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에릭 호퍼(1902~1983)
평생을 떠돌이 노동자 생활로 일관한 미국의 사회철학자.
정규 교육을 받지 않고, 항상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 몸을 둔 채 독서와 사색만으로 독자적인 사상을 구축해 세계적인 사상가의 반열에 올랐다.
1902년 뉴욕의 부롱크스에서 독일계 이주자의 아들로 출생. 7세 때 사고로 어머니를 여의고 자신의 시력도 잃었다. 그 후 8년간 실명 상태로 지내다 기적적으로 시력을 회복한 다음, 로스앤젤레스로 건너가 떠돌이 노동자로서의 삶을 살아갔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부두노동자로 일하던 1951년(49세)에 대표작 <The True Believer>를 발표해 미국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967년 CBS-TV에서 에릭 호퍼의 인터뷰 프로그램이 방영되면서 미국 전역에서 '호퍼 붐'이 일어나게 되었고, 이후 세계적으로 명성이 알려지게 되었다. 떠돌이 노동자로서의 삶과 광적인 독서량 그리고 깊은 사색을 통해 얻어진 인간의 삶에 대한 통찰과 냉철한 현실 인식은 전후 미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 소감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에서 소개된 '에릭 호퍼'라는 이력이 좀 특별한 사람을 알게 되었습니다. 철학자를 포함한 어느 분야에서 전문가라고 하면 박사학위 정도는 가지고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을 의미하는데 철학자 '에릭 호퍼'는 다른 경로를 걸었던 사람입니다.
실명의 경험 이후에 독서에 몰입하기 시작해서 떠돌이 노동자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도서관을 통해 식물학 등 관심 분야에 대한 책에 심취했던 에릭 호퍼입니다. 돈이 필요하면 노동자로서 살아가지만 책을 읽고 끊임없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내는 사람입니다.
특히 오렌지 나무의 백화현상을 해결한 사례는 연구소장의 능력을 훨씬 능가하는 면도 보여줍니다. 또한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려 고립된 시간을 보낼 것이 예상될 때 가능한 두껍고 글자가 작은 책을 중고서점에서 1달러에 구입했는데 그것이 '몽테뉴의 수상록'이었고 고립된 시간 동안 3번을 읽었다는 점은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또한 자신이 읽고 습득한 지식을 주변 노동자들과 함께 이야기로 풀어내어 공유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한 주변 사람들이 관행적으로 대학에서 공부할 것을 권했지만 그는 자신의 떠돌이 삶을 살아갑니다.
에릭 호퍼는 덩치는 크지만 마음이 선한 사람이었습니다. 낯모르는 신사의 양말에 구멍이 난 것을 보는 것이 불편해서 반짓고리를 가지고 와 양말을 벗어달라고 해 수선해 주지만 그의 20불 사례비는 받지 않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에 도착하면 숙소를 소개하는 등 도와주고 자신은 본래의 삶으로 돌아갑니다.
책에 중간 중간 삽입되어 있는 그의 철학이 담겨있는 문구들도 마음에 깊이 와닿는 글입니다. '에릭 호퍼' 지금은 계시지 않지만 진정한 철학자요 자신의 철학을 세상에서 몸소 실천한 사람이었습니다.
- 추천지수 : ★★★★
- 책에서 발췌
25) Education
The central task of education is to implant a will and facility for learning; it should produce not learned but learning people. The truly human society is a learning society, where grandparents, parents, and children are students together.
교육의 주요 역할은 의욕과 능력을 몸에 심어주는데 있다. '배운 인간'이 아닌 계속 배워 나가는 인간을 배출해야 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인간적인 사회란 조부모도, 부모도, 아이도 모두 배우는 사회이다.
47) Power
Absolute power corrupts even when exercised for humane purposes. The benevolent despot who sees himself as a shepherd of the people still demands from others the submissiveness of sheep.
절대 권력은 선의의 목적으로 행사될 때에도 부패한다. 백성들의 목자를 자처하는 자비로운 군주는 그럼에도 백성들에게 양과 같은 복종을 요구한다.
57) Children
One might equate growing up with a mistrust of words. A mature person trusts his eyes more than his ears. Irrationality often manifests itself in upholding the word against the evidence of the eyes. Children, savages, and true believers remember far less what they have seen than what they have heard.
