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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독서습관187_한국전쟁 중 가족사와 박수근 화백과 만남이 등장하는 소설_나목_박완서_2012_세계사(191201)

by bandiburi 2019. 12. 1.

■ 저자 : 박완서

1931년 경기도 개풍군에서 태어났다. 교육열이 강한 어머니 손에 이끌려 서울로 와 숙명여고를 거쳐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6.25의 발발로 학교를 그만두고 미 8군 PX초상화부에서 근무했다. 1953년 결혼하여 1남 4녀를 두고, 마흔이 되던 1970년 전쟁의 상흔과 PX에선 만난 화가 박수근과의 교감을 토대로 쓴 <나목>이 <여성동아> 여류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되며 등단했다. 2011년 1월, 담낭암으로 타계하기까지 쉼 없이 작품 활동을 하며 40여 년간 80여 편의 단편과 15편의 장편소설을 포함, 동화, 산문집, 콩트집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을 남겼다. 

 박완서는 삶의 곡절에서 겪은 아픔과 상처를 반드시 글로 쓰고야 말겠다는 생각으로 고통의 시기를 살아냈다. "이것을 기억했다가 언젠가는 글로 쓰리라." 숙부와 오빠 등 많은 가족이 희생당했으며 납치와 학살, 폭격 등 죽음이 너무나도 흔한 시절이었다. 이름 없이 죽어간 가족들을 개별적으로 살아 숨 쉬게 하는 것이 처음 글을 쓴 목표였다. 그러나 막상 글을 통해 나온 건 분노가 아닌 사랑이었다. 그는 글로써 자신을 치유해나갔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덕분에 그는 자신의 이야기에만 갇혀 있지 않고 당대의 전반적 문제, 가부장제와 여권운동의 대립, 중산층의 허위의식 등을 수면 위로 끄집어 올려 직간접적으로 의식을 환기시켰다. 그러면서도 문학에 대한 열정과 세상에 대한 뜨뜻한 마음을 잃지 않은 보기 드문 문인이었다. "죽을 때까지 현역 작가로 남는다면 행복할 것"이라는 말대로 그는 마지막까지 펜을 놓지 않았다. 

 박완서는 '소박하고, 진실하고, 단순해서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했다. 그의 글을 닮았다. - 책의 저자 소개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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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감

2019년의 마지막 달을 맞이하며 고 박완서 작가의 <나목>을 읽었습니다. 소설을 읽을 때면 늘 배경 속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시작합니다. 마치 수면내시경을 할 때 수면제가 혈관 속을 차갑기 흘러가는 느낌과 함께 깊은 잠에 빠지듯이 몇 페이지를 읽다 보면 이야기 속의 시대적 상황과 주인공의 환경, 주변 인물들을 상상하고 그 새로운 세상 가운데 영화를 보는 관객처럼 서있게 됩니다. 그런 즐거운 여행을 <나목>을 통해 다녀왔습니다. 실상은 즐거운 여행이라기보다는 슬픈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되짚어보는 일이었습니다. 일제시대에 태어나 청년기와 장년기를 한국전쟁기에 보내야 했던 분들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가의 등단작인 <나목>은 자신의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재구성된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경아가 박완서 자신이고, 옥희도 씨는 박수근 화가와 유사합니다. 한국전쟁 당시에 숙부와 오빠들을 잃었던 경험은 경아의 상황과 유사합니다. 그래서 소설은 마치 작가의 자서전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듭니다. 이런 독자들의 상상을 예상한듯이 제일 앞에서 작가는 소설로 읽히기를 기대한다고 남깁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편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2019년 현재의 우리는 소설을 통해 1950년 9월 28일 서울이 수복되고 난 뒤의 서울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상황 속으로 들어갑니다. 1980년대 이후에 자라난 세대는 상상하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유튜브를 통해 과거의 대한민국의 흑백 영상을 보거나 현재 후진국이라고 불리는 나라의 빈곤한 삶을 상상하면 그나마 유사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돕겠다고(사실은 미국의 이익을 위한 것이겠지만) 온 미군부대의 PX 내 초상화부를 중심으로 근근이 미군부대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군상들이 직간접적으로 그려집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청소를 하는 아주머니들이 부대 물품을 밖으로 반출하기 위해 속바지 속에 넣고 고무줄로 층층이 묶은 후 치마를 내리고 어그적거리며 퇴근하는 모습입니다. 그런 물품 반출이 많았기에 부대를 나갈 때마다 몸수색을 당하는 모습도 나타납니다. 부대에서 반출된 것들은 모든 것이 귀했던 한국전쟁 시기에 시장에서 사람들의 욕구를 그나마 채워주었겠지요. 

경아가 퇴근해서 무서움에 떨며 집의 문을 두드리며 문을 열어달라 합니다. 그때마다 엄마는 무덤덤하게 문을 열고 소반을 차려줍니다. 모녀지간에 따뜻함이 없습니다. 작가가 뭔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소설 중반부에 가서야 엄가가 주인공에서 왜 그렇게 감정이 없이 기계적으로 대했는지 이해하게 됩니다. 1년 전만 해도 아버지와 두 오빠와 함께 행복한 생활을 하던 가족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으로 인해 두 모녀만 달랑 남습니다. 그 과정에서 받은 충격은 엄마의 정신을 죽지 못해 사는 상황으로 밀어붙였습니다. 결국은 보고 싶어 하는 남편과 두 아들이 있는 세상으로 떠나고 맙니다. 

경아를 중심으로 청춘이 연애를 하고 가족 간에 살피고, 동생들과 빵과 케이크를 먹고, 환쟁이들의 걸쭉한 입담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고단한 삶이 녹아있고, 포탄을 맞아 구멍 난 고택은 모녀의 마음이자 당시를 살아간 사람들의 회색빛 삶이었습니다. 미국에 대한 막연한 꿈을 꾸었던 미숙의 모습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 나라에서 살아간 사람들이 미군들을 보며 혹은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해방되고 싶은 마음의 표현일 것입니다. 

글의 힘이란 대단한 것입니다. 한 권의 책을 통해 역사의 한 장면으로 가기도 하고 작가의 세계로 빠져들기도 하고 작가가 이끌어가는 대로 생각하게 됩니다. 2019년의 12월 1일, 일요일 오후 시간에 <나목>의 감상을 마무리하며 밖에 내리는 겨울비처럼 마음속에 차가운 기운이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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