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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독서습관285_타이완 작가의 지식폭에 놀라는 책_마르케스의 서재에서_탕누어_2017_글항아리(201024)

by bandiburi 2020. 10. 24.

 

 

■ 저자: 탕누어

본명은 셰차이쥔으로 1956년 타이완 이란에서 출생했다. 국립 타이완대 역사학과를 졸업한 후 줄곧 '직업 독자'를 자처하면서 독서와 독서 관련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전방위 인문학자이자 작가인 그는 '평생 문자에 관한 일에 전념하다 작고한' 원로 소설가 주시닝의 영향으로 모든 사물과 현상, 이름과 사조를 독서와 연관시켜 사유함으로써 새로운 인문학적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다. 문화비평가이기도 한 그는 주시닝의 딸이자 타이완대 역사학과 동창이며 '타이완의 프랑수아즈 사강'으로 불리는 소설가 주텐신의 남편인 동시에 허우샤우셴 감독 영화의 시나리오를 전부 쓰다시피 한 주텐원의 제부이고, 중국 소설가이자 영화평론가인 중아청과 시인이자 출판인인 추안민의 친구로서 이들과의 순수한 지적 소통을 통해 타이완 문화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권력이나 공리에 연연하지 않는 그는 네 명의 작가가 한집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책상이 없어 매일 아침 단골 카페로 출근해 커피 향기 속에서 오후 다섯 시까지 책일기와 글쓰기로 하루를 보낸다. 

주요 저작으로는 <문자 이야기>(한국어판 <한자의 탄생>)를 비롯하여 <세간의 이름들> <커피숍에서 14인의 작가를 만나다> <독자시대> <끝> <좌전> 등이 있으며 모든 저작이 중국 대륙에서도 출간되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 소감

회사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타이완 작가인 탕누어의 작품으로 책의 구성이 일반적인 것과 다르고 내용도 처음부터 조금은 어렵게 다가와서 집중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저자의 박식함이 초반부터 검은 글자로 쏟아져 나오며 소화하지 못했는데 하루 정도 지나니 조금씩 익숙해졌습니다. 

지리적으로 동서양을 넘나들고 시간적으로 구약시대, 그리스로마시대로부터 현대까지 저자가 책에서 언급한 유명한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만 해도 독자를 압도하는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기심이 많은 독자들에게 남미에 대한 관심, 수많은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궁금증을 키워주는 역할을 합니다. 

타이완 작가의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군데군데 언급되는 타이완 사회에서 교육에 대한 상황 등 간접적인 모습이 한국과 유사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아무래도 한자문화권의 언어를 번역하다보니 일상에서 사용하지 않는 용어도 가끔 보입니다. 추측컨데 번역가의 고심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책이 쉽지는 않습니다. 독서의 수준이 어느 정도 되고, 나름 독서의 스펙트럼이 넓은 분들이라면 소화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나 자신은 상대적으로 많이 부족함을 느끼며 저자와 같은 독서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읽고 블로그에 흔적을 남겨야겠습니다. 

■ 마음이 동하는 문장

49페이지) 우리가 모든 일을 알고 싶어하지 않을 때, 우리에게는 이 세계 전체가 존재하지 않고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 되고 만다. 결국 모든 책과 우리의 관계가 단절되며 우리는 더 이상 독자가 될 수 없다. 

61) 책을 읽는 이들은 세계와 눈앞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꺼지지 않는 호기심과 상상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호기심과 상상력은 지나치게 체계적인 것과 구체적인 것을 혐오한다. 

90) 칼비노는 사람들이 함수식으로 일대일로 단일하며 명확하게 문자의 풍부한 우언적 의미를 이해하는 것에 반대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한 번쯤 그의 명저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114) 늦게야 찾아오는 이해의 이 이상한 본질에 관해 나는 개인적으로 두 편의 소설을 예로 들어 설명한 바 있다. 하나는 로런스 블록의 냉혹한 탐정 소설 <칼날의 끝Out on the cutting edge>이고 다른 하나는 그레이엄 그린의 <패자의 독식Loser Takes All>이었다. 

