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노회찬 씨의 책을 검색하다 만난 자극적인 제목의 책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을 정독했다. 다섯 명의 연사 특강에 직접 참여한 것처럼 공감하고 교육에 대한 통찰을 얻는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대학입시, 스펙, 취업이라는 용어들이 자녀의 미래를 담보하고 있다는 듯이 부모들은 우리 아이들을 달리게 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이다.
1등이라고 하면 시험성적이 떠오른다. 학교 성적이 우리 아이들의 행복하고 안정된 삶을 보장할지는 의문이다. 누구나 1등 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는 사실을 어른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아이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만족스러운 삶을 만들어가도록 할까라는 방법론으로 가면 고민이 된다. 용기가 필요하다.
자본의 논리가 개입되어 있는 대학은 아이들의 행복한 미래를 보장하지 못한다. 대학을 졸업해 갈 수 있는 대기업과 전문직, 공무원 자리는 정해져 있다. 졸업생의 5퍼센트도 안된다고 한다. 그러면 나머지 졸업생들은 일에 대해 다시 고민해야 한다.
남들이 가기에 나도 대학에 간다고 말하는 것은 게으름이다. 자녀들이 사회에서 자존감을 가지고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를 가지며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라고 김규항 씨는 강조한다. 공감한다.
고위직 인사청문회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점이 있다. 많이 배운 사람들이고 자기 분야에서 탁월한 경력을 가진 인물들이다. 그런데 부동산, 주식, 자녀교육에 대해 검증해보면 오점이 발견된다. 한마디로 대부분의 인물이 욕심이 많다. 한 국가를 이끌어가야 하는 리더계층이 그런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자신과 가족을 위해 그런 욕심을 드러낸 사람들이 자신의 직위와 영향력을 가지고 어떤 일을 도모할까.
시험성적이 좋은 사람들이 부모가 만들어준 스펙을 가지고 전문직이 되었을 때 그들은 과거에서 벗어나 더불어 사는 겸손한 사람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어렵다고 생각한다. 판검사나 의사는 시험 잘 보는 사람들이 가는 집단이다. 그들이 자본의 논리에 압도되어 사람이나 생명이 아니라 돈을 앞세울 때 의료사고가 나고, 편파 판결이 나오는 것이다.
이 책은 2010년에 나온 것으로 이미 12년이 지났다. 이명박 씨가 대통령을 할 때였고 박근혜, 문재인을 거쳐 얼마전에 윤석렬 씨가 새로운 대통령이 되었다. 세월은 흘렀지만 여전히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부모들이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덜 받으며 행복한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다. 가족 모두 일독하면 좋겠고 최소한 공지영 씨와 김규항 씨의 강의는 권해주고 싶다.
이하 내용은 책에서 새롭게 알게되거나 공감하는 내용을 인용했다.
하지만 한미주둔군지위협정을 영어로 풀어쓰면 단번에 소파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습니다. 주요 명사의 첫 알파벳만을 따서는 만들 수 없어 구석에 있는 전치사까지 끌어다 조합했습니다. 여기에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화’ 즉 우리나라의 동의를 받지 않고도 다른 나라의 전쟁에 개입해 우리나라까지도 전쟁의 불바다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25)
SOFA(Status of Forces Agreement) : 정식 명칭은 ‘대한민국과 아메리카합중국 간의 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의한 시설과 구역 및 대한민국에서의 합중국 군대의 지위에 관한 협정
노동시장은 노동과 자본이라는 두 요소로 구성된, 노동력을 사고 파는 자리입니다. 노동을 사는 자본은 강자이고, 자본에게 팔려야 하는 노동은 약자입니다. 그러므로 약자일 수밖에 없는 노동자를 위해서 엄청난 제도적 규제가 있는 것입니다. 근로기준법 1항부터 마지막 항까지는 모두 자본에 대한 간섭과 규제, 통제로 가득합니다. 자본이 아무리 자유로운 대화를 통해 노동과 합의를 이루었다 해도 법이 정한 기준에 미달하면 무효입니다. 자유의사에 의한 합의도 무효라는 것입니다. 실로 엄청난 규제 아닙니까?
