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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883]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②_홍세화의 자전적 에세이 그리고 프랑스 똘레랑스

by bandiburi 2024. 5. 12.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2부 포스팅을 이어간다. 

빠리에서는 각자가 자기에게 맞는 유행을 찾는 데 비하여, 서울에서는 모든 사람이 한꺼번에 한 유행을 따르고 있다. 다른 말로, 빠리에서는 유행이 사람에게 종속되어 있는 데에 비하여 서울에서는 사람들이 유행에 종속되어 있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러한 경향도 결국 한국 사회의 획일성과 프랑스 사회의 다양성을 나타내는 것이라 하겠다. (75)

여전히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다. 비교한다. 2024년 3월 초에 딸과 함께 일본 오사카를 여행했을 때 딸이 말했다. '일본 사람은 옷도 머리 모양도 외모도 참 다양하다.' 아마도 자신의 취향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기 때문 아닐까. 우리 젊은이들은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사회의 다양성이 필요하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가 발전한다. 

사람의 처지가 갑자기 달라졌을 때 주위 사람들의 본모습을 더 잘 볼 수 있다고 했던 중국 노신의 말은 헛말이 아니었다. (86)

우리가 사람을 대할 때 그의 돈이나 권력을 바라본다면 처지에 따라 대우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람을 본다면 그의 돈과 권력이 어떠하든 일관성 있게 대할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노신의 말은 시대와 국가를 떠나서 진리다. 

다만 종만이를 통하여 그들의 실정을 겉으로 보고 있었고 또 종만이에게 노동조합에 관한 얘기를 하면서 당시 대학생들이 가질 수 있었던 노동자들에 대한 낭만적인 연대감을 확인하여 스스로 만족하려 했다는 것이 더 솔직한 얘기가 될 것이다. (92)

대학생들이 노동 현장에서 노동자들을 위해 일한다는 것의 한계를 잘 보여준다. 노동자로 살아야 하는 사람과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의 상황은 천양지차다. 

"초보자라고 미안해할 필요는 없어요. 모든 직업에 데뷔 시기는 있어야 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몽마르뜨르로는 꽤 중요한 길이니까 잘 알아두세요." 그는 웃으면서 멀어졌다. (...) 나는 사라져가는 그에게 끝없는 고마움을 느꼈다. 서른살이 될까말까 한 그가 다시 만나지 않을 이방인에게 베푼 관대함과 친절에서 나는 많은 것을 느꼈다. 그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나의 본보기가 되었다. (97)

길을 잘 모르는 이방인 택시 운전사에게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일반적인 사회가 선진국이다. 경제적으로 GDP의 숫자가 아니라 국민들의 자질이 앞선 국가가 돼야 한다. 우리는 국민들의 희생을 강요하며 질적인 부분보다는 숫자를 추구하며 살아왔다. 여전히 교육에서 성적이라는 숫자로 아이들을 줄 세우고 있는 것은 유감이다. 저자가 만난 친절한 손님처럼 우리의 내면도 여유롭고 관대하면 좋겠다. 

나의 손님들은 택시운전사를 하나의 떳떳한 직업인으로 인정하였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말들을 하지만 그 말은 곧 '직업에 귀천이 있는 사회'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107)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 자체가 귀천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정확한 통찰이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생활이 가능하고, 부끄럽지 않은 사회로 가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가는 길은 격차가 더욱 벌어지는 방향이라서 안타깝다. 

그러나 여기까지의 설명으로 베르뜨랑과 내가 다툰 에피쏘드를 다 이해했다고 할 수 없다. 한가지 아주 중요한 점이 빠져 있다. 그것은 베르뜨랑은 그의 권리를 주장한 데 반해 나는 그의 주장을 반박한 것이 아니라, 그런 주장을 하는 그를 미워한 점이다. 그의 주장이 틀렸으면 그 주장을 반박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를 미워했다. 그는 나를 미워할 이유가 없었다. 그에게는 단지 그와 나의 생각이 서로 달랐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싸운 이튿날 그는 나에게 자연스럽게 평소처럼 대했고 나는 계속 앙심을 품고 있었다. 이 차이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111)

우리에게 설득이란 단어는 있지만 우리 사회는 '설득하는 사회'가 아니다. '강요하는 사회'다. 베르뜨랑과 나의 차이는 바로 여기서 온 것이다. (112)

서로의 의견이 다를 때 우리와 프랑스인들의 대화 방식의 차이를 보여주는 저자의 일화다. 우리는 의견이 다르면 감정을 실어서 이야기한다. 서로의 의견이 다른 점을 인정하고 그 다름에서 최선을 이끌어 내기 위한 설득의 과정이 부족하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경험담이었다. 

그래도 프랑스엔 사회적 연대라는 가치가 있기 때문에 한국과 다르오. 한국은 가족 간의 우애라든가 이웃 간의 정, 윗세대에 대한 존경 등의 전통가치는 허물어지고 있는데 사회연대라는 가치는 아직 형성되지 않았어요. 그 비어 있는 가치관에 돈이 자리를 차지했고 또 헤게모니를 쥐게 된 거라고 나는 생각해요. (130)

농업 중심의 공동체 사회가 붕괴되고 도시 중심의 일인가족이 중심이 되었다. 더 이상 공동체나 연대라는 말이 자연스럽지 않다. 사람들의 가치관에는 '돈'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사회보장이 부족한 부분을 각자도생으로 채워야 한다. 

(3부에 계속)

https://bandiburi-life.tistory.com/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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