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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건강

[건강]난소암 수술과정 및 항암치료 경험 그리고 요양원의 역할

by bandiburi 2023. 3. 19.

난소암 수술과 1차 항암치료를 받은 동생을 병문안하며 들은 이야기를 포스팅한다. 한 사람이 경험하는 모든 것은 개인적으로 커다란 서사다. 둘도 없는 과정이고 개인의 경험이 타인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포스팅하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동생이 담담하게 말한 것을 인용한다.


수술 이야기

정기검진을 하면서 난소에 혹이 있으니 모니터링을 하고 있었다. 2022년 집 근처 병원에서는 혹이 없어졌다고 해서 안심했다. 이전에도 가끔 아랫배가 가스가 찬 것처럼 더부룩한 경우가 있었다. 금세 증상이 사라졌기에 소화기관의 일시적인 문제로 생각했다. 그런데 2023년 1월 설연휴가 지나고 평소 입던 바지를 입지 못할 정도로 배가 부풀었다. 심상치 않아서 들리던 집 근처 병원에 갔다. 의사가 복수가 찼다며 큰 병원으로 서둘러 가보라고 한다. 

서울아산병원으로 가니 의사가 검사한 사진을 보여준다. 폐 아래쪽으로 퍼져있는 암세포가 보였다. 급히 수술을 했다. 난소에 암이 있다는 사실과 주변 장기로 암세포가 퍼졌다는 점을 알고 수술을 받았다. 8시간에 걸친 대수술이었다. 수술한 부위를 소독할 때 보니 개복을 하며 상당한 길이로 흉터가 생겼다. 살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심정이었다. 

 

수술은 난소를 포함한 자궁을 들어내고, 주변 임파선을 제거하고, 대장으로도 전이되어 대장과 항문 사이의 직장을 제거하고 이어 붙이는 과정이었다. 대변을 저장해 두는 역할을 하는 직장을 제거하다 보니 음식을 먹고 수시로 화장실을 가야 하는 불편함이 생겼다. 그래서 많이 먹을 수도 없고, 집에서 멀리 이동하기도 불편하다. 

수술은 이전에 건강했던 몸을 수척하게 만들었다. 입원과 퇴원 사이에 운동으로 단련했던 몸은 사라졌다. 이제는 나의 몸속에서 하루속히 암세포가 사라지도록 치료받고 식습관을 만들어 가는 일만 남았다.


1차 항암치료 이야기

동생을 만나기 전에도 항암치료를 받은 분들의 경험을 몇 번 들었다. 위암 말기에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아 호전된 분의 경험담이 강하게 기억에 남아 있었다. 침대에 누워 항암제가 몸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침대 속으로 몸이 빠져드는 것처럼 기운이 없다. 항암치료실로 들어가는 길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의 심정이 된다. 그곳의 냄새조차 몸을 떨게 만든다고 했다. 

그래서 동생이 1차 항암치료를 받는다고 했을 때, 치료 후에 많이 힘들어할 것으로 생각해서 연락을 주저했다. 막상 방문하니 늘 웃음을 잃지 않고 긍정적인 사람이어서 육체적으로는 힘들지만 여전히 웃음으로 맞아줬다. 

 

1차 항암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구토에 대한 염려로 구토를 억제하는 약도 처방했다고 한다. 항암치료를 받고 나왔지만 초기 4일 정도는 괜찮았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 날 아이를 서울아산병원에 데리고 갔는데 대퇴부 근육이 식음땀이 날 정도로 아팠다고 한다. 통증이 너무나 심해서 응급실에서 처방을 기대했다. 하지만 서울에 위치한 큰 병원의 응급실은 이미 만원으로 동생은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집 근처에 있는 요양원으로 이동했다. 

처음 알게 된 사실은 대형병원 응급실에서 암환자의 통증을 완화하기 위한 처방을 받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에 요양원을 이용한다는 점이다. 암환자의 입장에서는 당장 급한데 이런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곳이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인 것이다. 특히 인구가 밀집된 서울이나 수도권에 위치한 곳들이다. 고령층을 위한 곳으로만 알았는데 통증이 심한 암환자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역할도 하고 있었다. 

동생은 요양원에서 진통제를 투여받았지만 효과가 없었다. 그래서 마약성 진통제인 모르핀을 투여하고서야 진정되었다. 암환자들은 통증이 심한 경우 마약성 진통제로 진정될 수 있다고 들었는데 동생이 그런 상황까지 간 것이다. 마음이 쓰렸다. 

그리고 2주 정도가 지났다. 내가 방문한 날 아침에 머리를 감다가 머리카락이 많이 빠져 엉켰다고 한다. 항암치료를 하며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탈모가 급격히 진행된 것이다. 조금씩 빠지다 이번에 왕창 진행되었다. 바로 미용실에 전화를 해서 예약하고 삭발을 했다. 내가 만났을 때는 모자를 쓰고 있었다. 

5살인 둘째를 데리고 놀이터에 갔는데 딸이 엄마의 모자를 벗기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엄마의 머리가 없어 울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급히 가발을 구매하러 갔다. 그날 밤 톡으로 소식을 들으니 가발을 쓴 엄마를 보고 아이가 좋아했다고 한다.


암이란 것이 질병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지만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는 이유가 이런 과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평소에 건강한 생활습관으로 질병을 회피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겠다. 우리의 몸은 한 번 태어나면, 반드시 죽어야 하는 유한한 존재다. 살아있는 매 순간이 건강하면 좋겠다. 질병을 마주쳐야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극복하려 노력해야 한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한다. 이번 경험이 전화위복이 되어 큰 행복으로 돌아오리라 기대한다. 동생이 마주친 현실이 꿈같기도 하지만 당당하게 맞서서 이겨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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