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3부를 포스팅한다.
https://bandiburi-life.tistory.com/1924
내가 당시 리영희 선생의 글을 대하고 충격을 받고 또 빠져들었던 사실은, 내가 외교학과에선 무슨 강의를 들었어야 했는지를 거꾸로 분명하게 말해준다 할 수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문제의식이 있고 없고의 차이였다. 그런데 빠리 제7대학의 세미나에선 바로 그 문제의식의 불꽃이 튀고 있었다. (132~133)
리영희 선생의 삶을 알고 그를 존경하게 되었다. 특히 <전환시대의 논리>라는 책이 당시 대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줬다고 하기에 읽었다. 지금 읽어도 탁월한 통찰에 놀라게 된다. 그렇게 진실을 추구하며 얘기할 수 있는 어른이 우리 사회에 많아야 한다. 문제의식을 가지고 열띤 토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후 1914년 일차대전이 일어날 때까지 시기를 이른바 '벨르 에뽀끄(Belle Epoque, 아름다운 시기)'라고 하는데 그것은 제국주의의 팽창으로 식민지로부터 '경제잉여'가 흘러들어옴으로써 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잉여의 일부를 노동자계급에게도 흘려주어 그들의 불만을 희석 혹은 개량화했을 것이다. 식민지인들의 희생으로 제1세계는 이른바 '아름다운 시기'를 구가할 수 있었고, 이 식민지들은 나중에 제3세계라고 바뀌어 불려지게 되었으며, 그 희생과 종속은 계속되어 '남북문제'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2)
제3세계라고 하는 국가들이 과거의 식민지 국가들이었고, 그들의 희생으로 현재의 선진국 즉 제1세계라는 국가들이 잉여를 챙길 수 있었다는 진실을 알려주는 문장이다. 새롭게 역사를 바라보게 된다.
우리들은 가끔 한국 신문지상을 통하여 세계에서 제일 살기 좋은 나라순으로 또는 민주주의가 잘되어 있는 나라 순으로 또는 인권 상황이 좋은 나라 순으로 나열되어 있는 기사를 볼 때가 있다. 대개 스위스나 스웨덴 같은 나라가 선두를 차지하고 그 다음쯤에 미국이 차지하는데 프랑스의 지식인이나 문화인들이 보기에는 한마디로 "그게 아니올시다"이다. 한국 신문들은 미국의 '무슨 재단' 같은 데서 그들의 기준에 의해 제멋대로 발표한 것을 무슨 대단한 발견이나 한 양 떠들어댈 뿐이라는 것을 여기서는 알 수 있다. 미국의 '무슨 재단'아란 것이 대부분 미 국무성이나 국방성 또는 미 CIA의 앵무새들인데 한국의 신문들이 또 그 앵무새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209)
현재의 한국언론은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으로 기사가 옮겨가면서 속도경쟁을 하고, 정권의 눈치를 보며 지면보다도 더욱 쓰레기 같은 무의미한 기사가 넘친다. 기존에도 객관적인 기사보다는 미국에 편향된 것들이 많았는데 더욱 악화되었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된 기사를 보고 싶다.
내가 당신에게 김성만을 석방하라고 말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단 하나의 잘못은 의견이 달랐던 것뿐인데, 고문에 못 이겨 끝내 간첩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내가 묻고자 하는 것은 육체적인 고통을 가하여 끄집어낸 자백이 가치가 있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유별난 법으로, 유별난 재판으로, 예외없는 부조리의 연속으로, 수백일 동안 단말마의 고통을 겪게 하고 사형까지 말하더니 종신징역을 살리고 있습니다. (213)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김성만'과 같은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까. 그들을 고문했던 사람들은 누구이며 왜 사죄하지 않는가. 법의 기준이 고무줄이 되어서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되어서야 되겠는가. 공정한 법 집행이 되는 정의로운 국가는 언제 도달할 것인가.
