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교수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책입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엽서>를 읽어볼 생각이었는데 마침 이 책이 한 사람의 삶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어서 먼저 읽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도스토예프스키와 같이 정치적인 상황으로 본인의 잘못도 아닌 이유로 '사형'을 받고 죽음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살아났습니다. 무기형으로 감형되었지만 자유가 없다는 면에서는 암담한 것은 동일했을 것입니다. 20년 20일을 억울하게 옥살이를 해야만했던 삶, 인생의 3분의 1을 차지합니다. 단순히 자유만 구속된 것이 아니라 많은 고문을 받고, 인간적인 아늑함과는 거리가 먼 옥중생활은 그의 몸과 마음을 얼마나 고단하게 했을까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는 생각이 절로 났습니다.
우리 현대사의 암울한 모습을 직접 경험했던 것을 출소후에 성공회대에서 자리를 잡고 글로 강연으로 좋은 영향력을 남겼던 사람 신영복 교수였습니다. 책장을 덮으며 살만해진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생각합니다.
빈부격차가 커지고, 나만의 이익을 위해 부와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기득권층을 유지하고 있고, 서민들은 부동산과 주식에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는 사회입니다. 우리가 진실을 추구하는 올곧은 삶을 살다 간 인생 선배들의 모습을 반추하며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려고 노력할 때 더욱 살만한 나라가 될 것이라 기대합니다.
책에서 남기고 싶은 문장들을 아래에 인용했습니다.
10페이지) 유대계 독일출신의 미국인 교육사상가 새뮤얼 울먼(1840~1924)의 산문에 <청춘>이 있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세월을 거듭하는 것만으로
사람은 늙지 않는다
이상을 잃을 때 비로소 늙게 된다.
세월은 흐르면서
피부에 주름을 남기지만
정열을 잃으면
영혼에 주름이 진다.
47)육사시절의 제자였던 김학곤 씨는 신영복의 강의 중에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석양에 난다."는 내용의 설명이 수십 년이 지난 세월에도 잊히지 않는다면서 "생각해보니 바로 선생님 자신의 현재 모습을 말씀하셨던 것이 아닌가 싶다."고 회상하였다.
57) 사람의 일생은 운명과 우연과 의지가 각 3분의 1씩을 작용하여 만들어진다고 말한 철학자가 있었다. 신영복은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인영을 맺고 생애 중 3분의 1의 삶이 혹독한 시련을 겪게 되었다.
69) 도스토예프스키는 후일 <백치>에서 이때의 심경을 어느 정치범의 얘기처럼 가탁하여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88) 신영복은 감옥생활을 일러 '대학시절'이라 불렀다. 러시아 작가 고리키의 작품 <나의 대학>을 읽고서였다. 정규대학을 못 다닌 고리키는 처참한 사회생활을 대학시절이라 호칭한다.
90) 사회의 안정과 질서를 유지한다는 목적으로 운영되는 수용소 교도소 정신병원 등의 시설은 표면적으로는 각각 복지 징벌 의료라는 기능을 수행하지만 그 속에는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다. 이 시설들은 민주주의와 법치라는 전제를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사회를 통제하려는 국가 권력에 의해 고안된 장치로, 자발적으로 내면적인 규제를 강요해 개개인의 욕망을 억압해 왔다.
94) 이해 11월 평화시장 노동자 전태일이 근로조건 개선 등을 요구하며 분신자살한 사건은 70년대 노동운동의 신호탄이면서 쿠데타 세력의 산업화정책에 대한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요구하는 '인간선언'이었다. 이로부터 굴종적이고 체념적이었던 저층사회의 노동자들의 권리의식이 싹트고 ~(중략)
108) 이구영은 조선조 중기 4대 문장가 중의 한분인 월사 이정구의 후손으로 젊은 시절 한때 벽초 홍명희와 위당 정인보로부터 사사를 받는 등 고전과 역사에 남다른 학식을 갖고 있었다. 출감 후 <호서 의병사전>과 자서전 <역사는 남북을 묻지 않는다> 등의 저술과 중국 여행기인 <연행만초> 등을 지었다. 신영복은 이구영과 대전교도소에서 4년여를 함께 지내면서 동양고전과 역사 등 폭넓은 학문을 배우고 토론하면서 '인생대학'을 충실하게 이수하였다.
