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로주점은 낭만이 아닌 독주로 노동자들 고단한 삶을 표현
책의 후반부에 역자가 설명한 해설이 <목로주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특히 '목로주점'의 프랑스말 '아쏘무아르'가 독주를 파는 선술집이라는 의미고, 책에서는 콜롱브 영감의 주점이다. 직접적으로 '목로주점'이란 용어가 사용되진 않았다.
이 소설을 관통하는 용어가 술이다. 노동자들은 술로 인해 하루하루의 고단한 삶에서 위로를 받았다. 하지만 중독되어 술 취한 주정뱅이는 자신의 삶을 파괴하고 가정도 파괴했다. 선량한 사람이 폭력을 일삼는다. 그리고 점차 죽음으로 다가간다.
<목로주점>의 원제는 '아쏘무아르(L'Assommoir)'이다. '때려눕히다, 머리를 쳐서 죽이다'라는 의미의 동사 assommer의 명사형 assommoir는 도살용 도끼 혹은 곤봉이라는 뜻인데, 비유적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는 돌발적인 사건'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아쏘무아르'는 당시 파리 벨빌에 있던 선술집 이름이자 노동자들 사이에서 싸구려 독주를 파는 주점이라는 의미로도 통용되었다. 이 소설 속에서는 이야기의 주요 무대인 콜롱브 영감의 주점을 가리킨다. (...) <목로주점>이라는 일견 낭만적인 주점을 연상시키는 제목을 고집한 것은 바로 그 '낭만성' 뒤에 숨겨진 삶의 아이러니와 이중성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341~342)
- 아내와 자녀에 대한 폭력과 학대의 현장
에밀 졸라가 묘사한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가정폭력과 학대의 심각성은 독자로서도 받아들이기 힘든 끔찍한 장면이다. 대표적인 것이 비자르가 자신의 부인을 발로 차서 며칠을 끔찍한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부분과 비자르가 엄마 없이 자리를 지키는 큰 딸 랄리를 뜨거운 동전으로 사악한 학대를 하는 장면이다.
어떻게 가족에 대해 잔인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배우자에게 그리고 자녀에게 아무리 술에 취한 상태라고 해도 짐승처럼 대하는 비자르는 당시의 비참한 노동자 가정의 일부분을 보여주고 있다고 본다. 하루하루 먹고살기 힘들다고 하는데 미래에 대한 생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생명이 붙어 있기 때문에 마지못해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처럼 보인다.
비자르가 부인을 발로 차서 죽인 거라고요.(...) 부인의 배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거든요. (...) 부인은 사흘 동안이나 몸을 뒤틀면서 끔찍한 고통에 시달려야 했어요... 아! 아마 노예선에 보내진 불한당들도 그 남자만큼 악한 짓을 하진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남편에게 맞아 죽는 여자들을 일일이 신경 쓰다보면 법이 할 일이 너무 많아지겠죠. 매일같이 맞고 사는 여자들한테는 한 대 더 맞고 덜 맞는 게 무슨 상관이겠어요. 안 그래요? 그런데도 그 불쌍한 여자는 자기 남편이 참수형이라도 당할까봐 거짓말을 하더라고요. 글쎄, 물통 위에서 떨어져서 배를 다친 거라면서... 그러고는 밤새 비명을 지르다가 죽었어요.(38)
열쇠없자는 또 다른 사악한 놀이를 생각해 냈다. 난로에 동전 몇 개를 뜨겁게 달궈서는 벽난로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랄리를 불러 빵 2파운드어치를 사 오라고 시켰다. 아이는 아무 생각 없이 동전을 집어 들었다가 비명을 지르면서 떨어뜨리고는 불에 덴 작은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비자르는 미친 듯이 화를 냈다. 자신이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렇게 행실이 나쁜 계집을 딸년으로 두었단 말인가! 이젠 돈까지 함부로 내팽개치다니! 그는 랄리에게 당장 돈을 줍지 않으면 엉덩이 껍질을 벗겨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머뭇거리던 아이는 첫 번째 경고로 따귀를 한 차례 세게 맞아야 했다. 그러나 눈앞에서 서른여섯 개의 촛불이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눈가에 굵은 눈물방울이 맺힌 어린 소녀는 아무 말 없이 동전을 주워 손바닥 위로 튀어 오르게 해 열을 식히면서 밖으로 나갔다. (165)
어린 소녀는 모든 것을 체념한 채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시선으로 그림을 자르고 있는 자신의 두 아이를 응시했다. 방 안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었다. 죽어가는 아이 앞에서 망연자실한 비자르는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았다. 아니, 이럴 수는 없다. 이건 너무나 가혹하지 않은가! 아! 이렇게 엿 같은 인생이 어디 있단 말인가! 정말 구차하기 짝이 없었다! 제르베즈는 비자르의 집을 뛰쳐나와 정신없이 계단을 달려 내려갔다. 삶에 깊은 회의가 느껴져 아무 승합마차에나 뛰어들어 그대로 바퀴에 깔려 죽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278~279)
- 에밀 졸라는 드레퓌스 사건에 대해 무죄를 주장했다
졸라는 훗날 또 하나의 민중 소설인 <제르미날>과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하며 대통령에게 보낸 공개서한 <나는 고발한다>를 발표하여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며 민중을 대변하는 작가이자 논객으로 명성을 떨쳤다. (350)
- 기생충과 같은 쿠포와 랑티에
소설에서 제르베즈가 남자 복이 참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기생충 같은 남편인 쿠포가 전 남자 친구인 랑티에를 받아들이고 나아가 세탁소 집 한 곳에 랑티에를 위한 방을 준비하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랑티에의 정체도 모른 채 받아들인 것이 화근이 되었다. 쿠포의 주정뱅이 생활에 동행이 생겼지만 랑티에는 독주를 하지 않는다.
