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졸라의 <목로주점>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이연실이 1981년에 발표한 노래 '목로주점' 가사를 생각하며 낭만적인 내용을 기대했다. 하지만 내용은 1850년부터 1869년 사이에 프랑스 파리의 노동자 계층의 가난한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마음 아픈 내용이다. 주인공 제르베즈의 소박한 꿈을 반복해서 보여주면서 노력하지만 결국은 비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자연주의 시각으로 여과 없이 보여준다. 번창하는 파리의 반대쪽에 공존하는 가난한 계층 속에 만연한 폭력, 음주, 매춘, 사기 등이 등장인물들 사이게 산재되어 있다. 기대와는 다른 내용이었기에 독서의 의미가 더욱 큰 시간이었다.
- 폭력과 음주가 일상인 가정에서 태어난 제르베즈의 탄생 배경
제르베즈의 아버지의 술 취한 모습은 당시의 노동자 계층의 일상적인 삶의 모습이자 그녀에게 대물림될 술과의 악연을 암시한다. 부모의 모습을 보며 폭력과 술을 멀리하고자 하지만 결국은 그녀 자신도 동일한 습관으로 빠져들고 그녀의 운명이 된다.
그녀에게는 소박한 꿈이 있다.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생리적 만족만 충족하면 된다. 먹을 것과 살 장소, 적당한 일, 그리고 결혼해서 맞지 않고 사는 것이다. 너무나 기본적인 꿈이지만 이렇게 언급한 것은 이런 작은 꿈조차도 현실에서 찾기 어렵다는 반증이다.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는 사람들이 많고, 누워 잘 깨끗한 방 한 칸 마련하기도 어렵고,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맞고 사는 것이 일상인 시대라는 점이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술이 억병으로 취해 돌아온 밤이면 팔다리가 부러질 정도의 거친 애정 행각을 벌이곤 했다는 얘기를 제르베즈에게 수없이 들려주었다. 그녀 역시 그런 날 밤에 만들어진 게 분명했다. 다리 한 짝이 덜 발달된 채로. (68)
"난 말이죠, 욕심이 많은 여자가 아니랍니다. 별로 바라는 게 없어요. 내 꿈은 별 탈 없이 일하면서 언제나 배불리 빵을 먹고, 지친 몸을 누일 깨끗한 방 한 칸을 갖는 게 전부랍니다. 침대, 식탁, 그리고 의자 두 개, 그거면 충분해요... 내 아이들을 제대로 키울 수만 있다면, 그래서 좋은 시민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말이죠... 또 하나 더 바라는 게 있다면, 그건 맞지 않고 사는 거예요. 내가 만약 다시 결혼을 한다면 말이죠. 그래요, 다시는 맞으면서 살고 싶지 않아요... 그게 다예요. 정말 그게 다라고요..." (71~72)
- 세탁소를 운영하며 소망을 이룬 제르베즈 인생의 정점!
랑티에와 동거를 하며 두 명의 아이를 낳았지만 그는 말없이 떠나버렸다. 그리고 쿠포의 구애를 받아들여 결혼했다. 행복해지고 말겠다며 열심히 노력해 무일푼에서 안정적인 세탁소를 운영하게 되었다. 이제는 배불리 먹고, 깨끗한 방과 멋진 남편인 쿠포와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녀의 삶에서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시기다.
