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 작가의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읽고 저자의 삶과 프랑스의 '똘레랑스'에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저자의 생각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그의 사상에 대해 더 이해하기 위해 <홍세화의 공부>라는 인터뷰 형식의 책을 읽었다. 몇 가지 주제에 대한 인터뷰라서 홍세화 작가의 사상의 요약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통찰이라면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복지, 의료 등 우리 사회 전반에 대한 비판적인 안목을 키울 수 있다.
둘째, 경제적으로 선진국에 근접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살기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는지도 알 수 있다.
셋째, 의견이 다를 때 설득보다 갈등이 조장되는 사회가 된 배경을 알 수 있다.
넷째, 우리가 받았던 교육, 우리 아이들이 받은 교육의 실체를 볼 수 있다.
다섯째, 기본소득과 국민의 복지의 관계를 들여다볼 수 있다.
여섯째, 우리 사회의 현위치가 누구에게 유리한지 성찰해 볼 수 있다.
인용하고 싶은 문장이 많아 3부에 걸쳐 나눠서 포스팅한다.
이 책에서 그는 끝없는 자기 성찰과 비판 의식을 강조한다. (17)
그 문제는 아마도 각자 자신이 구축한 의식세계가 갖는 성질에 대한 비판적 의식이 부족한 데 있지 않을까요? 제가 강조하고 싶은 명제의 하나는 우리는 '의지로써 끝없이 회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책과 글을 통하여 갖게 된 것이든, 경험을 통하여 갖게 된 것이든, 일단 형성된 의식은 스피노자가 지적했듯이 고집이라는 성질을 가집니다. (67)
어려서부터 가정과 학교에서 배워야 할 시민의 기본 덕목이다. 우리 교육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맹목적으로 교과서나 교사/교수가 알려주는 내용을 암기하는 방식으로는 얻기 어렵다.
"모든 국민은 자기 수준의 정부를 가진다." 알렉시 드 토크빌의 말로 잘못 알려져 있지만, 조제프 드 메스트르라는 19세기 초반의 반동적 보수주의자의 말이라고 합니다. 아무튼 국민의 하나로서 나의 수준이 모든 국민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정부의 수준을 규정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21)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비판을 많이 하는 편인데 부끄럽다. 현재 우리 정부의 수준이 나를 포함한 국민들의 수준이라는 말이 정곡을 찌른다. 건전한 비판의식과 자기 성찰 능력을 가진 시민이 많아질 때 우리 정부의 수준이 올라간다. 선출직 공무원들의 자질이 높아진다.
교사나 종교계 인사라고 하면 그에 상응하는 공부가 마땅히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지요.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의 물음을 빌려와 말한다면 교사나 종교계 인사라는 직분의 대부분이 소유물에 머물러 있다고 할까요. 하긴 이 문제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에 만연한 것이겠습니다만... 가령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물신주의에 종교계의 주류는 저항하는 쪽이 아니라 오히려 부추기는 쪽에 있지 않은가 싶어요. (23)
가난하고 교육이 거의 부재했던 시절, 종교가 기여한 부분이 많이 있었다. 눈부신 경제 발전과 함께 종교의 역할도 변하고 있다. 고령화와 저출생의 영향으로 종교도 직격탄을 받을 것이다. 정해진 미래다. 종교에도 공부가 필요하다는 의미는 성찰과 비판의 측면으로 본다. 종교인이 소명의식보다 직업 중의 하나로 간주될 때 물질에 대한 소유를 추구한다. 소유의 가치보다는 존재의 가치를 더욱 추구해야 할 종교라는 생각이다.