117) 인간의 도리와 사회적 책임에 근거하여 나는 비교적 오에 겐자부로의 견해와 방법을 추천하는 편이다. 오에 겐자부로가 다음 세대 아이들을 위해 따뜻한 마음으로 쓴 책 <나의 나무 아래서>의 마지막 장인 '어느 정도 시간을 기다려보십시오'는 그의 간곡한 신신당부였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아이들에게 있어서 '기다리는 힘'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아이나 어른이나 생활 속에서 진정으로 어려운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이를 잠시 괄호 안에 넣어놓고 '일정한 시간' 방치해두었다가 나중에 다시 꺼내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한 다음에 다시 살아 있는 이 방대한 수기을 계산해보면 처음에 도망쳤던 문제와는 많이 달라져 있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기다리는 동안 때로는 괄호 안의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기도 하지요. (...) '일정한 시간'이 지나 괄호 안을 다시 살펴보았을 때, 문제가 그대로라면 이럴 때는 정면으로 부딪히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친애하는 어린이 여러분, 힘들게 '일정한 시간' 참고 견디는 과정에서 여러분은 자신이 더 많이 성장하고 건강해져 있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 저는 고등학교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의 시간을 이렇게 견뎌왔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이지요. 

120) 역사학의 난제가 어떤 인류학 보고나 신화로부터 새로운 실마리를 얻기도 하고 물리학의 중요한 깨달음이 소설 한 권이나 시 한 편 혹은 전혀 관련 없는 책의 한 구절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 문제를 괄호 안에 넣으면 정상적으로 독서를 지속할 수 있다. 독서를 꾸준히 하다 보면 예견하지 못한 계시나 유추와 이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나중에는 난제를 해결할 확률이 높아진다. 

128) 그렇기 때문에 소설가 그레이엄 그린은 우연성과 숙명성을 동시에 드러내는 아주 멋진 말을 남겼던 것이다. "한 사람이 나중에 어떤 인물로 자라게 되는지는 그 아버지의 서가에 어떤 책들이 꽂혀 있는지에 의해 결정된다."

133) 내 유년 시절의 계몽 서적은 영광스럽게도 베이징에서 자란 소설가 아청이 유년 시절에 읽은 것과 같은 책이다. 다름 아닌 헨드릭 반룬의 <인류 이야기>다.

138) 칼비노의 유명한 소설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는 결코 읽기 쉬운 책이 아니고, 독서의 출발점으로 삼기에도 적절하지 않은 책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일단 읽기 시작하면 아주 따스하고 부드러워 읽기 좋다는 느낌이 든다. 

144) 소설가 아청은 우칭위안의 바둑 인생을 정리하고 그의 생애를 그린 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각본을 쓰면서 그를 직접 몇 차례 만나기도 했다. 웬만한 일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 아청은 우칭위안 이야기를 하면서 몹시 흥분했다. "아주 멋진 노인이었어."

147) 장자가 정확하게 지적했듯이 특정한 형태를 부여받은 언어적 용기(호언: 음양의 변화에 따라 사물의 형태가 변함')라고 할 수 있다. 그 용기에 담을 수 있는 것은 무한한 세계의 아주 작은 '한 토막' 공간과 아주 짧은 '한마디'의 시간일 뿐이다. 게다가 형태가 있고 한계가 있는 이 '한 토막'과 '한마디'는 언어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 

171) 하지만 어쨌든 간에 시간의 부족이란 특정한 상황과 어떤 목적성을 전제로 하는 용어로써 어떤 일에 시간을 소비하고 어떤 일을 하다 보니 어떤 일들이 배제되는 상황을 말할 때 쓴다. 따라서 시간의 절대적인 결핍을 의미하기보다 가치의 배열과 선택을 의미한다. 

175) 하지만 책을 읽는 행위는 결국 무언가에 쫓기면서 여유가 없는 신경질적인 세계에서는 진행되기 어렵다. 독서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은 자유와 여유, 확장이기 때문이다. 

178) (사실 대부분의 사람이 정도는 다르겠지만 이처럼 단조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매일 출근하여 일하고, 퇴근해서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들면서 거의 머리를 쓰지 않고도 매일 그렇게 살아간다) 자신을 이처럼 터널 같은 단조로운 삶의 궤도에서 빼내야만 깊이 잠들어 있는 우리 사유가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179) 따라서 어떻게 하면 '경작'과 '수확'이라는 양단의 긴장관계에서 벗어나 독서 행위를 편안하게 하면서 마음 놓고 이해라는 푼돈이 차곡차곡 모여 큰돈으로 찾아올 날을 기다릴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독서 행위를 지속시킬 여부를 결정하는 관건이 된다. 

182)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오늘날 죽음을 두려워하면서 오래 살고 싶어하는 미국인들(특히 캘리포니아 주 사람들)이 하나같이 약을 먹고 헬스클럽에 다니는 등 필사적으로 양생에 매달리는 이상한 분위기에 휩쓸려 있는 것은 시의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사람에게는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한 가지 주요한 일'이 있고, 이를 통해 시간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주요한 일이란 아주 행복한 일이다. 이로 인해 삶이 약간 고달프긴 하겠지만 무게와 내용으로 가득 찬 존재가 될 수 있다. 

