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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1033]작은 것들의 신_암무와 벨루타의 카스트를 넘는 사랑 그리고 쌍둥이 라헬과 에스타

by bandiburi 2025. 4. 6.

인도와 방글라데시 접경지역에 가까운 실롱이 고향인 아룬다티 로이의 자전적 소설인 『작은 것들의 신The God of Small Things』를 집중해서 읽었다. 인도에서 4년 정도 거주했던 경험이 있어 소설에서 묘사하는 현지 문화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자주 교차되고, 등장인물이 많고, 상황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가 많아 집중해야 봐야 하는 소설이다. 

왜 '작은 것들의 신'이라고 했을까 궁금증을 가지고 첫 페이지를 넘겼다. 하지만 좀처럼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 엄마인 암무, 그녀의 이란성 쌍둥이인 에스타와 라헬 그리고 불가촉천민 카스트인 벨루타가 주된 등장인물이다. 다양한 인물과 작은 사건들이 소설의 곳곳이 산재되어 있다. 궁금증에 대한 해답은 소설의 말미에 해설 부분에서 어렴풋이 찾을 수 있었다. 

인도 케랄라라는 남부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소설이다. 카스트란 틀 안에서 사랑해야 한다는 인간이 정한 관습이 인도를 지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틀을 넘어 서로를 사랑하는 암무와 벨루타에게 오직 '내일'만이 있을 뿐이다. 벨루타의 어처구니없는 억울한 죽음과 함께 그들의 사랑에 '내일'은 사라진다. 

저자는 이 소설을 통해 인도 사회의 현실을 보여주며 불합리한 사회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인도나 아룬다티 로이의 소설에 대한 관심이 있다면 도전을 추천한다. 완독 후 충분히 만족할 만한 소설이다. 

아래는 책에서 남기고 싶은 문장과 함께 소감을 짧게 포스팅했다.


래리 매캐슬린이 라헬의 눈에서 본 것은 절망과는 거리가 먼, 일종의 강요된 낙관주의였다. 그리고 에스타의 이야기가 존재했던 자리에 남은 텅 빈 공허였다. 그가 그것을 이해하리라 기대할 순 없었다. 한쪽 쌍둥이의 공허는 다른 쌍둥이의 침묵의 또다른 버전이었을 뿐임을. (...) 이혼 후 라헬은 몇 달간 뉴욕의 한 인도 레스토랑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했다. (...) (36)

라헬과 에스타의 현재의 이야기다.
소설은 수시로 청년기와 유년기를 오간다.  

북경은 지지 대상을 가장 새롭고 가장 공격적인 CPI(M) - 낙살라이트 - 로 바꿨는데, 뱅골의 낙살바리 마을에서 무장봉기를 일으킨 당파였다. 그들은 농민을 전투원의 중심으로 삼아 토지를 몰수하고 지주들을 추방한 후 인민재판소를 설치하여 '계급의 적들'을 심판했다. 낙살라이트 운동은 인도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모든 부르주아에게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100)

1969년 케랄라에서 공산주의 봉기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낙살라이트 운동은 해방 후 한반도에서 있었던 공산주의자들의 활동과 동일하다. 

라헬이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한 <사운드 오브 뮤직>의 마법과도 같은 냄새. 냄새는 음악처럼 추억을 간직한다. 그녀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자손들을 위해 그 냄새를 기억에 담았다. (140)

특정한 냄새는 우리의 기억 속에서 특정한 사건을 추억으로 건져올린다. 
기억은 사건만이 아니라 당시의 소리, 냄새, 촉각 등 감각을 함께 저장한다. 

차코가 지갑을 닫고 불을 껐다. 어둠 속에서 담배에 불을 붙이며 자기 딸이 지금은 어떻게 생겼을까 생각해 보았다. 아홉 살, 마지막으로 봤을 때 아이는 빨갛고 주름으로 쭈글쭈글했다. 간신히 인간의 모습을 유지했었다. 삼 주 후, 그의 아내인 마거릿, 그의 유일한 사랑이었던 그녀가 울면서 조에 관해 털어놓았다. (165)

암무의 남동생인 차코는 영국 유학 중에 마거릿과 결혼했다. 
마거릿 부모는 반대하는 결혼이었다. 
하지만 딸, 소피 몰이 태어난 지 삼 주 후에 마거릿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조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이혼했다. 

