려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몸에 아직도 고문당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얼마 전 남편을 잃은 이 여인은 삼일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애국자 아들을 두었다. 화가는 이 여인의 '타고난 기품과 아름다움'에 깊이 매료된다. 모진 고초를 겪었음에도 그녀의 표정은 평온해서 원한에 찬 모습은 아니었다. 짧은 체류였지만 키스가 눈으로 확인한 것은 독일의 게슈타포보다도 잔인한 일본 경찰의 악행이었다. 그녀는 한국인에 대한 자기 관념이 '치밀하게 계획된 일본의 악선전'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465)

연작 대단원에 해당하는 <슬라브 찬가>는 슬라브 민족이 지나온 역사와 미래를 담고 있다. 그림 한가운데 강한 기운으로 치솟듯이 등장한 젊은이는 신생 슬라브 국가를 의미한다. 젊은이는 무지개에 둘러싸여, 예수에게 축복받고 있다. 그는 자유와 화합의 화환을 전 인류를 향하여 내밀고 있다. 중앙에는 고난을 이겨 내고 독립한 여러 슬라브국과 동맹국들의 깃발이 펄럭인다. 한 소녀가 작은 손으로 슬라브 전체와 인류의 미래 세대를 위한 희망의 빛을 지켜 내고 있다. 민족주의자이자 프리메이슨 단원이었던 무하의 민족주의는 협소하지 않았다. (473)



이 신여성들은 왈가닥을 뜻하는 플래퍼 Flapper라고 불렸다. 변화하는 여성상에 대한 부정적인 쥐앙스가 담긴 용어 플래퍼는 19세기풍 요조숙녀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은 짧은 치마를 입고, 담배를 입에 물며, 재즈에 맞춰서 몸을 흔들고, 성에 대해 개방적인 사고를 품은 여성들이었다. 1922년에 창간된 잡지 <플래퍼>는 플래버 품을 더욱 가속화했다. (483~485)

그랜트 우드 <아메리칸 고딕> 1930 (출처: flickr)

그랜트 우드가 그린 <아메리칸 고딕>은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은 한눈에 보아도 너무나 미국답다. 발상은 그림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하얀 집의 창문에서 시작되었다. 미국 중서부 지방의 아담한 농가에 뜬금없이 유럽 중세 때 유행하던 고딕식 창문 장식이 등장한 것을 재미있게 생각해서 우드는 작품을 시작했다. 그의 여동생과 단골 치과의사가 모델이 되어 주었다. (489)

철저한 미국식 개인주의 전통에 입각한 후버는 만인은 스스로 도와야 하며 개인의 가난을 정부가 구제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후버 행정부는 대량 실업, 기아, 노숙자 문제를 양산하고 방치한 무능한 정권으로 인식되었다. 풍요와 번영의 자리에는 이제 빈곤과 절망이 자리 잡았다. (492)

미국의 경제 대공황 시기를 타개한 것이 뉴딜 정책이었다고 배웠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저자는 얘기한다. 결국 미국의 경제를 다시 살아나도록 한 것은 전쟁이었다. 2차 세계대전으로 미국의 군수산업이 활황이 되며 경기가 좋아졌다는 점은 처음 알게 되었다. 미국도 후버 행정부가 집권했지만 대공황 이후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패했다. 무능한 정권으로 자리매김했다. 

2023년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떤가. 경기가 침체되고 글로벌 경제구도가 재편되고 있다. 급성장하는 경제대국 중국과 경쟁하는 산업의 후퇴가 명확해지고 있다. 사회적인 불평등은 심화되고 있다. 정부와 정치가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시기다. 새로운 정부가 2022년 취임했다. 급변하는 세계에서 선진국 문턱에 진입한 우리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그리고 사회적 갈증이 줄어들고 국민 모두가 최저 생계를 보장할 수 있는 복지국가가 되기 위해 정치가 중요하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군수산업으로 호경기가 찾아올 때까지 실업 문제에 대응할 만한 뾰족한 해결책은 제시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뉴딜 정책이 보인 한계였다. 그래서 일부 경제사학자들은 미국 경제를 '전쟁 경제'라 주장하기도 한다. (497)

1936년 스페인에서는 광범위한 좌파 연합인 인민전선 측이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잡고 공화정부를 구성했다. 그런데 국민이 뽑은 공화정부를 무시하고 프란시스코 프랑코(1892-1975)를 주축으로 하는 군부가 그해 7월 쿠데타를 일으켰다. 프랑코는 선거에서 겨우 0.7퍼센트를 득표해서 참패했던 파시즘 정당인 팔랑헤당을 모태로 군소 우파 정당들을 통합해서 통합 팔랑헤당을 재조직했다. 쿠데타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공화정부를 수호하려는 국민들은 의용군을 조직하여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프랑코와 파시스트들은 흔히 두 종류의 무기를 사용했다.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스페인의 영광스러운 과거를 찬양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를 극대화했다. 파시즘을 신봉한 팔랑 헤다의 깃발에는 '절멸의 화살'이 새겨져 있었다. (507)

