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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373]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_대한민국의 불편한 진실을 보는 책

by bandiburi 2021. 4. 4.

 

 

김누리 교수의 유튜브 강의를 통해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독일과 비교한 것을 듣고 많이 공감했었다. 마침 김 교수의 책을 고등학생인 딸이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읽었다. 기존에 강의에서 들었던 것 외에 편집되어 방송되지 않은 부분도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은 한국 사회의 불편한 진실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 사회에서 자라고 교육받고 직업을 가지고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독일에서 살던 입장에서 봤을 때 불합리한 면이 보이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여러 곳에 태그를 붙여가며 그렇지라는 말을 속으로 반복했다. 

우리가 정치의 민주화는 자랑할 만큼 잘했지만 그 외에 사회의 민주화나 경제의 민주화, 교육의 민주화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점은 마음 아픈 사실이었다. 특히 보수와 진보를 운운하며 민주당과 국민의 힘이 양당체제로 국회를 운영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면에서는 대동소이하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전에는 몰랐는데 우리나라의 거대 양당이 독일 기준으로는 수구와 보수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빈부격차를 해소하고, 노동자들을 위한 법을 만들고, 교육의 불평등을 해소하고, 과세제도를 개편하는 등 국민들이 살만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정치는 손을 놓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 기득권을 유지하는데 급급하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색깔의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마지막 부분에 독일 통일의 사례를 들면서 남한과 북한이 어떻게 통일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저자의 견해에 통일을 바라보는 생각이 구체화되었다. 언론에서 보도하는 것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점은 중요하다. 특히 수구 언론들이 분단 상태를 옹호하며 유지하기 위해 천문학적 통일비용이 들 거라는 일본 교토 통신의 보도를 그대로 전했다는 사실은 절망감을 준다. 독일의 통일이 경제적으로 앞선 서독 중심이 아니라 동독 중심이었다는 게 중요하다. 서로가 차이점을 존중과 배려로 이해하며 하나가 돼야 한다. 

참 좋은 책을 통해 정치와 교육, 통일에 대한 식견을 넓혔다. 청소년 뿐만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객관적으로 우리나라를 바라볼 수 있는 책으로 권한다. 아래는 김누리 교수의 생각 중에 공감이 가는 부분을 정리했다.

 

이탈리아 철학자 프랑코 베라르디(Franco Bifo Berardi)는 <죽음의 스펙터클>에서 한국 사회의 특징을 네 가지로 짚었습니다. '끝없는 경쟁, 극단적 개인주의, 일상의 사막화, 생활 리듬의 초가속화'가 그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꼭 지옥의 구성 목록처럼 느껴져 섬뜩합니다.-5페이지

한국인들은 정치의 광장에서는 부당한 국가 권력에 맞서 자기를 거리낌 없이 드러내지만, 일상의 공간에서는 공개적으로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지 못합니다. 말하자면 정치의 민주화는 어느 정도 이루었지만, 일상의 민주화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얘깁니다.-34페이지

한국의 대다수 사립대학에서는 여전히 재단 이사장이 총장을 임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은 사실 세계적 기준에서 보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한 나라의 고등교육기관에서 그 대표를 이사장 마음대로 임명한다? 이것은 야만 중의 야만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독일의 사례와 비교해 보면, 한국에서는 사회 민주화가 아직 멀고도 먼 미래의 일로 보입니다.-41페이지

나치가 기업 전체를 완전히 장악해서 삽시간에 전쟁 기업으로 전환시킬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보다도 노동자의 권력이 너무나 약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치즘과 같은 재앙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기업 내부에서 노동자의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지요. 결국 나치즘의 역사가 노사공동결정제의 탄생에 결정적인 구실을 하게 된 셈입니다.-45페이지

1968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그해 5월,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거대한 변혁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변혁 운동은 빠른 속도로 전 세계에 파급됩니다. 이 운동의 핵심적인 구호는 '모든 형태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말은 바로 '모든'이라는 말입니다. (중략) 우리를 옥죄고 있는 억압, 참으로 많지요. 유교적 윤리의 억압, 부모로부터의 억압, 여성에게 강제된 어떤 루틴들도 억압입니다. 육아도 여성에게 강제된 것이지요. 또한 자본주의로부터 비롯된 억압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지요. 왜 꼭 직업을 가져야 되지? 왜 꼭 돈을 벌어야 되지? 그런 강박관념도 일종의 억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4페이지