184) 보르헤스는 또 에머슨의 말을 인용하여 "도서관은 마법의 동굴로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이 가득하다. 우리가 그 안에 있는 책을 펼치는 순간, 죽었던 사람들은 다시 살아나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185) 먼저 마르케스의 경우를 살펴보자. 87세의 고령까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한 소설의 마왕인 그는 유럽 대륙의 풍부한 소설 전통을 계승했으며 콜롬비아를 비롯하여 라틴아메리카 전체에서 끊이지 않고 벌어졌던 전란의 고난을 대가로 전란의 고통으로 쓰러진 무수한 시체 더미 위에서 글을 써왔다. 이런 그가 평생 쓴 책이 얼마나 될까? <백 년 동안의 고독>과 <콜레라 시대의 사랑> <미로 속의 장군> <족장의 가을>같은 장편소설 몇 편과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았다>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등의 중편소설, <이방의 순례자들>을 비롯한 일련의 문집, (중략)

190) 또한 마크 트웨인과 함께 미시시피강의 수심을 측량할 수도 있고 허먼 멜빌과 함께 흰 고래 모비딕을 쫓을 수 있으며 톨스토이와 함께 난쟁이 나폴레옹을 죽일 수도 있다. 러디어드 키플링과 함께 인도 반도를 여행하면서 인간의 죄악을 씻어주는 부처의 강을 찾아볼 수도 있고 헤로도토스와 함께 지중해 연안을 순방하면서 문명의 첫 번째 서광이 비추는 대지를 찾아갈 수도 있다...

193)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대형 도서관을 지키는 박학하고 편집광적인 맹인 승려 호르헤는 보르헤스의 이미지를 이용하여 쓴 것임에 틀림없다. 

197) 그러니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자기 경험에만 의지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이번에 우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기억이다. 실바의 특이한 생각과 미래에 대한 자기 준비를 통해, 시기를 앞당긴 맹인의 생활과 목공 기술 연마를 통해 우리는 가슴에 깊은 인상을 갖게 된다. 또한 실명의 위험도 없었고 일찍이 아주 강인하고 유능했던 호세 팔라시오스의 거의 운명적인 비극에서도 우리는 깊은 인상을 얻는다. 

200) 사유에는 재료가 필요하다. 불을 땔 때 장작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다. 

206) 이것이 바로 항상 말하는, 거인의 어깨 위에 서서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다. 이 어깨는 기억으로 한 점, 한 방울씩 쌓아가게 된다. 

209) "네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기억하고 눈길을 한 곳에 멈춰 그 모습을 기억해라. 눈이 내릴 때의 산의 모습을 관찰하고, 푸른 풀이 돋아날 때의 모습을 관찰하고, 비가 내릴 때의 모습을 관찰해라. 가서 산을 느끼고 신의 냄새를 기억하며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산속 바위의 촉감을 탐색해라. 이렇게 하면 이곳이 영원히 너를 따라다닐 것이다. 네가 아주 먼 타향으로 가더라도 이 산들을 불러낼 수 있을 것이다. - 나바호족 관련

215) 예컨대 영화 <졸업>의 삽입곡 <침묵의 소리>를 작곡한 폴 사이먼도 알고 있다. 이 감독적인 노래는 이렇게 시작된다. "안녕 내 오랜 친구 어둠이여, 또다시 너와 이야기하러 찾아왔어. 조용히 들어온 환상이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씨앗을 남기고 갔거든. 그때부터 내 머릿속에 뿌리내린 환상은 지금도 여전히 침묵의 소리 안에 남아 있어."

216) 이리하여 보르헤스는 감동적인 실제 경험을 고백한 바 있다. 그는 강연 중 존 키츠의 14행시 <처음으로 채프만의 호머를 보고>의 끝 부분을 암송했다. 보르헤스는 이 시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기억을 불러일으킨다고 했다. 그는 처음으로 아버지가 큰 목소리로 이 시를 낭송하던 풍경을 떠올렸다. 

221) 마르케스는 자신은 기록을 하지 않고, 신체 이외의 기억 보조 장치를 이용하지 않고 글을 썼다고 말한다. 또다시 문자에 의지해야만 기억할 수 있는 것들은 진정으로 자신의 사유와 긴밀히 연결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 안에 저장할 수 없다는 것을 잘 말해주기 때문이다. 