살바도르 달리 <삶은 강남콩이 있는 부드러운 구조물: 내란의 예감> 1936 (출처: flickr)

1936년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 Salvador Dali, 1904-1989는 매우 특이한 그림을 하나 발표한다. <삶은 강낭콩이 있는 부드러운 구조물: 내란의 예감>은 긴 제목 속에 '내란'이라는 단어가 분명히 명시되어 있어 주목을 받았다. 그림 속 인물은 지독한 분열과 해체를 겪고 있다. 그의 손이 가슴을 쥐어뜯고, 가슴에서 자라 나온 발이 그의 둔부를 밟고 있다. 이 분열과 해체는 타자가 아니라 자신을 상대로 행해져 있기 때문에 고통이 더욱 숨 막히게 중층화된다. 고통은 백주에 공공연하게 숨길 수 없게 드러난다. 발치에는 구더기 같은 부드러운 삶은 강낭콩이 있다. 밝은 하늘 천진하고 부드럽고 모든 것에 무관심한 듯 태연한 주변 사물들 때문에 인물의 고통은 더욱 구제할 길 없어진다. 그리고 그해 질제로 내전이 발생했다. (509)

흑백으로 그려진 이 그림은 마치 고야 만년에 그려진 '검은 그림'의 현대 버전처럼 게르니카의 습격을 끔찍한 악몽으로 표현했다. 화면 한가운데 날카로운 광선을 쏘아 대는 전등이 등장한다. 전등은 스페인어로 bombilla인데, 이는 또한 bomb(폭탄)을 떠올리게 한다. (513/516)



"당신의 아들이 전사했습니다." 1914년 10월 30일 케테 콜비츠는 아들의 전사 통지서를 받고 오열했다. 1차 세계대전 발발과 더불어 자원한 둘째 아들은 전쟁터에 나간 지 두 달 만에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 겨우 열여덟이었다. 전쟁의 참화는 침략국, 피침략국을 가리지 않고 청춘도 누리지 못한 젊은이들과 아들을 앞세운 불행한 부모들을 만들었다. 케테 콜비츠는 늘 가난하고 소외받은 사람들의 슬픔과 절망을 굳건히 그려 온 예술가였다. 그러나 아들의 죽음으로 그녀는 더 이상 똑바로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꺾여 버렸다. 그녀가 절망을 딛고 일어서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들이 죽고 십 년이 지난 1924년 그녀는 일곱 개 목판화로 구성된 <전쟁> 연작을 완성한다. 전쟁 동안 희생된 젊은 병사와 부모, 과부 등 전쟁 피해자들의 고통을 그린 작품이다. (523)

1935년에는 악명 높은 뉘른베르크법이 제정되어 유대인의 정치적 권리를 박탈하고 유대인과 비유대인의 결혼이 금지되었다. 1937년 나치 주도로 열린 퇴폐예술전에서 샤갈은 자화상은 "유대인의 삐뚤어진 영혼을 보여 주는 작품"이라는 설명서가 붙은 상태로 전시되었다. 작품뿐만 아니라 화가의 목숨조차 위협받는 절체절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531/533)

마르크 샤갈 <하얀 십자가> 1938 (출처: flickr)

1938년에 샤갈이 그린 작품 <하얀 십자가>는 수정의 밤 직후에 그려졌다. 그림은 수정의 밤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행해진 유대인 학살과 학대를 고발한다. 그림 왼쪽에는 붉은 깃발을 든 공산당들에게 유대인들이 추방당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1881년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가 암살되었다. 암살범은 유대계 지식인이었고, 이때부터 러시아에서 유대인 박해는 노골적으로 변했다. 스탈린 통치 아래에서 많은 유대계 러시아인들은 샤갈처럼 고향을 떠나야 했다. (533)

1942년 1월 20일, 수정의 밤 학살을 주동했던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아돌프 아이히만 등을 포함한 나치 고위 간부 열다섯 명이 베를린 근교 반제에서 명칭도 무시무시한 "유대인 문제에 대한 최종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한 회의"를 열었다. 반제 회의 Wannsee Conference에서 이들이 내린 결론은 끔찍한 것이었다. 1100만에 이르는 유럽 거주 유대인 전체를 절멸하기 위한 계획이 수립되었다. (539)

<시대를 훔친 미술>은 여러 사람에게 강력히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모든 페이지가 주옥같다. 책에서 남기고 싶은 그림과 글들이 많아 여섯 편에 걸쳐서 나눠 정리했다. 나 스스로 기억하고 싶은 내용들이다. 몇 번을 읽어보며 그림과 그림을 그린 화가, 그리고 화가가 살던 시대를 알아가는 시간이 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세계관과 역사관이 넓어지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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