독일의 대학은 원래 등록금이 없었습니다. 등록금은 1946년부터 없어지기 시작합니다. (중략) 당시에 프랑크푸르트 대학을 다니던 칼 하인츠 코흐라는 학생이 위헌 소송을 제기합니다. '모든 국민은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라고 명시되어 있는 독일 기본법 규정을 들어 헌법소원을 낸 것이지요.-63페이지

독일 교육에서는 '적응'보다 '비판'을 더 중시합니다. 기존의 질서에 대한 비판적인 안목을 기르는 것,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 이것이 독일의 비판 교육입니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청소년들이 굉장히 비판 의식이 강합니다. 선생님은 "내가 하는 말을 믿지 마라. 왜 그런 말을 하는지 그 배후를 의심해라. 비판적으로 사유해야 성숙한 민주시민이 된다'라고 가르칩니다.-67페이지

독일의 비판 교육은 사유 능력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삼기 때문에 학생에 대한 평가 방식도 우리와는 상이합니다. 우리처럼 사지선다, 오지선다 하는 '선다형' 문제는 없고, 단순한 지식을 묻는 '단답형' 문제도 거의 없습니다. (중략) 그것은 주입식 교육에 상응하는 평가 방식이고, 주입식 교육은 파시스트 교육의 전형이기 때문입니다.-69페이지

 

저는 한국 정치인 중 사회적 정의를 외치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한국 정치인들은 입만 열면 '경쟁력'을 말합니다. 국가 경쟁력, 기업 경쟁력, 교육 경쟁력 등 온통 외치는 것이 경쟁력입니다. 그런데 독일 정치인들은 거의 대부분이 '사회적 정의'를 중시하고, 사회적 정의를 이루기 위한 경쟁을 합니다. -72페이지

윤보선과 박정희가 대통령 선거에서 맞붙었을 때도 윤보선이 주로 겨냥한 것은 박정희의 좌익 전력이었습니다. '박정희는 빨갱이다'라고 공격한 것이지요. 그러자 박정희는 '윤보선은 부유한 기득권 세력의 자식이고, 나는 가난한 농민의 아들이다'라며 맞섰습니다. 자신이 좌익이 아님을 확실하게 입증해 내야만 했던 상황이었기에 베트남 전쟁이 터지자 미국의 파병 제안에 박정희는 제일 먼저 손을 들고 나섰던 것입니다. -89페이지

박정희는 베트남전쟁 파병을 통해 한국을 68 혁명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유리된 '예외 국가'로 만든 장본인일 뿐만 아니라 지역감정을 조장하여 한국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왜곡시킨 인물입니다. 그 밖에도 그는 강남 개발을 통해 정치자금을 축적하여 한국을 '부동산 공화국'으로 만든 원조 투기꾼이자, 일본군 장교 출신으로 대통령에 오름으로써 한국을 '과거 청산이 없는 나라'로 만든 친일파이고, 민주주의를 유린한 군사 쿠데타를 통해 30년간 지속된 군사독재 시대의 문을 연 독재자였습니다.-94페이지

한국에서는 법률가, 언론인, 교수가 과잉 대표되어 있습니다. 즉 의회의 대의 기능이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대의의 왜곡으로 인해 사회적 갈등이 의회 내에서 해결되지 못하고, 자꾸 의회 밖으로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98페이지

저는 이따금 86세대가 정치 민주화를 넘어선 실체적 민주화를 왜 이루어 내지 못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곤 합니다.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한 것으로 미루어 보건대, 86세대는 그런 총체적 민주화까지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회 민주화, 경제 민주화, 문화 민주화는 아직 그들의 머리에 '도착'하지 않은 것입니다.-102페이지

