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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랜더 거실
독서습관

[682]시대를 훔친 미술 ①_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시기의 미술작품

by bandiburi 2023. 1. 14.
  • 좋은 책은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혀준다

박웅현이 <다시 책은 도끼다>에서 추천한 책 <시대를 훔친 미술>을 읽었다. 많은 그림이 소개되고 그림에 얽힌 당시의 역사의 흐름을 설명하고 있다. 미술, 역사, 지리, 문학, 음악 등 여러 학문으로 구분하여 배우지만 결국은 문화는 시대를 반영한다. 이진숙의 책은 우리가 배웠던 세계사를 다양한 미술작품을 감상하며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교실에서 배우는 세계사가 이런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얼마나 효과적이고 기억에 남는 시간이 될까 상상해 본다. 
모든 페이지가 주옥같은 의미를 담고 있고 독자에게 역사를 조망하며 시야를 확장시켜 주는 내용이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부분을 중심으로 몇 편으로 나눠서 포스팅한다.


  • 종교적 다양성이 공존하며 새로운 문화를 꽃피운 네덜란드

페르메이르는 위대함의 바탕이 되는 평범함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림 안의 모든 것은 만져질 정도로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러한 시선은 페르메이르가 활동했던 17세기 네덜란드에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절대 권력이 지배하던 다른 나라에서 시민들의 일상은 그려질 가치가 있는 것이 되지 못했다. 반면 신교와 구교의 갈등을 종식하고 모든 다양성의 공존을 인정하는 새로운 문화를 꽃피운 강소국 네덜란드에서는 시민들이 사회의 주역이었다. (33) 

Milkmaid by Johannes Vermeer 1658 (출처: Wikimedia Commons)
  •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완만한 변화

르네상스의 위대함을 강조하려는 사람들 탓에 중세와 르네상스 사이의 단절은 강조되고, 중세는 르네상스의 계몽적인 밝음에 대비되는 '암흑기'로 묘사되곤 한다. 마치 양자 사이에 확실한 단절이 있는 듯하지만, 사실 두 시기 사이에는 금을 긋기 어려울 만큼 느리고 완만한 이행 과정이 존재했다. (41)

Jeanne d'Arc by Jules Eug&amp;egrave;ne Lenepveu 1890(출처: Wikimedia Commons)
  • 백년전쟁의 영웅 잔 다르크, 하지만 마녀로 낙인되다

현실 정치가 롤랭은 이 과정에서 무시무시한 역사를 또 한 번 기록한다. 참회해야 마땅할 이 사건은 바로 잔 다르크(Jeanne d'Arc,1412-1431)를 영국에 팔아넘긴 일이다. 잔 다르크는 열일곱 꽃다운 나이에 신의 계시를 받아 영국군을 무찌름으로써 수세에 몰린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한 백년전쟁의 영웅이다. 그러나 아라스조약 체결 전 영국 편을 들고 있던 부르고뉴는 잔 다르크를 생포해서 영국군에게 팔아넘긴다. 마녀로 낙인찍힌 잔 다르크는 1431년 덧없이 사형에 처해진다. (50)

Benois Madonna by Leonardo da Vinci 1478(출처: Wikimedia Commons)

그녀에게는 '지금, 여기'의 행복이 중요하다. 차라리 성모보다 아기 예수의 표정이 진지하고 어른스럽다. 성모는 자그마한 들꽃을 들어 아기 예수에게 보여 주고, 아기 예수는 이런 자연의 일부를 과학자처럼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다. 과학자 같은 아기 예수의 표정 역시 중세적 관념에서는 절대 탄생할 수 없었다. 중세적 관념에서는 이 세상은 신의 창조물인데, 신이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을 이렇게 호기심을 품고 바라볼 리가 없다. 이는 자연을 호기심과 관찰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유형의 인간 표정이다. (79)


  • 메디치가와 교황 레오 10세의 면죄부 그리고 루터의 반박문은 종교개혁의 시작
Pope Leo X by Raphael 1518 (출처: Wikimedia Commons)

그러나 교황청의 업무가 그의 전부가 아니었다. 그는 사촌인 율리우스 추기경과 함께 피렌체에 있어서 메디치가의 영광을 부활시키고자 혼신을 다했다. 레오 10세는 자기 조카를 우르비노 공작자리에 앉히기 위해서 치른 엄청난 전쟁 비용을 교황청이 감당하게 했다. 교황청 재정은 악화되어 갔다. 사제직 매매가 노골적으로 이뤄졌다. 결정적인 패착은 면죄부 남발이었다. 
성 베드로 대성당의 건립 자금 조성을 위한 면죄부 판매는 1517년 시작되었다. 마르틴 루터는 레오 10세를 '지옥으로 떨어져야 할 적그리스도'라고 부르면서 면죄부 판매에 대한 95개 조 반박문을 발표하였고, 이에 교황은 1521년 루터를 파문했다. 이 사건은 종교개혁의 발단이 되었다. (98)

Martin Luther by Lucas Cranach 1529 (출처: picryl)

14세기에 이미 교황이 아비뇽에 유폐되고 여러 교황이 난립하는 혼돈기를 겪으면서 존 위클리프와 얀 후스 등이 교회 개혁에 대한 필요성을 주장했다. 바로 전 세대의 개혁 주장은 실패로 끝났지만, 루터는 성공할 수 있었다. 그의 주장이 공감을 얻으며 놀라운 속도로 퍼져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르네상스를 통해서 자라난 새로운 관념들과 인쇄술의 발전을 통한 매체 혁명 덕분이었다. (107)