랑티에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기생충과 같이 사람과 돈을 빼앗아 먹는 재주다. 쿠포와 제르베즈의 세탁소를 거덜 낸다. 그리고 세탁소를 개조해 고급 식품점을 운영하는 비르지니와 푸아송 부부에게 빌붙어 살다가 이곳도 망하게 만든다. 대단한 악역 랑티에다. 작가는 랑티에의 말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제르베즈에게만 초점을 맞춘다.
제르베즈는 '지친 몸을 누일 수 있는 깨끗한 방 한 칸'을 찾아 거처를 다섯 번이나 옮겨 다닌다. 봉쾨르 여관의 허름한 방(1~3장), 구제 모자와 이웃한 뇌브 가의 2층 방(4장), 그녀의 자랑이던 파란색 세탁소(5~9장), 세탁소를 잃고 들어간 공동아파트의 7층 방(10~13장), 그 방에서 쫓겨난 후 잠시 머무르다가 죽음을 맞이한 곳이 계단 밑 골방(13장)이 그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이자 영원한 거처가 된 장의사 일꾼 바주즈 영감의 작은 관(13장)에 고단한 몸을 누이게 된다. (356~567)
그런 와중에도 쿠포와 랑티에는 볼에 통통하게 살이 올라 있었다. 식탁에 죽치고 앉아 배를 가득 채우는 게 유일한 일상이 된 두 남자는 제르베즈의 세탁소를 거덜 내면서 그녀의 파멸로 살을 찌웠다. 그들은 더 많이 먹으라고 서로를 부추기면서, 디저트를 먹을 때는 배를 두드리면 음식이 더 빨리 내려간다면서 낄낄거렸다. (32~33)
사실 제르베즈는 랑티에 앞에서 자신이 주장하는 만큼 그렇게 용기 있게 행동할 수 있을 거라고는 확신하지 못했다. (...) 주변 사람들 모두를 기쁘게 하기 위해 자신이 바라는 것을 순순히 포기하고 그들의 뜻에 따라 살았던 과거의 전철을 밟게 될까봐 두려웠던 것이다.(43)
파국이 다가오는 것을 이미 감지한 랑티에는 집안에 돈이 씨가 말랐다는 사실에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자신의 모자를 챙겨서 잠자리와 먹을 것을 찾아 다른 곳으로 옮겨 가야 할 날이 다가왔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96)
- 완전한 타락이자 나락으로 빠지는 제르베즈
쿠포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며 제르베즈는 모든 것을 무덤에 함께 묻었다.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세탁소도 가족도 주변 사람들도. 다시 재기하고자 하지만 자신도 쿠포와 같이 독주에 빠진다. 그리고 점차 살이 오르고 나태한 생활로 접어든다. 사람들의 신망을 잃는다. 집안에 있는 물건들은 빵을 사기 위해 팔아버린다. 결국에 남은 것은 몸뿐이다.
며칠을 굶다가 거리로 나가 몸을 팔아서라도 먹을 것을 구하고자 한다. 그곳에서 구걸하려고 마주친 사람이 브뤼 영감이다. 불쌍해서 자신이 먹을 것을 주었던 그 영감처럼 자신의 처지가 나락으로 빠진 것이다. 이제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다.