성장 과정을 말헤 대해 불신하게 되는 과정과 동일시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성숙한 이는 자신의 귀보다는 눈을 더 신뢰한다. 눈의 명료함보다 말을 더 믿는 데에서 비합리성이 나타난다. 어린아이와 미개인 그리고 맹신자들은 그들이 보아온 것보다는 들어왔던 것들을 더 잘 기억한다.
69) Failure
We clamor for equality chiefly in matters in which we ourselves cannot hope to attain excellence. To discover what a man truly craves but knows he cannot have we must find the field in which he advocates absolute equality. By this test Communists are frustrated Capitalists.
우리는 주로 자신이 우위에 설 희망이 없는 문제에서 평등을 주장한다. 절실히 원하지만 가질 수 없음을 알고 있는 그것을 찾기 위해서는 자신이 절대적 평등을 내세우는 분야를 찾아야 한다. 그런 시험에서 공산주의자란 좌절한 자본주의자라는 것이 드러난다.
83) Hope
Despair and misery are static factors. The dynamism of an uprising flows from hope and pride. Not actual suffering but the hope of better things incites people to revolt.
절망과 고통은 정태적인 요소이다. 상승의 동력은 희망과 긍지에서 나온다. 인간들로 하여금 반항하게 하는 것은 현실의 고통이 아니라 보다 나은 것들에 대한 희구이다.
103) Language
Language was invented to ask questions. Answers may be given by grunts and gestures, but questions must be spoken. Humanness came of age when man asked the first question. Social stagnation results not from a lack of answers but from the absence of the impulse to ask questions.
언어는 질문을 하기 위해 창안되었다. 대답은 투덜대거나 제스처로 할 수 있지만 질문은 반드시 말로 해야 한다. 사람이 사람다운 것은 첫 질문을 던졌던 때부터였다. 사회적 정체는 답이 없어서가 아니라 질문을 할 충동이 없는 데에서 비롯된다.
115) Happiness
To believe that if we could but have this or that we would be happy is to suppress the realization that the cause of our unhappiness is in our inadequate and blemished selves. Excessive desire is thus a means of suppressing our sense of worthlessness.
이런저런 것만 있으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는 것은 불행의 원인이 불완전하고 오염된 자아에 있다는 인식을 억누르는 것이 된다. 따라서 과도한 욕망은 자신이 무가치하다는 느낌을 억누르는 수단이 된다.
129) Religion
Religion is not a matter of God, church, holy cause, etc. These are but accessories. The source of religious preoccupation is in the self, or rather the rejection of the self. Dedication is the obverse side of self-rejection. Man alone is a religious animal because, as Montaigne points out, 'it is a malady confined to man, and not seen in any other creature, to hate and despise ourselves'.
종교는 신이나 교회, 성스러운 동기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단지 액세서리에 지나지 않는다. 종교적 몰입의 근원은 자아에, 아니 그보다는 오히려 자아의 거부에 있다. 헌신은 자아 거부의 앞면이다. 종교적 동물은 인간밖에 없다. 왜냐 하면 몽테뉴도 지적했듯이 '자기를 증오하고 경멸하는 것은 다른 피조물에서는 볼 수 없는 인간에 국한된 병'이기 때문이다.
143) Hatred
That hatred springs more from self-contempt than from a legitimate grievance is seen in the intimate connection between hatred and a guilty conscience.
증오가 정당한 불평보다는 자기 경멸에서 솟아난다는 것은 증오와 죄의식의 밀접한 관계에서 드러난다.
161) Money
Whatever originated the cliche that money is the root of all evil knew hardly anything about the nature of evil and very little about human beings.
돈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는 상투어를 만들어낸 사람은 악의 본질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며, 인간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게 없다.
174) "의미 있는 생활은 배우는 생활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하는 데 몰두해야 해요. 나는 기술 요법이 신앙 치료나 정신 의학보다 중요하다고 믿고 있어요. 기술을 습득하게 되면 그 기술 자체는 쓸모 없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당신은 자부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섯 살 난 아이를 지켜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술을 익히려는 아이들의 열망을 목격했을 겁니다. 나는 어른스러움이란 다섯 살 난 아이가 놀이를 할 때 보여주는 진지함을 재획득하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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