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블랜더 거실
독서습관

[682]시대를 훔친 미술 ②_반종교개혁과 바로크 미술 및 황금시대 네덜란드

by bandiburi 2023. 1. 15.

Conversion of Saint Paul by Caravaggio 1601 (출처: Wikimedia Commons)

  • 종교개혁으로 개신교의 등장에 대응한 가톨릭의 바로크미술

책의 내용 속으로 들어갈수록 조금씩 다음 그림은 어떤 역사적 사건과 관련되었을까 기대를 하며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종교개혁의 단초가 된 교황 레오 10세의 면죄부 판매에 대한 루터의 반박문은 인쇄술의 발전과 더불어 빠르게 전파되었다. 교회 중심에서 개인 중심의 신앙으로 변한다. 왕권신수설을 기반으로 한 절대왕정이 무너지고 국민국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여전히 가톨릭은 웅장한 바로크미술을 통해 권위를 유지하려 한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빠르게 퍼져 나갈 수 있었던 것은 구텐베르크의 활자 혁명 덕분이었다. 개신교가 문자를 선택했다면, 가톨릭은 미술의 강력한 힘을 다시 불러냈다. 가톨릭의 반종교개혁은 17세기 바로크미술의 원동력이 되었다. 교회의 권위와 영광을 드높이는 화려한 바로크미술이 꽃피게 된 것이었다. (127)

유럽 주요 국가들이 신교와 구교로 나뉘어 끔찍한 피를 흘린 삼십년전쟁(1618~1648)은 마지막 종교전쟁이었다. 전쟁이 종결되면서 채택된 베스트팔렌조약(1648)이 유럽 국가들의 국경을 현재와 유사하게 확정 지었고, 그 결과 절대왕정과 국민국가의 등장이 본격화되었으며 세속화 경향이 두드러졌다. 데카르트, 몽테뉴, 파스칼 같은 철학자들은 자신들의 저서로써 근대철학의 등장을 알렸다. (...) 이 시대는 일견 모순적이고 역동적인 문화 형성 속에서 근대 문화의 기틀이 놓이던 때였다. (128)

The Triumph of Saint Ignatius by Andrea Pozzo 1685~1694 (출처: Wikimedia Commons)

웅장함과 비현실적인 우주적 역동성으로 관람객을 압도하는 것, 즉 이성적으로 설득하기보다는 종교적 열정을 체험시키는 것, 이것이 반종교개혁기 바로크미술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139)


  • 공동체 이익을 위해 종교와 신분을 초월한 단합된 시민의 힘이 네덜란드 독립의 원동력

스페인의 일부였던 네덜란드가 어떻게 독립하게 되었는지 그림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개신교와 가톨릭을 믿는 신앙의 갈등도, 귀족과 시민들의 신분 갈등도 없었다. 스페인의 진압에 대응해 모두가 힘을 다해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했다. 결국은 독립을 쟁취했다. 그리고 네덜란드는 어느 절대왕정 국가보다도 빠르게 개방적이고 자유롭고 낙천적인 강소국가로 발전한다. 세계로 무역 범위를 넓혀가며 그것이 여권 신장의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네덜란드 독립의 원동력은 자신들의 이권보다는 공동체 이익을 위해 기꺼이 헌신했던 귀족들과 종교를 초월하여 단합한 시민들이었다. 시민들은 교역에 종사하는 동시에 자신들의 조국을 스스로 지키고자 했다. 이 시기에 네덜란드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인물화 양식이 바로 집단 초상화다. (154)

The Shooting Company of Frans Banning Cocq and Willem van Ruytenburch by Rembrandt 1642(출처: Wikimedia Commons)

이 그림이 그려졌던 1642년은 여전히 삼십년전쟁이 벌어지던 시절이었다. 그림은 네덜란드 독립의 원동력이 된 통합의 힘을 잘 보여 준다. 키가 큰 프란스 바닝 코크 대위는 검은색 옷을 입고 전체 대원들을 이끄는데, 검은색 옷은 바로 네덜란드 신교도를 의미한다. 반면 그와 함께 민병대를 지휘하는 빌럼 판 루이턴뷔르흐 중위는 화려한 밝은색 옷을 입고 있는데, 이는 네덜란드 가톨릭의 상징이다. 이들은 종교적인 갈등을 초월하여 조국 수호라는 공통된 목표앞에서 단결한다. (157)