한국의 근대성이 갖는 한계는 경제주의와 물질주의에 너무나 압도되어온 점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근대성이 담보해 내야 하는 어떤 '상식'이나 기본적인 '윤리'나 '공공성' 같은 것을 덮어버린 거죠. 서유럽 같은 데선 '근대'가 당연히 담보해왔던 이런 것들이 한국에서는 물질문화에 압도되었어요. 한국은 상식이나 절제라는 게 부족한 사회입니다. (26~27)
한국은 짧은 시간에 압축성장이란 자랑거리를 만들었다. 하지만 압축의 단계에서 시간을 가지고 형성되어야 할 근대성이 갖춰지지 못했다. 성장이란 명목으로 경제성장과 물질적 풍요만을 추구했다. 그 후유증은 미성숙한 정신이다. 사람이 앞에 있어야 하지만 물질과 돈이 앞선다. 무엇이 잘 사는 것인지에 대한 개인의 가치보다 서로를 비교하는 경쟁을 부추긴다. 우리의 현실을 짧게 잘 설명하는 문장이다.
우선 제일 중요한 문제는 물질을 향유하는 경제적 주체로서의 개인이 아닌, 정치적인 존재로서의 개인이 함몰돼 있다는 거죠. (...) 소유하는 주체로서의 개인은 있는지 몰라도 정치적 주체로서의 개인이 과연 있는가? 저는 이게 근대성 문제에서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27)
2024년 4월 총선을 치르며 정치적인 존재로서의 개인의 위상이 조금은 높아졌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경제와 정치에 대한 성찰과 비판을 연습할 기회를 상실한 국민들에게 정치적인 존재감은 희미했다. 국민들의 정치적 관심과 참여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정치에 반영되고 때로는 국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해서 합의점을 찾아가는 국가로 나아가야 한다.
가령 학교 교실에서 전교조 교사들이 계기수업을 할 때마다 조선, 동아나 교육부 등 수구기득권세력이 대응하는 수법이 있습니다. 순진한 학생들에게 의식화 수업을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순진한 학생들, 아직 이성에 대한 사랑의 감정도 갖기 전인 학생들에게 증오심, 적개심을 갖도록 한 게 바로 그들이었고, 연대의식보다 경쟁의식을 갖게 한 게 바로 그들이었습니다. (30~31)
* 계기수업: 공식적인 교육 과정과 상관없이 사회적인 이슈와 사건을 가르치는 수업이다
'계기수업'이란 용어를 처음 접했지만 교실에서 꼭 필요한 수업이다. 교육을 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수구기득권세력이 원하는 분열과 경쟁을 추구하는 순진한 학생들을 양성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살아갈 사회를 이해하고 잘 적응하고, 더 나은 사회로 이끌어 갈 수 있는 건전한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 교육이라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사회적 이슈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조금씩 참여하는 연습,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니까 자본주의를 제대로 가르쳐야 하는데 아니라는 거죠. 외려 자본주의연구회 같은 걸 하면 국가보안법에 걸릴 정도잖아요.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기'에 대한 인식 자체가 거의 텅 비어 있는 이런 곳에서 계몽을 얘기하는 게 과잉이 될 수 있을까요? (32)
'국가보안법'을 만든 주체와 의도가 국민들에게 여전히 공감을 얻고 있는지 의문이다. 국가보안법이 국민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면 국민들에게 교육을 하고 이해시키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정권을 가진 자들에게 유리하게 해석되고 적용되었다. '자본주의' 국가라고 하지만 교실에서 '자본주의'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현실이었다. 지금의 교실은 어떤지 궁금하다.
수구기득권층은 자유와 공정, 경쟁을 추구하며 시장경쟁을 옹호한다. 선제조건은 국민들이 이러한 시장경제 중심의 자본주의에 준비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 하지만 학생들은 교실에서 무엇이 바람직한 선택인지 연습도 없이 경쟁 속으로 던져진다.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자식의 경제적 층위가 결정되는 말로만 공정경쟁 사회다.