227) 다름 아니라 유명 영화감독 빔 벤더스가 제작한 대단히 감동적인 다큐멘터리로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이다. 음악가 겸 음반 제작자로 활동하는 부자가 쿠바에 가서 현지의 음악 앨범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뜻하지 않은 아름다운 에피소드를 그리고 있다. 

236) 물론 20세기의 인물 가운데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신뢰하는 최고의 독서가인 벤야민과 보르헤스, 칼비노, 나보코프 등도 포함된다. 

237) 독서의 방법은 독서 행위 자체에 따라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터라 시기가 무르익지 않으면 말을 해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239)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를 독자의 심리와 행위, 절차, 독서의 과정에서 만나는 갖가지 곤경을 보여주는 아주 재미있는 책이라고 간주한다면, 소설 속에 나오는 너무나 심오하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 너무나 추상적이라 포착할 수 없는 부분, 심지어 허공에 걸린 우언처럼 과장된 부분들이 한순간에 전부 구상적이고 진실한 모습으로 다가올 수 있고, 심지어 직접적으로 매일 발생하는 분명하고 정확한 독서의 경험이 되어 우리를 놀라게 할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248) 플라톤은 만사사물이 제각기 기능을 갖추고 모든 과정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스파르타식 이상 국가를 만들기 위해 쓸모없는 신화를 전부 없애버리고 시인들을 전부 추방해버렸다. 진시황은 유용한 책들만 남기고 싶어 점술과 천문, 농업 기술 등 전문 기술에 관한 책들만 둔 채 나머지는 전부 불태워버렸다. 

249) 알베르토 망구엘이 <독서의 역사>가 바로 이런 식이다. 책 전체가 망구엘이 찾아놓은 역사 자료와 사진으로 시작된다. 

255) 그래서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선의에 기초하여 아주 지혜롭게 '제3세계'라는 이 모욕적인 호칭에 반대하면서 이를 순수한 이데올로기적 명칭으로 규정했던 것이다. 이른바 제3세계는 확실히 하나하나가 독특한 네이션nation이자 문화 전통이고 개인이기 때문에 뭉뚱그려 판단해서는 안 된다. 

263) 또한 <좀머 씨 이야기>는 앞당겨 죽음을 보고나서 유년의 행복에 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는 주제를 담고 있다. <콘트라베이스>도 아주 훌륭하다. 이 작품을 읽으면 저자가 얼마나 신기한 사람인지 알게 될 것이다. 

273) 전문성의 핵심은 문제, 그리고 문제에 직면하여 장기적으로 경험이 누적되고 검증되어 형성되는 효과적인 사유방식에 있다고 생각한다. 전문성이란 거대하고 절실하며 보편적이지만 피할 수 없는 거대한 문제에 대한 인간의 집중적인 탐구와 추적에서 비롯된다. 

275) 전문성의 부족은 사실 타이완 사회가 글로벌 첨단 정보에 대한 시차 없는 동보성을 추구하다 보니 가장 굶주리고 목마르며 가장 병이 많은 상태에서도 다른 사회보다 앞서려는 태도 때문이다. 

289) 모리스 메테를링크의 <파랑새>에 나오는 햇빛 속에서는 살아갈 수 없는 데다 잡으면 검은색으로 변해 죽는다는 이야기의 구상도 혹시 반딧불이에게서 착안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294) 밀란 쿤데라가 동유럽과 소련 세력의 해체와 망명생활의 종식에 따른 어색한 처지 등에 관해 쓴 소설 <무지>에는 언급할 만한 중요한 담론이 많이 담겨 있다. 

303) 우리에겐 지도해주는 선생님도 없었고 백과사전도 없었으며 쾌속으로 용해되는 답안도 없었다. 우리는 모든 의문과 몇 년 동안 함께 지내야 한다. 그리하여 무지가 상상력을 자극했고 우리의 상상력은 비약하지 않을 수 없었다. 

308) 나는 이런 식으로 아이들을 괴롭히는 주범이 바로 어른들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사람과 걱정, 모든 것이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는 선의의 거짓말을 이용하여 대자연이 억만년 동안 아이들에게 준 가장 중요한 선물을 빼앗아버렸다. 어른들이 진정으로 신경 쓰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불만과 걱정이다. 

315) 보르헤스는 만년에 종교에서 말하는 천당과 지옥은 과장된 주장으로서, 사람들을 그저 편안하게 해 줄 뿐임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아이들에게 어떤 책을 읽게 해야 하는지 고심하기 전에 먼저 자유롭고 여유있는 시간을 만들어줄 방법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322) 밀란 쿤데라의 <무지>는 내가 최근 몇 년 동안 읽은 소설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작품이다. 하지만 지금 타이완의 일부 젊은 소설가나 평론가는 이 작품에 대해 코웃음을 치면서 조롱하고 있다. 