Four Apostles by Albrecht Durer 1526(출처: flickr)

그의 말대로 중세 1000년 동안 유럽은 가톨릭의 날개 아래서 하나였다. 로마에서, 파리, 프라하에 이르기까지 같은 모양 성당들이 순례자들에게 문을 열어 주었다. 민족 개념은 아직 미약했고, 국경은 혼인과 상속, 전쟁으로 수시로 달라졌다. 중세 사람들에게 있어 신을 믿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종교개혁에서 비롯된 신앙의 다양성은 결국 '개인의 의견의 다원주의'로 귀결된다. 이로써 근대적 의미로서 개인의 탄생을 위한 한 걸음이 또 내디뎌졌다. (109)


  • 인쇄술과 서적의 보급으로 신앙의 개인화

각국의 언어로 성서가 번역되었고, 인쇄술 혁명 덕분에 성서가 광범위하게 보급되기 시작했다. 이전 시대에는 성경은 교회에서 사제의 낭독만으로 접할 수 있었을 뿐 직접 읽을 기회는 드물었다. 그러나 서적의 보급은 독서의 형태를 낭독에서 묵독으로 바꾸었으며, 개인적인 독서를 허용했다. 성서를 읽으면서 하느님을 확신하는 사람에게는 교황을 비롯한 교회의 복잡한 조직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110)

Ignatius van Loyola by Rubens (출처: Wikimedia Commons)

평생 열렬한 루터의 추종자로서 여러 점의 루터 초상화를 남긴 크라나흐가 그린 <설교하는 루터>는 변화한 종교 구조를 잘 보여 준다. 이는 루벤스가 반종교개혁의 상징인 성인 이그나티우스 로욜라를 주제로 그린 작품 <이그나티우스 로욜라의 환상>과 비교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루벤스의 그림은 가톨릭 교회의 질서와 위계를 잘 보여 준다. 여기서 성자는 군중들이 보지 못하는 어떤 환영을 바라보고 있으며, 그 아래 군중들은 신과 인간의 중재자 역할을 하는 성인을 바라본다. 반면 크라나흐의 그림 속에서는 설교하는 루터와 일반 신도들이 서로 반대편에 있지만 바라보는 것은 하나다.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것은 사제인 자신이 아니라 예수(믿음) 자체다. (113)
당시 바티칸, 영국, 신성로마제국은 종교를 둘러싸고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1533년 헨리 8세는 앤 불린과의 결혼을 위해 첫 번째 왕비 캐서린과 이혼하고자 하였으나 바티칸의 클레멘스 7세는 이에 동의할 수 없었다. 캐서린 왕비는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5세의 이모였는데 교황은 감히 카를 5세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수 없던 것이다. (...) 헨리 8세의 이혼과 재혼은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외교적으로 중요한 정치 사안이었다. 튜더왕조의 안정을 위해서 대 이을 아들이 절실했던 헨리 8세에게 이혼과 결혼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왕정의 왕권을 안정화하는 데 중요한 요소였다. (116~117)

The Sermon of Saint John the Baptist by Pieter Bruegel (출처: Wikimedia Commons)

이곳은 스페인의 감시와 박해를 피해 개신교의 추종자들이 모여들던 성밖의 숲 속이다. 우리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는 것은 정확하게 16세기 당시 '종교개혁 주창자'가 설교하는 장면이다. 이 그림의 중심인물은 세례요한이나 예수가 아니다. 브뤼헐이 애써 묘사한 것은 그 집회에 모여든 다양한 인간 군상이다. 이곳에는 사제들, 귀부인들, 가난한 농부들, 기적을 바라는 병든 사람들, 무기를 든 아시아인, 터번을 두른 터키인 등 16세기말 네덜란드에서 브뤼헐이 보았던 모든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당시 네덜란드에는 칼뱅파가 주도하는 많은 개신교도가 있었지만, 전통 가톨릭을 표방하는 스페인 펠리페 2세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 (122)
https://bandiburi-life.tistory.com/1768

시대를 훔친 미술 ②_반종교개혁과 바로크 미술 및 황금시대 네덜란드

종교개혁으로 개신교의 등장에 대응한 가톨릭의 바로크미술 책의 내용 속으로 들어갈수록 조금씩 다음 그림은 어떤 역사적 사건과 관련되었을까 기대를 하며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종교개혁

bandiburi-life.tistory.com


독서습관682_시대를 훔친 미술_이진숙_2018_민음사(230115)


■ 저자: 이진숙

서울대학교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러시아를 여행하다가 트레차코프 미술관에서 만난 작품들에 큰 감명을 받아 평생의 업으로 여겨 온 문학을 등지고 미술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모스크바의 러시아 국립인문대학 미술사학부에서 카지미르 말레비치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술 작품이 주는 각별한 감동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는 일을 삶의 과제로 생각하며, 다양한 강의와 글쓰기를 통해 '아름다움 함께 나누기'를 실천해 오고 있다. 

<중앙SUNDAY>, <매경 이코노미>, <조선일보> 등의 각종 매체에서 저자의 미술 칼럼을 읽을 수 있다. 지은 책으로는 <러시아 미술사>(2007), <미술의 빅뱅>(2010), <위대한 미술책>(2014), <롤리타는 없다 1,2>(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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