122) 본 회퍼가 히틀러를 암살하려다 체포되어 나치스의 수용소에서 처형을 앞두고 쓴 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낙관은 주어진 상황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생명력이다. 남들이 포기했을 때에도 희망을 갖게 하고 절망을 이겨낼 수 있게 하는 힘이다. 미래를 포기해 비관론자에게 맡기지 않고 희망의 이름으로 미래를 손에 넣는 힘이다.
125) 서양 근대 감옥의 창시자라는 평을 받는 공리주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1748~1832)은 파놉티콘Panopticon을 창안한 장본인이다. 파놉티콘은 한 곳의 타워를 중심으로 주변부 모두를 감시할 수 있는 감옥의 구조를 말한다. (중략) 결국 근대 감옥은 지배권력이 대중화된 사회를 통제하는 정치의 일환으로 사용한 형벌 집행 시설이었다.
146) <평화신문>이 신영복의 옥중 편지를 연재한 것은 드레퓌스 사건을 폭로한 프랑스 에밀 졸라의 용기와 비교된다.
150) 유신과 5,6공 시절에 여러 차례 구속되었던 문익환 목사의 시 <내가 바라는 세상>은 수인이 없는 세상을 원한다. 신영복의 심경도 이와 같지 않았을까 싶어 시의 일부를 소개한다.
내가 바라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고 하면 별로 대단한 게 아니여
(...)
대천에서 썰물이 슬슬 빠지듯 감옥에서
사람이 하나 둘 슬슬 빠져나가고
되돌아오는 사람이 줄어드는 세상 말이여
(...)
(감옥에) 백기를 올리는
세상이 되었으면
더 바랄 게 없겠구만 말이여.
157) 성공회는 기독교의 한 교파로서 16세기 종교개혁 때 분리된 영국 성공회를 모체로 한다. 대한성공회는 영국 성공회의 한국교구로 1889년 주교 고요한 Corfe, C.J에 의해 설립되었다. 예배와 풍습은 가톨릭과 다르나 교리와 관행은 가톨릭적인 교회이다.
159) 오랜 수형 생활 직후여서 강단에 서기에는 여러 가지로 준비가 안 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사로 초청받은 것은 학문이나 사상보다는 인간의 삶과 고뇌에 무게를 두는 매우 인간적인 배려 때문이다.
161) 건물이나 규모가 옹색하기 그지없는 성공회대 관리자들이 신영복을 만나 영입하고, 그럼으로써 '뿌리 읽은 나무'와 같은 신영복이 이곳에 굵은 뿌리를 내리게 되고, 이 대학도 큰 성장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 대학은 건물이 인재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인물이 대학을 성장시키는 곳이다.
163) 이렇게 시장한 그의 고전 강의가 마침내 <강의>라는 책으로 엮여 나온 것을 보면서 나는 새삼스러운 감격을 맛보았다.
168) 동양고전에서 발견한 것은, 삶의 궁극적 가치는 '인성의 고양'이란 점입니다.
170) 고전 강독은 결코 과거로의 회귀가 아닙니다. 우리의 당면 과제를 재조명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오래된 미래Ancient Future>란 책을 알고 있지요.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Helen Norverg Hodge 교수가 인도 서북부 티베트 고원의 라다크에서 17년 동안 라다크 사람들의 삶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 책의 부제가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Learning from Ladakh'입니다.
173) (다이 호우잉은) 1970년대에는 창작과 별로 관계없는 일에 종사하다가, 1980년 이후 창작에 몰두, 중국 현대 휴머니즘 문학의 기수로 떠올랐다. 대표작으로는 <사람아 아, 사람아!>(1980) 외에 <시인의 죽음>(1982), <하늘의 발자국 소리>(1985) 등이 있는데, 이 세 장편은 당대의 중국대륙 지식인의 운명을 표현한 '3부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177) 비판적 지식이라면 루쉰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오직, 진실만이 내가 추구하는 가치다."라는 신념으로 치열하게 살다 간 리영희 선생도 루쉰을 무척 좋아하였다.