나는 나 나름대로 그 차이를 생각해보았는데, 우리의 '양심수'란 '고문 받은, 그리고 고문에 의한 의견수'가 될 것 같았다. (214)
오오까의 밀감 이야기 (215~218)
https://bandiburi-life.tistory.com/2320
사물에 대한 비판적 안목을 키우는 교육에 익숙한 너희들이 체제에 무조건 순응하는 인간 형성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지? 월요일마다 행해지는 조회, 종례 및 요식행사 등 일본 제국주의 시대의 유물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루쏘, 칸트, 헤겔, 맑스, 레닌에 대하여 공부하던 너희들이 어떻게 형식주의 도덕교육을 받아들일 것인지? 그리고 거의 사지선다형 식의 질문에 어떻게 답변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구나. (223)
저자가 자녀들이 한국의 교육에 대해 걱정하는 부분은 한편으로는 한국 교육에 대한 비판이다. 순응형 인간을 양성하는 교육, 형식주의 도덕교육, 사지선다형의 질문 등. 교육은 미래 세대를 기르는 문제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교육은 비교와 경쟁, 암기와 문제풀이 중심이다.
사람이 미래를 모르고 살면 불안하긴 하나 위험하지는 않단다. 아니, 미래를 모르고 사는 것이 오히려 축복일 수도 있단다. 그러나 과거를 모르고 사는 것은 몹시 위험한 일이란다. 그것이 개인의 과거이든 민족의 과거이든.... (226)
과거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하지 않아야 할 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더 이상 하지 말자. 잘했던 것은 더 잘할 수 있도록 하자.
시를 쓴다는 것은 극작이나 연출한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순전히 내 무식의 소치였는데 원래 시는 그 발생부터 '쓰고 읽는 것'이 아니라 '말하고 듣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김지하의 <오적>을 그냥 읽는 것보다 소리꾼의 소리로 들을 때 훨씬 더 제 맛이 난다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시와 희곡은 원래 가장 가까운 장르였다. (240)
시는 소리 내어 읽을 때 더 제 맛이 난다. 김지하의 '오적'은 특히 그렇다. 어두운 시대에 그의 결기와 용기가 존경스럽다.
그 10월유신은 바로 7.4 공동성명을 유산시키고 나타난 물건이었다. 7.4공동성명이 발표되었을 때 그 뒤에 무엇이 있는 게 아닌가 의구하면서도 흥분했었는데 역시 '역시나'였다. 그들에겐 민족의 염원도 정권 연장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252~253)
박정희 정권의 파렴치한 모습을 보여준다. 학창 시절 열심히 외웠던 기억이 난다. 씁쓸하다.
한국의 정치사에선 자유도 민주도 인간의 기본권도 관용도 찾을 수 없었다. 단지 억지와 뻔뻔스러움으로 가득 찬 독재와 증오의 이데올로기뿐이었다. 그들이 스스로 내세워 사용했던 '말'과 그 실제는 문자 그대로 정반대였다. 예를 들어, 유신체제의 '민주공화당'이란 말은 실제로는 '독재군주당'이었고, (...) (264)
아래의 내용은 똘레랑스에 대한 정의다. 여러 번 보아도 우리에겐 이 똘레랑스가 보이지 않는다.
'당신의 정치적 종교적 신념과 행동이 존중받기를 바란다면 우선 남의 정치적 종교적 신념과 종교를 존중하라', 바로 이것이 똘레랑스의 출발점입니다. 따라서 똘레랑스는, 당신의 생각과 행동만이 옳다는 독선의 논리로부터 스스로 벗어나길 요구하고, 당신의 정치적 이념이나 종교적 믿음을 남에게 강제하는 행위에 반대합니다. (289)
똘레랑스의 요구는 정치적 성향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똑같이 적용됩니다. 똘레랑스는 당신에게 당신과 다른 것을 인정하라고 말합니다. 이웃을 인정하고, 외국인을 인정하고 또한 당신과 다른 생활방식, 다른 문화를 인정하라고 요구합니다. (291)
프랑스의 개인은 권력에 대하여 똘레랑스를 갖고 있음에 반하여 한국의 개인은 똘레랑스는 없이 다만 권력에 의해 강제되고 희생되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프랑스의 권력은 사회와 역사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것에 반하여 한국의 권력은 그 현대사가 증명하고 있듯이 역사에 대해서나 사회에 대하여 전혀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302)
프랑스 사회에 이처럼 똘레랑스가 흐르게 된 것을 '나는 무엇은 아는가?'로 표현되는 프랑스의 철학전통인 회의론에서 출발한 이성주의와 대혁명을 비롯한 사회운동의 역사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똘레랑스란 합리적 이성이 역사를 관철하여 행동하고 반추함으로써 얻어낸 결론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307~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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