'내'가 없는 학문이 어떻게 인문 사회과학인가? 먼저, 사유체계에 대해서 스스로 질문하는 계기 자체가 완전히 생략되어 버린 사회라는 것을 말하고 싶고요. 그 다음으로, 주입되는 의식이 철저하게 지배체제에 의해서 기획된 것으로만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 그러니까 '선배 잘못 만나지' 않고는 그러한 주입된 의식에서 헤어나기 어려운 이 구조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33~34)
인문학을 강조하는 시대다. 책보다는 스마트폰이 대세인 시대다. 책 중에서도 사회과학 분야는 퇴보하고 있다고 한다. 반면 경제적 자유를 운운하는 재테크 서적은 흥행한다. 어쩌면 소화하기 쉬운 감각적인 책이나 SNS가 선호되는 세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결국은 자신의 성찰과 비판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주입식 교육, 사지선다형 문제풀이형 교육, 소통보다는 일방통행식 교육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지배체제에 의해 기획된 것을 배워야 하는 교육이다. 이런 교육 속에서 우리 아이들은 생각하고 의견을 만들고, 의견을 나누며 생각을 확장하는 과정이 생략된다. 몸은 선진국이라고 하지만 생각은 후진국에 머무르고 있다. 공교육에서 부족한 부분을 각자도생, 개별 가정에 맡기는 격이다. 그럴 형편이 되지 않는 부모는 어쩌라는 것인지...
안정되고 유복한 쁘띠 부르주아적 삶에 대하여 저는 20대 초부터 어떤 오기 같은 거를 부려왔어요. 그런 안온한 삶은 너무 뻔해, 그런 삶은 살았다고 치자. 이런 식의 태도를 갖고 있습니다. (47)
저를 포함해서 학생운동 서클에 있는 학생들은 당시로서는 대단한 엘리트층에 속했고, 스스로도 선민의식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 자리에서 바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분명 권력욕이나 현시욕 또는 인정욕망 같은 것이 유달리 있다는 것이 감지되었습니다. 저는 그런 것에 의구심이 있었던 거죠. (53)
그가 1990년대 중반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로 가져다준 것은 남민전의 사상은 아니었다. 책은 파리에서의 경험과 회상 등으로 이뤄진 에세이집인데, 서문에서부터 좀 '달달한 문체에 여행자를 위한 팀과 파리의 명소 사진 등도 싣고 있어 마치 파리 여행안내서 같은 느낌도 준다. 아마 편집자는 '파리와 망명객'에 뭔가 '고독'과 '낭만' 같은 것을 불어넣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59~60)
https://bandiburi-life.tistory.com/2318
(2부로 이어진다)
https://bandiburi-life.tistory.com/2340
독서습관 887_홍세화의 공부_홍세화&천정환_2017_알마(240512)
■ 저자: 홍세화
작가이자 사회운동가, 언론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학 졸업 후인 1979년 '남민전' 사건에 연루되어 귀국하지 못하고 프랑스로 망명했다. 망명 시절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라는 책을 펴내면서 사회 구성원이 서로를 아름답게 보듬어내는, 차이를 차별과 억압의 근거로 삼지 않는 개념인 '똘레랑스'를 우리 사회에 선보였다.
2002년 귀국하여 한겨레신문 기획위원 등을 지냈으며, 현재 시민들의 독서토론 모임인 <소박한 자유인>의 발기인 및 '장발장 은행'의 은행장으로 일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빨간 신호등> <생각의 좌표> 등이 있다.
'독서습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887]홍세화의 공부 ③_평생 공부의 시대와 안정된 삶의 보장된 사회 (0) | 2024.05.13 |
---|---|
[887]홍세화의 공부 ②_보편복지로 여유 있는 노후 그리고 대화와 토론의 사회 (0) | 2024.05.13 |
[883]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③_홍세화의 자전적 에세이 그리고 프랑스 똘레랑스 (0) | 2024.05.13 |
[883]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②_홍세화의 자전적 에세이 그리고 프랑스 똘레랑스 (1) | 2024.05.12 |
[883]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①_홍세화의 자전적 에세이 그리고 프랑스 똘레랑스 (0) | 2024.05.1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