한국 사회에서 소비주의는 도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세요. 온통 소비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소비를 해야 일자리가 생기고, 경제가 발전하고, 잘 사는 나라가 된다는 논리가 우리 사회를 전일적으로 지배하고 있습니다. 어디에서도 생태적 상상력, 환경 윤리 의식을 찾을 수 없습니다. 소비주의와 물질주의 논리만이 전면적으로 지배하는 참으로 놀라운 사회입니다. -111페이지

독일의 교육개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민주주의 최대의 적은 약한 자아"라고 했습니다. (중략) 이 말이 옳다면 약한 자아를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는 민주주의를 할 수 없다는 얘기지요. 민주주의를 하려면 구성원 하나하나가 강한 자아를 가진 성숙한 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니까요. 저는 이 말을 통해 한국 민주주의가 왜 취약한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113페이지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을 읽어보면 바로 이런 맥락을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 세계>라는 장에서 주인공 싱클레어는 처음으로 자신의 내면이 분열되는 것을 느낍니다. 싱클레어에게 악은 항상 자기 바깥에 존재하는 무엇이었습니다. 크로머라는 동네 불량배가 그에게는 악의 화신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악이 바로 자기 안에 있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리비도를 자각하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이때 슈퍼 에고, 즉 사회적 관습과 도덕이 자신의 리비도를 자꾸 악마화하니까 스스로를 악인으로, 죄인으로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116페이지

성에 대한 억압이 자아를 약화시키고, 약화된 자아는 권력에 굴종합니다.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바로 이 권위주의적 성격의 발생과 기능을 '자유'라는 이념의 맥락에서 조명하고 있는 탁월한 사회심리학적 분석서입니다. -117페이지

교육이 무엇입니까? 본래 교육, 즉 '에듀케이트(educate)'라는 말은 '밖으로(e-) 끌어낸다(duc-)'는 뜻입니다. 독일어의 '교육하다'도 의미가 똑같습니다. 고유한 재능은 사람 안에 이미 다 들어 있고, 그걸 끌어내는 게 교육이지 '지식을 처넣는 것이 교육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우리가 한국에서 배운 교육은 사실 반교육(anti-education)에 가깝습니다. -121페이지

지금 독일이 이렇게 부유하고 성숙한 사회가 된 것은 바로 그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최대한 자신의 재능을 실현할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편 한국은 너무도 많은 재능들이 발현되지 못한 채 사장되는 사회입니다.-125페이지

'노예 감독관이 내 안에 있다'는 통찰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상은 68세대의 '정신적 지도자' 허버트 마르쿠제의 사상입니다. 그의 저서 <일차원적 인간>은 68세대에게는 헤세의 소설 <황야의 이리>와 함께 성격처럼 여겨지던 '정전'이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자유인이 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노예 상태에 있으면서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환상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129페이지

그런데 사실 이 모든 것은 이 사회를 지배하는 자들이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일종의 변형된 지배 방식이지요. 폭력을 통한 지배에서 가치를 통한 지배로, 다시 상식이라고 불리는 '사물의 질서'를 통한 지배로, 지배의 역사가 변해온 것이지요. 이에 대해서는 에리히 프롬이 여러 책에서 상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131페이지

소외라는 개념은 원래 종교 분석에서 나왔습니다. 루트비히 포이어바흐(Ludwig Andreas Feuerbach)는 소위 헤겔 좌파에 속하는 사상가로서 종교를 일종의 '소외' 현상으로 보았습니다. 그의 명제는 간명하고 분명합니다.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만든 것이다'라는 거지요. 기존의 지배적인 학설인 창조설을 완전히 '전복'한 겁니다. 신이라는 존재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망과 소망, 좌절과 절망을 외부에 투사한 존재인데, 이 신이 인간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면서 어느 순간 낯설어지더니 마치 하나의 독자적인 존재인 것처럼 인간을 지배하고, 역으로 인간이 신을 경배하는 전도된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대상이나 현상이 본래는 '나'의 필요에 의해서 생겨난 '나'의 것이었는데, 이것이 점점 '나'로부터 멀어져 낯설어지더니 어느 순간부터 독립적으로 움직이면서, 이제는 역으로 '나'를 지배하고, '나'는 종속되는 전도 현상-이것을 소외라고 부르는 것이지요.-133~134페이지