186) 끝으로 루쉰이 임종을 달포 가량 앞두고 유언장을 대신하여 집필한 <죽음>의 일부를 부기해 둔다.
1. 장례 때는 옛친구 이외에는 아무한테서도 절대로 돈을 받지 말라.
2. 빨리 묻어버리고 끝내기 바란다.
3. 추도식은 절대로 하지 말라
4. 나를 잊어버리고 너희들의 일이나 잘 보살펴라. 그렇지 않다면 너희들은 어리석다.
5. 남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은 가까이 하지 말고, 복수를 반대하고 인내를 주장하는 사람과는 친하게 지내기 바란다.
187) 신영복은 1993년 7월 일본 작가 나카지마 아츠시가 쓰고 명진숙이 옮기고, 본문 그림은 이철수가 그린 <역사 속에서 걸어나온 사람들>을 감역하였다. 나카지마는 도쿄에서 태어나 1942년 33세의 나이로 요절한 불우한 천재작가로 알려진다.
198) <엽서>는 출간과 더불어 독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45,000원이라는 비교적 고가인데도 독자들은 다시 읽기 위하여 그리고 소장용으로 구매하였다. 필자도 원전(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는 또 다른 감동이었음을 느꼈다. <서문>의 다음 대목도 놓치기 아깝다.
문득문득 생각나기는 했지만 친구를 감옥 속에 보내고, 아니 어두운 망각 속에 묻고 나서 우리는 20년이란 세월 동안 그가 어떤 잠을 잤는지 무슨 밥을 먹었는지 어떤 고통을 부둥켜안고 씨름했는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20년이 지난 어느 날, 그 어둠 속의 유일한 공간이던 엽서와 그리고 그 작은 엽서를 천근의 무게로 만드는 깨알 같은 글씨들을 마주했을 때의 감회는 실로 형언키 어려운 것이었다.
203) 홍익대 산업대학원 손혜원 교수는 소주회사로부터 제의 받은 새로운 소주 브랜드로 '처음처럼'을 차용하고 싶었다. 그리고 신영복을 만나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그의 허락을 받았다.
205) 신영복의 '처음처럼'에 대한 애착심은 2007년 2월 <(신영복의 서화 에세이)처음처럼>의 발간으로 이어졌다. "365일 늘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매일 펼쳐보는 마음노트"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이 책은 일종의 아포리즘을 모은 것이다.
독서습관 287_신영복 평전_김삼웅_2018_채륜(201028)
■ 저자: 김삼웅
독립운동사 및 친일반민족사 연구가로, 현재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대한매일신보>(현 서울신문) 주필을 거쳐 성균관대학교에서 정치문화론을 가르쳤으며, 4년여 동안 독립기념관장을 지냈다.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 위원, 제주 4.3사건 희생자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위원회 위원, 백범학술원 운영위원 등을 역임하고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 친일파재산환수위원회 자문위원 등을 맡아 바른 역사 찾기에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역사 언론 바로잡기와 민주화 통일운동에 큰 관심을 두고, 독립운동가와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인물의 평전 등 이 분야의 많은 저서를 집필했다.
주요 저서로는 <곡필로 본 해방 50년>, <한국필화사>, <금서>, <위서>, <백범 김구 평전>, <을사늑약 1905 그 끝나지 않은 백년>, <단재 신채호 평전>, <만해 한용운 평전>, <안중근 평전>, <이회영 평전>, <노무현 평전>, <김대중 평전>, <안창호 평전>, <빨치산대장 홍범도 평전>, <김근태 평전>, <독부 이승만 평전>, <안두희, 그 죄를 어찌할까>, <10대와 통하는 독립운동가 이야기>, <몽양 여운형 평전>, <우사 김규식 평전>, <위당 정인보 평전>, <김영삼 평전>, <보재 이상설 평전>, <의암 손병희 평전>, <조소앙 평전>, <백암 박은식 평전> 등이 있다. 최근의 저서로는 <박정희 평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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