그녀의 세탁소는 불쌍한 사람들의 안식처 역할을 했다. 전쟁으로 자식을 잃고 더 이상 노동을 할 수 없어 구걸하며 살아가는 브뤼 영감에게 먹을 것을 주고 따뜻한 장소를 제공했다. 이 부분은 후반부에서 가장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 브뤼 영감에게 그녀가 구걸하게 되는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최선을 다할게요. 저 때문에 문제가 생길 일은 없을 거예요. 결코, 절대로요. 전 반드시 행복해지고 말 거거든요... 어쨌거나 이젠 됐잖아요? 저 사람과 제가 힘을 합쳐서 잘 사는 일만 남은 거예요." (114)
어느 날 무일푼 신세로 거리로 나앉게 되었을 때 간절히 바랐던 것을 일을 하고, 빵을 배불리 먹고, 몸을 누일 조그만 방 한 칸을 마련하고, 아이들을 잘 키우고, 남자한테 맞지 않고, 자신의 침대에서 죽는 것이었다. 이제 그녀의 소망은 이루어지고도 남은 셈이었다. 그녀는 모든 것을 가졌고, 그것도 꿈꾸던 것 이상으로 가졌다. (221)
하지만 그녀는 상냥하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모두를 대했다. 밖에서 떨고 있는 불쌍한 사람들을 보면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그중에서도 과거에 칠장이로 일했던 일흔 살 노인에게 특별히 친절을 베풀었다. 그는 공동아파트의 지붕 밑 골방에 살면서 추위와 배고픔으로 조금씩 죽어가고 있었다. 크림전쟁에서 세 아들을 잃은 그는 더 이상 붓을 잡을 수 없게 된 2년 전부터 하루하루를 겨우 연명하고 있었다. 제르베즈는 몸을 덥히려는 눈 위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브뤼 영감을 보자마자 불러들여 난롯가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종종 빵과 치즈를 억지로 먹게 했다. (301)
- 기계화와 노동자의 소외 그리고 환경오염
19세기 중반 파리에서 노동자들의 힘이 점차로 기계로 대체되면서 노동자들이 받는 충격을 구제를 통해 잘 표현했다. 제르베즈 앞에서 자신이 누구보다 힘이 세며 물건을 잘 만들 수 있다고 자랑했던 구제다. 하지만 커다란 쇳덩이가 자신보다 더 쉽고 빠르게 만들어내는 것에 분노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에 체념한다. 일당이 급격히 감소한다. 12프랑에서 9프랑 나중에는 6프랑으로 떨어진다. 로봇과 인공지능을 채용하면서 자동화와 무인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일부 직업이 빠르게 대체되는 오늘날도 유사한 상황으로 생각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라지는 직업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새롭게 탄생하는 직업을 눈여겨봐야 한다.
또한 제르베즈의 세탁소 앞을 흐르는 더러운 물은 산업화를 통한 이익 창출에만 관심이 있고, 환경에 대한 관심이 전무했던 시대상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서도 경제 발전을 최우선으로 삼던 시절에는 하천 오염에 대한 관심은 적었던 게 사실이다.
제르베즈의 세탁소 앞에 흐르는 3미터짜리 도랑은 그녀에겐 마친 살아 있는 기이한 강물처럼 거대해 보였다. 제르베즈는 그 도랑의 물이 아주 깨끗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염색업자의 작업장에서 흘러나오는 염료는 시커먼 진흙탕으로 둘러싸인 도랑을 매번 다른 빛깔로 섬세하게 물들였다. (218)
구제는 특별히 나쁜 마음을 품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때로는 피핀을 집어 들고 이 거대한 쇳덩어리를 부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자신의 것보다 더 강한 팔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그를 분노케 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육체가 쇠로 된 기계와 싸워 이길 수 없음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고자 애쓸 때조차 그의 우울함은 커져만 갔다. 물론 언젠가는 기계가 노동자들을 모두 죽이고 말 터였다. 그 때문에 이미 그들의 하루 일당은 12프랑에서 9프랑으로 떨어진 상황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었다. (277)
- 남편 쿠포의 음주, 사악한 랑티에의 재등장 그리고 최후의 만찬!
세탁소는 잘 운영되는 듯 하지만 집세를 내고 구제 가족에게 빌린 돈을 갚아나가기도 벅차다. 그런데 남편 쿠포는 포도주만 마시던 사람이 독주를 마시기 시작하며 알코올 중독자로 변해간다. 성실하게 일하던 남편이 게을러진다. 점차 폭력을 행사한다. 선량한 구제 가족이 없었다면 세탁소를 이어가기 힘든 상황이다. 더구나 자신을 버렸던 랑티에가 조용히 등장한다. 그의 본성을 사라지지 않았지만 마치 대단한 사업을 하는 것처럼 사람들을 속인다. 제르베즈의 삶이 그로 인해 어떻게 변해갈지 암시하는 듯하다.