한국에서는 소외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습니다. 우선 우리의 삶이 거대한 소외에 빠져 있음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식이 필요하고, 인식을 위해서는 독서가 필요합니다. 여기서 또 문제가 발생합니다. 한국인은 책을 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실질 문맹률이 OECD 국가들 중 가장 높다는 것을 아시나요. 실질 문맹률이란 사실상 독서를 하지 않는 비율을 뜻합니다. (중략) 인식과 성찰이 사회 문화로 자리 잡지 못한 공동체에서 소외를 극복하기란 불가능합니다. -135페이지

저는 '진보'란 정치적 좌우 개념을 넘어서 보다 넓은 의미에서 '고통과 억압에 대한 민감성'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겪은 고통과 억압을 보다 민감하게 느끼는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 좌파라는 겁니다. 이에 반해 보수는 대개 고통과 억압보다는 권력과 질서에 민감하지요. -137페이지

그럼 한국 사회는 왜 이런 지체된, 세계사의 흐름에서 유리된 사회가 되었을까요? 왜 세계적인 '예외 국가'가 되었을까요? 그것은 우리 사회가 거쳐온 독특한 역사적 경로 때문입니다. 식민 지배와 군정, 분단과 냉전, 내전과 반공주의, 군사독재와 민주화라는 격변의 역사 속에서 생겨난, 대한민국만이 거쳐온, 아주 독특한 역사적 경로가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분단체제는 지난 70년간 우리 사회를 아주 기형적인 사회로 만든 핵심적인 요인입니다. -141페이지

자살의 원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존적 고민이나 철학적 번뇌 때문에 자살을 택한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이를 테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주인공 베르테르처럼 실연의 아픔 때문에 자살을 한다거나, 키에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을 읽고서 삶의 허무를 자각하고 자살을 하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대부분의 자살은 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없어서,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몰려서 뛰어내린 경우들입니다. 엄격히 말하면 이것은 자살이 아닙니다. 저는 이를 명백한 '사회적 타살'이라고 생각합니다. -151~152페이지

한국 사회가 일종의 세습 자본주의로 굳어져 가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과거에는 기득권층이 돈과 권력을 독점했지만, 지금은 돈과 권력은 물론 '기회'까지도 다 독점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승자독식 사회가 된 것이지요. 강도가 점점 더 세지고 있는 학벌 계급화 현상도 심각합니다. 청년들, 그러니까 젊은 세대의 좌절은 대부분 이런 학벌 사회가 만들어낸 것입니다. -158페이지

전쟁의 난리통에 사람들이 떠나기도 하고 섞이기도 하면서 한국은 공간적으로 완전히 혼융된 사회가 되었고, 이스태블리시먼터가 완전히 해체된 공동체가 된 것입니다. 여기서 유례없는 평등지향적인 사회가 탄생한 것이지요. 한국이 오늘날 지독한 '학벌 사회'가 된 것은 이 계급 없는 평등의 공간에 학벌이 새로운 계급으로 등장했기 때문입니다.-159페이지

지금과 같은 끔찍한 사회 질서를 만들어낸 곳은 바로 '여의도'입니다. 여의도에 앉아 있는 국회의원들이 이런 사회 질서를 만든 장본인들이지요. 입법부에 속해 있는 300명가량의 국회의원들이 우리 사회를 운영하는 규칙들을 '법'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왔습니다. 그렇다면 이 국회의원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요? (중략)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 300명가량의 국회의원 중에서 290명 정도는 자유시장경제를 지지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현재 국회를 구성하고 있는 정당들 중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반대하는 정당은 정의당 정도입니다. -164페이지

그런데 우리는 실업을 개인의 탓으로 돌립니다. '네가 게을러서', '네가 공부를 안 해서', '네가 못나서', 이런 식으로 개인에게 모든 형태의 책임을 전가합니다. 그것이 바로 자유시장경제의 논리입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실업 문제는 사회의 문제입니다. 실업 문제는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을 돌리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 책임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에 있다는 것이 사회적 시장경제의 기본철학입니다.-168페이지