자본주의 역사는 자본에 대한 규제 강화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 이래로 번성한 신자유주의는 무엇입니까? 새로운 자유가 아니라, 자본만의 자유입니다. 초기 자본주의에 자본이 누렸던 무한한 자유, 하지만 자본주의 발달과 더불어 규제당해 왔던 그 자유를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인간의 기본권으로서의 자유를 얘기하는 게 절대 아닙니다. (26)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고용 문제입니다. 비정규직이 60퍼센트에 이르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보다 몇 배나 많습니다. 그 이유는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이 널리 용인되기 때문입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비정규직을 고용했을 때 실익이 크지 않습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비정규직을 고용했을 때 실익이 매우 큽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비정규직이 줄어들 리 없습니다. (26~27)
아이들이 눈 가리고 마구 뛰어가는, 무엇을 향해 가는지도 모르고 뛰어가는, 경주마 같습니다. 자신들이 무슨 얘기를 하고, 뭘 배우는지, 뭘 배설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자신들이 뭘 하고 있는지만이라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41)
그리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이 들면 행동에 옮겨야 합니다. 자신을 위해 자녀를 위해 그리고 세계를 위해 그렇게 해야만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물론 그것만으로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순 없겠지만, 여러 사람들이 함께 일을 한다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79)
경제에서 1등, 즉 최고란 돈이 가장 많은 사람을 말합니다. 하지만 이런 논리가 마음에 안 들면 그냥 무시하면 됩니다. 진정한 최고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최고는 오랫동안 기억되기 마련이고 결국 어떤 효과를 가져와 세상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한 사람들이 없었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형편없었을 것입니다. (88~89)
우리가 18세기말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세계 명작’ 하면 떠올리는 소설들이 거의 모두 탄생합니다. 누가 있을까요? 먼저, 찰스 디킨스가 있고요. 영화로도 만들어진 <위대한 유산>처럼, 찰스 디킨스 소설에서는 가난한 뒷골목 노동자의 아들이나 고아들이 주인공입니다. 발자크나 스탕달 등 우리가 아는 소설가들이 대부분 그때 집중적으로 탄생했습니다.
이들은 새롭게 공공교육을 받은 대중의 특징을 공유합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자신들의 소설을 사서 읽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반귀족적, 반부르주아적인 정서를 담은 소설들을 탄생시켰고, <적과 흑>, <레미제라블> 등 길이 남은 작품들이 쏟아졌습니다. (106)
소설은 인간이 인간을 자연의 주기가 아닌, 인간의 인공적인 주기에 의해 24시간 노동을 시켰던 그런 타락한 시대에 태어난, 타락한 사람들을 위한, 타락한 양식이었기 때문에 다수를 위해 쓰이는 것이 소설의 운명입니다. 반면 시, 희곡, 극시는 본래 귀족 즉 소수를 위해 지어졌기 때문에 팔리든 안 팔리든 상관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115)
마찬가지로 소설 쓰기도 일종의 육체적인 메커니즘이 있기 때문에 매일매일 작은 메모라도 해야 해요. 제일 좋은 것이 사실 일기 쓰기나 여행기 쓰기예요. 일상의 것을 자세히 스케치해보는 버릇은 굉장히 좋은 습작 방법 중 하나예요. 그것들을 버리지 마세요. 나중에 어떤 묘사를 할 때 그것들이 통째로 필요할 때가 꽤 있어요. (140)
뭔가를 발견해내는 사람, 문화를 만들어내는 사람, 음악을 창조해내는 사람은 앞서 말한 여유가 있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여유는 돈 있는 여유가 아니라 아주 한가한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 쓸모없는 곳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합니다. (154)
우리 삶에서 최고의 적은 바로 이러한 결정된 가치관이나 사고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삶의 방식이 일반 상식인 것처럼, 마치 죽기 위해서 사는 게 좋은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158)