제르베즈가 사람들이 버린 음식을 찾아다니는 모습은 그녀가 도달한 지경을 보여준다. 추위와 굶주림은 인간의 존엄성을 앗아간다. 생존이 우선인 것이다. 에밀 졸라는 지나칠 정도로 파리의 가난한 계층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게 자연주의라고 한다. 포토샵 처리를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렌즈로 보고 있다.
하지만 마르카데 가의 조그만 정원 묘지 구덩이에 남겨두고 온 건 쿠포 엄마뿐만이 아니었다. 너무나 많은 것이 그리웠다. 그녀는 자신의 삶의 한 부분과 세탁소, 가게 주인으로서의 자부심, 그리고 그 밖의 감정을 그날, 그곳에 묻고 온 것이다. 그랬다. 벽들은 텅 비어 있었고, 그녀의 마음 역시 그랬다. 그것은 완전한 파산이자 나락으로의 추락이었다. 몹시 지친 제르베즈는 할 수만 있다면 나중에 다시 자신을 추스르리라 마음먹었다. (132)
연장을 들 힘조차 없어 굶어 죽도록 방치된 가엾은 브뤼 영감은 그녀에겐 한 마리 개나 다를 바 없었다. 그는 쓸모없는 짐승과도 같아서 각 뜨기 전문 백정조차 그의 거죽이나 기름을 사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복도 반대쪽에 그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제르베즈는 가슴에 돌덩이를 얹어놓은 것 같았다. 신과 인간에게 버림받은 채 오직 자신의 몸으로만 연명하느라 어린아이처럼 왜소해진 노인은 벽난로 위에서 딱딱하게 말라가는 오렌지처럼 마르고 쪼그라들어 있었다. (157)
그날 밤 나나는 아주 아름다운 풍경과 마주했다. 주정뱅이 아비에 주정뱅이 어미, 먹을 거라곤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고 역겨운 술 냄새만이 진동하는, 신조차 버린 듯한 망할 놈의 집구석. 성녀라 할지라도 그런 곳에서 오래 머무를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젠 어쩔 수 없었다! 언젠가 그녀가 여기서 도망을 친다면 그녀의 부모는 메아 쿨파(내 탓이로소이다)를 외치면서 자신들이 딸을 밖으로 내몰았음을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223~224)
제르베즈가 매트리스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은 방구석에 깔아놓은 짚 더미에 불과했다. 그들의 침대는 하나둘씩 동네 고물상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261)
물러 터진 멜론이나 상한 고등어를 건지기도 했고, 커틀릿 같은 것은 혹시 구더기가 끓지나 않는지 자세히 살펴본 다음 가져왔다. 그랬다. 제르베즈는 그 지경까지 이르렀다.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들은 생각만 해도 역겨울 터였다. 하지만 그 까다로운 이들도 사흘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면, 배에서 보내는 신호에 얼마나 무심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들도 어쩌면 그들이 비웃은 사람들처럼 바닥을 기면서 먹을 것을 구걸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아! 불타오르듯 번쩍거리는 거대한 황금빛 도시 파리의 한 모퉁이에, 추위로 이를 딱딱 부딪치면서 주린 배를 움켜쥔 채 더러운 것들을 꾸역꾸역 집어삼키다가 죽어가는 빈민들이 존재하다니! (266)
- 제르베즈의 비참한 죽음
너무도 힘들고 굶주려서 비자르에게 죽음으로 데려가 달라고 했던 제르베즈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계단 밑 골방에서 죽었다. 아름다웠던 10대에 랑티에를 만났고, 쿠포와 구제라는 남자들의 구애를 받았던 매력적인 여자였다. 그리고 세탁소를 운영하며 자신의 작은 소망을 이뤘다고 행복해했던 여인이었다. 하지만 쿠포와 랑티에 시달리고, 목로주점 독주를 접하면서 삶이 변하고 타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한 여인의 일생을 담은 <목로주점>을 보며 19세기 중반 노동자 계층으로 여자의 삶이 어땠는지 잘 알 수 있었다.
로리외 부부의 표현에 의하면, 제르베즈는 조금씩 타락해 감으로써 죽음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복도에서 악취가 풍겼고, 사람들은 이틀 전부터 제르베즈가 보이지 않았음을 떠올렸다. 그리고 계단 밑 골방에서 이미 시퍼렇게 변해버린 제르베즈의 시신을 발견했다. (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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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681_목로주점②권_에밀 졸라_2011_문학동네(23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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