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호는 집에 오자 곧바로 전봉준이한테 편지를 썼다. 서방걸이하고 둘이 사이에 오고간 이야기를 자세하게 쓴 다음, 이 싸움은 홍계훈이나 조선 조정과의 싸움이 아니라 결국 서방걸이같이 날카로운 책사를 거느리고 있는 원세개와의 싸움이며 결국 청나라와의 싸움이 되겠다는 말로 끝을 맺으면서, 홍계훈이 곁에는 서방걸이라는 청나라의 날카로운 눈과 귀와 입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말을 덧붙였다. (128~129)
<녹두장군> 9권에서는 이야기의 중심이 동학군에서 조선을 둘러싼 청나라의 움직임까지 확대된다. 감영군이 보부상들에게 돈을 주고 농민군을 진압하려 했지만 패하고 만다. 결국 고종은 초토사로 홍계훈을 보낸다. 홍계훈 주변에는 청나라 지원군을 지휘하는 서방걸이 자리하고 있다. 청나라가 조선을 도와주기 위해 왔을 리가 없지만 민비를 등에 업은 민영준은 청나라 군대를 불러 농민군을 진압해야 한다는 제안을 고종에게 한다. 나라보다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는 민영준은 일제 강점기에는 친일파로 변신하는 인물이다.
장위영병은 소문난 군대였다. 일본군 장교를 초청해서 신식 훈련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최신식 양총인 모젤 소총이 기본화기였고, 최신 크루프 야포와 역시 최신식 회선포로 무장을 하고 있었다. (20)
관군 장교놈들은 병사들을 종은 고사하고 짐승 취급도 아닙니다. 건뜻하면 무지막지하게 패고, 무엇보다 군사들은 배가 고파서 제일 견딜 수가 없습니다. 상관놈들은 우리 밥할 쌀을 퍼갖고 가서 술을 받아먹기 일쑤고, 지금도 급료가 몇달치나 밀려 있습니다. 굶주리다 못한 병사들이 여염집에 들어가 먹을 것을 도둑질하다 들켜 망신당한 일이 수두룩합니다. (115)
조정은 중심을 잡고 동학농민군이 왜 못살겠다며 들고일어났는지 원인을 찾고 싸우지 않고 해결하려는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조선말 고종과 조정 관료들은 나라의 군사력, 경제력, 외교력 등 모든 면에서 무기력한 모습이다. 주변국에 휘둘리고 백성과 상인들의 삶은 부패한 관료들로 인해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태다.
우리 농민군은 한번 패하면 그것으로 그만입니다. 조정군은 패하더라도 그 한판 싸움에서만 패하지마는 우리는 한번 패하면 끝장입니다. 농민군은 한번 패하면 거의가 흩어져버릴 것입니다. 조정군하고 우리 농민군이 다른 점이 바로 이 점입니다. 우리는 백성들을 강제로 끌어들일 수도 없고 싫다고 돌아서도 붙잡을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경군 병사들한테 들어서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우리는 무기로도 도저히 조정군을 당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군사들 수로 우겨댈 수밖에 없으니 농민군이 적어도 조정군 3,40배는 되어야 할 것인데 고을을 돌면 많이 모여들 줄 알았던 우리 예상이 빗나가버렸습니다. (161)
조정은 최신 무기인 야포와 회선총을 가지고 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다가온다. 화승총과 죽창을 가지고 싸우는 동학농민군에게 야포와 회선총의 위력은 굉장했다. 거리와 위력에서 비교할 수 없다. 다행히 조정군과의 1차 전투에서는 이방언의 아이디어로 장태를 만들어 회선총과 양총에 대항해 승리할 수 있었다.
장태는 껍질이 단단하고 매끄러운 대를 방탄에 활용한 것이다. 총알이 쇠붙이에 빗맞으면 옆으로 튀겨나가는 이치를 이용한 것이다. 이방언은 장흥에서 장태를 만들어 직접 실험을 해보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번 전투는 들판에서 벌어져 그 장태가 마치 장갑차 같은 위력을 발휘했다. 장태는 사거리와 발사 시간 등 성능이 형편없는 화승총으로 양총에 대항하는 데 결정적인 몫을 한 것이다. (204)
유생들 동향도 동향이었지만 이제 조정과의 타협의 여지가 없었다. 전쟁판에서 사자를 죽인다는 것은 사자가 전하는 말에 거부한다는 의사를 그만큼 강하게 나타내는 의사 표시의 한 가지 방법이기도 했다. (228)
책에서 민비가 등장한다. 명성황후로 알려진 고종의 아내인 민비가 어떤 사람인지 소설은 보여준다. 작가의 입장이겠지만 부정적이다. 진령군이라는 무녀가 등장한다. 민비는 진령군을 통해 굿을 많이 했다. 굿과 진령군에게 자신의 삶을 많이 의지한 것으로 보인다. 민영준은 민비에게 의지했고 민비는 고종을 쥐락펴락 하는 것처럼 보인다. <녹두장군>이 전봉준에 대한 소설이 아니라 1890년대에 조선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농민 관점의 역사서로서 독자에게 도움을 준다.
당장 보리타작도 보리타작이지만, 곧 이어서 모내기를 해야 할 판이었다. 모내기는 보리타작과는 또 달랐다. 때를 놓치면 일 년 농사가 그만이었다. 두레가 하는 일은 모내기가 제일 큰일인데, 동네마다 바로 그 두레꾼들이 빠져나와버린 것이다. (233)
선전관 목벤 사건은 유생들 사이에서 두고 두고 말썽이 되어 전쟁이 끝날 때까지 명분 싸움에서 농민군들 짐이 되었다. (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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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574_녹두장군⑨_송기숙_1994_창작과비평사(22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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