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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강의

[강의]백남준과 이우환 그리고 프랭크 스텔라의 예술 세계_우정아 교수

by bandiburi 2024. 7. 21.

백남준과 윤이상 (출처: PICRYL)

포스텍 우정아 교수의 예술가들에 대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백남준, 이우환, 프랭크 스텔라 세 사람의 작품에 대한 여행이었다. 강의를 통해 예술가의 삶의 궤적을 돌아보고 그 사람의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세 사람의 강의 내용을 정리해서 포스팅한다. 

TV샹들리에 (출처: poscoartmuseum)

백남준 (Nam June Paik, 1932~2006)

백남준은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로,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백남준아트센터에서 그의 예술적 유산을 기리고 있다. 2002년 그는 '이 그림을 한 시간 보는 자는 증권시장에서 성공한다'라는 문구를 담은 작품을 발표했다. 그의 예술적 비전은 "The future according to Nam June Paik"라는 유튜브 동영상에서도 잘 드러나며, 이는 영국의 권위 있는 미술관 자료를 통해 백남준이 미래를 얼마나 정확하게 예측했는지를 보여준다.

백남준은 태창방직을 운영한 백낙승의 아들로 태어나,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다. 그는 피아노와 클래식 음악에 대한 꿈을 꾸며 자랐고, 1949년 부친과 함께 홍콩으로 이주해 학업을 이어갔다. 한국전쟁 발발 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대학에서 미학을 전공했으며, 졸업 논문은 아놀트 쉰베르크에 대한 연구였다. 이후 서독으로 유학 가서 뮌헨 대학에서 음악사를 전공하며, 카를하인츠 스톡하우젠, 존 케이지 등과 교류했다.

백남준은 자신이 특정 민족, 국가, 인종에 속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며, 이러한 철학을 그의 예술작품에 반영했다. 존 케이지의 영향을 받아, 그는 전통적인 음악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탐구했다. 1963년 독일 부퍼탈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TV 수상기를 이용한 작품을 선보이며 비디오 아트의 가능성을 열었다. 그는 TV를 단순히 시청하는 도구가 아닌, 조작하고 참여할 수 있는 매체로 변형시켰다.

백남준 작품 (출처: flickr)

백남준은 또한 로봇 K-456을 제작해 1982년 휘트니미술관에서 전시했으며, 이는 자율주행 자동차와 같은 현대 기술의 윤리적 문제를 예견한 작품이었다. 1984년에는 위성을 이용해 뉴욕과 파리를 연결하는 "Good Morning Mr. Orwell" 퍼포먼스를 통해 미디어의 힘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그의 작품 "TV Buddha"는 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성찰하는 대표적인 예로, 정보의 흐름과 자아 성찰을 동시에 탐구했다.

백남준은 미디어와 기술을 통해 더 평등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으며, 그의 혁신적인 예술적 접근은 현대 예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예술사적 의미를 두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다.
         백남준은 비디오 아트를 예술의 한 장르로 확립하며, 미디어 아트의 가능성을 열었다.

둘째, 미디어와 기술의 예술적 활용이다.
        그는 TV, 로봇, 위성 등 현대 기술을 예술적 매체로 활용하여 예술의 경계를 확장했다.

 

이우환 미술관 작품 (출처: Wikimedia Commons)

이우환 (Lee Ufan, 1936~)

이우환은 경남 함안군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에 진학했으나, 1956년 일본으로 밀항해 니혼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1969년 평론가로 활동을 시작하며, 모노하(物派) 운동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했다. 모노하는 자연물과 인공물을 결합해 사물의 본질을 탐구하는 예술 운동으로, 이우환은 이를 통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재조명했다.

이우환의 작품은 단순함과 절제미를 강조하며, 재료 자체의 물성을 드러내는 데 중점을 둔다. 그의 대표작 "관계항" 시리즈는 돌과 철판을 이용해 공간과 사물 간의 관계를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그는 또한 글쓰기와 강연을 통해 예술 이론을 정립하며, 예술과 철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유를 전개했다.

Relatum, 이우환 (출처: poscoartmuseum)

이우환은 일본과 한국의 문화적 경계를 넘나들며 활동했으며, 그의 작품은 동양 철학과 서양 현대미술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미학적 경지를 개척했다. 그는 2011년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며 국제적인 인정을 받았다. 부산시립미술관 경내에 이우환 전시관이 있으며, 2022년에는 이우환 아를르 공간이 열렸다.

이우환의 작품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재고하며, 물질 자체의 본질을 탐구하는 데 중점을 둔다. 그는 돌과 유리, 철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자연의 순수한 형태를 표현하며, 인간 중심의 사고방식을 비판한다. 그의 예술적 성과는 전 세계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전시되며, 현대미술의 중요한 흐름을 형성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우환의 예술사적 의미를 역시 두 가지로 정리해 본다.

첫째, 모노하 운동의 선구자다.
         이우환은 모노하 운동을 통해 사물의 본질을 탐구하며, 현대미술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둘째, 동양 철학과 서양 현대미술의 융합이다. 
          그의 작품은 동양 철학과 서양 현대미술을 융합하여 새로운 미학적 경지를 개척했다.

 

프랭크 스텔라 작품 (출처: flickr)

프랭크 스텔라 Frank Stella (1936~2024)

Frank Stella는 미국의 추상화가이자 조각가로, 1960년대 중반 미니멀리즘 운동의 선구자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는 "What you see is what you see"라는 신념을 바탕으로, 예술이 반드시 이야기를 전달하거나 감정을 유발해야 한다는 기존의 관념을 탈피했다. 그의 초기 작품은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와 제한된 색상을 사용해 회화의 평면성을 강조했다.

아마벨 Amabel (출처: poscoartmuseum)


Stella는 회화와 조각을 넘나드는 작품을 남겼으며, 그의 작품은 점점 더 복잡하고 다채로운 형태를 띠게 되었다. 유리와 철로 만든 포스코센터 앞의 작품 "꽃피는 구조물"(아마벨)은 포스코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철의 이중성을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은 친구의 자녀가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것을 기리기 위해 제작되었으며, 철이 주는 혜택과 위험성을 동시에 상징한다.

Stella는 공공조형물의 개념을 확장하며, 작품이 놓인 장소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음을 강조했다. 그의 작품은 뉴욕 현대미술관(MoMA), 구겐하임 미술관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현대미술의 중요한 흐름을 형성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Frank Stella는 활발히 활동하며, 그의 혁신적인 예술적 접근은 많은 후배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는 최근인 2024년 5월에 사망했다. 

프랭크 스텔라의 예술사적 의미를 두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미니멀리즘의 선구자다
         Frank Stella는 미니멀리즘 운동을 통해 예술의 본질을 탐구하며, 현대미술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둘째, 공공조형물의 개념 확장이다.
          그는 공공조형물의 개념을 확장하여, 작품이 놓인 장소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음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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