제르베즈의 생일을 맞아 음식을 풍성하게 차리고 사람들을 초대해 흥청망청 만찬을 즐긴다. 떠들썩한 분위기는 거리와 주변 건물에도 전해진다. 이런 모습을 랑티에도 보고 있다. 화려한 불꽃놀이처럼 제르베즈의 세탁소는 만찬을 끝으로 점차 망하는 길로 접어든다.
그녀는 구제의 일당이 12프랑에서 9프랑으로 줄어든 이후 지출을 줄였다. 젊었을 때 현명하게 살지 않으면 노년에는 굶어 죽기 딱 알맞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제 부인은 자신이 세탁물을 맡기는 이유가 오직 제르베즈로 하여금 빚을 갚게 하기 위함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예전에는 구제 부인이 손수 모든 걸 세탁했다. (282)
그런 쿠포의 모습은 저 위쪽에서 여자를 두들겨 패다가 지쳐 코를 골며 자고 있는 주정뱅이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자 제르베즈는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얼음장 같은 전율과 함께 이 세상 남자들과 자신의 남편, 구제 그리고 랑티에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자신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으리라는 절망감을 느끼며 비탄에 빠져들었다. (310)
배가 터져라 아귀처럼 먹어대는 모습들이라니! 입을 있는 대로 벌리고 턱에는 기름이 잔뜩 묻은 벌건 얼굴들은 풍족함으로 넘쳐나는 부자들의 엉덩이를 떠올리게 했다. (345)
https://bandiburi-life.tistory.com/1765
독서습관680_목로주점①권_에밀 졸라_2011_문학동네(230112)
■ 저자: 에밀 졸라 Emile Zola
1840년 4월 2일 파리에서 이탈리아계 토목기사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일곱 살 때 아버지가 폐렴으로 사망하여 어릴 때부터 극심한 생활고를 겪었다. 엑상프로방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1858년 파리로 돌아와 생루이 고등중학교에 입학했다. 졸업 후 대학 입학 자격시험에 두 번이나 떨어진 후 학업을 포기하고 아세트 출판사에 취직했다.
1865년 자전 소설 <클로드의 고백>을 발표한 이듬해 출판사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선다. 1867년 최초의 자연주의 소설 <테레즈 라캥>을 출간하였고, 이후 발자크의 '인간희극'에 영향을 받아 제2제정 시절 프랑스 사회를 총체적으로 그려내려는 목표를 세우고 '루공 마카르' 총서를 기획하였다. 총 스무 권의 연작소설로 이루어진 '루공 마카르' 총서는 1871년 <루공 가의 운명>을 시작으로 1893년 <파스칼 박사>로 완결될 때까지 22년에 걸쳐 출간되었다. <목로주점> <나나> <제르미날> <인간 짐승> 등 그의 대표작 대부분을 포함하고 있는 '루공 마카르' 총서를 통해 졸라는 자연주의 문학의 대표 작가로 자리매김하였다.
유대인에 대한 인종적 편견에서 비롯된 드레퓌스 사건이 일어나자 1898년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나는 고발한다>를 발표하여 행동하는 지성의 상징이 되었다. 이후 새로운 연작소설 <풍요> <노동> 등을 발표하며 말년에도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1902년 9월 29일에 파리에서 가스중독으로 사망하였고, 1908년 유해가 팡테옹 국립묘지로 이장되었다.
파리 하층민의 삶을 노골적인 언어로 적나라하게 묘사한 문제작 <목로주점>은 1877년 출간 당시 격렬한 찬반양론에 휩싸이며 엄청난 판매 부수를 기록했다. 플로베르, 공쿠르, 투르게네프, 알퐁스 도데 등으로부터 격찬을 받은 자연주의 문학의 걸작으로 1956년 르네 클레망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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