저는 이런 싸움과 대립을 하나씩 쌓아감에 따라 세상의 질서와의 다른 적정선과 자치가 생겨날 거라고 생각하고요. 저는 오히려 사회가 이러한 혼란, 싸움, 대립을 아예 하지 못하도록 막아버리고는 자기 마음대로 룰을 정해버리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171)
물론 아무리 좋은 사회에서도 실직하거나 사업하다 망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죠. 하지만 제대로 된 사회는 그럴 때 어떤 조치나 보장을 취해주죠. 그런데 한국에서는 국가나 사회가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걸 생생하게 목도했습니다. 내가 생존 경쟁에서 도태되었을 때, 나를 살려줄 사람은 아무도 없구나, 국가도, 사회도 도와주지 않는구나, 이것을 모두가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한국 사람들은 생존에 대한 공포에 빠져들었는데, 나야 그렇다 쳐도 내 새끼가 10~20년 후에 어떻게 살아갈지를 생각하면 공포를 넘어 공황 상태에 이르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아이들한테 하는 행동은 보수적인 부모든 진보적인 부모든 비슷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201)
사람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가장 첫 번째 경로는 ‘관계’입니다. 좀 힘들고 모자라도 나를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확신할 때, 어떤 경우에도 나를 지지할 사람이 있다고 확신할 때, 나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르는 사람이 있다고 확신할 때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교육은 사람과의 관계를 파괴하는, 관계 맺는 것을 훼방하는 교육입니다. (206~207)
현재 한국에서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부모 자식 관계라기보다는 코치와 선수 관계입니다. 어떤 인간적 소통도 없습니다. 이 불쌍한 엄마들이, 비아냥거리는 표현이 아니라, 정말 이 죄 없는 엄마들이 1년 365일을 아이에게 온신경을 쓰고 돌보지만, 그 대화라는 걸 정리해보면 다섯 마디 안에 다 들어갑니다. 학원 가야지, 밥은 먹었니, 힘들지, 힘내라, 얼마 안 남았어. 이런 것들이 인간적 대화는 아니지 않습니까? (207~208)
우리가 현재 교육 문제를 얘기할 때 실제적 의미가 있으려면 한 가지 결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 아이가 대학에 꼭 가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이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한, 어떤 교육적 고민과 노력도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217)
저는 제 아이들이 어떤 직업을 갖는지를 떠나서, 이 아이들과 실제로 삶에서 호흡하는 잘 아는 사람들한테서 존중받고 사랑받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비록 부모 자식 간이지만, 내 새끼라서가 아니라, 그래도 이 친구는 인간적으로 존중심이 든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225)
아이에 대해 생존 공포와 강박을 가지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그래서 진정한 교육 따위는 차치한다면 계산이라도 제대로 해야죠. 아이가 대학 마칠 즈음 되어서 헤매게 만드는 것보다는 아예 일찌감치 대학을 가지 않고도 소박하게 자존감 지키며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게 현실적입니다. 길이 안 보인다고들 하지만 길을 찾은 적이 없으니 당연히 안 보이는겁니다. 대학 입시를 향한 길은 정보와 지식이 차고 넘치는데 반해 그걸 벗어난 길은 너무나 모르죠. 우리가, 대학 입시를 향해 19년 동안 이루어지는 엄청난 투자와 고생의 반에 반만 갖고도 충분히 길을 열 수 있습니다. 아까 말했듯이 한국은 절대빈곤국가가 아니며, 뭘해도 먹고는 삽니다. (…) 아이가 그런 삶을 피하는 삶을 모색하도록 부모의 용기가 중요합니다. (228)
이 자본의 체계가 우리에게 강요하는 즐거움과 우리의 즐거움이 근본적으로 달라야 합니다. 저놈들은 남과 격차를 벌려 즐겁지만 우린 남과 더불어 삶으로써 즐거운 것입니다. 그렇게 전복된 즐거움에서 진정한 용기가 나옵니다. (241)
독서습관586_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_노회찬 외_2010_한겨레출판(22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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