327) 나는 일찍이 이를 해답으로 삼아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가 제시한, 어째서 인류의 모든 종교의 유토피악인 천국의 묘사는 이처럼 공허하고 전형 실체감이 느껴지지 않는 반면, 지옥과 관련된 모든 상상은 생동감이 넘쳐 사람을 거의 초죽음 상태로 몰고 가는 것인가 하는 더없이 정확한 질문에 호응한 바 있다. 

330) 니체는 예수가 만약 조금 더 오래 살아 자기가 이런 말을 했던 나이까지 생존했더라면 그 천진하고 고상하긴 하지만 엉성하기 그지없는 교의를 철회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체로 그의 생각에 부합하는 말이다. 

331) 1848년, <공산당 선언>을 발표했을 때 엥겔스의 나이는 겨우 스물여덟이었고 마르크스는 서른이었다. 현재 타이완에서 유행하는 연령분류학으로 말하자면 이 두 사람은 지금 타이베이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민국 60년대에 출생한 애송이들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338) 먼저 그레이엄 그린의 말로 운을 떼어보자. <조용한 미국인>이라는 소설에 이런 말이 나온다. "당신은 언젠가는 한쪽을 선택해서 서야 한다. 개인이 되고 싶다면 말이다."

351) 카리브 해의 파도가 닿는 국가들 가운데 그가 유일하게 싫어한 나라는 미국이었다.

354) 하지만 노벨문학상을 받은 다음에 마르케스가 어떤 글을 썼는지 돌이켜 생각해보자. 기묘하면서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 아니었던가. 이것이 그의 용감함의 결과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356) 공자는 사람이 가장 마음에 두어야 할 것은 자기 사후에 후세에 어떤 흔적도 남기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단히 날카로운 지적이 아닐 수 없다. 

363) "불경을 구하러 가는 길은 멀기만 하고, 보물은 다시 돌이 되었네." 현장법사의 구법여정을 기록한 <대당서역기>에는 이처럼 싸늘한 구절이 나온다. 아마도 여동빈의 일화에서 나온 구절일 것으로 추측된다. 

364) 이는 인간이 직접 자연과 마주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는 발터 벤야민의 말과 일치한다. 또한 소박한 시의 시대는 영원히 사라졌다는 시인 프리드리히 실러의 말과도 맞아떨어진다. 

366) 지혜가 소리를 잃은 것에 대해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참회록>에는 의도되지 않은 상태의 생동감 넘치는 기록이 남아 있다. 

371) 포퓰리즘은 더 이상 대뇌를 사용하지 않는, 영원히 파시즘에 대항하는 무정부주의의 타락한 형식이다. 포퓰리즘은 그 자체가 어리석고 게으르기 때문에 그 어떤 아름답고 훌륭한 것도 추구하려 하지 않고 아름답고 훌륭한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모이려 하지 않는다

378) (중략) 나는 고대 그리스에서 황금빛 털을 가진 양을 찾아 나선 아르고호와 대부분의 사람과 업무가 달라 자신만의 독특한 꿈을 꾸는 한 선원이 생각났다. 다름 아닌 아르페우스다. 그의 임무는 원정을 나가는 배 위에서 하프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381) 하지만 인간을 위하여, 유한한 존재인 자신을 위하여 우리는 신에게 이름을 부여하고 형상화하여 그를 사랑하는 것이다. 무한함은 인간의 인지 대상이 될 수 없다. (중략) 여기서 칼비노의 명저 <보이지 않는 도시들>의 일부를 소개해본다. (중략)

389) 적어도 죽음이 하나의 비극이었고, 벤야민의 말처럼 가장 공공연하게 드러낼 의미가 있는 중요한 일이었지만, 지금 우리는 그저 교체되고 지워지고 말소될 뿐이다. 

399) 반면에 우리는 약물과 헬스클럽, 러닝머신에 의지하여 죽음을 뒤로 미루고 있다. 지금이 인류 역사상 죽음을 가장 두려워하는 시대다. 너무나 좋은 삶을 살고 있고, 지켜야 할 것이 너무 많기에 죽기 싫은 것이 아니라 죽음의 두려움을 처리할 힘이 없기 때문이다. 

440) 마치 불경 아난의 '여시아문(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는 뜻으로 부처의 가르침을 그대로 믿고 따르며 기록한다는 의미)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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