하지만 이제 조는 죽고 없다. 교통사고로 죽었다. 확실히 죽었다. 우주에 조 모양의 구멍 하나로만 남았다. (166)

이 문장이 아름답게 다가왔다. 
조는 죽었지만 자신의 모양인 구멍으로 우주에 남았다는 표현!
그래서 이 소설은 쉽지 않다. 

맘마치는 차코에게 주의를 주려 했다. 차코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기는 들었지만 정말로 귀기울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처음에 불만이 끓어오른 게 파라다이스 피클 부지 내였음에도 불구하고 차코는 혁명의 전초전 중에도 계속해서 동지! 동지!를 외쳤다. (172)

암무와 차코의 어머니인 맘마치는 '파라다이스 피클'이라는 회사를 운영했다. 

한때 강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힘을 갖고 있었다. 삶을 바꾸는 힘이. 하지만 이제 강은 이빨이 다 뽑혔고, 기운이 쇠했다. 이젠 악취가 진동하는 쓰레기들을 바다로 나를 뿐인, 그저 느릿느릿 흘러가는 녹색의 기다란 풀밭이었다. 선명한 비닐봉지들이 하늘을 나는 아열대의 꽃들처럼 끈끈한 잡초로 뒤덮인 수면을 날아갔다. (175)

인도에 살면서 가장 충격을 받은 것 중에 하나가 수질문제였다. 
특히 호수나 연못 같은 고여있는 물은 쓰레기와 버려진 음식 등으로 오염되어 있다. 
앞으로 인도에서 식수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위의 문장은 이런 생각을 문학적으로 잘 표현했다. 

"걔도 '남자의 욕구'가 있는 걸 어쩌겠어" 하며 새침하게 말했다. 놀랍게도 베이비 코참마는 이 설명에 납득했고, '남자의 욕구'라는 수수께끼 같은, 은밀하게 흥분시키는 그 개념은 아예메넴 저택에서 암묵적으로 승인되었다. 맘마치도 베이비 코참마도 차코의 마르크스주의적 정신과 봉건적 성욕 사이에 어떤 모순이 있다고 생각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낙살라이트에 대해서만 걱정했는데, 낙살라이트가 '좋은 가문'의 남자들에게 그들이 임신시킨 여자 하인들과 결혼하도록 강요한다고 알려져 있어서였다. (234)

맘마치의 남성 중심의 성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조선 시대에 양반들이 첩을 두는 것이 허용되듯이 인도의 카스트하에서도 남성 위주의 사고를 보여준다. 
카스트를 넘어서서 하층민과 결혼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볼 수 있다. 

그녀에게 선물을 줄 때 이젠 더이상 자신에게 손이 닿지 않도록 손바닥 위에 올려서 줄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았다. 배와 상자. 작은 풍차. 그만이 선물을 주는 것이 아님도 알았다. 그녀 역시 그에게 줄 선물이 있음을. 이러한 깨달음이 날카로운 칼날처럼 단번에 그를 베었다. 차갑고 또한 뜨거웠다. 한순간의 일이었다. 암무는 그가 알았음을 알았다.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그도 시선을 돌렸다. 역사라는 악귀가 다시 돌아와 그들을 사로잡았다. (246)

암무와 벨루타의 카스트를 초월한 사랑의 아슬아슬한 모습을 보는 듯하다. 
한편으로 마음 놓고 사랑하지 못하는 청춘의 모습이 안타깝다. 

그 - '상실의 신', '작은 것들의 신' - 가 누구인지를 그녀는 알고 있었다. 물론 잘 알았다. 그녀는 탄제린 라디오의 스위치를 껐다. 오후의 침묵 속에서, 아이들은 그녀의 따뜻한 품속을 파고들었다. (308)

작가는 소설의 제목인 '작은 것들의 신'은 이렇게 반복적으로 드러낸다. 
독자는 생각해야 한다. 무엇일까. 