한국은 지금 보수와 진보가 서로 경쟁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이것은 한국의 기득권이 만들어낸 최악의 거짓말입니다. 사실 해방 이후 한 번도 보수와 진보가 경쟁한 적이 없습니다. 지금 한국의 정치 지형은 '보수'와 '진보'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수구'와 '보수'가 손을 잡고 권력을 분점해 온 구도입니다. 저는 이것을 '수구-보수 과두지배(oligarchy)'라고 부릅니다-172페이지

대한민국의 태극기(출처: pxhere)

보수주의자는 어떤 가치를 추구할까요? 보수가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공동체입니다. 개인보다 공동체를 중시하는 것이 보수의 첫 번째 특징입니다. 개인을 공동체보다 더 중시하는 쪽은 자유주의지요. (중략) 보수가 공동체를 중시하기 때문에 바로 가장 근원적인 공동체로서 민족을 중요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수주의자는 대부분 민족주의자인 거지요. 김구 선생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중략) 다음으로 보수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역사입니다. 전통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과거에서 배우려는 자세가 보수의 자세이지요. (중략) 또한 보수주의자들은 문화도 중시합니다. 세련된 언어를 쓰려고 노력하고, 품위와 품격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175~176페이지

 

지금 자신을 보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실 보수가 아닙니다. 그들은 수구입니다. 수구란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위하여 외세와 손잡고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하는 무리들입니다. 좋은 보수였던 김구 선생이 돌아가신 후 그 자리를 꿰차고 앉아서 보수를 참칭해 온 것입니다. (중략) 소위 '진보'라고 불리는 민주당 계열도 거짓 언어의 축복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습니다. (중략) 보수 언론이 진보라고 불러주면 진보인 척하는 세력입니다.-176페이지

복지국가란 정부가 충분히 재정지출을 통해 자본주의 시장이 초래한 실업과 불평등 문제 등을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나라이기에, 재정지출 규모를 보면 그 나라의 복지 수준을 알 수 있는 거지요. 유럽에서는 많은 나라가 대체로 50퍼센트 정도의 재정지출을 보입니다. (중략) 한국의 재정지출 비율은 놀랍게도 고작 25퍼센트로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낮습니다. -178페이지

고려대 김우창 명예교수는 한국 사회가 '오만과 모멸의 구조'로 되어 있다고 규정했습니다. 이 살벌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은 승자는 턱없이 오만하고, 패자는 너무나 깊은 모멸감을 내면화하고 살아간다는 것이지요. -179페이지

이들의 대립이 연극에 불과하다는 것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이들이 정말로 중요한 싸움은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재벌개혁을 어떻게 할 것인가, 노동자들을 '기업 살인'으로부터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세계 최고의 불평등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세계 최고의 자살률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어떻게 정의로운 과세를 실현할 것인가, 어떻게 아이들을 이 살인적인 경쟁에서 해방시킬 것인가, 어떻게 이 학벌 계급사회를 혁파할 것인가? 모든 국민을 고통스럽게 하는 이런 중요한 문제들을 두고 이들은 싸우지 않습니다. 두 정파 모두 현행 질서의 기득권이기에 현재의 상황에 두 정파 모두 만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81~182페이지

민주당은 역사적 시효가 끝난 수구 세력을 정치 무대에서 퇴장시키고 유능한 진보 세력에게 활동 공간을 열어주는 대신, 수구와 손잡고 낡은 정치 질서를 고수하겠다는 퇴행적인 의지를 분명히 드러낸 것입니다. -184페이지

정치를 통해 사회적 문제를 이성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장치가 마비된 사회에서 그 많은 사회적 좌절과 절망은 어디에서 출구를 찾을까요? 이런 절망적인 사회에서 번성하는 것이 바로 종교입니다. 미국의 경우는 이런 현상을 전형적으로 보여줍니다. -190페이지

미국 정치 (출처: ndla)

미국은 실로 세계적 차원에서 보면 표준적인 국가라기보다는 예외적인 국가입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미국 정치학회와 사회학회 회장을 역임한 미국의 대표적인 주류 정치학자 시모어 마틴 립셋(Seymour Martin Lipset)이 쓴 <미국 예외주의>라는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미국에는 왜 사회주의 정당이 없는가?'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책이지요.-192페이지