Marriage Portrait of Isaac Massa by Frans Hals 1622 (출처: flickr)

당시 무역을 위한 항해는 평균 6개월에서 일 년이 걸렸다. 동서양 간 교역은 네덜란드 시민들 삶의 디테일도 바꾸어 놓았다. 부인은 남편이 없는 기간 동안 가정뿐 아니라 회사의 주요 업무를 돌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가정 내에서 여성의 지위는 자연스럽게 높아졌다. 부부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부부 초상화는 비교적 여권이 신장된 네덜란드에서나 볼 수 있는 양식이었다. 서민적이고 낙천적인 시대 분위기를 잘 묘사했던 프란스 힐스의 그림 속에서 영리해 보이는 아내가 사람 좋아 보이는 남편의 어깨에 친구처럼 손을 얹고 있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 담긴 이 그림에는 점잔 빼는 위선도 없고, 어떤 위계를 설정하려는 의도도 없다. 그저 주어진 삶의 즐거움을 그대로 느끼고 표현하고 있다. (171)

그들은 반기는 사람 없이 끊임없이 세계 전역을 돌아다녔고, 각 지역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속속 알려졌다. 지식은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살아 움직였다. 새로운 정보에 대한 개방적인 자세가 바로 작지만 강한 나라 네덜란드의 기틀을 만드는 힘이 되었다. 열린 사회의 긍정적인 힘이었다. 물론 갈릴레오 갈릴레이 이후 구교도 국가들에서도 불과 몇십 년 안에 사정이 달라졌다. 과학이 더 이상 종교와 싸울 필요가 없어졌다. 실용이 낡은 관념을 이겼다. (178)


  • 한복을 입은 인물이 17세기 루벤스 작품에 등장한다

The Miracles of Saint Francis Xavier by Peter Paul Rubens 1618 (출처: PICRYL)

루벤스가 어떻게 1617년, 1618년에 한복을 입은 사람을 그리게 되었을까 궁금하다. 1617년의 한복을 입은 사람을 스케치한 그림을 보고, 다음 해인 1618년에 그린 위의 그림에서 정 중앙에 황금색 한복을 입은 사람을 보며 놀랐다. 유럽 미술가들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조선의 모습이라니. 그만큼 세계 여러 곳을 탐험하며 무역항로와 식민지를 만들기 위한 국가 간 경쟁이 치열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본다. 그 과정에서 한국이나 일본에서 마주친 모습이었으리라. 

우리는 1617년에 그려진 루벤스의 놀라운 그림 한 점을 만나게 된다. 미국 게티 미술관에 소장된 이 작품의 제목은 '한복 입은 남자 Man in Korean Costume'다. 이 작은 드로잉에 그려진 젊은이는 다음 해 <성 프란치스코 사비에르의 기적>이라는 작품 속에 성인의 발 근처에 있는 황금색 옷을 입은 인물로 등장한다. 성 프란치스코 사비에르는 예수회 신부로 1549년부터 1551년 사이에 일본에 체류했다. 그림 속에서 상의를 벗고 등을 돌린 왜구의 모습도 볼 수 있는데, 루벤스는 일본 옆에 조선이 있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1617년 이 젊은 청년이 어떻게 플랑드르 지방에서 활동하고 있던 루벤스를 만났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166)

Vase of Flowers by Jan Davidsz de Heem 1660 (출처: PICRYL)

집을 팔고, 빚을 내어 튤립을 사던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어 길바닥에 내앉았다. 아름다운 꽃들을 보면서 정말이지, 인생은 한 방에 훅 간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물화는 아름다운 사물을 영원히 보존하고 싶은 욕망에 부응하는 그림이다. 그림 속 사물은 찬란하고 아름답다. 지나친 탐욕과 소유욕이 비극을 가져온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아름다운 정물화가 인생의 허무를 상징하는 바니타스 회화가 된 까닭이다. (182)

https://bandiburi-life.tistory.com/1769

 

시대를 훔친 미술 ③_미국독립과 프랑스혁명의 물결

영국이 왕정에서 입헌정치 체제로 발전 마그나카르타, 권리청원, 관용법, 권리장전과 같은 용어를 배웠지만 역사적 배경지식이 없이 시험을 위해 암기했던 씁쓸한 기억이 떠오른다. 미술작품을

bandiburi-life.tistory.com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