카타칼리 (출처: flickr)

'카타칼리 배우'는 남자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다. 그의 육체가 곧 그의 영혼이기에. 그의 유일한 악기이기에. 세 살 때부터 대패질하고, 연마하고, 다듬어서 이야기 들려주기라는 임무만을 위해 살아간다. 색칠한 가면을 쓰고 빙빙 돌아가는 치마를 입은 이 남자는, 자기 안에 마력을 품고 있었다. (320)

카타칼리란 배우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위의 사진과 같은 가면을 쓰고 이야기를 들려준다. 

부르러 보낸 포타첸과 마투쿠티는 필라이 동지에게 코타얌 병원의 인맥을 동원해 자신의 딸들에게 간호사 자리를 얻어달라고 청탁한 마을 사람들이었다. 필라이 동지는 그를 만나기 위해 집밖에서 그들이 기다리는 모습이 사람들 눈에 띄기를 바랐다. 그를 만나려고 기다리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는 바빠 보일 것이고 그만큼 대단하다는 인상을 남길 것이기 때문이다. (376)

낙살라이트 공산주의자의 한계를 보여준다. 
필라이 동지라는 인물도 인간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한계다. 

코타얌 경찰은 그녀가 제출한 FIR을 근거로 작전을 개시했다. 그 파라반은 체포됐다. 불행하게도 그때의 충돌로 그는 심한 부상을 입었고, 아마 오늘밤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아이들은 제 발로 집을 나왔다고 말하고 있다. 아이들의 배가 전복됐고 영국 아이는 사고로 익사했다고. 그렇다면 경찰은 엄밀히 말해 무죄인 사람의 '구류 중 사망'이라는 부담을 지게 됐다. 물론 그는 파라반이다. 물론 처신도 잘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혼란스러운 시대이고, 실질적으로, 법적으로 그는 무죄다. 사건은 성립되지 않는다. (428~429)

벨루타를 습격해서 무자비하게 구타해서 반죽음 상태를 만들어 놓은 경찰의 입장이다. 
결국 벨루타는 죽게 되고, 경찰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경찰은 베이비 코참마에게 이 상황을 떠넘긴다. 

베이비 코참마는 가능한 한 빨리 암무를 아예메넴에서 내보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 차코가 문을 박살내고 들어간 사건은, 베이비 코참마의 고삐에 매인 슬픈 황소가 날뛴 것과 다름없었다. 암무에게 짐을 싸서 떠나라고 한 것도 그녀의 생각이었다. 에스타가 '돌려보내진' 것도. (438~439)

앞에서 나온 이야기의 원인을 소설의 뒷부분에 배치했다. 
독자는 이제야 앞의 이야기의 배경을 이해한다. 

그는 누구였나? 
그는 누구일 수 있었나? 
'상실의 신'
'작은 것들의 신'
'소름과 문득 떠오르는 미소의 신'
그는 한 번에 한 가지만 할 수 있었다. 
그녀를 만지면 말을 걸 수 없었고, 그녀를 사랑하면 떠날 수 없었고, 말을 하면 귀기울일 수 없었고, 싸우면 이길 수 없었다. 암무는 그가 그리웠다. 옴몸으로 그를 갈망했다. (450)

'그는 한 번에 한 가지만 할 수 있었다 ~'는 문장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앎이 그날 오후 미끄러지듯 그에게 들어왔다. 분명하게, 날카로운 칼날처럼. 역사가 실수를 했을 때. 그가 그녀의 어린 딸을 두 팔로 안았을 때. 그녀의 눈이 그만 선물을 주는 게 아니라는 말을 해주었을 때. 그녀도 그에게 줄 선물이 있다고, 그가 만들어준 배와 상자와 작은 풍차에 대한 답례로 깊게 볼우물이 패는 미소를 지어 보이겠노라고. 매끄러운 갈색 피부를. 빛나는 어깨를. 늘 어딘가 다른 곳을 향하던 눈길을 주겠노라고. 
그는 거기 없었다. (453)

앞에서 나온 문장의 반복이다. 
암무와 벨루타의 안타까운 사랑이다. 