냉전체제는 군사 주권을 미국에 양도함으로써 한국의 국가 주권을 훼손했고, 극단적으로 우경화된 정치 지형을 조성하여 정치 구도를 기형화했으며, 재벌 독재의 경제 질서를 만들어 경제 정의를 파괴했고, 권위주의적 성격을 심어 한국인의 성격 구조를 왜곡했습니다.-199페이지

독일 통일 당시의 모습을 그린 영화 중에 <굿바이 레닌>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독일 통일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강력히 추천합니다. -211페이지

독일과 한국을 단순 비교하면서 엄청난 통일 비용이 들어갈 것이라고 과장된 허풍을 늘어놓은 쪽은 주로 일본 언론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특히 <교도 통신>은 '천문학적인 통일 비용'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었고, 이를 집중적으로 주도면밀하게, 또 악의적으로 퍼뜨렸습니다. 국내에서는 <조선일보>가 교도 통신의 기사를 받아 열심히 퍼 날랐고요. 그 때문에 통일 비용 문제가 한국에서 통일 논의의 중심이 되고, 반통일 정서를 확산시켰지요.-221페이지

초기에는 통일세에 대한 불만이 꽤 높았습니다. 이 무렵 '독일의 양심'이라고 불리는 작가 귄터 그라스가 입을 엽니다. 그는 서독 사람들에게 "착각하지 말라. 서독은 지금 동독에 시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다. 옛날 우리가 동독인에게 진 빚을 지금 갚고 있는 것일 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222~223페이지

독일 (출처: Wikimedia Commons)

귄터 그라스는 이런 상황이 장기화되면, 독일이 패권적 지위를 갖게 될 것이고, 그것은 독일과 유럽 모두에게 불행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거듭 경고했습니다. 통일 이후에 발표된 그라스의 소설 <무당개구리의 울음>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지금 독일은 히틀러가 탱크로 정복하지 못한 유럽을 경제력으로 정복하고 있다.

우리가 통일이 되면 가장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는 나라는 일본일 겁니다. 그래서 일본은 상당히 노골적으로 한반도 통일을 방해해 왔습니다. 이와는 달리 아주 흥미롭게도 한반도 통일에 상당히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나라는 바로 러시아입니다. -233페이지

우리에게 가장 큰 문제는 한반도를 둘러싼 열악한 지정학적 환경이 아니라, 정치인들의 빈곤한 상상력과 굴종적인 태도입니다. (중략)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너무나도 당연히 통일 한반도는 남한 사회가 확장된 형태가 되리라고 전제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는 대단히 위험한 생각입니다. -234~235페이지

남한 사회를 경험한 북한 주민들은 한결같이 '이곳은 사람이 살 곳이 못 된다'고 합니다. 탈북자들은 대부분 남한 사회에 와서 두 가지에 놀랐다고 말합니다. 첫째는 남한이 이렇게 부유한지 몰랐다는 것이고, 둘째는 남한 사회가 이렇게까지 비인간적일 줄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이런 그들의 모습은 한반도 통일의 길이 결코 순탄하지 않을 것임을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238페이지

이처럼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은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우리가 북한 주민들을 만날 때는 그들이 거쳐온 삶의 이력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인간의 삶은 모두 자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온 것이기에 유일무이하고 소중합니다. -240페이지

한반도 통일과 관련하여 남북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핵심적인 문제는 두 가지입니다. 북한의 권위주의적 사회주의를 어떻게 민주화할 것인가, 남한의 약탈적 자본주의를 어떻게 인간화할 것인가. 이 두 개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것이 바로 통일 사회가 가야 할 길입니다. -243페이지

우리가 핵심 당사자인데, 왜 미국 옆에서 촉진하고, 중재하고, 운전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 굴종적인 태도 때문에 미국은 한국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종속변수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기들 시키는 대로 하는 속국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것이 잘못된 생각임을 분명하게 깨우쳐 주어야 합니다. 한국은 미국의 종속변수가 아니라, 독립변수라는 걸 보여줘야 합니다. -250페이지


독서습관373_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_김누리_2020_해냄(21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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