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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883]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①_홍세화의 자전적 에세이 그리고 프랑스 똘레랑스

by bandiburi 2024. 5. 12.

2024년 4월 18일 홍세화 작가의 별세 소식이 전해졌다. 이 분에 대해 정치적인 이슈를 삼으려는 일부 유튜버들도 있었다. 그에 대해서는 이름만 들어본 정도였다. 그래서 그의 책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을 읽었다. 2004년에 출간된 책으로 홍세화의 고단한 인생길을 잘 보여주었다. 더불어 프랑스 빠리에 대한 지식도 얻을 수 있었다. 

저자는 박정희와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어두운 군사독재 시절의 피해자로 부득이하게 프랑스에서 망명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곳에서 가족들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관광가이드와 택시 운전사로 생활했다. 

저자는 빠리 이곳저곳을 소개할 때는 마치 가이드가 안내하듯이 이야기를 풀어간다. 책을 통해 빠리를 여행하는 기분이다. 하지만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진지해진다. 20년이 지난 책이지만 저자가 살아온 삶을 온전히 느낄 수 있고, 우리 현대사의 어두웠던 일면을 볼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아직 읽어보지 않은 분들은 강추한다. 성인인 아이들에게도 권하는데 시큰둥하다. 

다음은 책에서 남기고 싶은 문장을 인용했다.


루브르는 고대부터 1848년까지, 오르쎄는 그후 1914년 일차대전까지 그리고 현대미술관은 그후 지금까지 세 시기로 나누어 진열해놓았지요. (13)

2006년 경 파리 출장 기회에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했다. 당시에 수많은 그림에 지쳤던 기억이다. 루브르, 오르쎄, 현대미술관이 시대적으로 작품을 구분하고 있다는 사실은 처음 알게 되었다. 사실 미술에 대한 관심이 적었던 탓이겠다. 

빠리의 옛 성주가 살던 곳은 지금은 법원이 자리잡고 있지요. 그럼 성주는 어디로 갔냐구요? 정치권력이 커지니까 섬 안의 성이 좁아져 강 건너로 갔죠. 그게 루브르였고 그것도 모자라 빠리꼬뮌 때 타서 지금은 없는 뛸르리 궁 등의 왕궁을 지었고 또 그것도 모자라 베르사유 궁을 지었던 것이죠. 그래도 빠리의 중심은 역시 노트르담이에요. 빠리의 중심은 곧 프랑스의 중심이니 프랑스 도로의 영점 포인트가 바로 노트르담 앞에 있지요. (16)

도시가 성당과 성주가 사는 성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노트르담 성당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지만, 성주가 살던 성은 루브르로, 뛸르리 궁으로, 베르사유 궁으로 점점 커졌다. 재미있는 정보다. 

그렇게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도 그래도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보면 신기할 정도지요. 나는 그것이 똘레랑스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했지요. 똘레랑스가 뭐냐구요? 글쎄, 한마디로 정의하긴 어려운데, '나와 다른 남을 허용하고 관용하는 것'이라는 뜻 정도로 알고 여기선 그냥 넘어가도록 하지요. (18)

프랑스 하면 '똘레랑스'를 알아야 하겠다. 우리에게는 무척이나 부족한 똘레랑스다. 남을 허용하고 관용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하고 비교하고 이겨야만 하는 현실이다. 이 책에서 계속해서 강조하는 '똘레랑스'를 배우고 싶다. 

좁은 집이었지만 나는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 집에서 오랫동안 살 수 있었던 것에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 이유는 한국에서 경험한 바 있었던 남의집살이의 서글픔을, 남의 땅인 이곳에선 거의 느끼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49)

고난은 사람을 단련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대응한다면 저자와 같이 어떤 상황에서도 고마움과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인생사 새옹지마 아닐까. 

나의 행동이 별게 아니었다는 것은 내가 망명을 신청했을 때, 프랑스 외무부 관리를 만났을 때에도 확인되었다. 그 경험은 역으로 한국 사회가 얼마나 증오에 차 있는가를 다시금 돌이키게 했을 뿐이었다. (55)

저자가 프랑스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며 바라본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왜 '증오'에 가득 찬 삶을 살고 있을까. 누가 그런 상황에서 이득을 보는 것일까. 50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다. 선진국의 문턱에 있다고 자평하는 대한민국의 위상이다. 편가르기보다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공동의 발전을 위한 설득의 연습이 필요하다. 


독서습관 883_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_홍세화_2004_창작과비평사(240502)


홍세화(출처: flickr)

■ 저자: 홍세화

1947년 서울 출생. 경기중고등학교 졸업
1966년 서울대 공대 금속공학과 입학. 67년 10월 그만둠.
1969년 서울대 문리대 외교학과 입학. 문리대 연극반 활동. 
              72년 '민주수호선선언문' 사건으로 제적.
1977년 졸업. 77~79년 '민주투위' '남민전' 조직에 가담. 
1979년 3월 무역회사 해외지사 근무차 유럽으로 감. 
             남민전 사건으로 귀국하지 못하고 빠리에 정착. 
1982년 이후 관광안내. 택시운전 등 여러 직업에 종사하면서 망명생활
2002년 귀국해 <한겨레> 기획위원
2024년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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