이런 작은 것들이 작은 구슬알들처럼 이야기 곳곳에 알알이 흩어져 있다. 그렇다면 큰 것은 무엇이고 신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독자들은 궁금해진다. 라헬과 에스타의 이야기가, 서른한 살, 늙지도 젊지도 않지만 살아도 죽어도 이상할 것 없는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들 어머니의 이야기가. (...)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오빠와 함께 어머니의 고향인 인도 남부에 위치한 케랄라로 돌아간다는 설정부터 그렇다. 로이의 어머니는 케랄라 출신의 시리아 정교회 신도로 여성 인권 운동가였으며 암무와 마찬가지로 심한 천식 환자였고, 로이의 아버지는 바바처럼 캘커타 출신의 뱅골 힌두교도로 실롱 근처 차농장의 매니저로 일했으며 알코올중독자였다. 아예메넴이 위치한 케랄라는 시리아 정교를 신앙으로 삼고 말라얄람어를 사용하는 보수적인 고장이었고, 이혼한 편모슬하의 아룬다티 로이는 외가에서 환대받지 못한 채 오히려 낮은 카스트 계급 사람들과 달리트들을 편안해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470~471)

소설과 아룬다티 로이의 삶이 비슷하기에 자전적 소설이라고 한다.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인도의 여러 사회 문제를 고발하기 위해 이 소설을 집필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야기의 주된 배경인 1969년 인도 케랄라에서는 공산주의가 정치적 힘을 키우고 있었고, 시리아 정교도와 힌두교도 간의 갈등이 있었으며, 식민 통치를 했던 영국인들의 문화가 선망의 대상으로 남아 인도의 문화, 역사와 충돌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뿌리 깊게 남은 카스트제도가 여전히 인간을 불가촉천민과 '가촉민'으로 구별지었고, 카스트가 '사랑의 법칙'이 되어 사랑할 사람들과 사랑해선 안 될 사람들을 규정지었다. 이런 역사의 편린들은 케랄라 아예메넴에서 살아가는 이들 가족과 그 주위 사람들에게 '작은 것들'이었을까, 큰 것들이었을까. (472)

저자가 이 소설을 집필하던 시기의 케랄라의 사회적 분위기를 보여준다. 
이런 역사의 편린들이 그녀의 소설에서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되었다. 

(...) 그들의 운명은 그렇게 부서지기 쉬운 약한 것이기에, 약속할 수 있는, 혹은 약속할 수 있다고 믿는 미래란 오직 '내일'뿐이기에 그들은 작은 것에 집착한다. 어느 날 낮잠에서 깨어난 암무는 꿈에서 한 팔로 자신을 꼭 끌어안던 외팔이 남자를 떠올리며, 행복했던 꿈을 되짚으며 묻는다. 그는 누구였을까. '상실의 신? 작은 것들의 신? 소름과 문득 떠오르는 미소의 신?' 두 사람이 약속했던 '내일'이 사라지던 날. 누구에게든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고 믿은, 그래서 '준비' 해온 일을 실행에 옮기는 어린 에스타, 에스타와 함께하는 어린 라헬과 소피 몰, 이어지는 소피 몰의 죽음, 그리고 어린 에스타와 라헬이 목격하는 벨루타의 죽음. 이어지는 이별, 죄책감, 침묵, 암무가 홀로 맞이하는 죽음. 오랜 세월 후 또 다시 어기게 되는 '사람의 법칙'. 아룬다티 로이의 이야기는 쉼 없이 독자를 사로잡는다. (474)

이 소설을 요약한 문장이다. 


독서습관1033_작은 것들의 신_아룬다티 로이_2019_문학동네(250405)


■ 저자: 아룬다티 로이

1961년 인도의 메갈라야 실롱에서 태어났다. 1997년 첫 소설 『작은 것들의 신』으로 부터상을 수상하며 일약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한다. 1998년 『상상력의 종말』을 발표하며 사회운동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인도 사회, 나아가 세계의 여러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라난 재단의 문화자유상, 시드니 평화상, 노먼 메일러 집필상을 수상했고,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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